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이야기-

"화살은 찰나만 살 뿐이지, 나아가야 할 방향과 맞춰야 할 대상에 집중한 채."

바루스는 한때 5명의 다르킨 중 하나였던 팔라스를 봉인한 신전의 파수꾼이자 수호자였으나, 가족을 빼앗은 녹서스에게 복수하기 위해 수호자의 신분을 버리고 팔라스의 구덩이에 몸을 맡긴 복수의 화신이 되었다. 바루스의 목적에 재미와 호기심을 느낀 팔라스는 바루스의 여정에 협력해주기로 했지만, 언젠가 팔라스의 호기심이 다하는 날. 바루스는.. 아니, 다르킨 팔라스는 역병을 퍼트리는 멸망의 궁수가 될 것이다. 

 


 

장편 배경-

 

인간의 이성을 유지하며 사악한 다르킨의 힘을 사용하는 바루스는 녹서스의 멸망을 위해 싸우는 역병의 궁수다. 본래 그는 사악한 다르킨 팔라스를 봉인한 신전을 지키는 수호자였지만, 의무 때문에 가족을 지키지 못했다는 절망감에 빠져 자신의 몸을 다르킨 '팔라스'에게 내주고 복수의 화신이 되었다.

 

아이오니아에서 태어난 바루스는 어릴적부터 아이오니아를 지키는 수호자가 되고 싶었다. 수호자가 되기 위해 열심히 수련한 그가 가장 자신있었던 무기는 바로 활이였다. 바루스가 쏜 화살은 다른 전사들과는 비교가 되지않을 정도로 빠르고, 강했고, 정확했다. 그렇다고 바루스가 수련을 게을리했던 것은 아니였고, 타인을 지키겠다는 바르고 고귀한 신념을 갖추고 계속해서 궁술을 연습했기에 나온 결과였다.

 

바루스가 충분히 성장했을 때, 사악한 다르킨 팔라스를 봉인한 신전의 수호자가 노쇠하여 수호자에서 물러났다는 소식이 바루스가 살던 마을에도 전달되었다. 바루스는 신전의 수호자가 되기 위해 자신을 더욱 더 열심히 단련했다. 신전의 새 수호자를 뽑는 날, 바루스도 신전에 다다르게 되었다. 신전 앞에서, 원로들은 도전자들에게 다양한 과제를 주었다. 숲 근처에서 잠복해있는 바스타야 도적단을 물리치는 것, 아이오니아의 주술사가 내미는 악몽에 굴복하지 않는 것, 아이오니아의 강한 병사들과 싸워보는 것. 

 

그 외에도 많은 과제들이 있었지만 바루스는 모든 과제를 훌륭하게 완수했고,그 결과 신전의 수호자로 바루스가 낙점 되었다. 바루스는 자신이 신전의 수호자가 된 것을 자랑스러워했고, 원로들은 바루스에게 타락을 막을 올빼미 문양을 몸 곳곳에 새기며 그를 축하했다.

 

신전의 수호자가 된 바루스는 가족과 함께 지내며 수련에 집중했고 가끔씩 신전의 비밀스러운 힘을 노리는 몇몇 도적들을 화살로 제압하는 것이 그의 일과였다. 그러나 어느 날, 그는 큰 결정을 해야만 하는 순간이 다가왔다. 녹서스가 아이오니아를 침공하기 시작했고, 수도까지 향하는 진로 중간에 자신이 지키는 신전이 있었다는 것 이였다.

 

가족들이 사는 마을은 마땅한 방비책이 없었기에, 자신이 없다면 마을은 폐허가 될 것이 분명했다. 그렇지만, 신전에 잠들어있는 그 불길한 힘을 녹서스가 알게 놔둘 수도 없었다. 결국 바루스는 자신의 의무를 수행하기로 결심했다. 

 

신전으로 오는 녹서스의 병력은 바루스의 화살을 상대했다. 녹서스 병력의 지휘관들은 눈치채기도 전에 바루스의 화살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지휘관들을 잃은 병력들은 우왕좌왕하며 당황하다가, 바루스의 화살 아래 모두가 쓰러졌다. 마지막 병사가 쓰러진 것을 보자 바루스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마을로 달려갔다.

