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트아크의 다섯 번째 군단장, '일리아칸'도 벌써 한 달 차를 맞는다. 아브렐슈드 [하드] 업데이트 이후 1년 만에 나온 새로운 군단장이니만큼 뜨거운 반응이 있었다. 너무 빠른 텀으로 등장해 여러 부작용을 낳았던 아브렐슈드와 다르게, 일리아칸은 다소 높은 아이템 레벨 컷으로 등장했음에도 반응이 좋은 편이다.

일리아칸은 '사이버 유격'으로 유명한 불합리한 패턴을 개선하려 노력했다는 점이 좋은 평가를 받는다. 카양겔에 이어 로스트아크 전투가 가진 기본적인 재미를 되살리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했기 때문이다.



■ 왜 '사이버 유격'이라는 표현이 나왔을까?

로스트아크의 군단장 레이드는 훌륭한 최종 콘텐츠지만, 난도 관련해서는 항상 문제를 겪어왔다. '쿠크세이튼'까지는 비교적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아브렐슈드[노말]'과 '아브렐슈드[하드]'에서는 던전의 어려움으로 인해 많은 불만을 낳았다. 아브렐슈드의 디자인 또한 '배우기는 어려워도 숙련되면 할 만한' 로스트아크의 던전의 틀을 따라가고 있지만,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유난히 '부담스럽다'는 의견이 많다.

역할 수행, 협동 중심으로 흘러가는 RPG 최종 레이드에서 '사이버 유격'이라는 다소 어색한 별명이 붙은 이유다. 사전적인 의미에서 보자면 로스트아크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RPG는 사이버 유격이 맞다. 불특정 다수의 사람이 모여 난관을 극복하고, 임무를 수행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사이버 유격이 없는 레이드가 있다면 시즌 1의 주간 레이드처럼 반응 속도 위주의 재미 없는 공략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도 이 표현에는 많은 모험가가 공감을 하며 아브렐슈드는 '사이버 유격'의 상징처럼 불리게 되었다. 금강선 전 디렉터 또한 방송에서 '사이버 유격을 줄이겠다'는 말을 할 정도였다. 로스트아크에서 유난히 일부 패턴이 불합리해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하나는 '당위성'이다. 간단하게 이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이유라고 할 수 있다. 당위성에는 여러 근거가 들어갈 수 있다. 로스트아크의 세계관, 시나리오적인 이유일 수 있고, 패턴을 보고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직관적인 구조나 난도가 모두 포함된다. 욕망, 매혹이 콘셉트인 비아키스에서 '배신'이나 '매혹' 관련 패턴이 등장하는 것은 누구나 간단하게 이해할 수 있다. 이렇게 모험가가 패턴을 이해하고 수행할 이유를 느낀다면 대체로 성공적인 패턴인 셈이다. 아르고스 2관문의 '문양' 패턴처럼 구조를 쉽게 파악하기 어렵거나 임무 수행이 복잡한 경우가 안 좋은 예가 될 수 있겠다.


▲ 한 번 봐서는 이해가 어려운 아브렐슈드 운석 공략


다음은 '기회'다. 군단장 레이드는 인원이 중요하다. 8명의 인원이 모두 필요한 패턴이 많고, 공략 시간이 길기에 1명의 결원도 치명적이다. 하향 이전 초기 아브렐슈드 [하드] 3관문은 8명의 공격대원 전원이 0줄까지 살아 있어야 공략 수행이 됐다. 파티의 딜이 충분하더라도 기믹 수행을 위해 모두가 살아야 한다는 조건은 재시도가 반복될 수록 피로감을 낳는다.

이런 문제는 일반 패턴에서 더 자주 발생한다. 특수한 협동 패턴은 전멸을 해도 크게 이상할 것이 없지만, 일반 패턴에서 한 번의 실수로 캐릭터가 사망한다면, 자연스럽게 어렵거나 불합리하다고 느끼게 된다.


▲ 한 번의 실수도 전멸 위기로 직결되는 쿠크세이튼의 '칼날 처형식'


마지막은 '대응 가능성'이다. 로스트아크의 모든 패턴은 기본 신속 0인 캐릭터도 배틀 아이템의 도움 없이 공략을 수행할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다. 다만 일부 패턴의 경우, 상황에 따라 '시간 정지 물약'이 아니면 대응이 불가능한 경우가 있다. A 패턴의 투사체가 날아오고 있는 와중에 특수 기믹이 발생하거나, 회피 동작 중 보스가 B 패턴을 연속해서 사용하면 반응 속도나 패턴 예측으로는 사실상 회피가 불가능하다. 대표적으로 6관문에서 아브렐슈드의 무력화 패턴을 진행 중인데, 몸에 파란 메테오가 달린다면 이도 저도 못 하는 상황에 부닥치게 된다.

