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평등과 빈곤의 해결책은 성장이다!’ ‘불평등은 경제성장을 촉진시킨다!’ 이 문장을 보고

있는 당신들에겐 문장이 어떤 의미로 해석되는가.

 

 

올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앵거스 디턴' 현재 미국 프린스턴 대학 교수로 재직중이며, 빈곤과

불평등을 연구한 것으로 알려져있고, 개인들의 소득과 소비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미시적인 효과에

대한 실증적인 연구의 개척자라는 공로를 인정받아서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로 선택되었다. 국내에는

<위대한 탈출 : 불평등은 어떻게 성장을 촉진시키나>라는 단 한권의 저서가 출판되어 있다.

 

 

그런데...

 

 

'앵거스 디턴'의 노벨경제학상 수상 소식이 전해지자 한국의 주요 언론들은 '앵거스 디턴'이 마치

불평등과 긴축재정 옹호자라도 되는 것처럼 왜곡된 해석들을 쏟아내고 있다는 점이다.

심지어 '앵거스 디턴'이 '토마 피케티'와 대척점에 서있는 긴축 옹호론자인 것처럼 각색해서 기사를

내보내고 있다는 것인데...

 

 

애초에 한국에서 '앵거스 디턴'을 불평등과 긴축 옹호론자로 묘사한  출발점은 작년 9월 한국경제

신문의 디턴 인터뷰 기사에서 시작되는데, 당시 한경의 디턴 인터뷰 기사는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끝을 맺는다. (디턴에 따르면) 그는 한국에 대해선 "사회적으로 분배 요구가 성장 욕구보다

커진다면 과거를 돌아봐야 할 것"이라며 "한국은 아직 더 성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14091772161&intype=1

 

한경이 인터뷰 기사랍시고 써낸 이 활자들만을 놓고보면 디턴은 불평등을 옹호하며 각국 정부가

성장을 위해 더욱 고강도의 긴축재정을 실시해야 함을 역설한 것처럼 여겨진다. 여기에 한술 더 떠서 

디턴의 저작 '위대한 탈출'의 번역본 서문을 쓴 자유경제원 '현진권' 원장은, 앵거스 디턴 vs 피케티의

대립 구도를 만들어낸다. (이 자가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지지하는 조선일보 칼럼을 쓴 자라는 것은

대충 넘어가자)

 

 

 

그러면 두가지 문제... 1) 디턴은 정말 불평등과 긴축재정 옹호자인가?  2) 디턴과 피케티는

진짜로 서로 대척점에 서 있는 주체들인가? 에 대한 답을 찾아보자.

 

일단 디턴의 저작에서 실제로 디턴이 ‘불평등과 빈곤의 해결책은 성장이다!’ ‘불평등은 경제성장을

촉진시킨다!'는 논지의 주장을 펼치고 있는 대목이 실제로 있는가를 애써 찾아보자면, 다음과 같은

문장을 찾아볼 수 있겠다.

 

"While critical of widening inequality in the US, his work in the developing world has convinced

him that the key to greater wellbeing is to promote economic growth rather than to support

consumption though western aid packages."

 

영어 해석에 능한 논게이들은 직접 위 문장을 해석해보라.

논게에도 주류 경제학 전공자가 있다고 했으니 잘 알겠지만, 저 문장은 사실 '국가간의 불평등이

가난한 나라의 성장을 촉진시킨다는 경제성장론의 기본 명제인 수렴이론(convergence theory)을

말하고 있는 것일 뿐,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이를 가리켜 자본주의 불균등결합발전이라 표현한다)

개인의 가계나 소득 불평등이 경제성장을 촉진시킨다는 식의 한 사회내의 빈부양극화나 불평등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문장으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 아니라는 말이다.

 

 

 

지난 12일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즈 와의 인터뷰 내용을 보자.

"지나친 불평등은 공공서비스를 붕괴시키고, 민주주의를 약화시키는 등 여러 가지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불평등이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고 인정한 것은 어디까지나 성공적인 기업가 정신에

따른 성장의 부산물일 때이고, 또한 개발도상국에서 성장으로 불평등이 심해지기는 하지만 절대 빈곤

자체를 줄이는 성과를 거둔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그리고 이어서... 

개발도상국의 성장 전략이 빈곤 감소의 성과를 거두기 위한 전제 조건을 분명하게 제시하는 내용의

인터뷰...  "국민을 위한 공공서비스와 보호를 제공하지 못하는 정부가 빈곤과 수탈을 벗어나지 못하는

주요 원인 중 하나" "효율적인 정부가 없는 나라에서는 빈곤을 없애기 위해 필요한 성장을 할 가능성이

별로 없다"

 

요약하자면 이런 내용이다.

개도국의 성장 전략이 절대빈곤을 줄이는 성과를 거둬왔지만, 역으로 상대적 불평등은 더욱 심화되어

왔다. 그러므로 효율적인 정부가 상대적 빈곤의 격차를 해소하려는 노력을 의식적으로 해야하고 국민

들을 위한 공공서비스 재정을 확대해야 한다.

 

 

 

 

디턴이 피케티와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고?

조선일보는 디턴의 수상에 대한 의미를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때문에 노벨위원회가 디턴 교수에게 노벨 경제학상을 안긴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일부 경제학계

에서 피케티류의 평등주의적 접근 방식에 힘이 실리는 것에 대한 경계감을 나타냈다는 평가도 나온다.

보편적 복지보다는 선별적 복지가 경제 전체의 생산성과 효율적인 소비를 촉진시켜 경제성장을 이끌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는 시각이다." (조선비즈 10월13일)

 

그런데?

