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제로스 레이드 종말 최후의 날 2관문에서 카제로스 2개의 이명을 갖고 있습니다.

"죽음의 현신," 그리고 "질서의 수호자"

우리가 심연에서 만난 루테란이 한 말이 떠오릅니다.



클래식 음악에도 이렇게 상반되어 충돌하는 개념이 하나 있습니다.

Tritone 트라이톤, 우리나라 말로는 셋온음이라고 합니다.

특징을 간단히 설명하자면,



피아노 건반의 개수로 쉽게 볼 수 있듯이 한 키에는 총 12개의 음이 있습니다.



따라서 반으로 나눠 건반이 6개씩 차이가 나는 두 음이 있다면,

그 둘의 순서와 상관 없이 건반의 개수는 계속 6개의 차이가 유지됩니다. 이 두 음이 서로 트라이톤입니다.

트라이톤은 가장 안 어울리는 불협화음으로 유명하며 클래식 음악에선 거의 기피되었다가,

근대에 들어 재즈 음악 같은 실용음악이 만들어진 후에서부터야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개념입니다.

한번 들어보시죠.



이 정보를 염두에 두고 한번 2관문 음악을 보겠습니다.


먼저 <죽음의 찬가>입니다.


D♭ 마이너 키입니다.

<죽음의 찬가>의 모티프 곡은 유명한 성가 <Miserere mei, Deus,> <미제레레 메이, 데우스>입니다.


죽음의 찬가의 1분 46초와 미제레레의 2분 45초,

죽음의 찬가의 1분 28초와 미제레레의 1분 49초를 비교해서 들어보시면 비슷한 느낌이 드실 겁니다.

이는 찬가라는 곡이 보통 5중창,

많이 들어봤을 만한 베이스, 바리톤, 테너, 알토, 소프라노로 이루어진 5명이서 부른다는 특징 때문입니다.



"미제레레 메이, 데우스"는 "주여,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가사 중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저는 악인들에게 당신의 길을 가르치리니 죄인들이 당신께 돌아오리이다.


하느님, 제 구원의 하느님, 죽음의 형벌에서 저를 구하소서. 제 혀가 당신 의로움에 환호하오리다.


주님, 제 입술을 열어 주소서. 제 입이 당신을 찬양하오리다.


죽음의 신 카제로스는 질서의 수호자로 거듭나 루페온의 질서를 다시 새로 쓰는 목적이 있습니다.


미제레레의 키는 G 마이너 키입니다.

G는 <죽음의 찬가> D♭의 트라이톤이죠.

위에서 들어본 트라이톤의 예시가 바로 이 D♭음과 G음을 같이 연주한 것입니다.

카제로스의 목적은 뚜렷했으나, 그 기반부터 이미 불협화음이 일어났다는 걸 보여줍니다.


그리고 이 트라이톤이란 모티프가 곡 내에서 반복됩니다.

1분 48초 부분, D♭ 마이너 키 안에서 연주되던 곡이 갑자기 1분 56초에 이상한 코드 하나를 던져줍니다.

D 메이저 코드입니다.


이 코드가 이상한 이유는 D♭ 마이너 키에 존재하지 않는 코드기 때문입니다.


D♭ 마이너 키를 풀어서 스케일의 구조를 보면,

D - E - F♭ (E와 같은 음)- G - A - B (A와 같은 음) - C♭ (B와 같은 음)


D가 없습니다. 따라서 D 코드도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근데 왜 이 코드가 갑자기 나오는지는 중요하니까 잘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3분 40초 부분부터 3분 56초 부분, 딱 들어도 이상한 불협화음 부분이 있습니다.

G♭ 마이너 코드를 반복해서 연주하고 있습니다.

3분 43초, 음이 3개 들립니다. G♭, C, 그리고 E♭.




G♭은 G♭ 마이너 코드의 기초가 되는 베이스 음이고, C는 G♭의 트라이톤입니다. 당연히 불협화음처럼 들리죠.


하지만 나머지 한 음, E♭이 이상합니다.


G♭ 마이너 코드를 풀어 스케일의 구조를 보면,


G♭ - A♭ - B♭♭ (A와 같은 음) - C♭ - D♭ - E♭♭(D와 같은 음) - 파♭

E♭이 없습니다.

