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공학자는 손을 마주 잡았다. 

"만나게 되어 반갑다."

힘주어 악수하며 빅토르는 제이스에게 진심을 담아 말했다. 그는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그렇게 빠르고 간단명료하게 이해하는 사람을 아직까지 만난 적이 없었다. 학장의 걱정과는 달리 자신과 말이 통하는 이 남자라면 함께 일할 만 할지도 모르겠다고 빅토르는 생각했다. 

"빅토르," 손을 떼며 제이스가 새로운 동료의 이름을 불렀다. "동의하지. 꽤 재밌는 시간이었어. 음, 저기 있는 멍청이들과는 다르게 넌 그래도 좀 쓸모있는 일을 맡을 수 있겠군."

빅토르는 조금은 당황스러운 눈빛으로 제이스를 바라보았다. 필트오버의 교양인들보다도 예의나 격식을 덜 차리는 편인 자운 COT에서도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이런 식으로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글쎄..." 빅토르는 그 쓸모있는 일에 대해서 알려 주는 편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듣기로는, 우리 전문 분야가 겹친다지? 학장님 말로는 앞으로 자주 너와 공동 연구를 하게 될 지도 모른다는군. 잘 부탁하지."
"정말? 내가 구닥다리 자운공대에서 온 녀석이랑? 하하하, 꽤나 재밌는데." 

제이스는 유쾌한 농담을 들었다는 듯 웃은 다음, 상대의 기색은 안중에도 없이 말을 이었다. 

"그럼 또 보자고. 난 바빠서 이만. 필트오버의 진보를 위한 중대한 연구가 날 필요로 해서 말이야." 

말을 끝내기도 전에 제이스는 이미 실험실로 돌아가기 위해 발걸음을 떼면서 한 손으로 작별을 고하고 있었다. 멀어지는 뒷모습을 바라보던 빅토르는 살짝 입술을 깨물었다. 뭔가에 낚인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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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트오버 마법공학대학 2
 - 가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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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연구실로 돌아온 빅토르는 점심 무렵을 쉴새없이 필트오버 학회나 세미나, 또는 내부 학술지에 발표된 논문들을 읽는 걸로 보냈다. 필트오버 최신 연구의 동향을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대부분은 아는 내용에 지루한 가설이나 예산 낭비로 보이는 추가 실험을 가미한 실적내기용에 불과했지만 흥미로운 것은 제이스의 발표분이었다. 오늘 만나 본 그의 인성이 설령 쓰레기일지언정, 그가 쓴 페이퍼의 내용은 하나같이 새로운 아이디어와 발명품에 대한 내용으로 가득했다. "놀라운 걸." 빅토르는 이따금 고개를 끄덕이며 읽기에 빠져들어갔다.

방에 돌아왔을 적엔 따끈따끈했던 피넛버터 밀크가 반쯤 남아 다 식은 지 한참 되었을 때, 책상에 설치되어 있는 개인용 통신기의 벨이 울렸다. 통신기 버튼을 누르자 상대의 얼굴이 빌트-인된 투영 화면에 비추어졌다. 학장이었다.

"개인 연구실은 좀 편한가?"
"감사합니다, 마음에 드는군요. 지금까지는 여기서 비교적 최신에 게재된 글들을 살펴보고 있었습니다."

학장은 못말리겠다는 듯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첫날은 천천히 둘러보는 걸로도 괜찮은데... 자네가 연구 과제를 빠르게 원한다니까 바로 소개를 해 주겠네. 괜찮겠나?"
"사실은 1초라도 빨리 시작하는 편이 좋습니다."
"좋아, 그럼 지금 제타 실험실로 와 주게."
"바로 가도록 하죠."

빅토르는 통신이 끝나자마자 들뜬 마음으로 개인 연구실을 나섰다. 실험실로 향하는 동안 흥분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드디어 필트오버의 최신식 실험실에서 마음껏 연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여긴 에너지 건물 할당량으로 인한 긴급 동력 공급 중단도, 낡고 오염된 기계의 잔고장도, 잿빛 대기 경보로 인한 대피령도 없다. 게다가 연구에 필요한 자원은 예산이 많이 들더라도 투자를 약속 받았다. 그야말로 이상적인 곳이었다.

"여기로군."

