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거슬러 올라가서 15년 전도, 20년 전도 아닌, 무려 2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프랑스는 백년 전쟁 이후 극심한 정쟁과 흑사병 등으로 고생을 치르고 있었다.

특히 포도와 와인의 명산지로 높았던 보르도는 더 심해 수도원이 폐쇄되고, 각 가문의 전쟁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도시를 떠나기 시작했다.

당시 20살의 젊은 수도사였던 아덴 역시 마찬가지로 보르도를 떠나 각지를 유량하다가 칼레에 당도하였다.

당시 칼레는 잉글랜드의 영토였지만, 그 곳에는 프랑스 사람들도 많이 있었다.

아무튼 칼레에 당도한 아덴은 그 곳의 교회에서 보르도에서 하지 못한 신앙생활을 계속하면서 그 지방의 명문가인 루오 가문과도 알게 되었다.

잉글랜드 계열인 루오 가문은 중세부터 칼레 일대의 지역을 대대로 이어온 명문가 중에 하나로 유명했지만, 이 당시 루오 가문은 큰 위기였다.

당시 루오 가문의 영주이자 칼레의 지도자인 다시에 루오에겐 슬하에 딸 둘하고 늦둥이로 얻은 아들 하나가 있으며, 그의 동생인 카드에 루오는 아들 셋이 있다.

하지만 이들 형제에겐 큰 고민이 있었으니, 아이들은 너무 어리고, 영지는 그 동안의 전쟁으로 일부가 파괴된데다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같은 지방의 명문가로 칼레의 지도자 자리를 노리고 있던 프랑스 계열인 발루드 가문을 막아내려고 해도 막을 수 없었던 것이다.


“정말이지. 발루드 가문을 어떻게 몰아내야 할지.”


“그 자들은 지금 우릴 험담하고 있어요. 안 그래도 영지에 속한 사람들도 거의 떠나가는데...”


“약한 소리 하지 마라. 카드에. 아직 우리에겐 육상과 해상을 합쳐 15,000의 병력이 아직 있다. 일단 저들이 공격하면 그 병력으로 막아내 보자.”


“형님, 그래도 전... 이건 생각 못했지만...” / “뭔가?”


“차라리 잉글랜드로 망명을 하는 것이 어떨까요?”


“그건 안 된다! 칼레는 우리의 터전이다! 조상들이 어떻게 이룬 땅인데 포기하고 망명이라니! 그럴 수 없다!”


“하지만, 아이들은 생각하셔야죠! 발루드 가문에 멸문당하니 차라리 잉글랜드로 가서 살지요. 형님!”


“아이들?”


동생의 말에 잠시 생각하던 다시에 루오.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 그는 우선 동생 가족을 우선 잉글랜드로 보내 망명을 요청하기로 했다. 그리고 자신은 이후 식솔들을 챙기고 동생에 이어서 잉글랜드로 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런 가족들의 사정을 알 리 없는 다시에의 어린 큰 딸, 스피아스 루오는 틈만 나면 집 근처 성당으로 향했다. 성당에서 가족의 건강을 기원하던 예배를 드리고 있던 스피아스는 그 곳에서 아덴을 만나게 되었다.


“저... 수녀님. 저기 저 젊은 수도사 분은 누구신지요?”


“아, 저 수도사요? 이번에 새로 보르도에서 온 아덴이라는 수도사에요. 나이에 맞지 않게 신앙은 거의 이곳의 신부님들도 놀랄 정도에요.”


“아... 아덴이요?”


오늘날의 미남 배우 저리가라 할 정도로 아덴의 용모는 일약 칼레의 꽃미남으로 불렸다.

그래서일까. 성당에는 매일 젊은 처자들의 발길이 끓이지 않았는데, 그 중 대다수는 예배보다는 아덴의 얼굴을 보기 위해서 오는 것이었다.

스피아스도 그 중 하나였는데, 비록 나이 차가 심한데다가(당시 아덴은 18살, 스피아스 루오는 6살, 즉, 12살차이)아덴이 수도사란 이유로 결혼을 거절당할 것 같아 결국 그에게 편지를 여러 장 쓰기 시작하였다.

처음 그 편지를 받은 아덴은 바로 난로에 버렸지만, 나중에 그녀의 마음을 눈치 채고 조금씩 받아들이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그로부터 5년 후, 칼레에는 백년 전쟁 이후 다시 한 번 긴장감이 밀려오기 시작하였고 둘의 사랑도 갈라서기 시작하였다.

당시 대서양과 북해, 지중해 일원에는 해적단이 수도 없이 많았다. 그 중에 거의 유명한 해적단이 셋이나 있는데, 하나는 바로 우리들이 잘 아는 ‘아조레스 해적단’이고, 또 다른 하나는 각종 악행을 일삼는 ‘쿨라 함대’, 그리고 마지막 다른 하나는 지중해를 배경으로 유럽 상단을 공포에 떨게 만드는 이슬람 계열의 ‘하이레딘 해적단’이었다.

이 세 해적단 중 악명이 높아도 너무 높고, 토벌을 하려 나간 자들이 살아서 돌아오지 못한, 바꿔 말하면 죽어서 온 탓에 해군도 건드리지 못한 함대가 있었으니, 사람들이 ‘지옥의 사자’라 불린 카리쿨라의 ‘쿨라 함대’였다.

아무리 갖은 방법을 써서 칼레의 지도자 자리를 노리려고 했지만 번번이 실패한 발루드 가문의 루이는 바로 이 ‘쿨라 함대’를 이용하기로 하였다.

명분도 있었다. 바로 카드에 루오가 형에게 보낸 편지였다.

