끄응..."


실리안은 그의 왕좌에 앉아 고민에 빠져있었다. 얼마 전 미한이 회의에서 왕비 문제를 꺼내고 난 뒤, 온 왕국이 자신의 왕비가 될 사람이 누가 될지 주목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참한 왕비를 맞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새로운 왕비가 누가될지를 유적지에 들리는 발탄의 울음소리보다 중하게 생각할줄이야.


"그야 당연합니다. 실리안 폐하께서 전장에 나가 용맹히 싸울수록, 폐하께서 후사를 남기지 못 하고 돌아가실 수 있으니 말입니다. 다시 한 번 왕위를 두고 혼란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백성들이 어딨겠습니까?"


미한의 말에 틀린 것 하나 없었기에, 실리안의 고심은 깊어져갔다. 이미 판이 이렇게 커진 마당에 없던 이야기로 돌리기도 뭣하고, 그렇다고 마음도 없는 사람과 혼인하는 건 미래는 생각치 않은 미봉책일 뿐이니. 진퇴양난이라는 말이 이럴 때 쓰이는 것이라는걸 온몸으로 체감하고 있는 실리안에게, 문지기가 다가왔다.




"폐하, 지금 왕의 기사께서 궁에 오셨다고 합니다."


왕의 기사라는 칭호에 실리안은 얼굴이 밝아졌다. 나의 전우, 자신이 이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있도록 물심양면 힘써주었던 사람! 그 사람이라면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고 이야기나눌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에, 실리안은 옥좌에서 일어나 왕의 기사를 맞이했다.


"아, 자네 왔는가!"




고양이처럼 도도하게 카펫 위를 걸어오는 왕의 기사, 흑단 같은 머릿결은 한 갈래로 올려묶었고, 고혹적인  눈 아래 작은 발도장이 찍혀 있었으며, 가녀려보여도 탄탄한 양 팔에는 커다란 헤비건틀렛을 끼고 있는 그녀는 일어나 자신을 맞이하는 실리안에게 정중히 무릎꿇었다.


"왕의 기사가 루테란의 왕을 뵙습니다."


"그, 그렇게 대하지 말라고 하지 않았는가!"


실리안이 질겁하자, 기사는 웃으며 일어났다.


"내가 격식없이 대하라고 몇 번이나 이야기하지 않았는가!"


"그래서 격식없이 장난쳤는데?"


실리안에게 눈웃음지은 뒤 주위 신료들에게 인사하는 왕의 기사. 실리안은 도저히 못 말리겠다는 듯 한숨을 내쉰 뒤, 그녀를 불렀다. 


"아무튼, 마침 잘 되었군. 나와 잠시 밖에 나가지 않겠는가?"


"응? 왜?"


"요새 고민거리가 있는데, 그에 대해서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어서 그렇다네. 여기 왕궁보단 탁 트인 밖이 더 자유롭게 이야기 할 수 있지 않겠나?"


"흐음~ 그 핑계로 날 외진 곳으로 데리고 가서 무슨 짓을 하려는 건 아니겠지?"


"자, 자네 지금 무슨 말을 하는건가! 내가 그런 시정잡배나 할 짓을 할 것 같은가?"


두 사람은 티격태격하면서 왕궁을 나섰고, 미한은 그 뒷모습을 보며 미소지었다.

저렇게 서로가 마음이 맞아보이는데, 어째서 두 사람은 이어지지 않을까.

미한의 걱정은 그 날 이후로 싹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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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바라기가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해무리 언덕. 실리안은 얇은 외출복에 패자의 검만 맨 채로 기사와 함께 나왔다. 산들산들한 바람과 해바라기의 군중들 사이에서, 실리안은 기사에게 자신의 처지를 설명했다. 어쩌다보니 왕비를 선출해야 할 상황이 되었고, 지금 그 것 때문에 뒷골목에서는 누가 왕비가 될지를 두고 불법 도박까지 벌어지고 있다고.


"이야, 그렇게까지 백성들이 차기 왕비님께 관심을 가지고 있는거야?"


"그러게 말일세. 아무리 내 후사가 중요하다고는 하지만, 당장 군단장들의 위협이 눈앞에 있는데도 이러니..."


실리안은 고개를 떨구며 한숨쉬었다.


"이 또한, 내가 부덕한 탓인가?"


"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네가 무슨 잘못이 있다고."


"하지만 내가 정말 뛰어난 왕이었다면, 백성들이 내 후사가 없더라도 '실리안 폐하께서는 어떤 상황에서도 무사히 돌아올꺼야'라고 생각하며 걱정하지 않았을 것 아닌가. 그러면 자연스래 왕비가 없어도 괜찮을 것이라 생각했겠지."


실리안의 시선은 바닥을 향했고, 기사는 그를 위로해주는 대신 조용히 비파를 들어 음악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마치 장미가 가득 핀 꽃밭에 있는 듯한 선율이 두 사람 주위를 감쌌고, 실리안은 기사를 쳐다보았다.


"...이 노래의 뜻은 알고 있는가?"


"음, 글쎄? 유디아에서 어느 음유시인이 가르쳐 준 노래인데, 무슨 뜻인지는 듣지 못 했어. 노래 좋지 않아?"


"그 노래는... 마음에 드는 이성을 유혹하는 노래일세."


"아..."


