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보안관님, 맞기는 합니다만..."
"문제가 있나요?"
"맞습니다... 부속품이 빠진 게 있어요."

"흐음!" 바이가 빅토르를 째려 보며 주먹을 들었다. 

"어디에 숨겼는지 금방 알 수 있는 방법이 있지."

그런 바이를 케이틀린이 나서서 말렸다. 

"가만 있어 봐, 바이."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겠지만" 제이스가 끼어들었다. "저 녀석은 우리 대학의 동료 연구진이야. 잘은 몰라도 손버릇이 나쁠 것 같진 않은데."

제이스의 말에 케이틀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거기, 빅토르 씨라고 했죠?"
"그렇습니다만..."

빅토르가 쭈뼛거리며 답했다. 케이틀린은 날카로운 시선으로 상대를 한 번 흩어보고는 그의 초조해 보이는 모습이 앞으로의 질문에 답하는 일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챘다. 케이틀린이 눈짓을 보내자 바이는 쳇, 하고 혀를 차며 한 걸음 물러서는 제스쳐를 취했다. 

그녀는 챙이 있는 높은 모자를 고쳐 쓰고는 질문을 이어 나갔다. 

"좋아요, 빅토르 씨. 저 물건을 어떻게 갖고 있었는지 설명해 주시죠." 

"갖고 있던 적은 없는데..."

빅토르는 난처한 기색이 역력했다. 

"정황상 생각해 보자면 아마, 길을 지나갈 때 부딪혔던 남자가 떨어뜨린 거겠죠. 넘어졌을 때 뭔가가 발에 채인 것 같으니."

"누군가와 부딪혔다고요?"

"왜인지 무척이나 급하게 달려 가더군요."

케이틀린이 불쑥 한숨을 쉬며 바이 쪽을 바라봤다. 

"우리가 놓쳤어. 진짜 범인은 그 사람이겠지."
"이 작자 말을 믿는거야? 사실이라는 보장은 없잖아."
"저건 거짓말이 아냐."

보안관이 고개를 저었다.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저런 표정을 지을 수가 없어."
"저게 무슨 표정인데?"

케이틀린은 잠깐 고민하다가 어렵사리 단어를 끄집어냈다. 

"...얼빠진 표정?"

뒤쪽에서 제이스가 웃는 소리가 들렸다. 기분이 나빠진 빅토르가 제이스를 흘겨보면서 말했다. 

"일단 농담을 할 시간이 있으면 이 수갑부터 좀 풀어주는 게 어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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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스는 바이가 수갑을 풀어주는 동안 도난품이라고 하는 공예품을 살펴 보았다. 그것은 제이스가 한 손으로 움켜쥘 만한 크기였는데 투명한 합성 크리스탈관을 통해 들여다보이는 내부는 아주 작고 정밀한 기계식 부품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게다가 동력원은 아주 작은 합성 수정이었다.

'상당히 세밀한 공정으로 만들어졌군.'

이 정도로 고품질의 물건을 만드는 건 명문가의 공방에서도 상당한 숙련공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 작동하는 기계식 공예품의 외관은 아름다운 모조 보석으로 장식되어 있었고 안에는 소리와 함께 섬세하게 돌아가면서 보석에 빛을 반사시키도록 불빛을 내는 장치가 되어 있었다. 얼핏 보아선 어떤 귀족 가문의 영애가 개인실에 소장할 만한 값비싼 장식용 사치품이었다. 

마음에 걸리는 건 빠져 있는 부품이었다. 이 부분은 제어를 담당하는 부분이 틀림없었다. 어떤 모델을 사용했을지는 확실하지 않았으나 거기에 저장되어 있는 건 불빛을 조작하는 패턴임에 분명하다. 그게 무슨 가치가 있어서 가져갔을까?

"흐음... 수상한 걸?"

물론 케이틀린의 수사를 어서 종결시키고 분홍머리를 어떻게든 떼어놓은 뒤 둘만의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지만, 지금으로서는 사건이 조금 더 흥미로워지긴 했다. 이제 빅토르는 발갛게 자국이 남은 손목을 매만지며 케이틀린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미안해요. 일단, 정보가 더 필요해요. 당신을 치고 지나갔다는 그 사람의 인상착의를 생각나는 대로 말해 보세요."

"인상착의라고 해도 제대로 보지도 못했고... 음."

곤란해하며 예쁘장한 수사관을 바라보았지만, 굉장히 진지하게 임하는 케이틀린의 눈빛에 움찔한 빅토르였다. 

"정말로 하나도 없나요? 잘 생각해 봐요."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정말 생각나는 게 없는데. 부딪힌 순간에 얼핏 본 거라곤 저와 비슷한 체격에 검은색 일색의 옷을 입고 있었고..."

빅토르는 당시 상황을 떠올려 보기 위해 애를 썼다. 

"어두운 갈색 머리였던 것 같고, 커다란 서류 가방 같은 게 있었죠. 아, 빠르게 스쳐가긴 했지만 얼핏 반사광이 난 건 금속성의 팔찌 같은 액세서리일 겁니다. 아니면 시계 같은 걸 수도 있겠지만."

"이렇다 할 특징은 없잖아. 얼굴은 못 본 거야?" 바이가 투덜거렸다. 

"글쎄, 필트오버에서 온통 까만 색의 옷을 입고 다닌다는 게 특징이라면 특징일 수도."

케이틀린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이윽고 옆에서 잠자코 기다리고 있던 나이 든 시민에게 시선을 돌렸다. 

