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스는 자신이 맞서야할 상대를 응시했다. 해로윙하면 가장먼저 생각날 정도로 수없이 사람들을 죽고 영혼을 뺏어간 유령기사, 전쟁의 전조, 악마의 형상.

 그리고 그런 상대와 맞서야만 하는 그녀의 마음을 가장 잘 표현하는 수식어는 거대한 공포의 기사. 처음 등장할 때부터 전과다른 느낌 하나가 덧대어져있고, 그에게 근접했을 때 그 무엇보다 자신의 생존을 위협하는 느낌이 엄습했다. '광란의 질주'를 미리 발동했기에 죽지는 않았지만 죽음에 가까운 고통과 충격은 덕분에 뇌리에 깊숙히 박혀진 감각이자, 자신을 가장 무력하게 만드는 감정.

두려움.

 그림자 군도의 언데드 챔피언들은 말그대로 죽은 자이기 때문에 생명을 잃는다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 존재이다. 즉, 한 번 죽었기 때문에 다시 죽일 수 없는 존재.

 하지만 그것이 '불사'를 의미하기에는 그들이 벌인 수많은 해로윙의 성과가 미흡하다. 긍정적으로 풀어보자면 설령 저들이 언데드라 할지라도 육체의 한계점에 도달하면 사망과 비슷한 처지까지 만들 수 있다. 부정적으로 풀어보자면 육신에 가해지는 고통에 흔들리지않는 상대의 압도적인 체력을 빼낼 정도의 강하고 지속적인 힘이 요구된다는 뜻.

* 이 순간부터 들으면 유용하다고 생각하는 작성자의 추천브금​

 엘리스는 한손을 위로 그리며 손바닥에 담긴 소량의 독을 던졌다. 헤카림은 그게 맞았는지도 모르는듯 엘리스에게 달려왔다. 보기만해도 차가운 잔상이 그의 속도를 기록했다.

 엘리스는 온 몸에 힘을 준 뒤 입에서 다량의 독을 내뿜었다. 위력을 얕봤는지 헤카림은 이번에도 피하지 않았지만, 효과나 위력은 전과같지 않았다. 그의 움직임이 눈에 띄게 둔해졌고 엘리스는 이 틈을 놓치지 않았다. 새끼폭탄거미를 소환해내 헤카림에게 달려들게했고, 녀석을 속박시킬 거미줄을 발사했다. 헤카림의 스킬을 간과한 그녀는 때를 맞춰 유효타를 한 번 날렸다고 여겼다.

 그렇기에 엘리스는 폭발구름속에서 달려나오는 헤카림의 돌진에 뒤늦은 회피밖에 하지못했다. 그래도 그 순간에 내린 최고의 행동이었다. 앞으로 통과하듯 지나가서 헤카림의 창날이 아닌 손잡이로 세게 맞는 차원에서 추가타를 면했으니까.

​''파멸의 돌격'! 이동속도 증가와 대상을 통과하는 능력이 있다는걸 간과했어! 그래도 아직은 괜찮아.'

 지난 3년동안의 일들을 모조리 외우고있는 기억력과, 수많은 대련을 통해서 익힌 회피감각. 이 둘의 시너지가 발휘되면 엘리스는 헤카림의 압도적인 위력과 속도에도 모조리 피하거나 극복할 수 있다.

 그러나 리신의 말대로, 피하기만해선 이길 수 없었다. 피하는데는 일가견이 생긴 엘리스였지만 지금은 그보다 몇 차원 더 높은 과제가 생겼다.

'머리 뒤에 있는 삼지창 장식, 어깨와 허리 뒤에 있는 두쌍의 거미다리... 인간 형태에선 거미 형태일 때 쓰지 않는 장식들과 신체들이 모두 장식품이 되어있었어! 이들을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이 때 헤카림의 창이 다시 한 번 엘리스를 향해 공기를 가로질러왔다. 어떻게 피하는지 알고있었지만 엘리스는 그 방법 외의 회피 방법을 찾기로 했다. 예를 들면, 뒤에 있는 나무에 기어오르는 방식으로 말이다.