오석태 소시에테제네랄 이코노미스트 (ㅅㅂ 쉽게 말해서 경제평론가다) 는 같은 조선일보에서 디턴과

피케티와의 관계를 이렇게 설명한다. "디턴 교수는 신흥국의 불평등에, 피케티는 선진국 불평등을 다루고

있어 둘은 보완 관계이고, 디턴 교수 또한 저서 ‘위대한 탈출’에서 피케티 교수의 연구를 인용하며 이를

인정하고 있다"(조선비즈 10월13일)

 

그리고 영국 가디언지의 기사를 보면...

피케티의 저작인 ‘21세기 자본’은 디턴 교수와 토니 앳킨슨 교수가 수행한 구체적인 미시경제학 연구에

빚지고 있다. 올해 경제학상은 이 두 사람에게 공동으로 주어질 것이라는 전망도 있었다.

 

참 희안한 나라다.

'피케티'든 '앵거스 디턴'이든 왜 한국 주류 언론들에게 포착되기만 하면, 그들이 주장한 진보적 가치는

싸그리 삭제되어버리고 '우파 꼴통 이데올로그'로 각색이 되어버리는 것일까?

 

 

다음은 '앵거스 디턴'의 저작 '위대한 탈출' 원문 주요 내용을 번역한 대목이다.

"민주주의 사회가 요구하는 정치적 평등은 항상 경제적 불평등의 위협 아래에 놓여있다.

경제적 불평등이 점점 심해질수록,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은 더욱 커진다. 민주주의가 위태로워지면,

삶의 질은 직접적으로 타격을 받는다. 

부자들은 정부가 제공하는 교육과 의료복지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들이 모든 국민이 이용하는

건강보험을 지지하거나, 부실한 공교육에 대해 걱정할 이유는 더더욱 없다. 부자들은 수익을 제약하는

어떠한 금융 규제에도 반대한다. 주택담보대출 상환 능력이 없는 사람들을 돕거나, 약탈적 대출과

허위과장 광고, 심지어 반복되는 금융위기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하는 규제라도 말이다.

극도의 불평등에 대한 우려는 결코 부자들을 부러워해서 하는 게 아니다. 상위 소득의 급증은 부자

이외의 모든 사람들의 삶의 질에 대한 위협이 된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출처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30410

 

 

살펴봤듯 디턴은 "상위 소득이 급증할수록 부자 이외의 모든 사람들의 삶의 질에 대한 위협이 된다"고

밝히고 있지. 그런데 뭐? 디턴이 피케티의 평등론과 각을 세우며 대척점에 서있으며 불평들을 옹호하는

우파 이데올로그라고? 이정도 각색 왜곡이면 디턴에 대한 명예훼손 수준 아닐까?

만약에 위의 긴 문장을 한국에서 영향력있는 어느 경제학자가 주장했다면 이나라 주류 언론들은 어떤

반응을 내놓았을까? 그 경제학자는 아마도 극좌 용공으로 색칠되지 않았을까?

 

 

더불어서 디턴은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 답을 찾는 연구 끝에 연간 소득 7만5000달러

(약 8600만 원)가 넘으면 더 행복하다는 증거가 없으며, 반대로 그 이하에서는 소득이 적을수록 심리적인

고통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함으로서 대중적인 집중을 받았지.

 

그러니까 이 연구의 결론을 요약하자면, 수백 수천억 수조원씩 싸재두고 있어봤자 더 행복하지도 않은데

뭐하러 그렇게 부들부들 쟁여두냐 개객끼들아... 니들이 그렇게 쟁여두기 위해서 절대 다수의 행복권이

존나 침해를 당하고 있지 않느냐... 이런 말인거지.

 

 

아아 물론 나는 개인적으로 디턴의 분석에 동의하지는 않아.

왜냐면 디턴의 분석은, 수박 겉핧기식이라 여기기 때문인데 이렇게 말하면... (와 시발 그러면 니가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보다 더 잘났냐?) 이런 비아냥 던질 놈이 분명 있을거야? 그러면 (뭐 노벨상이 어쩌라고?

그딴 권위는 걍 니들 수준에서 신봉하세요... 라고 말해주고 싶고) 여튼 디턴에 동의하지 못하는 마르크스

주의자의 경제학적 분석을 모두 이 글에 담을수는 없으니 다음에 기회가 되면 다루기로 하고...  

 

굳이 이 긴 글을 쓰는 이유는 두가지 정도? 아직 앵거스 디턴의 학문적 요지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가 한국

주류 언론들이 쏟아내는 왜곡 정보를 받아들일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에게, 찌라시들의 정보에는 이런 함정

들이 숨어있다는 것을 참고 사항으로 소개하기 위함이고... 에... 또 그래도 ㅅㅂ 명색이 논게인데 노벨경제

학상 수상자가 던지는 화두가 뭔지에 대한 글 하나쯤은 소개되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쿨럭...

 

또 한가지 이유는... 아마도 내가 예측하건데 이곳 논게에도 분명히 '앵거스 디턴'에 대한 의식적 왜곡과

각색을 통한 조중동식의 악의적 마타도어 몇 문장들을 쭉 긇어와서는... "이것봐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도

'불평등과 빈곤의 해결책은 성장이다!’ ‘불평등은 경제성장을 촉진시킨다!’ 고 말하고 있어" 라고

떠벌이며, 노벨상의 권위를 빌려 경제적 불평등의 심화를 정당화시키고 나아가 일각의 진보적인 분배에

관한 화두와 논의를, 오히려 반진보적인 행위로 선동하는 몇몇 벌레들의 시도가 분명 있을거라 생각해서

그 놈들의 분탕질에 여러분들이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는 것을 사전에 차단하고자 함이다.

 

 

미안하다 벌레들아 니놈들의 분탕질 소재를 아예 원천봉쇄 해버려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