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요약: 블래스터는 가디언 토벌이 최종 컨텐츠일 때를 기준으로 설계된 직업이고
현재 레이드 트렌드에서 장점들이 퇴색되어 이 지경에 이르렀다.



1. 체방, 기동성, 무력, 딜

체방 <-> 기동성(+ 스킬 발동속도)
무력 <-> 딜

로아의 직업들은 대체적으로 위 상관관계를 따르고 있습니다.
체방이 좋으면 기동성이나 스킬 선후딜에 페널티를 줘서 쳐맞딜을 강요받거나
무력이 좋으면 기본적으로 딜계수가 낮은 경우가 많고

예외 직업들이 있으나 대체적으로 무력과 체방은 같이 묶이고 기동성과 딜이 같이 묶여서
'무력 체방이 든든한 국밥' 과 '빠르고 쎄지만 잘죽는 체방따리' 로 나뉘는 경향이 강합니다.
요즘 웃음벨로 불리는 인디블은 전형적으로 전자에 속하는 직업들입니다.


2. 레이드 트렌드의 변화로 인한 무력/체방의 가치 변화

물론 가디언 토벌때도 선호받는 직업은 따로 있었던 걸로 알고 있지만
'설계 의도' 만을 놓고 봤을 때, 무력과 체방은 나름대로 가치있는 덕목이었을 겁니다.

기본적으로 기믹 위주의 흐름보다는 가디언과의 난투전,
최대한 많이 피하고 많이 때려서 클리어하라는 취지에서 봤을 때

튼튼함은 전투의 유지력과 더 과감한 딜각을 만들기를 기대했을 것이고
무력은 일정 요구치 이상을 달성하면 딜각을 만들어주는 것으로
딜 그 자체는 아니였지만 두 요소 역시 딜을 보조하는 수단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이런 가디언 토벌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는
아르고스와 발탄까지는 무력과 체방이라는 요소가 충분한 메리트가 되어
블래스터는 준수하고 안정적인 직업으로서의 입지를 유지했고
슈익, 1차 하익 시점까지만 해도 국밥도르로 많은 추천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부터 레이드 트렌드가 점점 바뀌기 시작합니다.
더 어려운 레이드, 새로운 레이드를 위해 연대 기믹들이 강화되고
CC기와 매혹/광기 게이지와 같이 체방의 메리트가 통하지 않는 공격들이 늘어나죠.

더 까다로운 보스를 만들기 위해 보스의 움직임도 강화됩니다
이리 움직이고 저리 움직이고 날아가고, 랜덤으로 무적 패턴이 나오기에
적중률 이슈를 가지고 있었던 직업들의 딜 기대치가 낮아집니다.

반면에 무력화는 꾸준히 누적해서 일정 수준이 되면 딜 기회를 주는,
딜 보조수단에서 점점 특정 기믹에서의 생존을 위한 수단으로 바뀌어갑니다.

반대로 산발적인 패턴 속에서 간간히 등장하는 카운터가
본래 누적무력이 차지하고 있던, 잠깐의 정비 시간과 딜 시간을 벌어주는 역할을 가져가죠.

점점 체방으로 막아지지 않는, 기믹과 CC, 게이지 시스템 등이 늘어나고
기믹 수행/카운터를 위한 기동성과 자유로운 딜각, 스킬의 빠른 발동의 가치가 올라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블래스터는 국밥의 지위를 유지했습니다.
신치가 메인이었던 시절 블래스터도 기동성은 나쁘지 않았고,
카운터기인 네이팜의 선딜과 경면 부재는 문제점이긴 했지만 숙련도로 극복 불가능한 수준은 아니었습니다.

누적무력의 가치가 떨어졌어도 무력이 강한 직업들은 이제는 생존을 위한 무력화 기믹에서도
충분히 그 가치를 인정받으며 강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적중률 이슈가 조금 더 커지긴 했지만 스킬을 자주 굴려서 리스크를 분산할 수 있었고
체방의 가치가 이전보다는 조금 떨어졌어도 개인 생존력에 도움을 줬고
에필의 피면 덕에 산발적인 패턴 속에서도 꾸준히 스킬을 누를 수 있었습니다.


3. 인디블은 왜 국밥의 지위를 잃었는가

이러한 레이드 트렌드의 변화는 비아 -> 쿠크 -> 아브로 이어집니다.
관문에 따라 차이가 조금 있지만 전체적으로 보스의 산발적인 무빙과 패턴은 점점 심해지고
무력화 역시 '누적무력으로 딜각 만드세요 -> 자 이 시간 안에 무력하세요 -> 짠! 무력해 -> 무ㄹ'
식으로 짧은 시간 안에 빠르게 대처하는 것이 중요해집니다.

카운터는 이제 딜각 뿐 아니라 생존을 위한 필수 기믹에도 중요한 요소의 하나로서 등장하고
가디언에서는 칼엘리고스, 하누마탄이 나오면서 무력화->카운터가 이어지는 등

점점 누적무력이나 정해진 시점에서의 무력보다는 정해지지 않은 타이밍의 순간무력이나
빠른 움직임을 따라가서 카운터를 넣는, 기동성과 빠른 발동의 메리트가 강해집니다.

