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길. 아침은 언제나 그렇듯이 상쾌하다. 그래서 욕설이 튀어나온다. 밑바닥에서 끌어오르는 붉은 분노가 포효한다. 상쾌한 아침과는 너무나 다른, 싸늘한 해골이 뒹굴고 있는 것이다. 미친 짓이었다. 한 두명씩 힘을 잃어가고 있다. 우리는 살아야만 하는데, 그렇게 되는 것은 행운과도 같으며, 전설적인 생존력과도 같을 정도의 기적이었다. 다시금 끓어오른다. 삶에 대한 미련과 인간의 본능적인 욕망이 정열이란 가식을 가지고 불타오른다. 제길. 욕설은 화산과도 같이, 끓어오르는 미련과 분노가 머리 끝까지 차오르고서, 더 이상 뛰쳐나갈 곳이 없어 입으로 나오는 것이다.

패잔병의 시체가 보인다. 식물에게 진 것이다. 식물은 강하다. 이제껏 보던 식물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이고 있었다. 바람에 흐느끼는 소리가 들린다. 역시나 '그 자식' 이었다. 우리말고도 예전에 인간을 접해 본 일이 있었을까. 아니, 어쩌면 전에 먹어치운 오랑우탄의 흐느낌과도 같은 소리였다. 아니, 식물이 어떻게 소리를 내냐 임마! 선장이 콧방귀를 뀐다. 하지만 그 창고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아니면 귀신이라도 있다는 말인가. 둘 다 말이 안된다. 하지만 둘 중의 하나는 진실일 것이다. 분명.

창고에는 아무도 가까이 가지 못했다. 우리는 그저 공포로 하루를 보내야만 하는 것이다. 아, 식물의 배를 채워준다면? 우리는 낚시로 인해 모든 일을 멈추게 되었다. 몇 명을 제외하고는 삶을 위한 투쟁에 발을 담근 것이다. 낚시로 얻는 생선들을 '그 자식' 이라는 죽음의 신에게 상납한다면 우리는 목숨을 건질 수 있을 것이다. 분명 신은 우리에게 삶을 영유할 수 있는 권리를 줄 것이다. 그러니까. 낚시라도 해야된다. 제길. 계속 중얼거리던 말이 또 나온다. 습관이 되버렸다. 술에 취하면 집으로 그냥 걸어가는 것처럼 익숙해졌다.

"흐으으으으-"

"누가 죽는 소리나 내고 있어?"

선장이 화를 낸다. 하지만 아무도 그런 소리를 내지는 않았다. 창고에서 나오고 있는 것을 어쩌란 말인가. 창고에서 죽었던 인간들이 내는 비명이겠지요? 누군가 대답을 한다. 불만이 가득한 말투였다. 선장은 인상을 찌푸렸을 뿐, 더 이상 언급을 하지 않았다. 그로인한 정신적 피해가 컸다. 선장마저도 '그 자식' 의 소행이라고 단정지은 것이다! 빌어먹을! 선장마저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도 선장은 창고를 불태우지 않는 것이라는 것. 그것은 곧 자신의 배니까 건들지 않고 선원을 죽게하겠다는 이기적인 생각이 아니던가. 미친 짓이다. 이 전염병보다 무서운 놈에게 대항해야 될 판국에 '그 자식' 을 감싸고 도는 것은 정말이지 연쇄살인범에게 칼을 주는 것과 마찬가지가 아니던가.

"선장! 불태우자고!"

누군가 외친다. 우리는 전부 한 마음으로 외친다. 웅성거림은 커져간다.

"사, 살려줘."

누군가의 신음소리가 들려온다. 우리는 모두 창고를 바라본다. 창고는 숨죽이는 우리들에게 큰 불안과 공포를 안겨주었다. 때마침 비명소리가 들릴 때가 사람들의 외침 속에 잠깐의 정적이 흐를 때였기에 우리는 숨을 들이키게 된 것이다. 심호흡을 하고 차분해져야 한다. 다만 지금의 상황에 심호흡을 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았지만. 그저 그 목소리에 짓눌려 숨을 죽여야만 했던 우리들의 공포, 그 숨막히는 불안을 누가 이해할 수 있으랴!

"살려줘!"

창고에서 외침이 흘러나온다. 아무도 가까이 가지 못하고 있었다. 선장의 성질이 끝을 보기 시작한 것도 그 즈음이었다.

"아무도 안가면 뭐 어쩌라는거야! 살려달라는 소리 안들려!"

하지만 역시나 미동도 없다. 선장이 직접 해주었으면 했으나, 선장또한 겁에 질려있는 것인지 굳어있다. 결국 선원 중에 한 녀석이 다가간다. 창고의 문을 잡고 마치 폭풍을 만난 것처럼 붙잡고만 있었다. 열지를 못하는 것이었다. 벌벌 떨면서 그의 얼굴에는 식은땀이 흘렀고, 표정은 거의 울상이었다.

끼익-

조금씩 문이 열린다. 침을 한번 집어 삼키더니만, 무엇을 각오했는지 조금씩 열고 있었다. 문짝은 비명을 지르며 움직인다. 마치 새로운 세계로 향하는 문이 열릴 것만 같았다. 그 세계가 죽음의 세계일 것이란 모두의 추측과 함께.

휘익-

무엇인가가 튀어나온다. 그리고 잽싸게 그를 잡아당겼다. 줄기였다. 덩쿨이 날아와 그를 감싸고 당기고 있었다. 그는 고개를 저으며 비명을 지른다. 세차게 흔드는 고개는 빠질 것만 같았지만, 그 전에 손목이 먼저 뜯겨나갔다. 바람이 불었다. 잘려나간 손목도 덩쿨이 집어간다. 우리는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 녀석' 은 인간의 말을 할 줄 아는 것이었을까.

"미친놈!"

선원 중 누군가가 소리친다.

"미친놈."

창고에서도 같은 말이 들려온다. '그 자식' 은 인간의 말을 따라할 수가 있던 것인가. 건장한 놈만이 된다는 그런 이 배의 선원들이지만 기절하는 녀석도 있었다. 몇은 기절하고, 몇은 주저앉는다. 나는 서있었다. 창고의 문이 완전히 닫힐때까지 나는 서있었다. 여기서 주저앉는다면, 나는 '그 자식' 에게 지는 것이다.

쾅.

문이 성질난 녀석이 닫는 듯이 알아서 닫혀버린다. 나는 그제야 주저앉을 수 있었다. 주저앉은 이유는 그저 죽은 선원의 명복을 빌기 위해 기도를 한 것 뿐이다. 풀썩 주저앉은 나는, 명복을 빌기 위한 것이니까, 그래서 주저앉은 것이다. 털썩. 다리에 힘이 풀리면서도 기도를 한 것이다. 제기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