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런...쯧쯧쯧. 단체로 여자를 납치하려는건가?"

 엘리스를 잡아가는 무리들 앞에 나타난 한사람은 당연히도 그녀가 만난 집주인이다. 직접 보지 못했지만 목소리로 알아채낸 엘리스도 움찔했다.

'어째서 이 사람들 앞에 다시나타난거지?'
"태연한 척 하지 마라. 넌 아직도 마녀에게 놀아나고 있다. 그렇게 많은 화살을 퍼부었는데도 살아남은 이유가 궁금하군."
 집주인에게 공격적인 어조를 감추지 않고 활용하는 주민들. 집주인은 잠시 한 텀을 기다렸다가 차분히 말을 하기 시작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고 말해주고 싶군. 마녀가 나를 지켜준 것은 맞다만, 아까도 말했듯이 마녀에게 홀린 적은 없었다."

 집주인의 말투는 엘리스와 주민들에게 썼던 존댓말이 아니었다. 반말에서 나오는 당당함에 놀란사람은 엘리스보다도 주민들이었다. 그 주민들이 그렇다고해서 집주인에 대한 태도를 바꿨냐하면 그렇지 않다고 답할것이고 그의 말에 귀기울여들었냐고 물으면 그것도 아니라고 할수밖에 없다. 그들에게 집주인은 평범한 사람이서 그럴지도 모른다. 그저 무력을 휘두를 대상으로만 인식하고 있었기에 사람들은 그를 항해서 조금식 다가가고 있었다. 집주인은 당황해하면서 손을 들어보였다.

"이러지 마시지. 난 당신들과 같은 녹서스인이라고. 내 말을 못믿는건가? 나는 피를 보고 싶지 않은데 말이지."
"죽여라! 녀석은 화살밭속에서 살아남은 놈이다. 생각보다 강할지도 모르니 신중히 덮쳐라!"
 감정에서 비롯된 호소따위는 무시, 사람들은 집주인을 향해 질주했다. 집주인은 물러서지 않았고 그 장면은 간신히 눈을 뜬 엘리스도 목격했다.

'뭐지?'

 희미하게 볼 수밖에 없었지만 엘리스는 집주인의 평소와 다른 무장상태에 대해 의심했다. 첫째는 바로 검이라고 할 수도 없는 나무막대기. 둘째는 집주인의 등에 비스듬하게 걸려있는 대검.

'장난이 심한데... 왜 좋은 검을 냅두고 나무막대기를 잡고있는거지?'

엘리스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곧장 집주인에게서 찾을 수 있었다. 집주인은 등에 걸려있는 대검을 꺼내 땅에 깊숙히 박았다.

"네 진짜 모습을 보여줘라. 내면의 강함을 온몸으로 비춰내라, 미러링!"
 집주인은 대검을 땅에 박은 뒤 다짜고짜 주문을 외쳤다. 이어서 그 대검에 나무막대기를 꽂자 일이 벌어졌다. 집주인의 나무막대기가 빛나기 시작했다. 엘리스는 땅에 박아논 물건이 햇빛을 반사시키는걸 본 뒤에야 그것이 대검이 아닌 거울임을 알아챘다.

'잠깐, 거울?'

 직접적이지는 않지만 엘리스에게 강렬한 자극이 가해졌다. 그 충격은 사람들에 의해 나타나는 것이 아닌, 머리속에서 일어난 충격이었다.

 

"거울, 그것은 내 진짜 모습을 보여주는 유일한 수단이자, 내 약점이지."

 누군가가 머리에다 강제적으로 데이터를 때려박은듯한 연출이 일어났다. 알 수 없는 인물과 의미불명인 대사가 영상으로 회상되었다. 모든 것은 그녀의 의지와 관계없이 돌아갔고, 눈 앞에서 벌어지는 광경은 페이드 아웃처럼 희미해져갔다. 풍경은 점점 멀어지더니 마침내 그녀는 아무것도 없는 공간과 마주하게되었다.

 엘리스가 인식하는 모든 자극은 인식만 가능하고 파악은 불가능했다. 즉 그녀는 자신의 눈에 의해 받아들여지는 녹서스의 주민들과 집주인간의 싸움은 볼 수 없었고 희미하게 보여지는 회상만 볼수 있었다. 그 회상은 눈앞의 광경을 보는것처럼 뚜렷해졌고...

"나랑.. 같이 일해보지 않겠니?"
 그 장면에서 누군가에게 말하는지도 모르는 제안이 흘러나왔다.

"당신은 누구시죠?"

'어라, 이건 내 목소리?'

