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학회의 가운데에 있는 핵심부엔 하나의 빛이 하늘을 향해 쏘여져있는데, 그 빛을 따라 위로 올라가보면...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소환사를. 인류의 재구성 이후 지도상에서 찾아볼 수 없는 장소. 그리고 그 수많은 장소중 한 곳에서 소환사들이 모여앉아있다. 원탁위에는 수정구를 놓는 받침대가 있었지만 거기게 그것을 올려놓지는 않은 채 수많은 사람들이 빙 둘러앉았다. 이번 사건에 대해 집중해서 듣고자하는 것 같다.

"말해보게 더글라스. 왜 아직까지도 엘리스에 대한 얘기를 꺼내려하는거지?"
 소환사 중에서 가장 옷차림이 잘되어있는 사람이 물어봤다.

"저는 지금 3주 전에 일어난 그녀의 재판에 대한 언급을 하는게 아닙니다. 그러나 이 간단한 말 하나도 꺼내는데 일주일이란 시간이 걸렸군요."

"무슨 일이 생겻다는 말인가?"
"일단 이 장면을 봐주십시오."

 더글라스는 자신의 품안에서 탁구공만한 크기를 가진 수정구를 꺼내들어 가볍게 위로 던졌다. 최고치까지 오른 수정구는 떨어지지않고 안에서 빛을 발하며 벽 어딘가를 향해 영상을 쏘아보냈다. 푸른색 안개 이후에 비춰지는 장면은 녹서스 주민들이 무리를 지어서 어딘가를 향해 달려가고있는 장면이다.

"1주 전 녹서스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사람들이 '마녀가 우리나라에 나타났다'라는 말을 듣고 무리를 지어 그녀를 쫓은 사건이었습니다. 이유는 모르겠다만 엘리스가 녹서스에 출현하였다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우리들은 엘리스의 챔피언 자격을 6개월간 정지시켰지. 그리고 그림자 군도로 보내지 않았나."

"하지만 빠져나왔죠."

"흐음..."

 일부 소환사들은 더글러스의 말에 집중하고, 어떤 소환사들은 수정구 속에서 벌어지는 광경에 초점을 맞췄다. 수정구를 바라보던 소환사가 말했다.

"이 마법사, 거울을 사용하는데, 혹시 르블랑이 도와준게 아닌가?"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만, 마음에 걸리는게 있습니다."
"뭔가."

 더글라스와 얘기하고있는 소환사 이외의 소환사가 말했다.
"르블랑은 엘리스가 재판을 받기 전인 3일 전부터 전장에서 활동을 하지 않았습니다. 거미교와 공허교 사이의 충돌도 재판으로부터 3일 전이었지만 당시의 시간은 한낮. 사람들의 수소문이 빨라도 그녀가 있는 녹서스까지 하루만에 소식이 닿기에는 너무 멀고, 뉴스도 이미 저녁시간대에 여러 국가를 통해 알렸기 때문에 단순히 엘리스 때문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

"아니오, 그녀는 르블랑입니다. 이틀 전 엘리스는 전쟁 학회를 찾아와 자료실에서 정보를 탐색했습니다. 현재 엘리스는 클래스 C 자료실밖에 이용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르블랑의 챔피언 등록증을 써서 더 상위의 자료실까지 들어갔죠. 둘은 평소에 챔피언 등록증을 빌려줄 정도로 잦은 접촉이나 친분도 없었기에 둘이 녹서스에서 만나 어떤 계기를 통해 그것을 받았을 겁니다."

"그렇군. 즉시 그곳에서 봤던 모든 정보들을 머리속에서 지웠겠지? 자네와 레드필드가 그녀를 발견해서 조치를 취했다하지않았나."

"네. 그 시간대의 기억을 모두 지운 상태로 자료실 바깥으로 내쫓았습니다."

"좋아. 그럼 르블랑을 우리앞으로 데려오게해야겠군. 그거면 되겠나?"
 더글라스와 말을 주고받아온 소환사가 동의하는듯한 말투로 대답했다.

"...아뇨. 사실 하나가 더 있습니다."
 하지만 더글라스는 살짝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이 기사를 보십시오. 오늘 아침에 필트오버에서 발행한 신문입니다."
 수정구는 녹서스의 주민들을 보여주는 영상에서 한 신문의 기사로 장면을 바꿨다. 엘리스가 필트오버에 나타났다는 내용이 올라와있었다.

"7월 17일, 어제 만들어진 기사입니다. 이 내용에 따르면 현재 엘리스는 필트오버에 위치해있다고 합니다."

 순간 원탁에 앉아있던 모든 소환사가 놀랐다.
"뭐라고? 엘리스는 필트오버와 관련된 챔피언하고는 관계가 없지않은가?"
"그렇습니다."

