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운좋게 이곳까지 들어온것은 정말로 대단한 일이지만 엘리스가 있는 장소는 챔피언중에서도 최상위 랭크를 가진 자만이 들어올 수 있는 자료실. 이곳을 감시하지 않을리가 없으니 언제 소환사에게 붙잡힐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기에 엘리스는 서둘러 글을 읽어나가기로했다.

챔피언 관리자의 코멘트 : 코로나크

 리그의 심판, 아니 그 이후부터 쭉 이 챔피언언에 대해 신경을 기울인 사람으로서 정말... 엄청난 의문을 갖는다. 이 여자는 대체 어떤 사람인가?

 처음 리그의 심판을 진행했을 때 나는 이 여자가 가지고 있는 어두운 과거를 통해 정신적 성숙함을 파악하려고 했다. 그러나 수정구를 통해 바라본 그녀의 머릿속에는 흑,백색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백색 공간에서는 그녀가 거미교 사제가 된 이후의 기억밖에 존재하지 않았고 흑색 공간에는 무슨 내용이 담겨져있다는게 구분하기는 커녕 강렬한 오오라때문에 접근조차 할 수 없었다.

 이로 인해 우리 소환사들은 그녀에게 맞는 다른 형식의 심판을 실행하자고 의견을 조율, 궁극적으록 그녀가 몸담아서 활동하고있는 거미교의 사제에 대해 질의응답을 하기로 했다. 우리 관점에서는 그녀가 답하기 곤란해할 거라는 질문이었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엘리스는 모든 질문에 명확한 답변을 제시했다. 여유로운 모습을 보이는 것 또한 그러했다.

 리그의 심판에서는 더 이상 엘리스에 대한 평가를 진행하지 못했다. 챔피언의 자격을 주기에는 살짝 꺼림끽한 부분이 없지 않아 있었으나 형식상 심판 과정에서는 훌륭한 인재로 판정, 결국 엘리스는 전장에 참가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엘리스는 다른 챔피언들처럼 전장에서 사용할 스킬들을 우리 소환사들에게 검증을 받기 위해 며칠 뒤 다시 전쟁 학회에 와야만 했다. 그 소환사 사이에는 나도 속해있었다.

 

 스킬들은 '거미 여왕'이라는 타이틀의 기대에 부합하게 구성되었다. 거미의 독데미지를 체력비례데미지화시킨 것은 크게 놀랄 일은 아니었지만 문제는 엘리스가 제시한 스킬들이 모두 우리들의 의도와 일치했다는 점이다.

 챔피언은 자신이 리그에 입문할 때 자신의 특성을 살려서 패시브를 포함한 스킬 4개를 구성하고 소환사에게 제시해야한다. 소환사는 전장 내의 밸런스가 적절한지 점검하고, 해당 챔피언의 메커니즘에 적합하다고 생각하면 챔피언이 제시한 스킬들로 채용하지만 그렇지 않을경우 소환사가 제시한 스킬들로 채용을 한다. 챔피언이 제시한 스킬이 하나도 채용되지 못하는 경우는 있었지만 챔피언이 제시한 스킬이 모두 채용되는 경우는 이 여자가 처음이고 지금까지도 이 사례는 발견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의 힘은 챔피언들 중에서 약한 편이라 전장 내에서 힘을 많이 제어할 필요가 없다는건 아이러니한 점이다.

 

 그렇게 전장 내에서 사용할 스킬 등록이 종료되었다. 나는 이 틈에 걸리는게 있어서 마지막으로 엘리스에게 말을 걸었다.

"엘리스 양, 자네의 나이는 얼마나 되는가?"
  물론 나는 챔피언에 대한 데이터를 모두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는 형식적인 담화의 시작일 뿐이다. 그녀의 나이는...

"22세입니다. 소환사님."

'?!'

 확실히 그녀의 외모를 보면 그렇게 불러도 과언은 아니다. 자신의 신덕분에, 신도들을 잡아먹은 거미에게서 나온 액체를 마심으로써 그녀의 신체나이는 정확히 그녀가 말한 22세인 상태. 하지만 진짜 나이가 22세일리는 없다.