공략을 어렵게 하기 위해서는 이런 패턴의 겹침이 필요한 상황도 있지만, 대체로 "어쩔 수 없어 시간 정지 물약으로 살았다" 같이 부정적인 기분을 느끼게 된다.


▲ '시정'이 아니면 대응이 불가능한 경우도 있다



■ 개선점 ① 직관적으로 변한 패턴들

일리아칸에서는 이런 '사이버 유격'을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게 된다. 세세한 전투 디자인부터 패턴의 구성까지 기존 군단장들과는 확실히 다른 면모를 보인다.

일리아칸에서 협동이 필요한 패턴들은 확실히 직관적이다. 아브렐슈드에 비해 패턴의 어려움이 감소한 것도 분명히 있지만, 거의 대부분의 패턴들이 가이드 메시지나 보이는 오브젝트 등을 통해 파악할 수 있고, 바로 기믹 수행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다. 공략이 없을 때 여러 번의 시도가 필요한 패턴은 1관문의 정화 무력화, 2관문의 '랜턴', 3관문의 내부조 정도다. 기믹을 파악하고 임무 수행에 익숙해지는 과정이 대폭 축소되어 쾌적한 느낌으로 공략이 가능하다.

특히, 일리아칸 특유의 거칠고 강렬한 분위기가 맞아떨어지는 각종 패턴은 호평받는다. 헤비메탈 음악과 함께 질병 군단의 무리를 상대하는 3관문의 마지막 패턴이 대표적이다. 악마를 이끄는 '군단장'에 걸맞은 위용을 보여주었다는 소감이 많다. 이외에도 공포 게임이 연상되는 히든 페이즈, 물이 차오르는 연출로 긴박감을 느끼게 해주는 1관문 등, '기믹을 수행해야 할 이유'를 연출적으로나 기믹 적으로 명확하게 보여줬다.


▲ 강렬한 연출로 긴장감을 선사하는 3관문 마지막 패턴

▲ 일리아칸에서는 따로 '공부'가 필요한 패턴이 크게 줄었다



■ 개선점 ② 기회를 주는 방식

군단장 레이드는 시스템상 다른 모험가의 사망에 민감해질 수 있다. 한 명의 사망이 큰 피해를 주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협동 패턴에는 머릿수가 필요한 패턴이 많고, 1인분의 피해량을 7명이 전부 커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발탄' 이후 1인이 광폭화 상황에서 군단장을 상대하며 공략에 성공하는 그림이 잘 나오지 않는 이유다(쿠크세이튼의 빙고, 비아키스 3관문 등은 가능하긴 하다).

이번 일리아칸에서는 '머릿수'에 대한 부담을 한결 덜어냈다. 핵심 기믹에서는 다수의 인원이 필요하고, 주요 0줄 패턴에서 부위 파괴를 요구해 인원이 많을수록 유리한 구조기는 하나, 1~2명의 결원은 커버가 가능하다.

특히, 일반 패턴 중 사망에 대한 부담이 많이 줄어들었다. '아브렐슈드'의 낙사 패턴들은 피격 시 높은 확률로 사망해 재시도를 눌러야 하는 상황이 많았다. 하지만 일리아칸의 '익사'는 최대 3번(사람에 따라 4번~5번까지도) 낙사하더라도 기회를 주어 생존할 수 있게 됐고, 각종 불합리한 상황에 부닥쳐 날아가더라도 불쾌함을 덜 느끼도록 개선되었다.

'게이지' 시스템을 다시 도입한 2~3관문에서도 비슷하다. '비아키스'나 '쿠크세이튼'의 게이지는 100%가 된 순간 일방적인 손해로 작용해 아군에게 피해를 입히거나 보스가 강해지는 버프가 생성됐다. 하지만, 일리아칸의 질병 게이지는 총 5단계로 구성되어 있고, 1~2단계에서는 개인적인 피해만 줄 뿐, 공격대에 직접적인 해를 끼치진 않는다. 개인이 게이지 관리를 실수하더라도 실수가 계속 누적되는 것이 아니라면 실수 1~2회 정도는 기회를 얻는 셈이다.


▲ 1관문에서는 1인이 살아남아 군단장을 처치하는 상황이 자주 나온다

▲ 낙사와 다르게 기회를 주는 '익사' 기믹



■ 개선점 ③ 불합리함을 감소시킨 보스 디자인

보스 디자인에서도 다양한 개선이 들어갔다. 먼저, 겹치는 패턴이 감소했다. 1관문의 일부 장판 공격 같은 예외가 있지만, 한 번에 두 개 패턴을 연속해서 사용하는 경우가 눈에 띄게 줄었다. 어쩔 수 없이 '시간 정지 물약'을 쓰는 경우가 감소한 셈이다. 여전히 '연속 장판 공격(#+□)'과 같은 대표적인 어려운 패턴이 있지만, 이런 패턴의 경우 전조와 위치만 제대로 파악한다면 무빙만으로도 회피할 수 있다. '랜턴' 패턴도 특유의 메커니즘에 적응한다면 어렵지 않게 공략할 수 있다.


