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모를 무사여
이젠 그만 좀 쉬시게.

한여름 새벽연무처럼 눈물인지 모를 비가 오는구려.
검은 모래바람 속
 
수만의 적들은 그대의 오른팔을 태워가는 그 불길이 사그러 들길 기다리고 있소
하얗게 타들어 가는 그대의 그 팔
떨어지는 빗물처럼 붉은 바람이 불어오는 그대의 무신도.
이젠 그만 쉬게 해주시구려
 
그대여 피끓는 전장에서 그대와 내달리던 그때를 기억하시오.
한걸음 한걸음 적을 베어가며 내달리던 그때를....
허나 이제는 꺽여저버린 무릎과 뒤틀려버린 손가락
베어져 버린 어깨와 잘려져 버린 그대의 그 마음.
 
그대여 깨어져 버린 무릎을 짚고. 무신도를 지팡이 삼아
버티고 일어서지 마시오.
 
그만하면 그만하면 되었소.

오래전
해암 선생이 나에게 말했소
무의 뜻을 품는다는 것은
끊임없이 재창조의 길을 걷는다는 것
그 흐름에 모든 것을 맡기면
언젠가 운명이 그 끝에 도달할 것이니
이 길의 끝, 무의 길을 흐르다
그 깨달음의 끝에
해암의 무신 비급에 운명처럼 이끌리는 이 순간
무의 전부, 진정한 무신이 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