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서스에 위치한 어느 주택가. 오늘 이 근방에서 몇 시간동안 숨가쁜 추격전이 일어났다. 이유는 바로 사람들을 잡아먹는 마녀의 출현. 마녀의 출현은 근방의 주민들에게 퍼져나갔고, 이로인해 근방의 모든 주민들은 마녀를 잡으러 동분서주했다.

 엘리스.

 그 마녀의 이름은 얼핏들으면 평범하면서도 매력적인 여자이름이다. 그렇다. 마녀의 이름, 아니 모든면에서 마녀는 매력적이었다. 다만 그 매력의 결과가 좋지 않았던 것뿐.

"드디어 잡았군. 목숨은 붙어있나?"
"...있다. 뭐 죽어있어도 끌고가야하니까."
"그래. 가져가는거야 이 마녀를. 블라디미르님께..."

 엘리스가 목숨만 유지한 상태로 주민들에게 묶여가고있는 장면을 멀리서 바라보는 한 사람이 있었다.

'중요한 의미를 준 사람...만큼은 지켜주고 싶다는 마음이라는건가?'

 집주인. 그는 엘리스의 말에 의하면 '중요한 의미를 준 사람'이다. 그것도 최초로. 남몰래 지붕위에 서있는 집주인이지만 어째선지 엘리스와 도망다녔을 때와는 달리 안정적으로 서있었다.

"꼬였군. 계획을 수정해야겠어."
집주인은 주민들이 멀리 사라지는걸 지켜본뒤 다음 건물으로 도약했다. 아무런 도구없이 맨몸으로.

 잠시 후 집주인은 자신의 집 앞에 도착했다.

"...이곳에 남겨놓은 건 없지만 그래도 애착이 가는군. 이렇게 말해도 결국은 돌아올 수 없는곳이니 서둘러 이곳을 떠나야겠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무언가를 가져가려고 노력하는 집주인.

"마녀에게 홀린 사람인가?"
 집주인의 목에 칼날이 들이닥쳤다. 집주인은 그제서야 이 주변에 사람들의 기척이 없다는걸 눈치챘다.

"으... 그 땐 그랬죠. 지금은 풀린 것 같다만..."
"그럼 당신은 왜 이곳에 오셨습니까?"
 가볍게 웃어넘기면서 대립을 무마시키려는 집주인의 말문이 막혔다.

"나는 내가 마녀에게 홀렸을때 내 주변사람들에게 무슨짓을 했는지 알고있습니다. 이 행동에 대한 해명은 완벽히 이루어질 수 없다는걸 알잖습니까. 그래서 조용히 이곳을 벗어나고 싶습니다. 저 대신 진실을 말해줄 사람 한명을 찾기위해, 그리고 제 짐을 챙기기위해..."
"이봐요, 당신 정도 나이를 먹었으면 제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고 계실겁니다. 그러니, 솔직히 말해주... 말해. 네녀석이 마녀에게 홀리지 않았다는걸 있는 힘껏 증명하라고!"
 집주인의 위화감이 느껴지는 말을 남자는 듣기 싫다는 표현을 반말로 나타냈다. 집주인은 알고 있다. 이 사람은 혼자가 아니다. 자신을 잡기 위해 무리들은 일부 갈라져서 행동하고 있을 것이다. 단지 폭파된 자신의 집에 제발로 돌아왔다는 것에 의문을 품은 것뿐이다.

"날 믿지 않는군. 내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 같나?"
"너같은 사람에게 존댓말을 들으니 거북하기 그지없군. 그래, 자의로 홀린 것은 아니겠지. 그런데 왜 죽지 않고 홀렸냐는 말이다. 적대시하는 사람을 마녀가 홀리기에는 시간이 아까웠을거야. 안그래? 제아무리 뒤처리가 어려워서 그렇다고해도 그년의 스킬로 능력껏 도주할 수 있었을텐데말이야."
 집주인은 남자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자신의 방에서 무언가를 계속 찾기 위해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칼을 들고있는 남자는 무안함과 이유모를 수치심때문인지 얼굴이 점점 달아오르고 있었다. 집주인은 그걸 노리고 있다는듯이 등까지 돌리면서 물건을 찾기 시작했다.

"녹서스의 같은 주민으로서 느끼는 유대감을 걸고 말해라. 마지막 기회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
"믿기지 않겠지만, 나는 그 마녀에게 홀리지 않았다."

