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도 날카로웠다. 작은 실수도 웃어넘기지 못할 정도로. '집중'이란 말에 집중이 되긴커녕, 현자 타임 비슷한 것이 찾아왔다. "왜 하고 있지?", "언제 끝날까" 이런 의미 없는 생각이 반복될 쯤 여섯 번째 군단장 숙제가 끝났다. 꼬박 두 시간 정도가 걸렸을까. 아직 손도 못 댄 일일 숙제가 눈에 밟혔지만, 별 아쉬움 없이 로스트아크를 종료했다.

언제부터 그랬을까. 난 오늘도 내가 잘 하기 위한 노력보다, 누군가의 실수를 찾기 위해 애썼던 것 같다. 파티원의 체력을 보고, 패턴을 잘 피하고 있는지 딜을 잘 넣고 있는지 집중해서 보며, 조금이라도 실수하는 모습이 보이면 '숙련이 아닌 것 같은데?'라는 말을 속으로 되뇌었다.

준비 과정도 마찬가지였다. 색 안경을 끼고 원정대 레벨과 캐릭터 세팅, 장착된 보석을 보면서 파티를 구성하기 위한 품평회를 열었다. "얘는 보석이 아쉽네", "각인이 아쉽네" 등의 말을 늘어 놓으며말이다.

그렇게 골라 받은 파티원에게 바라는 건 딱 하나였다. 바로 '원트원클'이다. 실수 없이 한 번에 군단장 레이드를 클리어하는 데만 목을 맸다. 가슴 떨리던 군단장 레이드는 어느새인가 카오스 던전이나 가디언 토벌처럼 반복적인 숙제처럼 자리를 잡은 탓일까. 항상 시간에 쫓기듯이 빨리 레이드를 끝내는 데만 목적을 두고 있는 것 같다.


▲ 누군가의 실수가 유독 눈에 잘 띄는 탓일까. 이런 장면만 인상에 깊게 남는다


요즘 공개 파티던 고정 파티던 최근 리트라이(재도전)에 대한 거부감이 높은 시기로 보인다. 작은 실수에도 쓴소리를 아끼지 않고, 상황이 더 악화된다면 싸움으로까지 번지는 일이 잦다. 언제부터 이렇게 작은 실수에도 민감하게 반응하게 되었을까.

사실 숙련도에 대한 이슈는 예나 지금이나 로스트아크에서 민감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이슈 중 하나다. 콘텐츠 숙련도의 경우, 여전히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숙련도의 경우 개인의 판단에 근거하는 경우가 많은데, 여기서 다소 잡음이 발생하기도 한다. 또한, '숙코'(숙련 코스프레)라고 불리는 문제가 이러한 문제를 더욱 심화시키기도 했다.

이러한 요소들 때문에 숙련도 이슈에는 다들 민감하게 반응하는 문화가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이런 문화가 자리를 잡은 것이 한 편으로는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물론, 나도 숙코에 당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숙코가 들통나자 뻔뻔하게 대처하는 모험가도 만나봤고, 오히려 역정을 내며 중단 투표를 던지는 모험가도 만나봤다. 다만, 언제부터인가 실수를 용인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사라진 것 같다.


▲ 고정 파티의 비중이 높아 자주는 아니지만, 숙코에 당해본 경험도 여러 번 있다


마음의 여유를 잃은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군단장 레이드의 특성상 한 사람의 실수는 공대원 전멸이라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한다. 데스 카운트 등의 장치가 적용되어 있지 않기에, 전멸한다면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것을 피할 수 없다. 따라서 다시 시작하는 만큼의 시간을 재투자해야 한다. 결과를 놓고 본다면, 시간이 낭비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기도 한 만큼, 다소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것도 사실이다.

또한, 횟수를 거듭할수록 점차 익숙해지고, 익숙함에서 따라오는 '지루함'도 한몫 했을 것이다. 이건 정말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좋아하는 음식도 삼시 세끼 반복해서 먹다 보면, 결국 질리게 되는 것처럼 군단장 레이드 역시, 이러한 질림의 단계에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 익숙해지더라도 간혹 실수가 생기는 일이 생기기도 한다


'지루함'과 대조되는 '재미'의 감정은 두 가지 종류로 구분할 수 있다고 한다. 첫 번째는 어떤 활동의 참여로부터 어떠한 보상도 생각하지 않고, 그 활동 자체에 몰두하여 얻는 감정 상태로, 감정상 '흥분'이며 영어로는 Fun에 해당한다. 두 번째 의미는 Fun과 다르게 어떤 활동에 참여해 만족이나 기쁨, 유쾌함 등을 기대하는 감정 상태로, 성취의 감정이며 영어로 Enjoyment라고 할 수 있다. 아마 로스트아크에서 재미를 느꼈던 것은 전자에 해당하는 것 같다.

멋모르던 그 시절엔 재도전 과정에서도 재미를 느끼곤 했다. 모든 게 낯설었던 시절, 공략 실패라는 화면을 봐도 화보단 기쁘거나, 즐거웠다. 그 과정엔 배움이 있었고 그 자체만으로 즐거웠기 때문이다. 아이템 레벨, 전투 특성처럼 겉으로 보이는 능력치가 아닌, 다른 것이 성장하는 재미(Fun)를 느꼈기 때문일 거다.

시스템에 적응하는 것도 어려웠던 모코코 시절, 팔괘진에서 좌절을 맛보고, 도전 어비스 던전에선 본 적도 없는 패턴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도 했다. 멋모르고 돌렸던 매칭인지라 패턴 숙지도 제대로 되지 않았던 때였는데, 사소한 패턴 하나하나 상세하게 설명해 주면서 트라이를 독려해 줬던 모험가들이 있었다.

위와 같은 상황이 지금 벌어진다면 어떨까? 아마도 좋은 결말을 맺지는 못할 것 같다. 그때 트라이를 독려해 줬던 모험가들은 지금 어디 있을까. 또, 나중에 나도 성장한다면 저런 모험가가 되겠다던 다짐은 언제 사라졌을까. 예전에 비해 사뭇 달라진 문화와 나의 마음가짐에 아쉬움이 남기도 한다.

이미 익숙함의 경지에 오른 지금, 예전과 같은 재미(Fun)를 다시 느끼는 건 어렵겠지만, 이제부터라도 마음의 여유를 가져보는 건 어떨까. 실수하더라도 독려하고, 웃으며 게임했던 그때처럼 말이다.


▲ 익숙함에 경지에 올랐다면, 다른 재미를 찾아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