"허, 과장이 심하시군. 자네는 분명 서류상..."
 나는 그 때 목격했다. 나의 말을 끊어버릴정도로 무거움을 지닌 그녀의 침묵을. 침묵 속에 담겨져있는 그녀의 당황을. 엘리스가 대화를 이어간 것은 3초라는 침묵이 끝난 뒤였다.

"인간에게 있어서 20대는 가장 활발한 나이대지 않습니까? 그리고 인생에서 젊음과 미를 겸비한 가장 좋은 시기기도 하죠. 저는 제 신에 대한 숭배가 좀더 열정적이기를 바랍니다.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 자신의 길을 걷는 그 모습은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 그래도, 거짓말을 한 것에 대해선 죄송하다는 말을 하고싶습니다."
 얼핏 들으면 꽤나 이상적인 답변이다. 그러나 그 답변을 하기 위해 3초간 불편한 침묵을 만들 필요까지는 없다.

"아닐세. 그 마음가짐은 좋은 것이야. 자네가 진짜로 20대라면... 너무나도 세상은 불공평하지. 인간에게 있어서 20대는 정해진 것이 하나도 없기에 많이 흔들리는 시기이기도 하거든. 설령 자신이 나아가야 할 길을 알아도 그 길을 가겠다고 결심하기도 어렵지. 하지만 외모의 덕을 많이 받는 자네인만큼 20대의 젊음에 대한 바람또한 존재할테고. 그래도 그 미모는..."

 진심을 담은 말이었으나 대화 도중 그녀의 몸을 구석구석 훑어본 나머지 말이 도중에 끊겨버린건 대단히 무례한 짓이었다.

"전형적인 여자의 메리트라고? 하하하하하. 정말 좋은 말이군. 그래. 당신이 섬기는 신도 기뻐할거야. 하하하..."

 뭐랄까. 한동안 일방적인 웃음소리만 들려왔다. 웃음을 멈추고 그녀의 얼굴을 봤다. 웃음인지도 분간하기 어려운 아주작은 입술의 움직임. 아니, 웃음이 아니다.

"왜 웃지않는건가 엘리스? 괜히 내가 무안해지는군."
 엘리스에 대한 의문의 증폭은, 이 때 비롯되었다.

"이럴 때... 웃는겁니까?"

"애매하게 들릴지는 모르겠다만, 이건 칭찬일세. 이건 자네가 조금 더 진실성이 담긴 숭배를... 아니아니, 간단히 말하자면 자주 웃으시게 엘리스. 그럼 복이 올거야."
 이후 엘리스가 선보인 웃음은 그녀의 아름다움을 더욱 부각시켰지만 그런게 내 의문에 해답을 주지는 않았다.

 간단한 코멘트만 쓰라고 한 공간에 너무 많은 이야기를 풀어헤친것 같다만 아직 내 생각을 다 내뱉지 못했다. 나는 그 이후 엘리스의 '리그의 심판'내용을 분석했다. 수정구를 통한 소환사의 정신재배조차 불가능한 공간(물론 그 이상의 강제적 압력을 가하면 알 수 있지만 그 방법을 추진하지는 않았다.). 마음에 어둠이 없어서 리그의 심판을 가볍게 통과한 잭스조차도 수정구에는 과거의 추억이 재현되고 있었다. 그러나 엘리스같은 경우 흑백으로 공간이 나누어져 있었고 흑색 공간은 접근도 하지 못했다. 이는 마음의 어둠, 즉 어두운 과거가 그녀에게도 있다는 소리이지만, 문제는 흑백같이 이분법적으로 나뉘어져있는 공간이다. 최면술이나 기억봉인같은걸로 지워버렸다 해도 통상 마법이나 사람의 재능으로 성사시킨 경우라면 우리들의 능력으로 간파할 수 있었을 터. 이 정도의 기억 이분법적 분리와 봉인을 능숙하게 다룰 수 있는 봉인의 주체는 단 하나밖에 없다.