 대답을 하는 사람의 목소리는 엘리스의 목소리였다. 회상이라는 제목을 달법한 영상에서는 뚱뚱한 상점아줌마만 스크린 속 대부분을 차지했다. 그래도 더 이상의 망설임은 없었다. 자신의 목소리가 나오는 것은 틀림없이 자기가 기억하지 못하는 과거, 그리고 그 중의 특정 사건.

 엘리스는 대화의 내용에 좀 더 집중했다.

"난 그쪽일에 함께할 이유가 없는데, 아주머니."
"네가 챔피언이라는 직업을 얻어서 무슨 이득을 얻고싶었는지는 뻔하다고 생각되는데. '챔피언'이란 타이틀에 담긴 명예? 안정된 수입? 아니면 강자끼리 싸우는 것? 나는 그 단편적인 목적만을 가져서 챔피언이 되고 싶다고 말할 것이면 당장 그 직업을 갖는걸 반대할거야."
"첫대면부터 위화감에 태클까지... 정말 질색인데. 당신은 누군데 내게 뭐라하는거지?"
"챔피언으로서의 충고인데도?"
 엘리스의 깊은 추리가 끊겼다. 회상 속의 엘리스도 비슷한 처지여서 그런지 다음 대답이 나오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내가 챔피언이 되기 전에 만난 챔피언?'

"...챔피언이시라면 당신의 이름은 뭐죠? 검색을 해보려 하는데..."

 갑자기 과거의 엘리스의 말투에 존댓말이라는 속성이 추가되었다.
"챔피언이 한 말이라 어느 정도 신뢰가 가니?"
"아니, 당신이 챔피언인지 사기꾼인지 확인해보려는 건데요."
 과거의 자신이 말투가 상점아줌마의 정체를 밝힌 다음에 존댓말이 어색하게 가미된 것에 위화감을 느끼다가 그녀는 호탕하게 내뱉는 아줌마의 웃음소리를 들었다. 후덕해보이는 외모와는 다르게 높은 톤의 목소리를 가졌고 웃음소리는 소리나는대로 정확하게 받아쓸수있을법한 뚜렷함이 있었다. 그 특징때문일까. 회상을 지켜보는 입장의 엘리스는 무언가의 기억과 연관시키는데 성공했다.

'이 웃음소리 어디서 많이 들었어.'

"그래. 네가 말한 두 유형의 사람은 모두 나를 두고 부를 수 있지. 하지만 나는 사기꾼이라는 말을 좀 싫어하거든."
"시간 오래주지 않았는데, 빨리 자기소개나 하시죠."
"나는 사기꾼... 아 그렇게 말하니까 진짜로 사기꾼이라 부르네. 어쨌든 나는 환술사, 에밀리아..."
 시간이 흐를수록 영상에 많은 잡음이 섞였다. 그 잡음은 결과적으로 기억을 회상하는 행위마저 간섭해 엘리스의 호기심이 충족되는 시기를 정해지지 않은 먼 미래로 연장시켰다.

'몸이...'

 영상에 오류가 생겨서 집중력이 무산되자 호기심이라는 것에 집중을 쏟아부었던 그녀의 정신에 무거운 고통이 일어나났다. 완력으로 땅에 박혀진 오른쪽 무릎과, 상체를 향해 휘두르는 둔기를 막기위해 올려들었던 양팔, 느린 질주속도때문에 맞아버린 등, 그 등의 한가운데에 콱 박혀진 창, 양쪽 팔다리에 자잘하게 꽂혀있는 화살들도... 고통에 못이겨 눈을 질끈 감았다가 다시 떠보니 영상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자기를 향해 다가오는 집주인이 눈에 들어왔다.

 그 장면은 회상일리가 없었다. 엘리스도 그걸 파악한 다음 기절했다.

 

"안전한 곳으로 옮겨드리지. '거미 여왕.'"

 

 엘리스는 눈을 떳다. 천장을 통틀어서 인식하려 해도 주위는 어두웠다. 여관을 연상케하는 좁은 방이 눈에 들어왔다. 몸을 일으키자 그녀의 몸을 덮었던 담요가 흘러져내렸다. 주변을 둘러보니 책상 하나와 촛불 두개가 눈에 띄게 들어왔다. 그 쪽으로 가기위해 무릎을 들어올릴 때 드는 생각,

'아니야, 배에 그렇게 많은 화살이 박혀왔는데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살아있을 리가 없잖아. 나는 영혼이고 이곳은 천국과 지옥을 결정짓는 곳이겠지.'

 ...과는 다르게 먼저 움직여진 무릎. 그런데 통증이 느껴지지 않았다. 죽어서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거라 여겼다. 순간적으로 그렇게 여겼다. 어느 저승사자가 미쳤다고 '마녀'라고 낙인찍힌 사람에게 담요를 덮어주고 재판을 기다리냐는 판단이 뇌에 자극을 주기 전까지는.

