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 시절 우리 반 담임은 정년을 앞둔 국사 선생이었는데, 유난히도 꼬장꼬장한 성품 덕에 다른 선생들과도 썩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지 못하는 것이 우리 눈에도 보일 정도였다.


으레 그 나이대 선생이 그러하듯 수업에도 큰 열의는 없었건만 육이오 전쟁사를 강의할때만은 목에 핏대를 세우며 북괴를 원색적으로 비난하던 것이 당시의 남북 화해가 진행되던 사회적 분위기와도 맞지 않아 당혹스러웠는데, 나중에 선생의 아버지가 전쟁 통에 강제로 납북된 뒤 소식이 끊겼다는 가족사를 알고보니 썩 이해가 가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그 날은 중간고사에서 우리 반이 국사 과목에서 최하위 성적표를 받아든 날이었다.


"앞으로는 매 주 국사 시험을 치른다"

선생이 말했다.

"평균 점수를 밑도는 학생은 평균에서 부족한 점수만큼 내가 직접 체벌을 가하겠다"


"선생님"

반장이 나섰다.

"시험을 치르는 것은 반대하지 않습니다. 다만 모두 열심히 하더라도 필연적으로 평균보다 낮은 점수를 받는 학생이 생깁니다."

"그래서?"

"평균보다 높은 점수를 받는 학생이 남는 점수만큼 부족한 학생에게 점수를 나누어 주겠습니다. 그렇다면 모든 학생의 점수가 같아집니다. 모두가 평등한 세상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그건 공산주의다. 어디에서 그런 것을 배웠지?"

"......."

"앞으로 나와서 엎드려"

당시 선생의 지위는 학생들로선 감히 도전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지금으로선 상상하기 어려운 체벌도 공공연히 이루어졌기도 했고.


반장은 순순히 교탁 옆에 바지춤을 풀른 채 엎드린 자세를 취했고, 국사 선생은 그대로 아랫도리에서 방망이를 꺼내 체벌을 행했다. 백발이 성성한 노인답지 않게 체벌은 가혹했다.


"대답해라. 어디서 그런 못된 것을 배웠지?"

"희...오스..."

"뭐?"

"희오.....스........"


잠시 후 그래도 너무했다 싶었던 반 학생들의 신고로 다른 선생들이 달려왔고, 흥분한 국사 선생을 뒤로한 채 반장은 급히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이러니저러니해도 시대가 시대인지라 국사 선생은 별 탈 없이 정년을 맞이하였고, 한국 교육에 환멸을 느낀 반장 부모는 그대로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는 소식만을 전해 들었다.



세월이 지난 지금 그 친구를 우연히라도 만난다면 한 번 물어보고 싶다.

넌 정말로 공산주의자였는지

그때 외친 그 정체불명의 단어는 무슨 의미였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