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스의 눈이 말한다. 자기가 있는 곳이 필트오버에 묵는 여관이라고. 엘리스의 귀가 무언가를 주워듣는다.

"깨어났나."
 고개를 돌리자 이곳에 온 이후 줄곧 서있는걸로 추정되는 떡갈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달빛에 의해 생긴 그림자는 나무를 닮아 아무런 움직임도 취하지 않고 있었다.

"...마오카이?"

 그녀가 본 대상은 그녀의 입에서 나온 그였다. 잠을 깰법한 반전이었다. 사람이 묵는 숙소에서 거구의 덩치를 가진 나무가 서있다는것 자체가 의외의 경우가 아닌가. 대신 인간이 생활할 정도의 규모에 최적화된 공간이다보니 마오카이의 몸집은 그에 딱맞는 정도로 작은 체구와 장갑을 유지하고 있었다.

 엘리스는 팔과 상체에 힘을 주어 몸을 일으킬려고했으나 실패했다. 등과 허리에서 온갖 자극이 그녀를 괴롭혔다. 자신의 몸을 이기지못한 거미 여왕은 반강제적으르 드러누웠다.

"상처가 아물지 않았는데도 일어날 생각을 하다니."
"네가 있다는 것 자체가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들었잖아? 숲에서 말했던 행동으로만 치면 너무 비합리적인 태도같은데?"
 엘리스는 놀란 얼굴을 숨기기위해 마오카이를 등지고 누웠다. 달빛은 그녀의 등에 새긴 상처와 멍을 비췄다.

"그런 말을 하다니, 진심이냐?"
"뭘? 내입장에선 당연한 말을 한거잖아."
"방금 전 말이 아니라, 숲에서 한 말을 두고 하는 말이다."

 애써 침착하려고 애썼지만 그녀의 몸은 한번 들썩여버렸다. 그녀에게선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나를 봐라 엘리스."

"..."
 그녀는 잠자코 있었다.

"돌아보란... 말이다!"
 만신창이인 그녀의 몸하나 돌리는일은 어렵지않았다. 이불이나 담요도없이 누워있는 몸이라 자신을 숨길만한 물건도 없이 엘리스는 마오카이를 보게되었다. 마오카이는 그녀의 눈을 보고선 이렇게 말했다.

"산에선 미안했다. 나 역시 너를 단순한 마녀로 봤다. 하지만 명심해라. 내가 너를 적대시한 것처럼 다른 사람도 널 그렇게 볼 것이다. 그 시선이 네가 극복해야할 현실적인 난관이라는걸 잊지 말도록."
"뭐야, 대체 무엇때문에 나에 대한 태도가 바뀐거지?"
"모르고있진 않을텐데."
"... 그럼, 내 부탁을 들어주는거야?"
 엘리스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아니."
 화색은 얼마안가 사라졌다.

"못도와주는거다. 내가 뭘 도와줘야한다는 것인가."
 '무엇을 도와줘야 하는가'에서부터 할 말이 나오지않았다. 그 질문은 현재의 그녀로서는 답할 수 없는 질문이었다. 그녀조차도 모르고 있었으니까.

"네 갈길을 알고있는 상태에서 남이 도와줄 수있는거다. 넌 단순한 해답을 알고싶었던건가?"

 엘리스는 조심스럽게 올려보았던 얼굴을 푹 떨궜다.

"처음부터 너를 도와주지않을 생각은 없었지만 실망이 크군. 이건 기억의 문제가 아닌 것 같다만."

"그럼 뭐가 문제인건지 말해줄래?"
"...'정체성'이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그녀에게 절대로 가깝게 들려오지않은 단어가 마오카이에게서 나왔다.

"지금의 너에게 과거의 기억을 찾는 여정은 독만될 뿐이다. 너는 그러기를 바라고있지는 않잖나?"

"기억...? 내가 너에게 기억에 대한 말은 하지 않았는데?"
"이래봬도 난 너에게 관심이 많거든."
 '정말?'이라고 순수한 반문을 하기엔 찔리는 점이 있었다. 마오카이는 유일하게 그림자 군도에서 선역으로 평가받는 챔피언이다. 그런 그가 엘리스에게 순수한 호감을 가졌다기보다는 적을 공략하기위한 자료탐색이나 사전분석의 목적에 더 가까웠을테다.

'청문회 때 보인 모습을 토대로 충분히 앞서 생각할 수 있는 가설이지. 한 번 찔러본건데 그렇게 반응하다니... 정말로 기억상실을 자신만의 특징으로 삼아온건가?"

