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 정부가 멸망했다.



썩어빠질 대로 썩어빠진 전세계 부정부패지수 172위인 국가다운 최후였다.
(참고로 공동 172위인 남수단, 시리아 모두 내전중인 무정부상태 국가이다.
우리 이웃 북한은 부정부패지수가 현재 세계 175위이다.)


원래 이렇게 멸망해 마땅한 나라는 아니었다.
원래 이렇게 부패한 지도층만 가득한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몇몇 나라에서 과거에 등장했던 구국 영웅도 있었다. 
멸망해가는 나라를 구하고자 모든걸 다 던지는 불세출의 천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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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리의 사자가 지휘하는 일백 마리의 양떼는 한 마리의 양이 지휘하는 일백 마리의 사자떼를 이긴다".
- 서양 격언


문명 6라는 게임에서는 단 두명뿐인 정보화시대 장군 유닛이 있다.



'아흐마드 샤 마수드'



1980년대 전 세계가 공인하는 최고의 명장이었다.
한국 사람들 대부분에게 그가 생소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멀고먼 무관한 나라의 장군일 뿐더러
그가 맞서싸운 상대도, 싸운 방식도 한국군에서는 취하지 않는 전략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마수드가 상대한 국가는 유일하게 미국과 1:1이 가능했던 최전성기의 소련연방군이다. 
그 초강대국을 상대로 무자헤딘 게릴라전을 시작했다.
그리고 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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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공산주의 쿠데타로 집권한 아프간 괴뢰국을 지원하기 위해 소련연방의 대군이 아프간으로 침공해온다.



같은 해 마수드는 자신의 고향인 판지시르 주에서 대 소련전쟁을 시작한다.
초반 파키스탄에서 겨우겨우 구해온 7백정의 구식 소총과 천명의 동네 청년들로 시작한 마수드의 게릴라전은 다른 아프간 지역과는 달리 가장 격렬한 전장이 되었다.



아프간의 산악 지형중 유일하게 소련연방 영토와 차량 통행이 가능한 곳은 북동쪽 마수드의 고향 페샤와르였다. 
수도 카불까지 이어지는 좁은 '판지시르 협곡'회랑의 육로 보급선은 소련군의 생명줄이었고.
마수드는 이 보급선을 끊어 아프간 소련군을 말려죽이는 전략을 세운다.


1차대전 수준의 군장비조차 갖추지 못한 마수드의 무자헤딘에게 판지시르 협곡을 지나는 소련 보급부대는 무참하게 난도질당하기 시작했고, 소련 연방군은 특수부대 스페츠나츠를 포함한 만명 단위의 병력을 출전시켜 마수드의 무자헤딘 토벌전을 감행한다.


이 토벌전을 판지시르에 무려 9번이나 시도한다.


5차와 6차 판지시르 회랑전 3만명의 소련연방 정예병과 200대의 헬기 동원에


다연장 로켓포격과 전략 폭격기까지 사용했다.


5차 전투에서 소련군은 3천명 이상의 사상자를 내며 후퇴, 공산 아프간 군 천여명은 항복 후 무자헤딘으로 귀순한다.
1982년, 소련연방군이 공세에 실패할 때마다 노획한 군장비로 마수드의 무자헤딘은 5천명까지 5배로 늘어난다. 


1983년, 소련연방군은 판지시르 계곡을 이용한 육로 보급을 포기하고 항공 수송으로 보급을 바꾼다.
질려버린 소련군은 아프간 민중들이 마수드에게 붙인 별명의 뜻을 겨우 이해했다.

'Lion of panjshir' 판지시르의 사자.


결국 판지시르를 제외한 다른 지역 반정부군부터 전멸시키려고 소련연방군은 1983년 마수드에게 정전 협정을 제안했는데, 마수드는 이를 역으로 이용한다.

