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뜬 엘리스에게 펼쳐진것은 자신의 거처이자 소속이었던 그림자 군도였다.

'어, 어떻게 된거지? 나는 분명 전쟁 학회에...'
 설마 상인이 배신을 한것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민간인이 어떻게 군도까지 살아서 도착할수 있냐는 현실성앞에서 그녀의 가설은 무너졌다. 그럼 그녀에게 펼쳐진 이것은 무엇일까.

'그래, 꿈이야. 그림자 군도에 있던 시절의 꿈이라고.'

 그게 훨씬 이해하기 편했고 간단했다. 지금 보고느끼는것이 모두 꿈이라면 잠에서 깨어난 엘리스에겐 아무런 영향도 없는거나 마찬가지였으니까...

"오랫동안 기다렸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신이 살고 있는 성소에 드디어 도착했습니다."
"그렇군요. 곳곳에서 보이는 새끼 거미들도 우리들을 반기는 것 같습니다."
"네. 여러분의 신앙심은 보고계시는 거미들도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당신들에게 호의적인 태도를 보여는군요."

'이것은... 마지막으로 신도들을 데리고 그림자 군도에 갔던...'

 몇 년동안 반복해온 일이고 별일없이 넘어간 자들의 얼굴이었지만 리그에 입문한 뒤부터 청문회 이전까지의 기억은 완전히 보유하고있던 그녀였기에 가능한 예측시기였다. 동시에 그녀는 신도들의 고통에 기분좋은 느낌을 맛볼 차례였다.

"아아악!"
 그러나 어찌된 일일까, 엘리스는 죽어가는 신도들의 얼굴을 보고 전혀 그런 느낌을 겪지 못했다. 오히려 죽어가는 신도들의 놀란표정에, 당황함에, 자신을 둘러싸고있는 존재들이 모두 자신의 목숨을 노린다는 사실이, 그리고 자기를 여기로 데리고온 여자에 대한 공포에 주목되었다.

 살고싶은 욕망, 도망치고싶은 바람, 속아넘어갔다는 사실에 화가 치밀어오르는때는 목숨을 잃지 않는 상황에 이르러야만 가능한 반응이었다. 그만큼 그들에겐 조금의 생존가능성도 보이지 않았다.

'뭐야 이거. 내가 꾸던 꿈과는 비슷한듯하면서도 다른...'

 

"살... 살려주십시오 사제님!"
 엘리스가 평소에 사제가 아꼈던 추종자는 이 와중에도 살아남았지만 끝내 그녀를 믿는듯 자신의 앞에서 무릎을 꿇은채 빌고있었다. 애원소리를 듣는 여자, 아니 그 당시의 엘리스는 잠시 고민을 하는 듯한 모션을 취해보였다. 엘리스의 시야가 잠시 아래를 향하더니 고개가 살짝 기울어진채로 동굴을 보았다.

'... ?'

 그다음 총애했던 신도와 눈맞춤을 가졌지만 엘리스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이렇게 무덤덤하게 이자를 바라봤단말인가? 그렇다면 왜 이 사람은 나를 보고선 두려움이 사라져가는거지?'

 

"알았다."

 그당시의 엘리스의 입에서 나왔지만 지금의 엘리스에게는 아무런 영향도 주지않는 말이었다. 이어지는 추종자와의 갑작스러운 포옹.

"길은 내가 잘 알아..."

 

'응? 나 지금 뭐하는거야...?!'

 

 엘리스의 시야에 비춰진 신도의 눈과 코가 점점 커져왔다. 그렇다. 당황해하는 신도를 무시하고 엘리스는 입술을 들이밀어 얼떨결에 입맞춤을 했다. 엘리스는 눈을 뜬채로 신도의 입술과 맞댔기에 그의 얼굴변화를 지켜볼수 있었다. 잠시 커진 눈은 오래가지 않고 부드럽게 감겨졌다. 자신의 생사가 오락가락하는 상황이었지만 어째서 이런 안이한 행동을 했을까...

 물론 입술과 입술을 접한 와중에 엘리스는 신경독을 전달했고 신도는 온몸이 마비된채 죽음을 맞이했다.

 ...재현이라해도 무방할 꿈이었지만 지금의 엘리스에게 있어선 아무런 감흥도 없는, 그런 장면들의 연속이었다. 그저 신도들의 표정에 사로잡힌듯이 기억하고있었다.