또한 CC기가 점점 강화되었으며, 이제는 맞으면 아프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맞으면 민폐가 되는 패턴' 들이 늘어났으며,
몇몇 레이드에서는 시간 안에 딜이 밀리지 않으면 레이드에 큰 악영향을 주게 됩니다.

이런 변화에 따라 점점 국밥의 조건들도 변화하게 됩니다.
- 저점이 낮고, 평균적으로 1인분 이상이 가능한 딜량
- 산발적인 카운터에 대응할 수 있고, 이동 기믹들을 안정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기동성
- 우수한 시너지, 그리고 적절한 개인 생존력
- 어떤 이유로든 팀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직업

이에 따라 기존에 국밥으로 불렸던 직업들 중에
무력이 뛰어난 대신 딜계수가 낮게 책정된 직업,
체방이 뛰어난 대신 기동성이나 스킬 발동속도가 떨어지는 직업들의 가치가 떨어지게 되고

시너지가 좋으면서 위 직업들보다는 한티어 낮은 체방을 가지고 있기에 딜 페널티가 심하지 않은,
그러면서 기믹 수행력이 좋은 직업들이 신 국밥으로 떠오르게 됩니다.

특히 가치가 떨어지게 된 기존 국밥 직업 중에서도
개인적인 하자가 있는 몇몇 직업들이 땅바닥으로 떨어지게 되는데

사멸 직업들의 전체적인 침체에 의한 악영향까지 받고 있던 인파 디트,
악몽으로 인해 고신속 직업들이 살아나던 와중에 자버프 부재로 인해 전혀 수혜를 받지 못했으며
반격이라는, 국밥 실격의 조건을 가지고 있던 블래스터입니다.
이로서 인디블이라는 조합이 생겨나게 됩니다.

악몽, 그리고 자버프에 대해서 첨언하자면
쿨감의 메리트는 스킬을 자주 굴리는 것도 있지만 자버프의 점유율이 올라가는 것도 있습니다.
버프 지속시간은 그대로인 대신 쿨타임이 줄어드니 전체 플레이시간 중
자버프가 유지되는 시간의 비중이 늘어나는 것이고
이 요소는 현재 고성능을 보이는 신속캐릭들 대부분에서 볼 수 있는 특성입니다.

(신치)블래스터는 기존의 플라즈마 공증은 삭제됐고, 다른 자버프인 화력버프는
스킬 쿨타임과는 관계없는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기에 심각한 상대적 너프를 받았고
신속캐릭으로서 누려야 할 메리트를 전혀 못받는 상황이 됐죠.

또한 쿨타임이 짧아진 스킬들을 지속적으로 굴리기 위한 간결한 시전 역시
블래스터는 가지지 못하고 있어 구린 성능에 한몫을 하게 됩니다.


4. 인디블 국밥들의 몰락, 그 이후

블래스터 자체의 문제점을 대라면 반격, 트포, 아덴 수백개도 댈 수 있지만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구조적으로 블래스터를 포함한 몇몇 직업들이
구버전 레이드를 기준으로 설계되었고, 원래 이들이 가지고 있는 장점들이
최근 레이드 트렌드에서 퇴색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는 개발진에서 분명히 인지하고 해결해줘야 하는 문제입니다.
본인들이 새로운 레이드, 신선한 레이드 만들겠다고 온갖 요소들을 덕지덕지 넣으면서
몇몇 직업들은 기존의 장점들은 희미해지고 단점만 부각되는 상황이 됐으니까요.

이 상황이 단순히 상하향 한두번 때문에 직업이 침체기를 겪는 것이 아니라
본인들이 설계한 구조 자체에 결함이 있어서라는 것을 인지하고
기존에 가지고 있는 장점을 약간 깎고 현 레이드 트렌드에 맞는 장점을 충분히 주던가
아예 다른 포지션, 다른 경로에서 활로를 뚫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특화블래를 미는 것 역시 나름대로는 다른 포지션에서 활로를 뚫어주려는 노력이라 생각하나
직접 플레이해보면 아직도 리스크 대비 리턴이 말이 안되는 수준입니다.

로아온에서 디렉터가 사이버 유격에 대해서 언급한적이 있었죠
연대 기믹 자체는 재미있는 놀이장치이나 이것을 계속 넣다보니 이번엔 과했다고

지금 레이드 트렌드도 마찬가지입니다.
점점 늘어나고 있는 CC기들과 순간적 대처를 요하는 기믹들이
레이드를 더 난이도있고 재미있게 만들어주긴 하지만
본인들이 이런 요소들을 얼마나 넣었는지 자각하고 있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언제부턴가 레이드가 달라졌습니다.
그리고 이 달라진 구조에 몇몇 직업은 고통받고 있습니다.
이를 인지하고 직업 장단점을 재설계하는 것이 진정한 게임의 내실쌓기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