"전쟁 학회에서의 기억을 모두 없앴는데도 필트오버로 간 이유는 뭐지?"
"모르죠. 하지만 그녀때문에 축제가, 아니 필트오버가 위험에 빠지게 만들 수는 없습니다. 여기에 대해서도 따로 조치를 취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소환사들은 더글라스의 말을 끝까지 들었지만 별다른 대책이 나오지않은채 침묵으로 일관하고있었다.

"...우선, 필트오버에게 엘리스에 대한 기사를 내지말도록 압력을 줘야겠군. 엘리스가 그림자 군도를 벗어난 것은 우리의 계산 밖이지만 결국 우리에게 쓴 소리가 들려올 수밖에 없어. 일단 그녀에 대한 관심을 좀 잠재울 필요가 있어."

 그동안 조용히 있던 소환사 한 명이 다른 방안을 제시했다.

"그녀가 지금 챔피언이 아닌 일반 마법사와 같은 처지라면, 차라리 필트오버의 '회색의 여인'에게 부탁해서 잡아오면 어떨까요?"

"... 아무래도 두가지 방법을 동시에 쓰는게 나을듯하군."

 더글러스는 비록 짧은 시간안에끝낸 회의임에도 불구하고 할 말과 목적을 달성했다는 쾌감때문인지 표정이 어둡지 않았다. 세계의 창조주가 소환사인 지금, 엘리스의 추적은 시간과의 싸움일 뿐이다.

'감히 소환사를 속인 네년에게 벌을 내리고싶단 말이지.'

 재판이 엘리스에게 이상하리만큼 불공평하게 진행된 것도, 뭔가 사연이 있을 거라는 생각도 못하진 않는다. 그러나 그녀의 계략이 인류의 재구성 이후로 신의 경지에 있는 자에게 통했다는점 자체가 당사자에게 있어선 불쾌하기 짝이없는 과거였다.

 

'드디어 이 일을 착수하게 되었군.'
 그의 손이 떨린다. 1주일동안 비공식적인 조사조차 하지못했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지금 그의 눈앞에 잇는 거대한 기계의 힘을 빌리면 일주일은 커녕 몇 시간내로 완벽하게 찾아낼 수 있다. 르블랑뿐만 아니라 엘리스마저. 시간은 점점 더글라스의 충동을 자극하고있었다. 그의 손은 슈퍼컴퓨터를 향해 다가가고있는데, 정작 본인은 이 행위가 위법임을 알고있으면서도 팔을 들고있는 방향으로 따라가고있었다. 그만의 수사가 시작될 직전에,

"여 더글라스?"
 누군가가 극적으로 나타나 암묵적으로 그 독단을 중지시켰다. 더글라스는 소리를 등뒤로 한 채 얼굴을 찌푸렸다.

"통제실에서 불도 안켜도 뭘 하려고 한거야?"
"어, 그냥 궁금해서 와봤어."
 목소리가 명확히 남자소환사였기에 나올 수 있는 어설픈 변명이다.

"...뭐 좋아. 꼬치꼬치 캐묻긴 싫거든. 아까말한 것과 관련있는거지?"
"그래. 그러는 너야말로 이곳엔 왜 왔어?"
"르블랑 추적을 위해 소환사들이 역할분담을 나눠야 하거든. 간접적으로 하는것까지 치면 거의 모든 소환사들이 참여한다나? 그래서 이 컴퓨터를 좀 써야하거든. 이 좋은 기계를 냅두고 왜 쓸데없는 인력낭비를 하는지 원."
"우두머리께서는 운동차원이라는 말밖에 안하겠지. 어디 한두번이야. 이렇게 전 소환사들에게 과제를 줘봤자 결국 전자제비뽑기감이라고."
 말하면 말할수록 한숨만 나오는 슬픈 주제에, 더글라스와 레이건은 나란히 한숨을 쉬었다. 이렇게 세계를 지배하고 통제하는 슈퍼컴퓨터도 검색이나 추적을 못하게 하는 이유를 모르니까.

"줘봐. 내가 돌려볼게. 소환사 명단이나 줘봐. 그래야 빠짐없이 다 적어넣지."
 그래도, 결국 윗사람의 명령에 따르는 수밖에 없다. 더글라스는 하는 수 없이 명단표에 있는 소환사들의 이름을 입력해 뽑기프로그램에 넣기 시작했다. 고생좀 제대로 시키겠다고 만든 이 프로그램, 너무 아날로그형식이어서 리스트 저장기능도 없다.

 그러나 뽑기 프로그램을 가동시키기 전에 더글라스는 무시하지못한 의문점 하나를 발견했다.

"왜 1명이 부족하지?"
<계속>

 

<글쓴이의 말>

 

'기쁨'이라는 제목을 좀 일찍 썼나...?

 

그나저나 롤 세계관이나 설정에 대해 좀 빠삭하신 분들이라면 '회색의 숙녀'가 누군지는 알아차리실것 같은데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