▲ 두 패턴이 겹쳐 사고가 일어나는 상황이 많이 줄었다


다음으로 '백어택' 딜러를 위한 배려가 눈에 띈다. '쿠크세이튼'이나 '아브렐슈드'는 보스가 장애물을 등지며 공격하는 패턴이 많았다. 돌진, 백스텝 등으로 벽으로 움직이거나, 벽을 등지고 낙사 공격을 연발하는 등 백어택 딜러 입장에서는 공격하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이 자주 연출됐다.

일리아칸에서는 백어택 위치를 약점으로 설정해둔 패턴이 많다. 후방 견제 패턴이 소수 있지만, 해당 패턴만 파악하면 전투 내내 안전하게 공격 기회를 잡을 수 있다. 보스와 근접해서 싸우는 근거리 딜러형 클래스나, 백어택이 중요한 백어택 클래스들은 훨씬 쾌적한 게임이 가능한 셈이다. 단, 백 위치가 안전한 패턴이 많다 보니 상대적으로 헤드 어택 딜러는 공격 기회를 잡기 어렵다는 부작용이 생기기도 했다.


▲ 보스가 벽을 등지면 백어택 딜러는 할 수 있는게 없어진다

▲ 일리아칸은 등 뒤 안전 패턴이 매우 많다


'딜컷(특정 기믹으로 인해 공격을 중지하고 시간을 기다리는 것)'이 사라진 것도 환영할 수 있는 요소다. 일리아칸 2~3관문의 협동 패턴 구성을 보면, 체력 40% 이하부터는 별다른 체력별 패턴이 없는 것을 알 수 있다. '비아키스' 처럼 촘촘하게 체력별 협동 패턴이 존재하는 보스는 파티의 스펙이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공격 - 협동 패턴 - 공격이 반복되는 문제가 생긴다. 이런 상황에서는 특정 패턴에 '에스더 스킬'이 필요하거나 조건이 요구된다면 '딜컷'이 강제될 수밖에 없다. 메테오 시간으로 인해 딜컷 구간이 생기는 아브렐슈드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일리아칸의 경우 체력 40% 구간에서 특별한 패턴이 없고 상시 패턴과 협동 패턴이 무작위로 등장하는 형태다. 파티의 능력치가 높더라도 초반 기믹 수행만 끝내면 후반부는 딜컷 없이 바로 공략을 끝낼 수 있는 셈이다. 그간 군단장 레이드의 재미를 해치는 대표 요소로 꼽히는 딜컷 문제를 간접적으로 해소한 셈이다. 물론, 3관문 히든 페이즈처럼 일리아칸에서도 딜컷이 필요한 구간이 있긴 하다.



■ 한계는 있지만...'재미'를 되살린 훌륭한 레이드, '일리아칸'




일리아칸은 여러모로 군단장 레이드의 '재미'를 되살리려 하는 시도가 돋보이는 레이드였다. 특히, 아브렐슈드부터 시작된 '사이버 유격'을 효과적으로 대체했다는 평을 받는다. 이런한 시도는 카양겔부터 있었지만, 일리아칸에서 더 진보했다.

로스트아크 식 액션의 근본적인 재미인 '때리고 피한다'가 제대로 구현됐을 뿐 아니라, 딜컷 구간이 없어 스펙을 마음껏 뽐내기도 좋다. 이런 형태는 자칫 너무 쉬워질 수 있는 단점이 있지만, 아이템 레벨 컷이 다소 높게 잡힌 덕분에 한동안은 문제가 없다. 평균 레벨 상승으로 체감 난도가 내려가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앞서 등장한 '사이버 유격'의 가혹한 패턴이나 실수가 용납되지 않는 인원수 요구 등은 모두 '버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책이다. 족쇄를 풀어버린 일리아칸은 이후 버스 등이 문제가 될 수 있다.

'백어택' 딜러에게 포지션 이점을 준 것은 좋지만, 디스트로이어나 워로드 등 헤드 어택 포지션을 잡는 딜러에게는 공격 기회가 적은 것도 아쉽다. 카운터 성공이라는 리턴을 주긴 했지만, 클래스 특성만으로 레이드 난도가 크게 차이 나는 것은 분명한 문제다.

금강선 전 디렉터는 일리아칸을 '아브렐슈드'보다는 쉬운, 쉬어가는 레이드라고 설명할 때가 많았다. 하지만, 일리아칸은 '쉬어 가는 레이드'치고는 다양한 시도와 변화를 보여주었다. 무엇보다 군단장 레이드의 재미를 되살린 것은 좋은 방향의 변화다. 앞으로 등장할 '카멘' 등의 콘텐츠가 기대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