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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9-19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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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순교지, 26성인 기념관우리나라 못지 않게 일본에서도 천주교 박해가 있었고, 그 시기도 훨씬 이전입니다. 나가사키 역 맞은 편 언덕에 있는 '26성인 기념관'은 순교 박해에서 돌아가신 26인을 기리는 곳인데, 임진왜란 기간인 1597년 2월에 발생한 박해입니다. 이 외에도 운젠 등 큐슈 지역에 박해 지역이나 천주교 관련 유적들이 여럿 있어서 성당에서 성지 순례 여행을 오는 경우도 꽤 있는 듯 합니다.
26 성인 기념관의 전경입니다. ![]() 당시 체포된 26인의 이동 경로입니다. 교토에서 1597년 1월 4일에 출발, 한달에 걸쳐 2월 5일 나가사키로 이동하여 도착 직후 처형, 순교하였습니다. ![]() ![]() 당시 처형된 사람들은 6명의 카톨릭 신부와 20명의 일본의 신자들입니다. 그리고 일본의 신자 20명중 10대의 소년은 무려 5명이었습니다. 아래의 편지는, 처형 당시 14세였던 성 토마스 코자키(일본인)가 부모님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 ![]() 박해 이후에도 선교사가 들어와서 포교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1621년에, 선교사가 보낸 편지도 있습니다. 위와 아래의 이런 편지들을 볼 때마다, 신앙이란 무엇인지 종교란 무엇인지 깊게 되짚어보게 됩니다. ![]() 또 1637년에는 천주교인들의 반란인 시마바라의 난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이때의 박해 이후 완전히 지하로 숨어들어 몰래몰래 신앙을 유지해오는 형태로 바뀌었다가, 개항 이후 종교의 자유를 찾을 때까지 무려 230년 가량 신앙을 숨기고 지냈습니다. ![]() 아래는 기념관 내부의 전시 공간 중 일부입니다. ![]() 순교하신 분들에 대한 위령의 공간인 듯 합니다. ![]() 순교한 장소에서 발굴한 유해인 듯 합니다. ![]() 당시 일본에는 조선인 신자들도 여럿 있었습니다. 임진왜란 당시 포로로 끌려간 사람들이 힘든 인생 속에서 천주교를 받아들였을 가능성도 높았을 법 합니다. 처형된 사람들 중 한반도 출신의 사람들이 정확하게 다 나오진 않습니다. 포로로 끌려간 사람들의 신원 자체를 알기도 쉽지 않을 뿐더러, 막부에서 일일이 구분하거나 기록을 남겨두지 않고 모두 처형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나마 후대의 연구로 인해 밝혀진 한반도 출신의 순교자들 명단이 있긴 했습니다. 물론 이게 모두 다가 아니라 그나마 각종 기록, 자료로 찾을 수 있는 사람만 찾아낸 결과입니다. 사진 하단의 설명에도 나와 있지만, 1594년에 이미 조선인 천주교인이 약 2,000 명 가량이었고, 1610년에는 조선인 교인단체와 조선인 천주당이 나가사키에 있었다고 합니다. ![]() 기념관 2층의 홀에서 잠시 홀 밖으로 나가는 공간이 있는데, 여기에는 한일합작 비석이 하나 있습니다. 나가카시 대주교와 대구 대주교가 2016년 공동으로 설립하였는데, 같이 순교한 일본인 고이치와 조선인 카이요 (임진왜란 포로 출신)를 기리는 비석입니다. ![]() ![]() 시마바라의 난 이후 숨어서 230년 넘게 신앙을 유지해온 일본 사람들을 기리시단이라고 합니다. 크리스챤의 변형된 발음이겠죠. 겉으로는 신도를 믿는 척 하면서 실제로 집안에서는 스스로 미사를 드리면서 버텨왔다고 합니다. 정식으로 종교의 자유가 인정된 이후에는 대부분 성당으로 돌아갔지만, 일부 기리시단의 경우 본인들 특유의 변화된, 굳어진 전통에 익숙하여 다시 기리시단의 양식으로 돌아갔다고도 합니다. 이때 히든 크리스쳔이 발견되었다고 유럽의 카톨릭계에서는 중요 사건으로 다루어지기도 했고, 인류학적, 문화학적인 측면에서도 기리시단은 매우 흥미로운 주제라고 합니다. 기리시단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예전에 한번 본적이 있어서 관심가는 항목이기도 했습니다. ![]() ![]() 한번도에서 제작된 반가사유상인데, 당연히 불상이 맞습니다. 하지만 숨어서 신앙을 지켰던 사람에게는 예수를 상징하는 의미로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 마리아 관음상도 비슷하게, 관세음보살 조각이 성모 마리아상처럼 받아들여졌습니다. ![]() ![]() ![]() 이 외에도 일본에 찾아온 선교사들과 신자들, 박해에 관한 각종 유물들이 여럿 전시되어 있기도 했습니다. 이 중에는 당시의 로마, 세비야, 나가사키의 도시 지도도 있었습니다. ![]() ![]() ![]() 당시의 책이나 문서, 편지들도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 ![]() ![]() ![]() ![]() ![]() ![]() ![]() 나가사키에 가실 일이 있다면, 원폭 기념관과 함께 26 성인 기념관을 들러보신다면, 아마 매우 기억에 남는 여행이 되지 않을까 싶네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