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나는 화가 났다.

 그리고 아주 당연하게도 그 대상과 원인은 그 남자였다. 그녀는 상체를 숙이고 허리에 손을 얹으며 눈을 부릅 떴다.

  "키. 네. 시. 스ㅡ!"

 이름을 분절하여 외치는 소리에 키네시스는 느릿하게 눈을 깜박였다. 익숙한 바람 냄새가 났다. 그가 환하게 웃었다.

  "아, 뭐야. 유나잖아."

  "'아, 뭐야. 유나잖아.'가 아닐 텐데?"

 유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여기서 뭐 하는 거람!

 키네시스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녀가 해를 등지고 서 있었던 덕분에 눈이 부시는 일은 없었다. 그가 물었다.

  "무슨 일이야?"

  "회의는 어쩌고 여기서 지금 농땡이를 피우는 건데!"

 그것도 출입을 통제한 학교 건물 옥상에서 말이다. 잠금장치가 풀려 있었고 열쇠는 자신에게 있으니, 초능력을 사용한 것이리라.

 그녀의 으름장에도 키네시스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회의……?"

 그런 게 있었던가, 하고 그가 고개를 기울이자 유나는 발을 탕탕 굴렸다. 

 그 모습이 꼭 토끼 같았지만, 그는 현명하게 그 말을 내뱉지는 않았다.  

  "유나를 믿고 있으니까."

  "그, 그게 무슨……!"

 유나의 얼굴이 홧 하고 달아올랐다. 키네시스는 대답 대신 싱긋 웃었다.

  "시, 시끄럽고 빨리 내려가서 뒷정리나 도우라고!"

  "네~"

  "하여간에……."
 
 정말이지, 마음에 안 드는 남자라니까.
   





  "ㅡ라는 일이 있었다는 거지?"

 제이가 초콜릿을 입안에 던져 넣으며 이야기를 정리했다. 유나가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그렇다니까? 정말 너무하지 않아?"

 멋대로 회의에 빠지질 않나.

 사람들을 구한답시고 위험한 일에 뛰어들지 않나.

 걱정하는 사람 마음은 생각도 안 하고!
 
 하지만 그런 말을 할 수는 없어, 목울대까지 넘어온 말을 속으로 삼키는 그녀였다. 

 천천히 초콜릿을 씹으며 제이가 갸웃했다.

  "유나는."

  "응?"

  "왜 그렇게 키네시스를 눈엣가시처럼 여기는 거야."

  "……그런 거 아냐."

  "그래?"

 그렇다면야, 하고 제이는 어깨를 으쓱였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두 사람이 티격태격하는 건 다반사였고, 거기에 일일이 신경을 쓸 만큼 한가하진 않았다.

  '슬슬 임계점인가.'

 그게 키네시스가 되었든, 유나가 되었든 말이다. 그는 그렇게 생각하고 케이크를 향해 손을 뻗었다.







 유나는 고민했다.

  '눈엣가시라…….'

 역시, 남들 눈에는 그렇게 보이는 건가

  '그런 게 아닌데……'

 자신은 그저, 그를ㅡ

  "유나."

  "왜 불러."

 키네시스의 부름에 유나는 즉각 대답했다. 두 사람은 교실에 남아 잔업을 하고 있었다.

 정확히는 키네시스가 일을 하고, 유나가 감시하는 형태였지만 말이다. 

  "제이한테 들었어."

  "뭐를."

  "으음ㅡ 네가 그토록 나를 싫어하는 이유?"

 키네시스가 별일 아니라는 듯 가벼운 어조로 말했다. 유나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래서."

  "미안."
  
  "어?"

 유나의 고개가 돌아갔다. 키네시스는 시선을 느껴 잠시 서류에서 눈을 떼었다가 유나를 보고 다시 시선을 아래로 두었다.

  "아니, 뭐랄까. 네가 그 정도로 나를 싫어한다고는 생각하지 못했거든. 아니, 어쩌면 믿고 싶지 않았던 걸지도 모르겠네."

