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전(日前) 몽예(夢魘)의 아브렐슈드 토벌에서 끝내 떨쳐내지 못한 회한(悔恨)의 여운을 뒤로한 채, 기어이 제3막(第3幕)의 거악(巨惡) 모르둠이 극난(極難)의 몽예라는 재앙의 껍데기를 쓰고 이 인세(人世)에 현현(顯現)할 채비를 마쳤소이다. 온 아크라시아의 대지 위에 칠흑 같은 어둠이 드리우니, 사방에서 스며드는 한기(寒氣) 어린 절망이 기어코 투사들의 꺾이지 않던 기백(氣魄)마저 바스러뜨리고 빛을 잃은 아크라시아의 하늘 아래, 흩날리는 잿빛 절망만이 도무지 꺾일 줄 모르던 우리네 투지(鬪志)를 비웃듯 서서히 잠식(蠶食)해 들어오는구려.


기억해 보시오. 저 거악(巨惡) 모르둠이 처음 아크라시아의 대지를 짓밟았던 그 초연(初演)의 날, 얼마나 많은 투사들이 그 압도적인 폭거(暴擧) 앞에 피를 토하며 쓰러졌던가! 그가 치켜든 거대한 파성(破城)의 망치가 대지를 내리칠 때마다 영웅들의 오장육부가 뒤틀렸소. 칠흑을 찢으며 정수리에 내리꽂히는 시퍼런 낙뢰(落雷)는 우리의 알량한 생명줄을 가차 없이 잿더미로 만들어 버렸고 도무지 파훼(破毁)할 수 없는 질량과 속도의 폭풍 속에서, 우리는 그저 다음 벼락이 내 머리 위로 떨어지지 않기만을 바라는 비참한 먹잇감에 불과했소. 그야말로 숨을 쉬는 것조차 죄악이 되는, 절대적인 공포와 참담(慘憺)의 수라장(修羅場) 그 자체였지 않소!


그렇소. 우리는 숱한 전멸의 밤을 딛고 일어나 기어코 저 거악의 망라를 파훼(破毁)하였고, 마침내 그 거대한 벽을 부수며 기적을 벼려내었소이다.
허나… 잔혹한 운명은 이 알량한 축배마저 허락하지 않는구려. 우리가 피땀으로 넘어섰던 그 장벽(障壁)은 스러지긴커녕 도리어 짙은 심연의 독기를 먹고 자라나, 감히 올려다보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는 압도적인 태산(泰山)이 되어 작금(昨今), 아득히 더 거대해진 절망의 그림자를 드리운 채, 또다시 우리의 진군(進軍)을 멈춰 세우고 있소이다. 간신히 정복했던 시련의 봉우리는 이제 다시 아득한 절벽이 되어, 기어이 우리네 숨통을 완전히 끊어놓으려 버티고 서 있단 말이오.



칠흑 같은 몽예(夢魘)의 장막이 시야를 온통 가리울지언정, 우리네 가슴속에 지펴진 자그마한 온기마저 꺼뜨릴 수는 없는 법이오. 또한 홀로 선 전장은 한없이 시리고 가혹할 것이오. 허나 사방이 적으로 둘러싸인 참담한 마경(魔境) 속에서도 침착히 좌우를 둘러보면, 기꺼이 내 등을 맡길 수 있는 일곱 명의 동지들이 뿜어내는 눈부신 투지(鬪志)가, 나를 믿고 친우를 믿고있는 동료들이 시퍼렇게 눈을 뜬 채 살아 숨 쉬고 있는것이 보일 것이오! 동지들과 거친 호흡을 맞추며 묵묵히 서로의 곁을 내어주던 그 숭고한 연대(連帶)만큼은 저 거악의 뇌격마저 끝내 태워버리지 못하였소이다. 피투성이가 된 어깨를 나란히 맞댄 채, 서로의 존재 그 자체로 어둠을 밝히는 찬연(燦然)한 등불이 되어주었던 우리의 꺾이지 않는 신뢰를 믿고 나아가는 것이오. 맞잡은 손에서 전해지는 이 단단한 결속(結束)이야말로, 저 거악의 철퇴 앞에서도 결코 바스러지지 않을 가장 찬란한 희망의 불씨일 터이니. 기어이 그 끔찍한 뇌전(雷電)의 감옥을 찢고 나와 아크라시아에 승전보를 울렸던 우리네 눈부신 궤적(軌跡)을 기억하시오!


제위에게 묻소.
갑주의 틈새는 여미었소? 단약의 수량은 확인하였소? 무구의 날은 시퍼렇게 세워두었소? 칠흑의 비수(匕首)는 단단히 장전하였소? 지옥의 밑바닥까지 함께 진군할 일곱 명의 지음(知音)들과 생사(生死)의 맹세를 마쳤소이까? 부서질지언정 결코 꺾이지 않을, 수백 번 바닥을 구르고도 기어이 다시 일어서겠다는, 저 놈의 철퇴보다 훨씬 더 지독하게 벼려낸 정신의 무구는 온전히 둘렀는가!

묻겠다. 준비된 무기는 충분한가.




그렇다면 검을 뽑아라.

이제 더 이상의 하문(下問)은 무용(無用)할 터. 진군의 북을 울려라! 저 오만한 거악에 오로지 하나의 준비된 대답을 온몸으로 꽂아 넣을 차례다. 기어이 저 짙은 혼돈의 장막을 찢어발기고, 아크라시아의 가장 찬란한 여명(黎明)을 한 명의 낙오(落伍)도 없이 지독했던 몽예(夢魘)의 밤이 온전히 끝났음을 알리는 위대한 희망의 찬가(讚歌)를 부르는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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