 

하지만 녹서스의 공격을 받은 마을은 버티지 못한 채 폐허만이 남아있었다. 가족들이 살고있던 집이 있던 곳에는, 가족들의 시체가 갈기갈기 찢겨진 채 남겨져 있었다. 

 

바루스는 의무를 택한 자신을 후회했다. 후회의 감정은 이내 증오와 원한으로 변했다. 바루스에게는 자신이 어떤 고통을 겪더라도 녹서스에게 복수하고 싶었고, 그렇기 위해선 그에게 힘이 필요했다. 바루스는 한때 자신이 지켰고,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바쳤던 팔라스의 구덩이가 있는 신전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신전 근처에는 녹서스 병사들의 시체가 가득했기에 구덩이가 내뿜는 불길한 존재감은 한 층 더 커보였다.

 

봉인된 존재는 바루스가 수호자가 된 날 이후로부터 줄곧 바루스를 유혹했었다. 하지만 바루스가 자의로 구덩이에 몸을 맡길때 봉인된 존재는 의문감과 불안함을 느꼈다. 분명 자신의 유혹을 그렇게나 떨쳐낸 궁수가, 지금 자신의 힘을 탐하고 있다? 하지만 몇천년간 갇혀있었던 이 갑갑한 곳을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기회였기에 그는 바루스를 받아들이고 힘을 주었다.

 

바루스가 구덩이에 나왔을 때, 그의 모습은 조금 달라져 있었다. 보라색과 검은색이 뒤섞인 혼탁한 하체의 형태가 바루스의 피부를 덮었고, 손 역시 검게 변해있었다. 올빼미 문장을 새겼던 등과 어깨부분부터는 다르킨의 침식이 깃들지 못했다. 과거 바루스가 책에서 보았던 다르킨 전설대로, 그의 활은 구덩이의 창백한 기운에 재가 되어 사라졌고 생물처럼 살아움직이는 불길한 모습의 활이 그의 왼손에 들려있었다. 활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구덩이에서 기운을 내뿜던 존재의 인격이였다.

 

자신을 스스로 풀어준 바루스에게 나름대로 고마움의 감정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론 경계하던 다르킨이 바루스에게 왜 자신을 풀어주었냐고 물었다. 바루스는 분노에 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복수. 그걸 위한 힘. 그뿐이다. 복수를 위해서라면 내 몸을 가져가든 어떻게하든 좋다."

"아니, 난 너의 모든 것을 가져갈 생각이 없다. 너가 복수를 이루도록 도와주지."

"그거 고맙군."

"날 풀어준 자에 대한 답례다. 내 이름은 팔라스. 이 세계에 남은 마지막 다르킨 다섯 명 중 하나다."

 

짧은 대화가 끝나자, 신전 아래에서 군사들이 전진하고 있었다. 깃발과 갑옷을 볼 때 녹서스의 군대였다. 바루스는 힘을 시험해볼 기회라고 생각하며 후방에 있는 지휘관을 저격했다. 바루스가 활을 쏘는 동작을 하자마자 팔라스의 힘으로 생성된 화살이 날아가며 지휘관의 목을 정확히 꿰뚫었다. 팔라스는 바루스의 실력에 감탄하며, 더 놀라운 것을 보여주겠다며 사악하게 웃었다.

 

화살을 맞은 지휘관의 시체 근처에서 역병의 기운이 돌기 시작했다. 역병에 감염된 병사들은 고통과 함께 비명을 지르며 와해되었다. 역병은 더더욱 퍼져나갔고 병사들은 모두 폐허 속에서 쓰러져갔다. 마지막 하나가 쓰러지자 역병은 자연스럽게 멈췄다. 

 

수확할 때라는 팔라스의 말과 함께 쓰러진 병사들의 시체가 빠르게 부패했고, 부패한 시체들은 핏빛 안개만 남긴 채 하얀 백골이 되었다. 핏빛 안개는 바루스의 오른손으로 들어와 팔라스의 양분이 되었다. 팔라스는 바루스를 재촉했다. 바루스는 발걸음을 옮기면서 가족들의 모습이 남겨진 목걸이를 바라보았다. 바루스는 목걸이를 닫고 굳은 결의를 다졌다.