 

"이봐요. 이봐요, 이봐요!"
"?!!네!"
"다왔어요. 전쟁 학회라는 곳에."

 난해하고 알수없는 요소가 가득했던 꿈나라에서 깨어난 엘리스는 자신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았다.

 경계를 표현하는용도로 세워놓은 가로등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이곳을 들어오는자의 적대감을 확인하는 수정구가 지팡이 위에 꽂혀있고,

 

 소환사의 주 활동무대이기에 인적이 드물것 같지만 생각보다 많은 건물과 사람들이 있었으며,

 과학자라기보다는 마법사에 가까운 창조주가 만들어낸 최첨단이자 철벽의 요새.

 

그것이 '전쟁 학회'다.

"자, 여기까지왔으니, 이제 돈을 요구해도 되는거죠?"
 본격적으로 눈에 불을 지른듯한 열의를 가지고 상인은 엘리스에게 들이댔다.

"좋아요. 저기 현금인출기가 있으니, 일단 가죠. 얼마정도 원하시나요?"
"백만. 여기까지 끌고온 보람이 있어야죠. 제가 돈벌어야할 날을 얼마나 뺀지 알고는 계십니까?"
'일리는 있는 말이다.'

 자신도 모르는 이유로인해 상인은 자신의 업종과는 별개로 생고생을 하면서 여기까지 이동했다. 전쟁 학회에서 물건을 사고팔정도로 상인의 물건이 경쟁력나가는 물건을 파는자도 아니기 때문에 엘리스는 이에대한 대가를 줘야한다고 생각했다.

"백만? 그동안의 노동을 너무 저평가하는거 아닌가요? 오백만 드리죠."
"뭐요?"
"싫어요?"
"아니... 제안금액의 다섯배나 되는 금액을 서슴없이 말하다니... 너무 현실성없다고 생각하지 않는지...?"
"못믿겠으면 확인해보시는게..."

 잠시후 상인은 자신의 눈이 잘못되었다고 믿는게 편할정도의 액수를 만져볼수 있었다. 그렇다. 그녀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이렇게되면 당연하게도 처음봤을때의 안좋은 선입견을 가지고 냉대한 상인에게 잘못이 있었다.

'하... 하지만 지갑도없고 몸뚱아리 하나만으로 어떻게 이 넓은 대륙을 여행한다는건지 믿을 수가 없잖아. 하지만...'

"몰라봬서 죄송합니다, 손님. 너무 불편하지 않으셨는죠?"
"아닙니다. 무리한 요구를 한 제가 더 무례한 행동이었습니다. 저는 그것에 대한 보답과 사례는 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상인은 억지웃음을 지어보이다가 문뜩 생각난것이 있는지 엘리스에게 이렇게 물었다.

"그런데 저희가 처음 만났을때와는 좀 다른 모습이군요. 말하나 제대로 거는것도 힘드신 분이 어떻게 이런 수고에 진한 보답을 할 수 있게된겁니까?"
 엘리스는 상인의 눈길을 피한채 답했다.

"감사할줄 아는게 얼마나 좋은것인지 알려준 사람덕분이죠. 그 사람에게 감사해하는게 더 좋을것 같습니다."

"그 사람을 녹서스에서 만났나요?"
"...네."
 상인은 더이상 말을 잇지못하고 몇일씩이나 걸려서 온 길을 되돌아갔다.

"그나저나 오늘이 몇일이지? 수레를 탄지는 7월 8일이었는데, 걸어서오긴 꽤나 먼 거리였지? 그 사람도 얼마나 많은 식량을 갖고다니는거야?"

 엘리스는 날짜를 알아보기 위하여 주변 사람들에게 다가갔다.

"저기, 오늘이 몇일인가요?"
"7월 15일이요."
"...네?"
 일주일만에 그 먼거리를 걸어왔다는사실부터가 있을수 없는 일이다. 빨리온것은 다행이지만 뭔가가 찝찝한것이 있다는걸 직감적으로 느낀 엘리스가 '아'하고 소리없이 입을 딱 벌릴 무렵에 답은 정해졌다.

'그 상인은 잡상인이었으니까, 판매용 이동수단으로 몰래 이동해온거였어. 내가 수레에서 자고있을때 몰래 그렇게 이동해온거였...'

"으... 속았다."

 

 엘리스는 갑자기 자신이 선뜻 내밀었던 오백만이라는 돈이 아까워졌다.

<계속>

 

<글쓴이의 말>

 

공백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