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스의 방패막이는 마오카이에까지 피해를 막아주진 못했지만, 그녀가 입은 피해보다 많을 수가 없었다. 영거리에서 발생한 폭발과, 코그모가 내뿜던 부식성 체액이 그녀의 오른쪽 몸의 근육의 대부분을 녹여버렸기 때문이다. 그녀도 몰랐던 챔피언 복장에 걸린 특유의 마력때문에 우반신이 잘려나가듯이 사라지진 않았지만, 그것을 감안해도 상반신의 노출도가 꽤 높았기에 그녀의 오른팔과 가슴, 등부분의 피부가 보기 흉할 정도로 녹아버렸다.

"엘리스!"
"엘리스!"
 마오카이뿐만 아니라 자신의 몸을 던져 자신을 보호한 사실에 충격과 감격을 동시에 느낀 카사딘마저 그녀의 이름을 부르면서 달려갔다.



 코그모의 몸속에 흐르는 부식성 용액이 초강산성이었다면 그녀의 마력을 압도한채 존재마저 지워버렸을테지만, 그 정도의 산성을 띄고있진 않았으며, 그녀의 좌반신에 있는 심장에 피해는 가지 않았기에 숨을 헐떡이며 사경을 헤메면서도 흉하게나마 살아있을 수 있었다.

 엘리스는 좌반신을 땅과 마주한채 맥없이 쓰러졌다. 오른쪽 몸이 녹아내린 부위에서 끈적한 액체가 바닥에 쏟아졌다.

"나와 카사딘은 기본적으로 마법에 대한 면역력이 있었는데! 마법에 가장 약한 네가 몸을 던진거냐! 그것도... 네가 싫어했던 사람을 막으면서까지...!"
""......."
 엘리스의 왼손이 전동기모터마냥 격렬하게 떨린채로 마오카이의 손을 향해 다가갔다. 그녀는 침묵에 가까웠지만 반쯤 녹아내린 입술을 움직이면서 무언가를 표시하고있었다. 마오카이가 바짝 귀를 기울여 들었음에도 부분적으로 알아들은 그녀의 뜻을 유추하는게 고작이었다.

"내 마력으로 묘목들을 생성해달라는군."

"정말인가, 그녀는 무슨 생각을 하는걸까 마오카이?"
"글쎄. 추측이 하나 있지만 일단 요청한대로 해보는수밖에."

 카사딘은 한동안 할 말을 잃은 채 자신과 동료 옆에 죽어가는 여자의 흉층한 몰골을 지켜봤다. 그가 어떤 생각을 하고있는지 마오카이는 알 수 없었다. 투구 속에 가려진 그의 얼굴을 읽을 순 없으니까.

"알았다. 녀석에의해 손상된 이 에너지 블레이드의 내구도가 얼마나 되는지도 알아봐야 하니까."

 둘을 헐떡거리면서 지켜보던 거미 여왕은 온 몸에 힘을 줘서 다량의 새끼거미들을 소환해냈다. 그녀의 몸상태에서 이 정도의 마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이유가 그림자 군도의 기운을 이용한 마력추출이라는걸 두 챔피언은 알 수 있었다.

 새끼거미들은 묘목들에게 달려들어 사정없이 공격했다. 이빨에 물리고 독을 주입당해 천천히 녹으면서 죽어가는 묘목들의 폭발을 마오카이의 지시로 막아내면서.


 그러자 날아가거나 녹았던 피부조직의 급격한 재생이 이루어졌고, 훼손되었던 신체조직이 그동안 그녀가 지녔던 그대로의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쓰러진 상태지만 말을 또박또박 할 수 있는 상태까지 호전되고나서야 엘리스는 반라상태의 몸을 가누면서 일으켰다.

"고마워 마오카이."
"네가 말하는걸 잘 알아들을 순 없었지만 아마도 그 스킬을 쓸거라고 생각하고있었다. '광란의 질주'를 쓰기위해서."

'자신을 포함한 새끼거미의 공격이 엘리스의 체력을 회복시키는 스킬이었지.'