편지를 명분으로 영주 자리를 노릴 수 있지만, 비겁하기 짝이 없는 그는 우선 다시에 루오에게 가족들이랑 같이 여행 차 낭트에 다녀오라고 권유한다.

처음에는 의심이 들던 다시에 루오는 결국 발루드 가문의 루이의 간계에 넘어가 가족들과 같이 낭트에 다녀오기로 했다.

다만 스피아스는 이 날도 어김없이 칼레 성당에서 기도를 드리고 있었는데, 한참 지나자 바깥에 이상한 소리가 여러 차례 나왔다.


“큰일 났다! 발루드 가문의 병력과 ‘쿨라 함대’가 오고 있다! 도망치자!”


‘뭐? 아버지, 어머니, 동생들은 어떻게 된 거지?  으흐흑... !!!’


“스피아스 양.” / “응? 수녀님. 그 옷은?”


“사실 며칠 전 부친이신 성주님께서 이 성당에 오셔서 이 옷을 저희들에게 전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일 무슨 일이 생긴다면, 아이들에게 이 옷으로 갈아입고, 여길 벗어나야 한다고.’ 자! 어서 피하세요! 곧 카리쿨라의 일당들과 발루드 가문이 바로 이 곳에 올 겁니다!”


성당의 수녀들의 말을 들은 스피아스는 뒤도 안돌아보고 서둘려 성에 이르러 귀중품들을 챙기고 다시 성당으로 와 옷을 갈아입고 즉시 밖으로 나갔다.

잠시 후, 15,000명에 이르던 루오 가문의 병력을 무찌르고 칼레에 상륙한 ‘쿨라 함대’와 발루드 가문은 스피아스가 빠져나간 루오 가문의 중심인 루오 성을 차지하고 즉시 도시 전역에 알려 루오 가문과 관련된 자들을 잡아내라고 방을 붙였다.

칼레를 벗어나 시 외곽의 높은 고갯마루에 이를 무렵, 그녀는 화염이 어느 정도 보인 칼레를 바라모면서 입술을 깨문 채 속으로 굳게 다짐하였다.


‘발루드, 카리쿨라... 내 가족들을 전부 해치우고, 내 삶을 파괴한 자들! 하늘에 맹세코 이 수모와 원한, 굴욕까지, 모두 반드시 갚겠다!’


그 후 ‘쿨라 함대’는 무려 30여 일 동안 칼레에 주둔하면서 약탈과 방화를 서슴치 않았다.

이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카리쿨라의 수하에 의해 죽거나 굶어 죽거나 모진 고문을 이기지 못하고 죽는 둥 도시가 마비상태에 이르게 되고야 말았다.

한 가지 다행스럽다는 것은 발루드 가문이 독실한 신자여서 처음 며칠간 성당에는 카리쿨라의 손이 뻗지 않았다.

그러나 발루드 가문의 루이가 잠시 칼레 외곽의 자신의 영지로 순행할 무렵, 카리쿨라는 성당으로 부하들을 기습, 순식간에 모든 걸 약탈하고야 말았다.

당시 성당에 있던 칼레 주교와 신부, 수도사, 수녀들 중 일부는 저항하다가 그들에 의해 처참히 살해당했고, 발루드 가문과 카리쿨라를 처벌해 달라는 주교의 편지를 가지고 있던 아덴은 화를 피해 다시 떠돌이 생활을 계속하였다.

한편 칼레를 벗어나 브레스트로 향한 스피아스는 그 곳에서 사건의 전말을 알게 되었다.


전말은 이러하였다.

발루드 가문의 루이는 미리 사람을 ‘쿨라 함대’로 보내 정적인 루오 가문을 없애자고 말했고 이에 카리쿨라가 승낙하면서 30척의 함대를 칼레와 낭트 해역 주변으로 움직였다.

또한 당시 루오 가문을 낭트에 다녀오라고 한 것은 일종의 거짓으로 가는 도중에 카리쿨라의 먹이가 되라는 것이었다.

카리쿨라 역시 이전에 루오 가문의 명성을 잘 아는 바 같이 데려온 30척의 함대를 나누어 처음 10개 함대는 칼레 앞바다, 두 번째로 나눈 10개 함대는 낭트 앞바다, 나머지는 중간 해역에 배치하고 결국 거기에 걸린 격전 끝에 루오 가문은 전원 몰살 당하였다.


이 소식을 전해 들은 스피아스는 근처 배를 얻어타고 ‘쿨라 함대’와 앙숙인 ‘아조레스 해적단’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언젠가 그 원한을 갚겠다는 굳은 맹세와 함께.


자 그럼, 칼레 주교의 편지를 들고 ‘쿨라 함대’에게 ‘점령’ 된 칼레를 빠져나온 아덴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는 일단 고향인 보르도에 당도 했지만, 그 곳은 처음 떠나기 전 보다 더 심했으며, 결국 편지를 당시 교황인 알렉산데르 6세에게 전해주기 위해 그는 당시 교황이 계시던 로마로 발길을 옮기기로 하였다.

그렇게 걸은 지 한 달하고 보름이나 지났을까? 배를 타기 위해 피레네 산맥을 넘어 바르셀로나로 가던 도중, 그는 산맥 근처의 한 허름해 보이는 낡은 집에서 잠시 쉬고 있었다.


“휴... 이제 피레네 산맥이네. 하루 빨리 바르셀로나에서 배를 타고 로마로 가야 하는데...”


그 때 근처 풀 숲에서 비명소리와 함께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하였다.


“응? 무슨 소리지? 이 허허벌판인 곳에...”


처음 보르도에서 수도사 생활을 할 때에도, 칼레에서 선교 생활을 할 때도, 약한 사람이나 무슨 일이 일어나면 적극적으로 나서는 아덴이라 즉시 풀 숲으로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