'그런데 이승이라면 나는 상처가 가득해야하는데 왜 고통이 없지?'

 혹시 몰라서 배를 보았다. 전장 내의 활동복 특성상 엘리스의 복장은 매우 얇고 노출된 피부가 적지 않은 편이라 외부의 충격에 많이 약하다. 그러므로 그동안에 입은 상처의 흔적을 볼수 있어야 하는데... 하나도 없었다. 상체, 그리고 과녁에 적중된 묵직함을 가진 창도 느껴져야하는 등부분조차도 아무런 고통이 없었다. 어림잡아서 창이 꿰뚫린 부분을 더듬어봤지만 구멍은 만져지지 않았다.

'다행이다. 만약에 남겨졌다면 여자의 등에 구멍 하나가 생긴꼴이니... 그런데 어째서 이런일이...'

 만약 그 사람이 숨겨진 대능력자라면 가능하다. 우선 그 능력자가 누군지 파악하기 이전에 생명의 은인에게 고맙다는 인사라도 할 겸 엘리스는 몸을 일으켜 주변을 둘러봤다. 책상 위에 종이 한장이 있었다.

"뒤를 보시오?"
 뒤를 돌았다. 거울만이 있을 뿐 아무것도 없었다.

'거울, 그것은 내 진짜 모습을 보여주는 유일한 수단이자, 약점이지.'

 무심코 들었던 대사가 이 거울과 연관되었다. 그냥 무시하기에는 이곳에 위치한 거울의 존재가 너무 수상쩍었다. 엘리스는 거울 앞으로 가서 그 물건을 자세히 바라보았다. 거울은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았다. 아니, 지루하리만큼 고요한 방만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녀는 거울에 관심을 기울인 자신에게 가벼운 냉소를 날리면서 거울에 비춰진 숨겨진 물건을 보았다.

'내 뒤에 의자가 있다고?'

 거울 속에 의자가 비춰졌다. 자기가 있는 방에 보지도 못했던 의자가 거울 속에 비춰졌다. 뒤를 돌아 방을 살펴보아도 의자는 찾아볼수가 없었다. 거울과 뒤를 번갈아가면서 돌아보다가 엘리스는 나름의 가설을 세워보았다. 아주 간단한 가설을.

"이게 만약 거울 밖에 있는 물체라면..."

 고민 끝. 거울이 문이었다는 것이다. 거울이 반대편에 있는 물건을 비춰줄리가 없다는 모순은 구석에 제껴놓고 엘리스는 문을 열 준비를 햇다. 문고리가 없었다. 그래도 방법이 찾아낸듯한 그녀는 거울에서 멀리 떨어진 곳까지 걸어갔다. 상처도 나앗겠다, 몸으로 거울을 깨트리면서 격파하려는 것 같다.

'내 몸에게 조금은 사죄를 해야 할 것 같은데.'

 생각보다 몸이 앞서 엘리스는 거울을 향해 크게 뛰어오른 상태.

'거울이 뒤로 열려진다?'

 졸지어 그녀의 몸은 거울 뒤의 공중에 붕 떠있었다. 이대로가면 철푸덕 넘어질 터.

 

 엘리스의 시야 밖에서 사슬이 날아왔다. 몸을 위해서 사슬을 잡고 중심을 잡은 뒤, 그녀는 조용히 바닥에 앉았다. 사슬이 날아온 쪽으로 눈을 돌리지도 않았다.

"이런이런, 그 방법밖에 쓸 수 없었던거니?"
'그 목소리다.'

"당신은 아주 오래전에 나와 만났지?"
"글쎄? 일로 따지나 년으로 따지나 그렇게 오래전은 아닌 것 같은데."
"누구냐?"
 목소리는 한숨을 쉰 다음 대답했다.

"생각보다 심각하군. 날 잊었니?"
"당,장 말하시지. 네가 누군지 알아야 나와의 대화도 이루어질 텐데."

 목소리는 한치의 망설임없이 다음 말을 꺼냈다.
"좋아. 나는..."
"환술사, 에밀리아..."

 설마하는 마음으로 회상속의 여인의 이름을 말해보려했으나 풀네임으로 기억하고있지는 못한 나머지 엘리스의 목소리가 줄어들었다.
"...르블랑이지. 뭐, 거의 다 알고 있었네."
 르블랑은 자신의 반쪽짜리 정체를 밝히려는 엘리스 앞에 이동해서 모습을 내보였다. 엘리스의 피부나이대와 비슷한 20대 여성의 모습을 보여줬다. 엘리스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좋아. 널 만나서 하고싶은 얘기가 있는데, 지금부터 시작해볼까?"

<계속>


<글쓴이의 말>

공백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