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공 하면서 세계관 이것 저것 알아보다 보면 

요즘은 중국 사이트 자주 가게 되네요 ㅎㅎ;;

서핑하다가 좋은 글인 것 같아 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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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련(心蓮)

【정견망】

여섯 도적(六賊)을 말하자면 《서유기》를 읽어본 독자들은 “안간희(眼看喜), 이청노(耳聽怒), 비취애(鼻嗅愛), 설상사(舌嘗思), 신무우(身無憂), 의견욕(意見欲)” 등 6명의 산적 이름을 알 것이다. 이는 외재(外在)적인 물질을 추구하는 6가지 욕망인 육욕(六慾)을 뜻하는데 작가 오승은(吳承恩)은 왜 육욕을 물건을 강탈하고 사람 목숨을 뺏는 강도로 비유했을까?

어릴 때 여섯 도적이 나타나는 이 장면에서 내가 느낄 수 있었던 것은 단지 손오공의 황당함과 당승의 반응이 생생하고 유머러스하다는 것이었다. 여기서 잠시 소설의 한 대목을 읽어보자.

여섯 도적이 큰 소리를 외치며 이렇게 말한다.

“거기 중놈아 게 섰거라! 냉큼 말에서 내려 짐을 두고 가거라, 그러면 목숨만은 살려주마.”

이 말을 들은 삼장(三藏 당승)은 기겁해서 넋을 잃고 말에서 떨어져 아무 말도 못했다.

그러자 행자(行者 손오공)가 삼장을 부축해 일으키며 말했다.

“사부님 안심하십시오, 별것 아닙니다. 이놈들은 모두 우리에게 옷과 노자를 주려고 온 것입니다.”

삼장이 말했다.

“오공아 너는 귀가 좀 멀지 않았느냐? 이 사람들이 우릴 보고 말과 짐을 두고 가라는데 옷과 노자를 가지고 왔다니 그게 무슨 말이냐?”

행자가 말했다.

“사부님은 가만히 짐과 말이나 지키고 계십시오. 이 손 씨가 한번 겨뤄보겠습니다.”

최근에 다시 이 부분을 읽다가 여섯 도덕을 만나는 이 장면에서 깊이 생각해보니 담긴 의미가 그리 간단하지 않았다. 우선 여섯 도적이란 육욕(六慾)을 말하며, 짐과 말을 빼앗는다는 것은 육욕이 명리와 감정을 추구해서 만약 얻지 못하면 당신이 죽기 살기로 시달리게 만든다.

당승(唐僧)은 그 속의 진상을 똑똑히 보지 못했고 놀라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손오공은 오히려 그 속의 도리를 똑똑히 알았고 그것에 미혹되거나 어려워하지 않는다.

흔히들 사람의 욕망은 끝이 없어서 늘 만족시킬 수는 없다고 말하는데 이것을 가지면 저것을 갖고 싶어한다. 사실 이는 모두 여섯 도적에게 빼앗긴 것이다. 남는 것은 끝없는 공허(空虛)와 얻고 잃음에 대한 고민뿐이다. 사람의 희로애락이 그것에게 통제당하고 신체는 그것의 노예가 되는데 제아무리 바쁘게 살아도 결국에는 그것을 만족시킬 수 없다.

그러나 손오공은 이를 간파했고 여섯 도적이 하찮은 잡병(雜病)에 불과함을 알았다. 이에 그것에 흔들리지 않았고 도리어 이 외물을 얻어 자신의 짐을 보충하려 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물질이익을 위해 즐거워하거나 근심할 때면 자신이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한번 자문해 보아야 한다. 어쩌면 손오공이 여섯 도적을 간파한 것처럼 생각이 명백해져서 같지 않은 놀람과 기쁨을 얻을 수 있을지 모른다.

모두들 인생(人生)이란 한차례 수행(修行)과 같다고 하는데 만약 본래 선량한 내심(內心)이 욕망에 의해 통제되고 이끌리면, 본성을 잃고 고통과 미망에 빠지거나 심지어 남을 해쳐서 최종적으로 남도 해치고 자신도 해치게 되어 행복에서 더욱 멀어질 수 있다.

매번 여섯 도적이 장난치는 일을 만날 때마다 우리가 만약 손오공처럼 본심을 바로잡지 못한다면 그럼 이 욕망의 지배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작가가 불과 몇 마디 대화로 의미심장한 뜻을 담아낸 것에 대해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진정으로 인생의 번뇌와 고통을 면하게 하고 자유를 얻을 수 있으며 무형의 속박에서 벗어나게 하는 이런 큰 지혜는 오직 전통문화 속에서만 얻을 수 있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769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