 그녀는 양 손과 양 발에 모든 마력을 집중해서 나무에 밀착시켰다. 그리고 지면을 박차올랐다. 그러자 나무의 기둥에만 마력을 실은 부분들이 지지점이되어 그녀의 몸을 붙잡아줬다.

'해냈다! 역시, 기어오르는 능력은 거미 형태로만 가능한게 아니었어!'

 그러나 아직 미숙한 마력조절로인해 엘리스는 나무에서 떨어져 여러번의 위기에 처했다. 그러나 새로운 패턴을 익히지않는이상 헤카림을 공격할 수 없었다. 그녀는 의도적으로 나무에 기어오르면서 헤카림의 공격을 피하려고 노력했다.


​ 그러다 결국 엘리스가 나무에서 떨어짐과 동시에 헤카림의 창을 겨우 잡아내는사이, 그의 앞발에 나가떨어지는 곤경에 처했다. 이에 본능적으로 뒷걸음질만치다가 나무에 등을 맞댄 상황까지 몰렸다.

​ 그러자 카사딘이 옆에서 손목검을 치켜든 채 나타나 헤카림의 창을 막았다.

 전투적인 능력치에는 변함이 없었지만 잦은 싸움으로 체력이 떨어질대로 떨어진 카사딘은 한 번의 공격을 막은 틈을 타서 공격을 가세하길 바랬다. 왼손의 주먹이나 치마속에 있는 양 발을 사용하지않고 오로지 오른손의 손목검만 써도 지키기위한 싸움에서 헤카림과 호각을 내고있지만, 육체적인 한계가 사실상 존재하지않는 언데드에게있어서 시간싸움은 곧 패배를 의미하니, 서두르길 바랬다. 그러나 자신의 등 뒤에선 아무런 동작의 기척도 느껴지지않았다.

"일어나라 엘리스! 싸우는거다! 힘들게 둘이서 같이 싸울 순간을 만들었는데,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잖아!"
 카사딘은 자신이 말하고나서도 상황에 맞지않는 다정한 말투로 엘리스에게 소리쳤음을 알고있다.

​'또다른 마음인가...'

 이후 엘리스는 거미 형태로 달려들어 헤카림의 허리위에 내려앉아 열심히 이빨을 내리쳤다. 그리고 마지막 한 번의 공격이 헤카림의 임계점을 자극할 수 있었다. 그런데... 카사딘의 전신에 제동이 걸린 채 오히려 헤카림의 창에 생명에 지장을 받을 뻔했다. 그는 이 사슬의 주인에게 마무리를 날리기위해 자리를 비웠다.

 윤이 나는 검은색 바탕과 아랫배에 있는 붉은 무늬. 그리고 날카롭게 생긴 붉은 눈. 거미 형태로 헤카림을 물고있는 엘리스는 처음으로 시도한 근접전이 마무리를 장식하길 바랬다만 그러지 못했다.

  둘이서 공격했을 때도 불구하고 그녀는 두려움에 떨고있었다. 지금, 그녀는 혼자다. 이길 수 있다는 희망이 방금 전보다 떨어졌다.

 헤카림은 거미의 독이빨을 빼낼 생각을 하지않은 채 창을 앞으로 겨누었다. 그러자 주변에서 헤카림과 똑같은 모습을 한 유령 기수들이 등장했다.

"그림자 맹수."
 헤카림은 그렇게 말하고 전방을 향해 돌진했다. 유령 기수들이 그의 뒤를 따라 일정 거리까지 나아갔다. 돌진에 의해 균형을 잃고 앞으로 나가떨어진 엘리스는 혼란에 휩싸인채 온몸을 부들부들떨기만 했다.