 집주인의 느닷없는 반말과 그 내용은 남자를 충분히 당황스럽게 만들법했다.
"그게 무슨...?"
"홀려있었던 대상은 마녀였다. 자기 의지를 갖고 행동한 것이 아니었어."
"헛소리하지마.  정말로 믿을 수 없군. 아니, 그게 사실이라 해도 네가 알 도리는 없어. 알 방법이 있었다면 둘이 친한 사이었겠지!"
 칼을 겨누고 있는 남자, 그 남자의 뒤에 있는 건물에서 활과 검으로 무장한 사람들이 등장하기 시작햇다. 얼핏 제 3자의 입장에서 보녀 전자기기로 틀린그림찾기의 정답을 확인해보는 것만큼이나 공들인 은신이었다.

"글쎄... 내 말을 믿는건 너에게 달렸지만, 믿어주길 바란다."
"처리해!"
 결국 그 남자는 집주인의 말을 믿지 않았다. 칼을 든 남자가 소리치자 지붕 위에 있던 사람들이 화살을 날리기 시작했다. 실력자가 쏘는 화살이 아니라 정확도는 다소 형편없었으나 이미 물량 자체가 압도적이었기에 집주인을 죽이기에는 충분했다.

 좋게 평가하려 해도 집주인의 행동은 도를 넘어선 여유를 취하는 것 같다.사람들이 자신을 죽이려는 행동을 취하는 것을 이미 간파해냈고, 또한 눈치도 굉장히 좋았기에 유일하게 '마녀'와 대화할 수 있을 정도의 이례적인 성과를 거두었는데, 지금 그는 아무런 행동변화도 없는채 그대로 화살을 맞이했다. 남자는 창문을 깨뜨리면서 날아올 화살을 먼저 보았고, 몇 초뒤에 요란스러운 소리를 발산해낼 창문을 응시했다. 창문은 집주인이 있는 방을 그대로 비췄지만, 그 속에 투영된 장소에 서있을 집주인의 모습은 비춰지지 않았다.

 남자는 집주인의 말을 전면 부인하기로 했고 마녀에게 끝까지 홀려버린걸로 몰아붙여 죽이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저렇게 무수히 많은 화살들이 녀석의 숨통을 끊어놓겠지. 틀어막은 집을 억지로 부순덕에 여러 구멍이나 통로가 만들어져서 피할곳도 많지 않으니 분명 치사량의 부상을 줄 수 있다. 그럼 난 얼른 이곳을 빠져나가지.'

 마녀를 옹호한 저 사람을 같은 녹서스의 주민으로 취급하지 않기로 마음먹은듯했다. 그는 얼른 손으로 머리를 감싼채 집밖을 뛰쳐나갔다.

 자신이 맞이한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한 녹서스의 국민인 집주인은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방법을 찾았다.

 

 그러나 만일 집주인이 녹서스의 평범한 주민이 아니라면 어떨까?

 

"살았나?"
"죽었겠지."
"이유는?"
"네가 화살로 고슴도치가 된 뒤에 생사를 확인해봐야 정신을 차리겠..."
"알았어. 그냥 가자."
 화살을 쏜 사람들은 집주인의 생사를 확인하지 않고 흩어졌다. 그들에게는 다행이었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집주인의 시체는 커녕 존재여부조차 찾을 수 없는 광경을 보는것보다 죽었을거라고 생각하는게 훨씬 더 이해하기 쉬웠을테니.

'...'

 엘리스는 눈을 뜨자마자 사람들에게 포박당한채 끌려가는 자신을 발견했다. 주위를 둘러보려고 목에 힘을 주었을 때 말로 할 수 없을 정도의 통증이 엘리스의 온몸을 찔러댔다. 그 고통의 절정은 기침과 함께 입에서 뿜어져나오는 피였다. 혈액은 땅바닥뿐만 아니라 그녀를 포박한채 들고가는 주민들의 옷과 몸에도 묻었다.

"음? 에이씨 뭐야? 왜 피가 묻은거야?"
"아 진짜... 이 마녀에게서 나왔겠지. 기침소리도 이년이 냈으니까."

 일행 중 한명이 추측성으로 내뱉은 말은 주변 사람들의 이목이 엘리스에게 집중되게 만들었다. 물론 엘리스는 눈을 뜰 기운도 없었고 정신만 든 상태라 기운을 잃은 상태라고 보여주기 쉬웠다. 당사자에게 직접 물어서 뭔가를 확인하기에는 곤란한 상태라는걸 인식시키기는 쉬웠고 사람들은 다시 그녀에게서 눈을 돌린채 앞을 향해 바라봤다.