 

화살은 이미 활시위를 벗어나버렸다. 강철의 제국 녹서스는 이제 역병 화살 아래 쓰러질 운명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단편 소설 -무의 화살-

 

불타는 녹서스의 기지 안에서, 바루스는 아직 살아남은 녹서스의 병사들의 미간에 화살을 꽂기 시작했다. 많은 이들이 바루스에게 살려달라 애원했지만, 그들이 녹서스의 병사인 이상 살아남을 일은 없었다. 바루스는 천천히 기지 위를 올라가 옥상에 다다랐다. 육중한 갑옷을 걸친 녹서스의 장군이 마치 그를 기다렸다는 듯 무기의 날을 갈며 그를 매섭게 쳐다보았다.

 

"혼자서 잘도 우리의 형제자매들을 죽이는구나. 하지만, 이 레벨스의 대검 아래 네놈의 그 잘난 복수도 끝날 것이다." 레벨스의 말을 무시한 채 바루스는 조용히 그를 쳐다보았고, 레벨스는 분노하며 대검을 치켜든 채 바루스에게 달려들었다. 바루스는 레벨스의 대검을 빠르게 피한 뒤, 그에게 화살 세례를 퍼부었다. 레벨스 역시 바루스의 공격을 피하면서도 피할 수 없는 화살들은 대검으로 쳐냈다. 둘의 첫 공격이 끝나자, 둘은 조용히 서로를 노려보았다.

 

레벨스는 분노에 가득 찬 채 바루스를 노려보았고 바루스는 침묵만으로 응답했다. 레벨스가 분노에 찬 검격을 바루스에게 날렸지만 바루스는 레벨스의 검격을 회피하고 오른손에서 저주받은 사슬을 내뿜었다. 레벨스가 사슬에 묶인 채 쩔쩔맬 때 바루스는 그에게 최후의 일격을 날릴 화살을 준비했다. 

 

바루스는 레벨스의 머리를 치켜들며 차갑게 말했다. "말해라, 팔라스의 신전을 습격한 놈들의 지휘관은 누구지?" 레벨스는 그 말을 듣자 피가 쏟아지는 상황에서도 피식 웃으며 바루스를 조롱했다. "아아, 그 수호자분이시구만.. 미안하지만, 그 년은 이미 죽었다. 녹서스의 힘이니 뭐니 했었던 인간이 정작 녹서스를 배신한채 죽어가더니.. 네놈에겐 아깝게 됐군. 복수할 기회가 아예 없어졌으니!!"

 

레벨스의 웃음을 묵묵히 듣던 바루스는 레벨스의 웃음이 그치자, 화살을 들고 조용히 그의 목에 화살을 박아넣었다. 레벨스의 숨이 끊어졌다. 팔라스는 레벨스의 시체에서 남은 기운을 흡수했다. "음, 역시 강한 놈이 조금 더 맛이 좋은 것 같군." 레벨스의 시체가 있던 곳에는 그의 뼈만이 깨끗하게 남았다. "어이 바루스, 어떻게 할텐가? 복수할 놈이 없어진 이상, 우리의 계약은 끝일텐데?"

 

"아직이다, 내 복수는 녹서스를 멸망시키는 거지, 원수 하나를 죽이는게 목표가 아니다. 끝까지 가줘야겠군, 괴물." 바루스는 펜던트를 만지며 자신의 자아를 유지하는 것으로 그를 제어했다. "좋아, 이런 야망이 있어야 다르킨을 사용하는 자라 말할 수 있지." 팔라스는 사악하게 웃었다.

바루스는 불타는 녹서스의 기지를 빠져나갔고, 녹서스의 기지가 있던 곳에는 아무엇도 남아있지 않았다. 병사들의 사체는 팔라스가 모두 먹어치웠기에 까마귀조차 오지 않았다. 바루스의 복수가 닿는 곳에는 죽음도 고통도 아닌 무만이 남아있을 뿐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