"빌베르 씨, 이걸 만든 사람은 지금 어디에 있죠?" 
"페로스 가문 소속의 공방에 있습죠."
"거기로 가죠. 그리고 빅토르 씨도 함께 가줘야 겠어요. 일단 범인과 마주친 유일한 증인이니까요."
"나도 가지."

제이스가 나서서 말했다. 

"이 사건은 내가 보기엔 유능한 마법기계공학자가 필요해. 예를 들면 나 같은 전문가 말이지."

"제이스, 고맙지만 그럴 필요까진 없는데. 그리고 여기 빅토르 씨가 직장 동료라고 하지 않았어? 문제가 있다면 이쪽에 물어 봐도 되니까."

"아니..." 제이스가 빅토르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런 녀석하고 내가 비교가 돼?"

케이틀린은 빤히 둘을 번갈아 보더니 "저쪽이 덜 시끄러워 보이긴 하네. 에... 와도 재미는 없겠지만 좋을대로 해 그럼." 하며 먼저 돌아섰다. 화가 난 건 빅토르 쪽이었다. 

"'저런 녀석'이라니 너 아까부터 기분이 나쁘다?"

빅토르의 말에 제이스가 입을 비죽거렸다. 

"뭐야, 마나 입자 구조에 대해 이해도 못하는 주제에 마법공학을 한다고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해?"

"네가 주장하는 마나 입자 구조는 거의 근거 없는 사이비 수준이라고 몇 번이나 말했잖아?"

"나중에 틀렸다며 땅을 치고 후회하지나 마라. 흠잡을 데 없이 우아하고 완벽한 이론인데 이걸 사이비라니! 이건 전 발로란에 혁신을 가져올..."

대화가 끝나지 않을 것 같자 참다 못한 바이가 소리쳤다. 

"둘 다 시끄러워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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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틀린 일행은 왔던 길을 되돌아 북부 지역으로 진입한 뒤, 페로스 가문이 있는 거리로 들어갔다. 명문가의 사유지인 만큼 큰 면적을 차지한 땅에 화려한 양식으로 건축된 고풍스러운 멋의 대저택이 위엄을 자랑하고 있었다.

"생애 최악의 진보의 날이군."

멋진 풍경에 눈이 즐거울 만도 하건만, 빅토르는 그냥 연구실에 틀어박혀 개인 연구나 할 걸 괜히 나왔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난데없이 범죄자 취급을 받질 않나, 이제는 강제로 수사에 협조해야 하는 상황이라니. 그래도 케이틀린 보안관은 잘못 체포한 일이 미안해서인지 어느 정도 상냥한 태도를 보여 주었다. 신경이 쓰이는 건 시시때때로 험상궂은 표정으로 흘겨 보는 바이라는 깡패...아니 보안관이었지만, 어쨌거나 더 이상 무식한 방법으로 위협을 가하는 일은 없으니까 안심이었다. 

그들은 빌베르 씨의 안내로 정문을 지나 공방이 있는 쪽으로 들어갔다. 공방까지는 넓은 복도를 꽤 오래 걸어야 했다. 제이스가 복도를 구경하면서 걷고 있는데 바이가 말을 걸었다. 

"어이, 제이스! 저번에 내가 수사 자문 해달라고 할 땐 바쁘다더니, 필트오버의 미래가 달려 있다던 그 연구는 내팽겨치고 온 거야?"

"그건 이미 끝냈지. 이 제이스를 오래 붙잡고 있을 수 있는 문제는 존재하지 않거든."
"그렇겠지. 그냥 비싼 최신식 실험 장비 몇 대 깨먹으면 해결되니까." 

제이스가 우쭐거리는 걸 보고 빅토르가 무표정하게 덧붙였다. 

"너 임마, 그런 일은 몇 번 일어나지도 않는 거란 말이다. 일반화하지마."
"몇 번 아니었다고? 내가 알기로는 꽤 된다던데. 듣기로는 저번에 실험실 하나를 통채로 태워먹어서 화재 진압반이 출동했던 사건이 레전드라고."

'끄응...'

제이스가 보기엔 그는 분명 다른 사람들과 대화도 잘 안하고 실험실에서만 사는 것 같았는데 어디서 들었는지 많이도 알고 있었다. 밖에서 절대로 직장 동료와 같이 다니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드는 제이스였다. 

"그만큼 열심히니까 그 정도의 결과물이 나오는 거겠죠."

대화를 듣고 있었는지 빌베르와 맨 앞에서 걷고 있던 케이틀린이 이야기를 꺼냈다. 

"저도 처음에 소총 개조를 배울 때 부품 몇 개를 고장내기도 했죠. 그래도, 도전이 없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어요."

보폭을 맞춰 걷고 있는, 총대를 맨 소녀 보안관의 뒷모습은 흔들림 없이 견고해 보였다. 

"그런 걸 마다않는 건 그의 좋은 점이에요. 물론, 실험실 전체는 좀 심하긴 했네."

마지막 말로 인해 바이가 낄낄거리는 사이에 목적지에 도착한 듯 빌베르가 커다란 문 앞에 멈춰 섰다. 

"작업 중인 공방에선 되도록 조용히 해 주셨으면 합니다. 워낙 부산하다 보니 너무 눈에 띄는 행동만 아니면 그리 방해는 안 될 것 같습니다만."

"그러죠. 그럼 들어가 볼까요? 우린 좀 서둘러야 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