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3시, 필트오버의 한 강당. 정각이 되었다는 알림이 끝나기 무섭게 사회자가 옷을 차려입고 등장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저는 사회자 헬레나 드웨인입니다. 오늘의 강연자에 대해 소개하려고 하는데요, 그 사람은 바로..."
'드디어 만나는군.'

 제 시간에 맞춰서 강연을 들을 기회를 얻은 엘리스는 팔짱을 낀 채 여유로운 자세를 취했다. 그녀가 이곳에 온 목적, 그리고 생판 방문한적도 없는 필트오버에 온 이유는 단 하나였다.

"70번째 챔피언, 마이카이입니다."

"반갑습니다 여러분. 과학과 마법, 그리고 질서가 존재하는 이곳에 저를 불러주신 필트오버에게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
"네, 강연을 하기 이전에... 간단한 소개를 해주실까요?"
 일반인의 몸집을 뛰어넘은 압도적인 체격이 사회자를 더 작게 보여주는듯 했다. 홍채가 없는 눈에서 푸른 빛만 내비추는 챔피언은 잠시 말하기를 주저하다가 서둘러 진행을 하기로 했다.

"저는 그림자 군도에 소속되어있는 마오카이입니다."


 마오카이의 소속에 청중들은 할 말을 잃었다는듯한 표정을 지었다. 일부에서는 소곤소곤 얘기하며 그를 비난하는 듯한 목소리도 들려왔다. 그 와중에도 아무런 태도의 변화없이 앉아있는 사람이 있었는데, 당연히 엘리스였다.

"물론 얼마전에 같은 소속인 챔피언이 일으킨 사건때문에 저 역시 고운 시선으로 보지 못할 수 있습니다. 인정합니다."
 강연자는 관객들의 호응에 잠시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관객들의 의심은 소리와 같이 커졌다.

"여러분도 그 챔피언을 만날 수 있다면 멱살이라도 잡아서 자초지종을 들으려 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저 역시 그 챔피언에게 여러 말을 하고 싶습니다만, 그만큼 저는 그 사람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호오.'

 단 두마디였지만 마오카이는 술렁이는 인파를 제어해보였다. 그의 언변은 엘리스를 떠올려서 자신의 이미지를 격하시키려는 사람들의 움직임을 막아낸듯하다. 그녀는 마오카이의 언변에 감탄하면서 잠시 자기가 거미교의 사제시절을 떠올렸다. 그녀도 자신의 언변으로 사람들을 유혹했다. 그렇게 따라온 그들의 결말은... 고개를 저었다. 떠올리고 싶지 않은, 불쾌한 과거일 뿐이다.

 그는 가느다란 나뭇가지로 이루어진 오른팔과 달리 왼팔은 두꺼운 장갑으로 무장되어있었다. 떡갈나무를 연상시키는 육체의 몸통과 잎, 아니 정말로 거대한 떡갈나무의 육체를 가진 챔피언은 청중들을 향해 골고루 시선을 던져주었다. 주변이 어둡지는 않았기 때문에 그녀를 봤을지도 모른다.

 마오카이는 잠시 마이크를 입에서 떼지 않고 고개를 숙였다.

"...흐흠."

 그러나 새어나오는 코웃음 소리는 숨기지 못했다. 사회자가 분위기를 살피면서 자신이 퇴장할 타아밍만을 기다리고 있을 때 그 떡갈나무는 사회자에게 손을 들어올려보였다. 사회자는 다시 자신의 멘트를 유창하게 성사시키면서 사라졌다.

 엘리스는 마오카이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았다. 남들이 가지고 있는 에피소드에 신경을 쓸 여유를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강연시간을 흘려보낼걸 알면서도 일부러 시간에 맞춰서 강당에 들어온 이유는 실로 간단하다.

'강연 이후 어디로 가는지 궁금해서 말이지.'

 바깥에서 기다려봤자 재수가 없으면 엇갈릴 수 있다는 만에 하나 일어날 불상사를 없애기 위해서다. 나름의 일리가 있다. 그러나 불상사를 피하기 위해 취한 행동이 크나큰 실수라는걸 알게 되면 마오카이처럼 코웃음으로 넘어갈 수 있을까.

"이상입니다."

 이 말이 끝나고 사람들의 박수갈채가 이어졌다. 아무리 강연에 집중을 하지 않았음을 인정하더라도 빨리 끝난 감이 없지않아 있었다. 엘리스는 옆좌석의 관객에게 물어봤다.