"힘이 하나도 없는데? 그러고 보니 마른 여자로군. 명태아냐?"
"명태라면 이렇게 크게 튀어나온 부분과 잘록하게 들어간 부분이 확실히 구분되는 라인이 있을리 없잖아? 누구에게서 받는지는 모르겠지만 외모관리는 철저히 받았나본데."
"남을 속이기 위해서라면 그런 것도 있어햐 했겠지. 그나저나 블라디미르님 말이야."
 무감각에 가까운 상태에 있었던 엘리스의 귀가 남몰래 열렸다.

"왜 이 마녀를 잡아오라고 하는거지?"
 곧장 그녀의 귀는 활동을 멈췄다. 모든 신경과 에너지는 여러 생각을 하는데 쏟아부어지기 시작했다. 블라디미르가 녹서스 시민들에게 엘리스를 잡아오라고 명령했던 것이다. 동료라고 생각했던 챔피언이 오히려 이 사건의 배후인물이었다.

"아마도 이 마녀와 무슨 사이가 있는 것 같은데... 하필 이 마녀도 재수없는 타이밍이 왔군."
"어쨌든 챔피언 대 챔피언으로서 대면하는 것이 목적이니, 일단 그분께 모시고 가자고."
 가능하면 여기 있는 시민들을 모두 폭사시키고 싶었다. 아니,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것이다. 블라디미르와 대면해서 압도적으로 승기를 잡은 뒤 멱살을 잡으면서 '왜 날 만나기 위해서 사람들은 동원했냐'라고 물어보고 싶었다. 온몸을 상처투성이어서 기운이빠진 그녀지만 분노감에 가득찬 나머지 남몰래 부들부들 떨고 있는 엘리스라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이건... 그림자 군도에서 느낀 그것과 같은 느낌이다. 어둡고, 무거우며, 힘을 빼게 만들고, 피하고싶은 것이며, 이성을 배제시킬정도로 강대한 힘이 생겨나는것 같아.'

 자신의 머리속에 보관된 감정의 회상과 일치함에 멈칫했지만 그것도 잠시 엘리스에게는 자기에게 기댈 곳이 없어졌다는 과장된 무기력함을 받았다. 동맹관계인 블라디미르가 사람들을 선동해서 자신을 잡게 만들었다. 르블랑은 다르면 얼마나 다를까.

'만약 내 몸의 상처와 부상이 모두 없던걸로 하고 주민들에게 끌려가는것을 피해 블라디미르에게 잡혀가지 않았다고해도 르블랑이 어떤 태도를 가지고 나를 보려고할지도 몰라. 르블랑이 블라디미르와 같은편이라고 하면...

 아니야. 블라디미르와 달리 주민들의 입에선 르블랑에 대한 언급은 일절 나오지않았어. 그래. 나에게 필요한 기적은 두개야. 내 몸이 그녀를 찾아갈 수 있을 정도의 건강과 주민들에게서 벗어날수 있게하는 운좋은 상황.'

 애써 잘될거라고, 그래도 좋은일이 있을가능성을 생각하며 자기 자신의 마음을 진정시킬 무렵, 엘리스의 마음 또다른 한구석에서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과연 그럴까. 블라디미르가 움직이고 르블랑이 그를 쥐어잡는 상하관계의 구조였을경우 상황은 더욱 악화될게 뻔해. 두개의 기적이 일어나도 또다른 곤경에 처할게 뻔하다고. 생각해봐. 르블랑은 '환술사'야. 어떤 수를 써서라도 남의 눈을속여버리는 사람이라고. 르블랑이 블라디미르와 같은 녹서스 소속이고 둘의 공통점은 너의 동맹관계라고 명시되어있었지. 하지만 블라디미르가 실질적인 적대관계가 된이상 르블랑이 나와 어떤관계인지 알수 없어.'

 그녀의 마음속에서 두개의 관점을 가진 또다른 엘리스가 모습없이 말을 주고받고있었다. 입장과 관점은 다르지만 그 둘은 분명 같은 엘리스의 생각이고 둘다 일리가 있는 말이다.

'냉정하게 생각해봐. 르블랑과 블라디미르와의 관계가 독립적인 관계일지. 르블랑이 호의적인 태도를 보인다면 그건 좋은일이지. 하지만 반대의 경우도 있다고. 르블랑도 블라디미르와 너사이의 관계와 같을수도있어.'