얜 또 왜 없는지도 굉장히 중요하니 잘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곡의 마지막 4분 28초 부분, <부활한 심연의 군주>의 테마로 마무리됩니다.

결국 카제로스는 1관문이 끝난 후에도 목적을 이루지 못 하고 심연의 군주로 남아있습니다.


그리고 <질서의 수호자, 카제로스>입니다.


G 마이너 키입니다.

첫 시작은 <죽음의 찬가>의 끝과 마찬가지로 <부활한 심연의 군주>의 테마가 반복됩니다.

그리고 이 곡의 메인 테마는 0분 31초부터 0분 51초까지.

카제로스는 열쇠의 아크의 힘을 이용해 질서의 수호자가 되기 위해 모험가와 전투합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아크라시아에서 겪었던 여러가지 질서의 흔적이 남아있죠.


1분 31초엔 <Journey's End>. 1분 52초엔 <엘가시아 대신전>. 2분 10초엔 <Sweet Dreams, My Dear>.

엘가시아에서 봤던 루페온의 질서의 흔적들입니다.


그리고 2분 20초엔 <일리오스 섬>. 해는 매일 다시 떠오른다는 세상의 질서입니다.


2분 29초엔 다시 <부활한 심연의 군주>. 죽음도 결국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질서입니다.


그리고 최후의 날 레이드의 가장 마지막 부분, 2분 55초 부분부터 카제로스는 가지고 있는 모든 힘을 활용합니다.


일렉 기타 솔로가 추가되는 건 1관문의 <대악마, 카제로스>,

멜로디는 <부활한 심연의 군주>,

노래의 키는 <죽음의 찬가>의 D♭ 마이너 키로 전조됩니다.

하지만 카제로스는 열쇠의 아크 힘을 사용하면서도 모험가를 죽이지 못 합니다.

에버그레이스라는 변수 때문이죠.

3분 24초 부분, 에버그레이스가 모험가을 부활시킨 후의 부분, 본 곡의 메인 테마 멜로디가 반복됩니다.

하지만 여전히 D♭ 마이너 키로 전조되어있죠.


결국 카제로스는 질서의 힘을 유지하지 못 하고, 여전히 죽음의 신으로 남아 계획이 실패로 끝나게 된 것입니다.



아 그래서 카제로스의 미래를 어떻게 스포한 건데?


클래식 음악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 중 하나가, 한 기준이 있다면 그 기준을 철저하게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한 키를 사용하기로 기준 삼았으면, 그 키 안에 있는 음만 사용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하면 너무 단조롭기 때문에 기준에 없던 음을 잠시 빌려올 수 있습니다.


물론 마구잡이로 빌려서 섞으면 트라이톤처럼 듣기 좋지 않은 불협화음이 되기 때문에,


철저하게 근거에 바탕을 두고 음을 빌려와야 합니다.

카제로스가 대악마로써 악마의 힘을 빌리고, 심연의 군주로서 죽음의 힘을 빌리고,

질서의 수호자가 되어 열쇠의 아크의 힘을 빌리듯이.



아까 <죽음의 찬가>에서 중요하다고 했던 부분이 2개 있습니다.


첫 번째는 D♭ 마이너 키에서 나온 D 메이저 코드였습니다.


이를 오늘 나온 3곡의 키 구성과 비교해보면,


D♭ 마이너 키 : D♭ - E♭ - F♭(E와 같은 음) - G♭ - A♭ - B♭♭(A와 같은 음) - C(B와 같은 음)


G 마이너 키 : G - A - B♭ - C - D - E♭ - F

G♭ 마이너 키 : G♭ - A♭ - B(A와 같은 음) - C(B와 같은 음) - D♭ - E♭♭(D와 같은 음) - F(E와 같은 음)

D 메이저 스케일 : D - E - F# - G - A - B - C#

모두 겹치는 음이 딱 하나 있습니다.

A.

겹치면 빌려올 수 있습니다. 금방 다시 돌려주고 원래대로 돌아오면 되기 때문에.