철두철미한 그의 성격상 대학 건물의 구조는 지도에서 전부 파악해 두었기 때문에 실험실 위치를 찾기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노크를 하자 안에서 "열려 있네." 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실험실 문을 열자 실험용 장비들로 가득 찬 넓은 방이 빅토르를 맞이했다. 그 중 몇 종류는 책이나 투영 화면에서만 접했던 것도 있었다. 모두 들여온 지 오래 되지 않았거나 새것처럼 관리가 잘 되어 있는 것들이었다. 곳곳에는 귀중하고 값비싼 시료들이 선반과 보관함에 잔뜩 비치되어 있다. 이 모든 것들을 눈 앞에 두고 나니 필트오버에 오기로 결정을 내린 것은 잘 한 일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 가운데 위치한 큰 실험 테이블 앞에는 학장이 서 있었다. 

"제타 실험실은 우리 대학 중에서도 가장 좋은 설비가 된 곳 중의 하나지. 물리화학과 유기화합물에 관한 연구 중 여기에서 실험 불가능한 것은 없네. 물론 마법기계 작업을 위한 설비는 기본으로 되어 있고." 

"이런 멋진 실험실은 생전 처음 보는군요." 

빅토르는 솔직하게 감탄을 내비쳤다. "이 정도면 실험 과정에서 에로사항은 전혀 없을 겁니다. 제가 맡게 될 일은 뭡니까?"

"우리 개발 분야 중에서는 몇 가지 특정 목적에 맞게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든 장착형 마법공학 증강체도 있다네. 이번에 개발 중인 건 마법공학 증강체 이식을 작업하는 엔지니어들의 작업 효율과 정밀도를 높히기 위해 마법공학을 이용한 강화 팔을 만드는 거야."

"마법공학 증강체 이식을 작업하는 이를 위한 마법공학 증강체라." 빅토르는 흥미롭다는 듯이 말하며 프로토 타입으로 만들어진 듯한 손 모양의 기계식 뼈대들, 벽에 붙은 설계도들, 그리고 한 쪽에 비치된 칠판에 쓰여 있는 공식들을 흩어 보았다. "누군가가 앞서 작업하고 있었네요." 

"그는 이 연구개발에서 손을 뗐거든. 앞으로는 전적으로 자네에게 달려 있네."

과연 실험 테이블 위에는 누군가가 작성하던 일지 꾸러미가 놓여 있었다. 

"문제점이 뭐였죠?" 
"음, 세밀하게 증폭된 감각과 제어 신호를 주고 받는 부분이 난제야. 어떤가? 할 수 있겠나? 이번 1분기 연구 과제로 이 문제를 해결해 보게."

학장은 말을 하다가 잠시 멈추었다. 아까부터 빅토르는 설계도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아뇨." 

빅토르가 짧은 침묵을 깨고 답했다. 

"제 생각에는, 한 달이면 해결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확신하나?" 학장이 너털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처음엔 많이들 자신있게 말하곤 하지만, 쉬운 문제라는 건 없다네. 물론 자네가 자운 산업의 표준을 세울 정도의 인재라는 건 알지만..."

학장은 짐짓 빅토르가 너무 자만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지만, 그의 표정을 살피니 허세를 떤다거나 단순히 자신감을 표출하는 것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말투는 마치 객관적이고 당연한 문장을 읽는 듯 건조했다. 

"기간을 넉넉히 잡아서 말씀드린 겁니다." 

사실 빅토르는 이와 비슷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운에서도 개인적인 연구를 진행한 적이 있었다. 유독 물질에 노출되어 특정 신체 부분이 마비된 이들을 위한 작업용 장비였다. 시험 착용자는 특수한 방식의 신호 증폭과 마이크로 제어 기법을 통해 오히려 장비를 착용하지 않은 일반 작업자보다도 불량 작업 없이 우월한 능률을 뽐내게 되었다. 신체의 감각 기관과 제어 기관을 마법기계와 연결하는 일은 그에게 새로운 일이 아니었다. 그 때는 단지 생산 비용이 너무 많이 들기 때문에 포기했었다.

"흠, 알겠네. 그럼 그렇게 고려해서 일정을 짜 두겠네. 필요한 건 아마 다 있을 거라고 생각하네만, 만약 부족한 게 있다면 신청하게나. 그럼 건투를 비네."

학장이 나간 뒤 빅토르는 선임자가 만들었던 프로토 타입을 고정 작업대에서 들어 올리더니 실험 테이블 구석 한 쪽으로 치워 버렸다. 

"시작이다. 바로 착수해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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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에 의해 돌아가는 시끄러운 진동음이 방 가득 울렸다.

제이스는 최종 실험 도중의 중간 측정치를 기록하고 있는 중이었다. 

"이제 다음 단계가 마지막인가?"