1983년 7월 마수드는 아프간 북부 7개 주 130여명의 무자헤딘 지도자들을 모아 감독 협의체를 통한 조직화를 완성하고, 아프간 북부 전체의 군사작전권을 하나로 통합시켜버린다.

마수드의 북부 무자헤딘 통일에 경악한 소련연방군은 마수드의 기반을 말살하고자 판지시르 계곡 민간인 5만명에게 무차별 폭격을 감행한다.


다행히 마수드는 이미 아프간 괴뢰정부에 심어놓은 스파이를 이용한 정보전을 하고 있었기에, 이 정신나간 막장 작전은 민간인이 대피완료된 공터에 폭탄을 들이붓는 코미디로 끝났다.

1984년, 소련연방군은 5천명의 마수드 군을 토벌하기 위해 2만 1천명의 7차 판지시르 회랑 전투를 시작한다.
소련군은 2500여명의 사상자를 남기며 판지시르에서 철수했다.

1985년, 소련연방군의 제 9차 판지시르 회랑 전투에서 같이 참전한 공산 아프간군 여단장이 전사하고, 500명의 아프간 정부군이 무자헤딘으로 전향한다.

1986년, 9차를 마지막으로 소련 연방은 판지시르 계곡 공세를 중단하고, 88년에 아프간 북동부에서 완전 철수한다.



장비와 훈련도에서 비교조차 안 되는 세계 초강대국의 정예병이
아프간 염소 목동들에게 패배했다.


서구권 군사전문가들이 내린 결론은 하나로 모아졌다.

'아프가니스탄의 나폴레옹'



1989년 아프간 전쟁 종전시 마수드 휘하의 무자헤딘은 13000여명이 넘는다.
더욱이 마수드의 무자헤딘은 서방측의 무기지원을 거의 받지 못하면서도 이룬 승리였다.
(CIA는 아프간 반군 지원조건에 '영어 가능자'라는 조건을 걸어 마수드를 지원 리스트 우선순위에서 제외했다.)
아프간 공용어, 프랑스어, 파슈토어, 우르드어, 아랍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이 '전쟁의 신'은
자신이 '이슬람 원리주의자'이기에 종교에서 금기한다며 평생 테러공격과 민간인 방패전술을 사용하지 않았다.

"조국을 재건하려면 여자도 배워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닌가?"
"전쟁은 누구도 좋아서 하는 게 아니오. 이건 의무이지. 국민이 침략의 희생자가 되었을 때 싸워서 스스로를 지키는 것 외에 다른 해결책은 없소."

첫 거병후 13배로 먹일 병력이 늘어났지만, 본거지인 아프간 북동부는 아프가니스탄에서 가장 살기좋은 거주지였다.
자신의 고향인 페샤와르 주에는 이슬람식 남녀공학 초등학교와 12개의 병원, 외과 수술이 가능한 3개의 종합병원, 완비된 전기와 수도 시설을 지역 민간인들에게 제공했다.

주둔지를 나눈 22개의 구역에서는 군정과 민정을 분리하며 판사, 검찰, 관선변호인까지 운영했다.
경제, 건강, 교육, 문화, 홍보, 사법 위원회로 일컬어지는 내각정부는 주민들에게 거둔 세금은 최대한 주민 관련 사업에 사용하게 하며, 군비는 지역민 수탈 대신 지역 에메랄드를 팔아 충당했다.


그렇게, 아프간의 부족과 종족을 초월해 통합시킨 구국 영웅은 마침내 침략군에게서 나라를 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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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1989년, 소련군은 아프간에서 완전 철수했고, 마수드의 적은 둘만 남았다.

소련 괴뢰 공산정권인 나지불라의 잔당과

자신이 세운 남녀공학 학교를 폭파시켜 버렸다는 광기어린 신생 이슬람 원리주의 무장단체였다.

마수드가 듣기로 그자들은 자신들을 '탈레반'이라고 부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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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량 조절 실패했습니다. 죄송합니다.
나중에 후편으로 따로 올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