또 중요하니까 기억하게 해야 한다는 부분 기억나십니까? G♭ 마이너 코드에서 뜬금없이 튀어나온 E♭ 음이었죠.


바로 이 E♭A도 트라이톤입니다.

E♭을 빌려온 근거도 의도적으로 불협화음을 내기 위함이고, 트라이톤이란 모티프의 반복인 거죠.

이 트라이톤 A가 중요한 이유는,


전에 플레체 BGM을 기반으로 아만의 성장를 분석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마무리가 이랬습니다.


"성장을 마친 아만의 여정은 아만(Aman)의 테마, A 키의 노래로 연주됩니다."

아만은 카제로스와 불협화음을 일으키며, 공존할 수 없는 트라이톤인 것입니다.

카제로스의 대척자는 모험가가 아니라,

카제로스와 마찬가지로 질서와 혼돈의 힘이 혼재하여 상충하는, 아만입니다.


애초에 카제로스 운명의 결말은, 그가 시도했던 모험가의 죽음이 아니라,


운명의 불협화음으로 엮여버린, 아만의 손에 결국 사멸하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아만은 한 손엔 질서의 지팡이 아가페이아, 그리고 다른 한 손엔 혼돈의 힘을 함께 사용해,


카제로스를 소멸시켰습니다.




사실 처음에 카제로스 BGM 분석글을 쓰고 싶었던 이유는,



2분 23초, 마이너 키가 메이저 키로 바뀌며 엄청나게 신성한 분위기를 내는 게 너무 경이로워서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곡 중간에 메이저 키로 바뀌는 곡이 하나 더 생각났죠.



<종말의 시(詩)>입니다.


이 곡에서 가장 분위기가 크게 바뀌는 부분을 기억하실 겁니다.



2분 34초, 지금까지 피아노 독주로 계속되던 곡이, 갑자기 분위기가 웅장하게 바뀌며,


우리가 진짜 마지막 싸움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으셨을 겁니다.


하지만 이것도 기억 하시나요?


카멘 레이드가 처음 나왔을 때, 영지 BGM으로 줬던 <종말의 시(詩)>는 다른 버전이었다는 걸.



1분 43초, 마이너 코드가 계속 반복되다가, 1분 54초, 갑자기 메이저 키로 바뀝니다.


그리고 곡은 계속 마이너 키과 메이저 키를 섞으면서 연주되다가,


2분 27초를 기준으로 다시 우리가 알던 마이너 키의 곡으로 돌아옵니다.


하지만 인게임의 <종말의 시(詩)>처럼 전투의 긴장감이 폭발하는 순간은 없습니다.





<죽음의 찬가>는 메이저 키로 시작해 마이너 키로 바뀌었다가, 다시 메이저 키로 돌아갔다, 마이너 키로 끝납니다.


<종말의 시(詩)>는 마이너 키로 시작해 메이저 키로 바뀌었다가, 다시 마이너 키로 돌아갔다, 메이저 키로 끝나죠.



두 곡은 두 레이드의 최후반 부분에 깔리는 BGM이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두 캐릭터 모두 이루고자 하는 바가 있었습니다.


카제로스는 목표한 바를 이룰 뻔했습니다.


<죽음의 찬가>는 실제로 게임에서 사용되었고, 그렇게 <질서의 수호자, 카제로스>까지 이어져,


실제로 질서의 수호자의 힘을 얻어 모험가를 죽이기까지도 성공했으나,


마지막에 결국 실패를 하며 끝이 났죠.


카멘은 바라트론에서 목표한 바 근처에도 가지 못 했습니다.


카멘 레이드의 마지막에 돌아온 건 카마인의 조소 뿐이었고,


이 버전의 <종말의 시(詩)>는 결국 영지에서조차 삭제되었습니다.


따라서 이 <종말의 시(詩)>가, 원래 카멘이 이루고 싶었던 결말을,


메이저 키의 행복하고 아름다운 결말을 보여주고 있던 것 아닐까요?




나중에 카멘이 돌아올 때엔,


우리가 알던 인게임의 어둡고 장렬한 전투의 마이너 키 <종말의 시(詩)>가 아닌,


밝고 희망찬 메이저 키가 사용되는 곡을 들고 올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