 

 신(神).

 

 신이라 불릴 정도의 위력을 가진 봉인력의 주체. 아니 정말로 신이 엘리스의 기억을 봉인했다고 하면 정체는 단 하나로 줄어든다.

 

 그림자 군도에 있는 전장 내의 '썩은 아귀'.

 

 썩은 아귀의 외형과 특징 모두 거미와 똑같기 때문에 엘리스의 신은 '썩은 아귀'라고 볼 수 밖에 없다(정작 그녀는 자신의 신에 대한 이름을 언급하지 않고 있다). 즉, 무슨 연유인지는 알 수 없지만 엘리스의 기억은 썩은 아귀가 봉인시켰다는 소리. 내 자료의 추측이 맞다면 소환사들이 말하는 현실적, 미래지향적이라는 수식어는 어떤의미에서는 맞고 어떤의미에서는 틀린 소리다.

 

 엘리스에게 있어서 과거 그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가설이지만 최악의 경우가 하나 더 존재할 수 있다. 과연 기억만 통제하냐는 것이다.

 리그의 심판 당시, 우리 소환사들은 그녀의 정신적 성숙함을 알아보기 위해 여러 공격적, 비하의 의미가 담긴 질문을 내던졌는데, 이는 비판 내용만 다르지, 말자하에게 물은 질문과 똑같은 패턴이었다. 그런데 엘리스는 그 당시의 말자하를 연상시킬 정도로 유창한 언변을 펼치고 리그의 심판을 통과했다. 인간은 자신의 어두운 면에 솔직하지 못한 존재다. 그런데 그것과 당당하게 직면할 정도의 마인드는 성인이 아닌 이상 갖기 힘들다.

 두가지 경우가 있다. 첫번째는 말자하처럼 모든 것을 인간의 상식 이상으로 초월적인 깨달음을 얻은 것, 두번째는 엘리스만의 단독 케이스인, 신에게 통제받고 있는 것.

 

 그러나 불행히도, 그녀에게 안된 소식이지만... 내가 보건데 엘리스는 전적으로 후자에 속한다.

 썩은 아귀가 엘리스를 '정신 제어'한 상태라면 분명히 자기 자신, 즉 거미분류에 대한 풍부한 지식을 갖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거미의 신도 결국 '거미'의 신이기에, 인간만큼의 사회성과 감정표현력을 갖추지 못한다. 앞서 언급한 '이럴 때... 웃는 겁니까'를 예시로 들 수있다. 다만 썩은 아귀도 엘리스의 정신지배 도중 감정표출의 극명한 한계를 인식하고 대처를 했을 것이다. 그 대책이 바로 '정신 기생'. 엘리스를 100%조종하는게 아니라 일부만 조종해서 맨 정신의 엘리스가 표출하는 감정을 익히는 방법이다. 이렇게 썩은 아귀가 엘리스에게 정신 기생을 할 경우 엘리스는 자기 나름의 감정표현을 하고 다니기 때문에 자기가 썩은 아귀의 조종을 받는것을 눈치채지 못한다.

 하지만 이것도 시간문제이므로 후반에는 엘리스도 느낄 것이다. 그러나 썩은 아귀가 정신 기생을 하는 이유는 온전한 정신제어를 하는데 어려움을 느끼기 때문에 엘리스가 표현하는 사람의 감정을 익혀나가는걸 목표로 하는 것. 날이가면 갈수록 썩은 아귀는 인간으로서의 활동요령을 익힐 것이고 엘리스를 '정신 기생'이 아닌 '정신 제어'로 조종할 것이다.

 

 ...위험하다. 이 챔피언에게 있어서 감당하지 못할 일이 생길 것이다.

<계속>

<글쓴이의 말>

엘리스의 설정이 초고와는 좀 다른데, 어디인지 느낌이 오시나요? 사실상 이것때문에 수정판을 만들었다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