 냉정함. 청문회 이전의 엘리스에게 잔혹함과 우아함과 같이 그녀를 상징하는 하나의 특징이었다. 그 특징은 그동안 엘리스에게 희망이란 이름의 가설의 편에 서줬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았다. 그 '냉정함'이 엘리스의 불안을 고조시키고 있었다.

'그럼 어떻게 하자는거야. 르블랑과 블라디미르가 한패라면, 나는 대체 어떻게 행동해야하는거지? 그럼 주민들에게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녹서스에서 살아남을수있는 방법은 없는거야?'

 긍정적으로 생각하려는 엘리스가 점점 불안해하기 시작했다. 그 엘리스를 바라보는 비관적인 태도를 지닌 또 하나의 엘리스가 말했다.

'없어. 주민들에게서 벗어날 방법은 없어. 녹서스에서 살아남을 방법도 없어. 그이전에, 너의 몸상태가 쾌유될 상황도, 주민들에게서 떨어질 방법도 없어. 네가 절실히 바라는 두가지 기적도 일어날리 없어.'

'그럼 나는 뭘하라는거지?'

 엘리스 안의 엘리스가 말했다.

'없어. 네가 할수있는것은 없어. 네 인생은 이렇게 끝나는거야. 몇년동안의 사치스러운 향락과 쾌락에 빠져왔지만 결말부에는 명성을 잃고 힘도 없는 사람으로 전락한채 네가 내려다봤던 사람들에게 죽는거야.'

 엘리스의 마인드는 점점 비관적으로 바뀌더니 절망의 끝을 연상케 할정도의 깊은 무거움을 느꼈다.

 절망했기에 느낄수 있는 무기력한 감정. 좌절감.

'그래... 나는 여기서 끝나는구나. 비록 이런 나지만 내 편을 들어준 집주인에게는 정말 감사했어. 하지만 그사람은 날 구해줄수 없다고...'

 

 외적으로는 몸에 박힌 화살들과 상처로, 내적인 좌절감 때문에 점점 그녀의 의지는 약해지고 있었다. 물론 희망 자체는 잃지 않았다. 다만 약해지고 있을 뿐이다. 집주인의 진심어린 충고도 떠올려서 다시 기운을 낼 수도 있지만 지금 이상황에서 그런 행동은 위기를 타파할 방법이 되주지 않는다.

'3년동안 이어져온 내 주변의 침묵. 그래. 나에게는 내 옆에 계속 있어줄 누군가를 원해왔어. 하지만, 너무 늦은걸까?'

"누구냐 넌!"
"잠깐 저 사람... 마녀에게 홀렸던 그 사람같은데?"

 해가 절정에 달하다가 식어가기 시작할 때였다. 녹서스의 주민들은 어디로 갔는지 거리에는 평소에 넘쳐났던 활기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아무도 집주인의 정황에 대해 신경쓰는 사람도 없었다.

 벌집 혹은 폐허라 부를법한 집에 집주인이 서있었다. 그는 자기가 있었던걸로 추정되는 방으로 들어가봤다. 화살들은 목표를 잃은듯 바닥에 비스듬히 박혀있었다.

'당신은 제게 있어서 중요한 의미를 준 사람이에요. 계속 앞을 볼 수 있게 만들어줬잖아요. 그것만으로 충분합니다. 비록 무력한 마법사지만, 제게 그렇게 신경을 써온 사람이 위기에 처하는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습니다.'

 집주인을 향해 말한 엘리스의 감사함은 명대사에 가까울 정도의 강렬한 인상을 줬다. 집주인은 가만히 눈을 감았다.

"나도 참 바보같단 말이지. 어떻게 그 때와 똑같은 얼굴을 띈채 나에게 올수있지...? 다시는 그 표정을 짓고살지 않겠다면서..."

 의미는 잘 모르겠지만 집주인의 마음이 동요하고있음을 나타낼법한 함축적인 독백이었다. 집주인의 눈이 감긴채 한동안의 시간이 흘렀다. 그러다 그의 눈이 의지로 가득찬상태로 떠졌다.

"좋아, 그럼 그 약속을 지켜줄 때가 되었군 엘리스."
집주인은 나무막대기를 창고속에서 발견한다음 알 수 없는 말을 지껄이기 시작했다.그리고 텅 빈거리를 조용히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는 걸어다니면서 사람들이 있나 없나를 살펴보았다. 그 도중 주택에 붙어있는 창문 속의 자신과 마주쳤다.

 

 창문 속에는 집주인의 자리에 여자를 비춰주고 있었다.

<계속>

 

<글쓴이의 말>

 

오랫만에 씁니다~ 즐감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