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776872
출처 : 오마이뉴스

< 왼쪽 : 이재명 , 오른쪽 : 이완용 >


평안도 출생 스물셋 청년 이재명은 나라 팔아먹는데 가장 앞장섰던 
친일매국노의 대표주자 이완용을 단죄한 인물이다.

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등록된 <독립운동사>에도 "이재명은 왜적에게 나라를 파는데 앞장섰던 매국노들을 먼저 처단하는 것이 국권수호의 첩경이라 생각하고 이완용을 비롯한 을사오적을 도륙하기로 작정했다"며 "이완용을 비롯한 역적들이 12월 22일 오전 명동성당에서 벨기에 황제의 추도식에 참석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성당 문밖에서 군밤장수로 변장하고 기다리다가 매국노 이완용이 거만한 모습으로 인력거를 타고 앞으로 지나갈 때 비수를 들고 이완용에게 달려들어 거사를 진행했다"라고 기록됐다.

그러나 이재명의 칼에 치명상을 입었던 이완용은 대한의원(현 서울대학교병원)으로 후송돼 일본인 의사들의 수술을 받아 살아난다.이듬해인 1910년 8월 이완용은 대한민국의 내각총리대신으로서 한국 통감인 데라우치 마사타케와 함께 한일병합조약을 조인한다.

이재명은 재판 과정에서 "나는 당당한 의행을 한 것"이라면서 "이 일에 찬성한 사람은 2000만 민족이다. 나는 죽어 수십만 명의 이재명으로 환생해 기어이 일본을 망하게 하고 말겠다. 생전에 이루지 못한 일이 한심스러울 뿐 죽어서 그 원한을 갚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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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5월 18일 경성지방법원은 그에게 사형을 선고한다. 1910년 9월 30일 이재명 의사는 서대문형무소 초기 사형장에서 교수형을 당한다. 그리고 현재 이 자리는 서울 서대문구에 자리한 서대문형무소역사관 10옥사와 11옥사 사이에 위치한 연못 지역으로 추정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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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9월 30일 오늘은 이재명 의사가 순국한지 111주년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