"특징..."
 '마오카이가 자신에게 한 말을 생각하면 의도치않게 그래왔겠지.'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것은 네가 이번 여정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설마 나에게 사전적인 의미까지 물어볼 생각은 아니지?"

'엌.'

"나는 네가 그것을 찾아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 단, 조건이 있다."
"뭔데?"
 마오카이의 조건은 청문회 이전의 엘리스에게, 또 청문회 이후의 엘리스에게 있어서 가장 불가능할거라고 여겼던 것이었다.

 

"네 여정의 끝을 그림자 군도 소속에서 벗어나는걸로 정해라."

 

"너무 무모하다고 생각하나?"
"아무리 생각해도 그렇지 않아? 기억을 찾는것도 힘든데 그런 목표는 짐만 될 뿐이야. 이 여정이 실패하면 그 목적은 이룰 수 없어. 최소한의 보험이라도 들어놓아야 어느 상황에 처하더라고 기댈 곳이 있지않겠어?"

"너는 여정이 실패하면 다시 그 '존재'에게 휘둘리며 살 결정을 하는거냐?"
"그렇..."
 망설임없이 들려오는 긍정에 마오카이는 자신의 왼손을 엘리스의 머리위로 들어올렸다.

"너에게 되돌아갈 길은 없다. 지금의 너를 바꾸기위해선 모든걸 걸어야한단말이다! 그리고 이 여정이 실패하면 너는 다시 썩은 아귀의 밑에서 이전까지의 '거미 여왕'으로 살아야하는걸! 모르겠나!"
'?!'

 마오카이의 분노와 주먹이 엘리스의 얼굴앞으로 확 들이닥쳤다. 아니, 그러한 느낌뿐만 아니라 그는 엘리스의 얼굴을 날려버리기 직전에 주먹을 거두었다.

"넌 그 여정에 모든걸 걸어야한다. 그만한 가치가 있고,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더욱 그래야만한다. 지금 내가 듣고싶은 것은 넌 이 여정을 이어나갈 용기가 있다는 말이다."
 '용기?'

 

 지금, 아니 방금전에 들은 단어가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익숙한 단어로 다가왔다. 그렇지 않은가? 엘리스 역시 그 생각이 들었다. 필트오버에 오기전까지 자신을 계속 도와줬던 서포터이자 친구가 한 말이라고, 그녀의 머리가 말해줬다.

'네가 말했던 것 같은 얘기를 또 듣는구나, 르블랑.'

 엘리스는 마음속 감정과는 다른 표현을 내보여갔다. 마오카이의 진지함속에서 르블랑의 말을 떠올려버렸기에 갑자기 무거운 느낌이 덜어지고 그녀에게 느꼈던 고마움과 친근함이 커졌다. 흐름상 그녀는 그의 말에 무겁게 동의하며 어두운 분위기를 유지해야한다. 하지만 그녀는...

"너에게는 그럴 용기가 있나?'

 마오카이의 표정도 엘리스의 얼굴을 보고 진지함을 잃어갔다.

 들어봤을 것이다. 침도 못뱉게 만든다는 그 얼굴을...

 

 웃는 얼굴을.

 

 비웃음도 아닌, 그저 순수한 무언가에 끌려서 나타난 그녀의 표정은 마오카이가 원하던 대답을 간단히 꺼내개 만들었다.

"그래."
"..."

 마오카이는 어떤 태도를 내세워야할지 망설이다가 결국 생각하기를 그만뒀다. 그런 그에게 그녀의 손이 다가왔다.

"잘부탁해."
"고용주의 태도에 따라서 바로 계약이 해지되는 용병이다. 명심하길."
 하지만 마오카이는 장난기가 섞여있지않은 어조로 말하면서 손을 건넸다. 하지만 그녀에게 지금은 그것조차도 좋았다.

"자... 앞으로 뭘해야 좋을까?"
 긴장이 풀린듯 엘리스는 그에게 처음으로 가벼운 어조로 물어봤다. 마오카이의 답은 이거였다.

"자라."

"어... 응."
 엘리스는 바닥에 이불을 편채 편하게 누웠다. 짧은시간동안 많이 구르기도했고, 그리고... 무언가를 더 느꼈다. 좀 복합적인 감정들이었는데... 그래도 이런 기분을 느낄 수 있다는게 마냥 좋았다.

'그런데 진짜 왜 나를 대하는 태도가 바뀐거지?'

 단 한가지를 빼고서.
<계속>

 

<글쓴이의 말>

 

웃음이라... 그냥 표현하자니 원작의 엘리스의 팜 파탈적인 느낌을 깨기에 부족하고 안묘사하자니 개연성이 없고...

 

아악! 대체 어떻게 해야 맘에드는건지 모르겠어요!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