 무언가의 감각에 반응해 카사딘은 마오카이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마오카이의 눈짓은 엘리스를 향해 찔끔 움직였다.

'...'

"엘리스, 좀전의 행동은... 무모했..."
"말은 바르게 해야지 카사딘?"

 아버지가 부드러운 말투로 아이를 훈계하듯이 마오카이가 지적했다. 카사딘의 손이 주먹이 쥐어질락말락하게 움직였다.

"그 공격을 몸바쳐서 막아줘서 고맙다."

"'아니야. 이걸 뭐...'라고 말하기엔 너무 아팠고... 음...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모르겠네. 네가 가진 공허의 힘이 마법저항력과 연관이 되어있다는 사실을 잊지않았다면... 아니 그래도 안했을거란 말은 못하겠네.​"

"그 말은 머리가 생각하기 이전에 벌인 행동이었단건가?"
"그런... 셈이지?"

"그럼 이름모를 네 '감정'이 나를 위해 뛰어들게 만들었군. 정말 싫다. 정말로 싫어했던 사람에게, 감정에게 고마워해야할 일이 생기다니."

 엘리스는 자신의 신념에 이상이 온 카사딘을 묵묵히 바라보다가 그의 말을 반박했다.

"아니 카사딘, 네가 나에게 했던 말은 틀리지 않았어."

"뭐라."

"내가 잃어버린 것은 기억과 감정이고 이 둘을 되찾으려고 노력했어, 하지만 그 둘에 몇 개월을 치우쳐 생활했던것은 맞아. 너의 말을 부정하고 내가 추구했던 방향으로만 생활했던 결과가 10월 9일날의 밤이고, 오늘 오전에 그림자 군도에서 너와 마오카이를 공격하게 만든 원인이 되었지."

'...'

"이 싸움에 말자하는 과거에 내 신자였던 공허교 신도들을 데려왔어. 과거에 대해 확실하게 정리를 못한 내 마음을 추스르지못하고 휘둘렸다면, 코그모는 커녕 그 이전에 죽었을지도 몰라. 마오카이가 날 일깨우는 말을 한 것도 있지만, 그의 말 근원에는 네가 나에게 했던 말이 있었어. 감정에만 치우쳤던 내가 틀렸던거야."

 엘리스의 회개를 끝까지 들은 카사딘은 고개를 저었다.

"알 수 없군. 서로 얼굴을 부라리며 대련을 했던 시기가 엊그저께같은데 지금은 무슨 바람이 들어서 서로가 잘못했다고 말하는 상황이 되었는지."

"엘리스. 카사딘이 그동안 네게 해왔던 말들이 증오하는 마음을 숨기기위한 궤변에 가까웠지만, 그 역시 생각해보면 '증오'라는 감정으로인해 그렇게 생각하고 활동해올 수 있던거다. 결국, 둘 모두가 너무 극단적인 태도를 취해왔던거지. 어느 순간부터 너희들은 서로가 취하는 태도를 이해하고 자신의 태도에 문제가 있음을 알게되었지만, 그것을 말할 때가 되지 않았던 것 뿐이다. 감정은 이성의 뿌리가 된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달은 거지."

 마오카이의 마무리에 카사딘은 리신이 자신에게 했던 말을 떠올렸다.

'제아무리 인간의 논리적인 판단을 이끄는 이성이 존재한다해도, 그 원천은 감정에서 비롯된다는걸!'

"그럼, 서로가 잘못했던 일에 사과해야겠군 엘리스."

 카사딘이 엘리스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 손의 의미를 이해할 수 없었던 엘리스는 마오카이의 손에 의해 이끌려서 강제로 카사딘과 악수를 했다.

"미안했다."
"...나도."
 아이오니아에서 가졌던 오랜 악감정이 해소되는 순간이었다.



"그럼... 이제 향후 계획을 정리해야겠군. 그전에 우선, 엘리스. 네 상태를 어떻게 정비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왜?"
"코그모의 '이케시아식 마무리'를 당한 이후 네 우반신의 복장이 모두 녹아내려서 나체가 된 상태다. 이제는 알아차릴 때도 되었으니까."