"저기요, 원래 강연이 이렇게 빨리 끝나는건가요?"
"모르셨어요? 사람의 순간집중력은 15분이 채 넘지 못한다고 하거든요. 그래서 요즘은 짧은 시간안에 강연을 하는게 유행이랍니다. 이 강연도 그런 트렌드를 따라한거에요."
 짧은 질의응답이 끝나고 강당 내의 사람들이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엘리스는 그 인파를 감당하지 못하고 강당 밖으로 밀려나왔다. 뜸을 들이고 건물 내로 다시 들어갔을때 마오카이는 벌써 사라진 뒤였다.

 마오카이는 강연을 마치고 유유히 강당을 떠났다.

"과학과 마법의 조화라, 좋지. 이곳은 그럴 자격이 있는거 같군. 그 기술을 쓰기에 충분한 가치가 있어."

 그는 마법공학 페스티벌 현장을 벗어나면서 중얼거렸다. 마법공학은 필트오버의 핵심이자 상징적인 기술이기도 하다. 사실 자운도 필트오버와 마찬가지로 마법공학 기술을 소유하고 있는 국가이긴 하지만 사람들이 생각하는 자운의 인식은 그 기술을 떠올릴 여백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마오카이는 필트오버에 더 애정을 가졌다.

"어 마오카이다!"

 그 나무는 고개를 들어서 자신을 향해 쫑쫑쫑 걸어오는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일반인의 2배에 달하는 체격과 나무를 몸으로 지닌 마오카이였기에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아저씨, 나이는 얼마나 드셨어요?"
"싸인좀 해주세요!"

 아이들의 질문과 요구를 친절하게 응답해주면서 그 나무는 어딘가를 향하고 있었다.

 마오카이는 어느덧 필트오버에 있는 낮은 동산을 오르고 있었다. 필트오버의 변방에 있는 동산이었다. 산책로가 보기 좋게 계단으로 마련되어있었고 이정표도 박아놓았다.

"이쯤이면 연기는 슬슬 끝마쳐도 되겠지."
 산을 오르다말고 마오카이는 누군가에게 말을 걸었다. 소곤대는 차원을 넘어서 일부러 들으라는듯 크게 말했다. 그럼에도 주변에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떡갈나무는 잠시 숨을 들이쉰 다음 무언가를 집어던졌다. 그 무언가는 물체가 아닌 생물이어서, 바닥에 떨어져도 어딘가를 향해 기어다닐수 있었다.

"어이 거기, 아무리 그쪽 사정이 있다 쳐도 이런 방식으로 접근하는건 좀 너무하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그리고 그 기어다니는 생물은 자폭을 해버렸다. 위력이 작지 않고 폭발반경 역시 넓은 편이어서 일대의 흙과 나뭇가지가 어지럽게 날아다녔지만 불꽃은 일어나지 않았다. 아마도 산불을 바라고 던진 것 같지는 않다. 그런 광경을 보았는데도 마오카이는 만족하지 않은 채로 폭발 지점을 향해 걸어갔다.

"만나서 말할 것이 있으면 맞대면으로 하는게 가장 나을 것이다. 네가 어디있는지는 알고있다... 나와라."

 마오카이는 강당에서 보여준 공적인 말투와, 아이들에게 대해준 상냥한 말투가 아닌 깊고 무거운 목소리 톤으로 폭발반경에서 조금 떨어져있는 나무를 향한 시선을 던졌다. 그것은 마치 나무에게 말을거는듯했다.

 하지만 그 나무 뒤에서 나타는 사람의 정체가 그러한 착각에 차가운 박수를 보내는것 같았다.

"그래... '심판의 날' 이후부터 그 강당에서도, 지금까지도 널 만나고싶어했다. 엘리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모를 정도로 햇빛은 찬란함을 유지했지만 슬슬 자기가 물러날 때를 알고 서서히 다른 존재에게 양보하고 있었다. 그러기에 둘의 만남은 오후에 만났다고하기엔 상당한 시간이 흘렀다고 참고할만하다.

 마오카이의 앞에 나타난 엘리스의 모습은 그녀의 생김새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면 전혀 분간할 수 없을 옷차림을 갖췄다. 시기에 맞는 반팔과 짧은 바지. 그리고 그녀가 메고있는 가방은 마치 배낭여행을 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렇게 보이는 여자지만 당연히 엘리스에게 있어서 자신이 마주하고있는 챔피언은 겉모습으로 속아넘어갈 상대가 아니었기에, 그녀는 자기가 할말을 꺼내기위해 그 거대한 체격에 존재하는 눈을 맞추기 위해 고개를 들어보였다.

<계속>

<글쓴이의 말>

드디어 이 부분까지 쓰게되었군요. 6개월의 시간이 흘렀네요. 아무쪼록 지금까지 잘 보고계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