 엘리스의 머리에 지난 과거의 일들이 일순간에 떠올려졌다. 썩은 아귀의 의도적인 배신과 통제. 그림자 군도의 기운의 소실에 의한 무력, 거미교의 폐단, 마오카이의 일침. 반성하기전까지 자신을 몰아붙였던 리신. 자신이 저지른 죄에 대해 증오했던 카사딘. 6개월간의 챔피언 박탈이후에도 변하지 않을 것같은 자신의 삶.

'다시 그림자 군도로 돌아가라.'

'그 모든걸 알고있는 그들이 너를 그림자 군도에 소속시키고, 거미 여왕으로서 살아가게 했다는건 다름이 아닌 좋든싫든간에 그런 삶을 살라고 정해놓은거다! ...아무리 날고 뛰는 존재라해도 우리의 행동을 머리 위에서 지켜보고있는 초월적 존재에의해 우리는 정해진 레일만을 따라야만 한다. 그게 바로 '챔피언'이다! ...너의 여정은 우리뿐만 아니라 창조주인 그들의 의도밖의 행동일 뿐, 2개월 뒤의 결과에 대해 두렵지도 않은거냐!!!'

 그 이전에도 기억하기 싫은 일들이 잔뜩 있었다.

 얼굴에 내려앉았던 거미의 독은 잊을 수 없었고, 가문이 몰락하는 장면은 자신의 눈앞에서 일어났다. 억지로 맺어진 가정에서 일어났던 모든 학대의 기억, 그때마다 자신이 그린 어두운 미래.

 자신이 따르는 썩은 아귀에의한 부모님의 죽음. 정신 기생을 당하기 직전까지도 종속된 삶이라는 수식언 뒤에는 썩은 아귀의 존재 자체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마지막까지도 그녀의 정신을 혼란스럽게 하는 기억은 바로 칭란 마을에서 겪었던 고통의 순간이었다. 죽지않았기에 자신이 받았던 모든 고통들로부터 생존의 위협을 느꼈던 그 때.

 당장 눈앞에 서있는 적의 동태마저 감지하지못한 거미의 등에 창날의 뒷자리가 새겨졌다. 거미는 고통스러워했다. 동시에 가운데다리 두쌍도 잘려나가 서있는 자세조차도 부담이 왔다.

 어떻게든 엘리스는 살려고 노력했다. 그녀는 거미에서 인간의 모습으로 바꾼 뒤에 두 발만으로 도망치려했지만, 아직 그녀는 내면의 혼란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결국,

"...!"
 엘리스의 머리는 자신의 복부를 뚫은 창에의해 과다출혈이 생긴 뒤에야 맑아졌다. 더이상 무슨 수를 써도 생존의 가망이 없을 때가 되서야.

 쓰레쉬를 처리한 카사딘이 몸을 돌려 엘리스의 상태를 봤을 때는 이미 늦었다.

"엘리스!"

 헤카림에 의해 엘리스의 몸뚱아리는 힘없이 던져졌다.

 창살이 깊숙히 찌르고간 자리에서 피가 분수처럼 흘러넘쳤다. 공중에서 엘리스는 자신의 귀에 매미떼들이 앉아서 우는것같은 시끄러움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피가 어느 정도 빠져나간 뒤의 몸상태에 이르자, 이번에는 그 반대로 숨소리마저 내는게 민폐일 정도의 고요함이 다가왔다.

'아아... 이런 감각이었구나.'

 자신이 죽인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 그 목숨의 중요함을 알고는 있었지만 그들이 맞이하는 죽음의 감각까지는 몰랐다. 이제서야, 하지만 여정의 마지막까지와서 정작 이런 고비를 넘기지 못한채 맞이하는건 싫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정작 타인의 목숨을 움켜쥐면서 살아왔던 그녀는, 자신의 목숨하나에 대한 통제권마저 허무하게 잃은 채 새하예져가는 시야를 바라보기만했다.

 거미 여왕의 육신이 나무에 부딪히고 다량의 혈액이 검은색 복장과 새하얀 피부를 물들일 때, 엘리스는 죽었다.

<계속>

<글쓴이의 말>

공백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