기사는 말꼬리를 흐리며 바닥만 보고 있었다. 의기소침한 기사의 모습에 걱정이 된 실리안이 다가오자, 기사는 갑자기 고개를 들어 장난스런 미소를 보였다.


"그럼... 내가 제대로 연주한게 맞네?"


"뭐라고? 그게 무슨..."


실리안이 무어라 말을 잇기도 전에, 기사는 실리안을 밀어 넘어뜨리고선 그 위에 주저앉았다.


"아, 아니. 이게 뭐하는..."


실리안이 무어라 입을 열기도 전에, 기사의 입술이 실리안의 입을 막았고, 그녀의 혀가 얽혀왔다.


"하응, 츄릅, 츗, 츄르릅..."


오랜 키스 이후 두 입이 선을 그으며 헤어진 뒤,  기사가 실리안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그렇게 고민할 필요없게 만들어 드릴께요, 폐하♡"


그 목소리에 실리안은 아찔해졌다. 

솔직히 말해서, 실리안 역시 왕의 기사에게 마음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를 돌아보았을때 시리게 보였던 하얀 목덜미나, 웃을 때 같이 곱게 휘어지던 눈매, 영광의 벽에서의 전투 직전 빗물이 쇄골을 타고 가슴골로 들어가는 장면, 그도 젊은 남성인지라 기사의 수려한 모습에 흔들릴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건 아니었다. 실리안의 호감은 그녀의 외모보다 영광의 벽 전투까지 기사가 보여준 충성심과 전과에 조금 더 무게가 실려있었고, 설령 진심으로 마음이 생겼다 할지라도 제대로 된 장소를 마련해서 모든 백성들이 선망할만한 프러포즈를 선사한 뒤에 이런 관계로 발전해나가야지, 이렇게 흙바닥에서 갑작스래 널뛰듯 들이박히고 싶지는 않았다. 궁정의 예법은 무시하더라도, 이것은 강간이 아닌가! 왕의 신하가 왕을 강간하려하다니!

실리안의 복잡한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기사는 아랑곳하지 않고 실리안의 바지를 벗겼다. 그러자 우람한 실리안의 그것이 튀어올랐다


그렇게 실리안와 왕의기사는 뜨거운사랑을 나누게되었고

실리안은 세계를구하는 아크라시아영웅이자 예전부터 흥미를가지고잇었던 왕의기사 그녀를 자신한테 정복되었다는게  루테란은 되찾은것보다 기뻣다 그리고 그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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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허, 루테란의 왕과 대사부가 이리 이어질 줄 누가 알았단 말인가!"


파한은 껄껄 웃으며 수염을 쓰다듬었다. 늘 그렇듯 당당한 대사부와 뭔가 부끄러운 듯 눈을 마주치지 못 하는 루테란의 왕을 보니 누가 먼저 다가갔는지 뻔하게 보였다. 하긴, 이루고 싶은 것이 있다면 그것을 취할 때까지 들이박았던 아이 아닌가!


"내 속히 날을 비워 루테란으로 찾아가리라. 이런 경사에 빠질 순 없지 않겠는가!"


"네, 그럼 저희는 루테란으로 돌아가 볼께요."


기사는실리안의 왼팔을  가슴팍으로  끌어안았다.


"제 서방님께서 루테란에 두고 온 일들이 많거든요."


"서, 서방님이라니?! 아직 정식으로 혼례를 올린 것도 아니..."


"뭐 어떤가! 어짜피 곧 있으면 혼례를 올릴 사이인데, 그리 불러도 되지 않겠는가!"


실리안만 곤란스러웠던 파한과의 상견례가 끝나고 난 뒤, 두 사람은 루테란으로 돌아오는 배에 올랐다. 배 위에서도 실리안은 근심으로 얼굴을 도배했으며, 기사는 아무 걱정 없는 표정으로 수평선을 바라보며 기지개를 켜다 실리안을 향해 돌아보았다.


"도데체 뭐가 그렇게 고민이에요, 서방님?"


"그, 그리 부르지 말래도! 아직은 혼례를 올린 사이가 아니니..."


"뭐 어때~ 이미 사실혼이나 다름없는데. 우리 에니츠로 출항했을 때, 항구에 있던 사람들이 말하는거 못 들었어? 나보고 여왕님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어. 그러니까..."


"그만! 아무리 자네라  하더라도, 그 이상의 발언은 신중해야 할 것이오!"


"어머,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


기사는 짐짓 귀부인인 것 마냥 입을 가리며 오버하더니, 갑자기 뒷짐을 지고서는 천천히 실리안에게 다가왔다.


"그런데 그것 아십니까, 폐하?"


"무, 무엇을 말이..."


불길한 기운을 느끼고 뒷걸음질치던 실리안을, 자연스래 뒤에 있는 침대로 밀쳐버리고 그대로 위에 덮쳐왔다.


"사실 이 배는 저의 배랍니다. 제가 갈기파도항구에서 폐하께 하사 받았던 에스토크... 그 동안 수많은 대륙들을 돌아다니면서 내가 직접 재료를 모으고, 지시를 해서 개조하고 증축한 배라고요."


"그, 그게 무슨 상관이오...?!"


"이 배 안에 한해서는... 내가 좀 더 권력을 쥐고 있다고 봐도 되지 않을까요,  폐. 하 "


루테란까지의 짧은 항해 동안, 실리안은 세 번이나 쥐어짜여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