제이스는 실험기계의 회전 속도를 최대 출력으로 올리며 지금까지의 기록을 체크했다. 

"좋아, 예상한 대로의 측정 결과가 나오고 있어. 역시 이 제이스의 사전에 실패는 없......"

그 때였다. 작동 중인 실험 장비에서 갑작스레 스파크가 튀더니 '쾅!' 하는 폭발음과 함께 터져 나갔다.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아..."

놀란 제이스는 반쯤 비뚤어진 보안경을 잡으며 망연자실했다. 

"이, 이럴 리가 없는데?!"

제이스는 재빨리 원인을 찾기 위해 상태를 살폈지만,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완전히 내부가 타서 박살이 나버린 분리기계와 엉뚱한 숫자를 가리키고 있는 계기판, 그리고 폭발의 파편들로 엉망이 된 실험실이었다. 자재부에 한 소리 들을 생각을 하니 한숨이 나왔다. 

"으음! 일단 모든 수치는 정상이었어." 제이스가 자신의 기록을 재차 확인하면서 추측했다. "성능의 한계에 따른 과열인가?" 

자신의 계산이 맞다면 현재기술의 한계점에 해당하는 본 장비의 성능을 최대로끌어 올렸을 때 측정하려는 상태에 도달할 수 있었다. 시료를 확인하던 제이스는 이를 담은 케이스에 문제가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쩐지 진동이 너무 크다고 느꼈다. 

"다시 한 번 해 보자고. 어디 보자, 시료는 있지만 초원심기계는 이거 아무래도 다른 데에서 사용해야 할 텐데."

고민하던 제이스가 스스로에게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역시 거기밖에 없나."

제이스는 필요한 것들을 챙겨서 제타 실험실로 향했다. 그가 알기로는 현재 거기에는 사람이 없었다. 누군가 그곳을 이미 사용중이라는 것을 안 것은 문을 벌컥 연 직후였다. 

"빅토르?"

"제이스...? 여긴 무슨 일로?" 빅토르가 의외라는 듯이 물었다. 

"너야말로 여기서 뭐하는 거야?"
"오늘부터 맡게 된 개발 과제를 수행 중이야."
"설마 에일러가 맡았던 기계 팔 말이야?"
"그가 맡았던 일이 저기 있는 저거라면 네가 생각하는 게 맞을 걸."

빅토르는 어느 새 수정된 부분과 포스트잇으로 즐비해진 설계도를 가리키며 말했다. 옆에는 새로운 구도가 약식으로 그려져 있었다. 제이스는 정색을 하고 외쳤다.

"말도 안 돼! 그걸 해결할 수 있는 건 나밖에 없는데."

빅토르는 새로 만들던 프로토 타입의 센서와 전선을 연결하며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제이스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상황에 눈썹을 치켜올렸다. 새로 온 자운 출신의 공학자가 최소한 멍청이가 아니라는 건 알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오자마자 이런 중요한 건을 맡을 정도로 대우를 받는다는 건 납득할 수 없었다. 

"이번 일이 끝나면 학장님과 얘기해야겠군. 일단 네 초원심기계를 좀 써야겠다." 

제이스는 강압적으로 말하며 실험실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작업 중이던 빅토르의 손이 멈칫 했다. 

"그건 안되겠는데."

빅토르의 목소리가 제이스를 저지했다. 

"내가 사용 중이니까. 사용하고 싶으면 반출 신청을 한 뒤 확인서를 받아 와."
"반출이라니. 나더러 저 기계를 통째로 들고 가라고?"
"그럼 여기서 쓰려고 했나?"
"걱정 마, 그냥 다섯 시간만 쓰면 되니까."
"나도 세 시간은 필요하거든. 셋팅에도 시간이 들어갈 테니 네 시간 뒤에 다시 오던가."

빅토르가 다음 연결선을 꽂으며 말했다. 

제이스는 빅토르의 태도에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이 필트오버 학계에 한 획을 그을 중대한 연구에 얼마나 큰 방해를 하고 있는지 모르는 게 틀림없었다. 

"내가 먼저 쓸테니 그 다음에 네가 사용해라."
"안 되지. 우선권은 나한테 있어."
"농담하지 마. 방금 공들인 실험을 망쳐서 낭비된 시간이 얼마나 되는데 더 기다릴 수는 없다고."

이윽고 빅토르가 작업을 완전히 멈추고 제이스를 쳐다보았다. 

서로의 시선이 마주보았다. 둘 다 한 치의 양보도 않겠다는 듯한 태도였다. 

실험실 분위기는 급속도로 차가워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