 내뱉는 말은 빨랐다. 키네시스는 한숨을 삼켰다. 

 이것도 결국 자기변명에 불과하다.

  "할 일을 네게 떠넘긴 거나, 다른 사람을 구하느라 너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 거, 네가 그토록 싫어하는 규칙을 어기는 일 등등."

 어깨를 으쓱이고 하는 말에 유나는 입을 꾹 다물었다. 어째 자신이 생각했던 일보다 더 많은 일이 있었다.

  "나 다시 네가 싫어지려 하는데."

  "하핫! 자충수였네."

 부러 크게 웃음을 터트리는 그였다. 키네시스는 쭉 뻗은 다리를 가볍게 까닥였다.

  "뭐, 아무래도 상관없잖아? 어차피 너는 나를 싫어하니까."

  "……알면서 왜 물어."

  "내가 얄팍한 사람이라서?"

  "그게 무슨 상관인데."

 더 이상 유나는 그를 보고 있지 않았다. 창문 너머 노을이 지고 있는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천천히 내려가는 석양이 자신의 심정과도 같았다. 끝도 없이 아래로 추락하는ㅡ

  '그러다 점점 보이지 않게 되겠지.'

 생각하고 유나는 눈을 감았다. 그때 뒤에서 대답이 돌아왔다. 

  "거리를 두고 선을 그어, 그 테두리 안에 들어오지 못하게 접근을 막는 거지."

 소리는 점점 더 가까이 다가왔다. 그래서 그녀는 알 수 있었다. 고개를 돌리면 바로 뒤에 그 남자가 서 있을 거란 것을 말이다.

  "그게 너란 소리야?"

  "그렇지."

  "왜?"

  "이 선 안쪽은 엉망진창이니까. 괜히 휘말리기라도 해서 소중한 사람이 다치기라도 하면 큰일이지."

 대답하고 키네시스는 히죽 웃었다. 그가 손을 뻗어 그녀의 머리카락을 베베 꼬기 시작했다. 

  "유나."

  "……."

  "정말로 네가 싫어하는 짓은 안 해."

 그러니까 정말로 나를 싫어하지 않아 주기를 바라.

 그는 머리카락에 입술을 맞췄다. 다정한 바람의 냄새가 느껴졌다.





 

  "또 가는 거야?"

 유나의 물음에 키네시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연극조로 두 팔을 활짝 벌렸다.

  "그래야지.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아주 많다고."

  "거짓말."

  "이런, 들켰네."

 대답하고 그는 킬킬거리며 웃었다. 유나가 등을 찰싹 내리쳤고, 그제야 그는 웃음을 멈췄다. 

  "너 진짜 그러다 제 명에 못 산다."

  "별로. 제 명에 살고 싶은 생각도 없ㅡ"

 말하다 그는 뒷말을 삼켰다. 그녀의 얼굴에 드러난 표정을 봐버렸다.

 유나가 홱 몸을 돌렸다.

  "……가……."

  "……그래."

 그는 포탈을 향해 다가갔다. 마나를 일으키자 발끝부터 형체가 서서히 흐릿하게 사라져갔다.

 이제 이대로 다시 가게 되면 한동안은 만나지 못하게 되겠지.

 다시 만나는 건 언제가 되려나. 한 달? 두 달? 그것도 아니라면 일 년이 지나서?

 기약 없는 이별은 결코 달갑지 않다. 하지만 그는 그것을 불평할 생각이 없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자신이 선택한 길이다.

  '그래도…….'

 유나를 보지 못하는 건 조금 아쉬우려나.

  "언제나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ㅡ!!"

 그가 고개를 들었다. 유나는 손을 흔들고 있었다.

 다치지 말고, 무사히 돌아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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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하다가 막혀서 끄적인 키네시스와 유나의 이야기

츤데레 캐릭터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