 엘리스는 그제서야 땅에 떨어진 반쪽짜리 거미투구와,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채 그대로 노출된 우반신을 내려봤다. 어쩐지 일어설 때 좌우균형이 맞지않았다. 오른팔, 오른다리는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가슴과 허리주변의 몸뚱아리가 그대~로 노출되어있었다.

 엘리스는 고개를 천천히 들어올려 자신의 앞에 서있는 카사딘을 응시했다. 훈훈한 마무리를 지을때도, 악수를 할 때도 그는 자신의 반라를 볼 수 있었다. 그제서야 카사딘은 뒤로 돌아선 채 팔짱을 끼고 묵묵부답으로 서있었다.

"카사딘... 나 지금 부끄러워해도 되는거지?"
"그게 자연스러운 태도다 엘리스. 미안하다.​"
"...?!?!?!?!?! 꺄아악!"

 엘리스는 카사딘의 뒤통수를 사정없이 후려갈겼다. 아예 맞을걸 각오했나본지 카사딘은 꿈쩍도하지 않았다.


"그 복장... 마력으로 어떻게 되돌릴 수 없나?"

 더이상 맞아주기엔 귀찮았는지 혹은 아팠는지, 카사딘은 한참동안 자신의 뒤통수에 대한 공격을 허용해주다가 제안 하나를 했다. 그의 의도대로... 엘리스는 공격을 멈췄다.

"뭐라고?"
"'이케시아식 마무리'가 부식성 화학물을 내뿜는 강산성 자폭공격이지만 그 역시 하나의 스킬이고, 마법데미지로 들어왔을테다. 절반의 몸이 녹아내렸음에도 살 수 있었던 것은 아마 네 복장에 마력이 관여되었을 가능성이 높지."

 엘리스는 아직 남아있는 좌반신의 챔피언 복장을 응시하며 숨겨진 위력에 감탄했다.

"그런가? 빌어먹을 썩은 아귀가 하사해준 복장이지만 그만한 값어치는 있었네. 앞으로도 계속 이거 입고다닐까?"
"넌 아이오니아에서 수련복으로 입었던 때를 제외하고 계속 그 옷을 입으며 살아왔거든? 그리고..."
 전과비해 확연히 부드러운 말투로 말하던 카사딘은 의외의 때에 말을 더듬은 채 말을 망설였다.

"... 조금 보통사람답게 입거나 꾸미는게 어떤지? 앞꿈치 거미힐도, 어깨와 허리에 있는 거미다리도 마력처리가 된다면 숨기고 다니고, 게다가 어깨 뒤의 삼지창 장식물도 좀 빼다니고."

 그의 말을 들은 엘리스뿐만 아니라 마오카이도 카사딘의 뒷모습에 신경쓰면서 바라봤다.

"아니, 더이상 네가 키높이로 날 내려다보는게 싫다는거다. 앞꿈치에 힐에, 장신구에. 내가 널 올려다보면서 얘기하는게 영 내키지가 않아서 말이지."

 마오카이는 순간 어느 인간처럼 행동할법한 콧방귀를 꼈다. 엘리스는 대답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면서 자신의 마력을 그동안 사용하지 않은쪽으로 모으기 시작했다.

"나중에 때가된다면 그렇게 해보지뭐. 하지만 일단 이 복장을 원상복구하는게 우선이니까."

 하지만 엘리스는 굳이 마력을 모아서 발동시키는 일을 몸을 돌려 마오카이와 카사딘을 피한채 하고있었다.



 옷뿐만 아니라 자신이 쓰는 투구마저도 원상복귀해서 거미 여왕으로 재무장한 엘리스는 빌지워터를 떠나자고 제안하는 마오카이의 제안을 무시하고 카사딘에게 물었다.

"카사딘, 너는 왜 아이오니아에 있었고 어째서 지금 날 도와주려하는거지?"
<계속>


<글쓴이의 말>


엘리스와 카사딘이 본격적으로 화해하는 편입니다. 몇몇 글귀상 카사딘의 태도가 조금 이상하다고 느낄 순 있지만, 오해는 마시길... 아직 엘리스에 대한 양가감정은 남아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