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분들이 잘 아시다시피, 와우를 하다보면 서로 적대진영에 속해있음에도 뭔가 적대적이지 않은 것 같은 두 종족이 있습니다. 바로 타우렌과 나이트엘프입니다.

 

 

호드와 얼라이언스가 탄생한 이래 두 진영 간에는 전쟁이 끊이지 않아왔습니다. 당연히 각 진영에 속한 종족들은 서로를 ‘적’으로 인식하지요. 하지만 그 와중에도 서로 적대 진영에 속해있음에도 불구하고 두 종족, 타우렌과 나이트엘프만은 서로를 적으로 인식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모습들을 계속해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실 이 두 종족의 관계는 1만년 전 고대의 전쟁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당시 타우렌과 나이트엘프의 관계는 절대로 우호적인 것은 아니었습니다. 영원의 샘 주변에 정착하여 마법의 힘을 사용해 거대한 문명을 건설한 나이트엘프, 그리고 유목 생활을 향유하던 타우렌은 서로를 배타시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마치 현재 얼라이언스가 호드를 ‘야만인’으로, 호드가 얼라이언스를 ‘나약한 놈’들로 폄하하는 것과 유사한 모습이죠.

 

하지만 두 종족의 관계는 악마들의 침략으로 전환점을 맞이합니다. 아즈샤라와 그 추종자들의 지나친 욕심은 불타는 군단을 아제로스에 불러들였고, 이에 아제로스의 여러 종족들이 맞서 싸웠으나 전세를 역전시키지는 못했습니다. 결국 아제로스의 각 종족들은 동맹의 필요성을 인식하였으나 오랜 적대관계를 버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특히 나이트엘프와 타우렌은 오랜 적대관계를 청산하는 데 있어 상당한 진통을 겪습니다.

 

소설 <고대의 전쟁 3부작>에 보면 이런 장면들이 나옵니다.

 

"다른 종족들에게 도움을 요청하자구요?“ 말퓨리온이 외쳤다. 크라서스가 이러한 요청이 성공할 것인지에 대해 먼저 말퓨리온에게 물었었더라면, 말퓨리온은 당연히 크라서스가 나이트엘프군 총사령관 레이븐크레스트 경에게 이러한 제안을 하는 것 자체를 만류했을 것이었다. 칼림도어가 악마들에게 공격받아 수많은 이들이 죽고 또 죽어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나이트엘프 지도자도 외부인들과 접촉함으로서 자신의 품위를 손상시키려 하지는 않을 것이었다. 대부분의 나이트엘프들에게 외부인들은 기생충(vermin)과 별반 다를 것이 없는 존재들이었다.

 

- 출처: 고대의 전쟁 2부 악마의 영혼 (The Demon Soul) -

 

(역주: 여기서 외부인들이란 타우렌, 펄볼그, 토석인 등을 말합니다. 칼림도어는 현재 칼림도어가 아닌 1만년 전 단일 대륙으로서의 칼림도어입니다.)

 

“건방진 놈들! 이런 짐승놈들과 우리가 동맹을 맺기를 기대하는 건가?” 스타아이(Stareye)가 으르렁거리듯 말했다. “우리 동족들은 이걸 받아들일 수 없소!”

“사령관으로서, 동족들을 설득시키셔야 합니다” 로닌이 침착하게 대꾸했다. “이들이 자신들의 동족들을 설득했듯이 말이지요”

 

- 출처: 고대의 전쟁 3부 세계의 분리 (The Sundering) -

 

(역주: 스타아이(Stareye)는 레이븐크레스트가 암살되고 그 뒤를 이은 나이트엘프군 총사령관의 이름입니다.)

 

다른 종족들도 있지만 여기선 타우렌과 나이트엘프들의 관계에 초점을 맞춰보겠습니다. 한때 서로를 배타시했던 두 종족이었으나 불타는 군단이라는 공통의 적 앞에서 이들은 결국 어려운 동맹을 성사시키는데 성공합니다. 그리고 칼림도어의 자유민 연합군은 결국 영원의 샘을 파괴하여 뒤틀린 황천으로 연결된 차원문을 닫아 불타는 군단의 침공을 저지하는데 성공합니다. 하지만 승리의 대가는 참혹했습니다.

 

 

(세계의 분리: the Sundering)

 

 

많은 분들이 이미 아시다시피, 영원의 샘을 파괴함으로서 1만년 전 단일 대륙 칼림도어는 80% 이상이 대해 속으로 가라앉고 나머지 파편들은 4개의 대륙으로 쪼개집니다. (동부 왕국, 칼림도어, 노스렌드, 판다리아) 이때 세계의 분리에서 살아남은 나이트엘프들은 대부분 칼림도어의 하이잘 산 인근으로 피신합니다. 하지만 살아남은 나이트엘프들의 상황은 참혹하기 그지없었습니다.

 

우선 영원의 샘과 그 마력에 기반하여 쌓아놓은 자신들의 문명이 송두리째 바닷속으로 가라앉아버렸고, 나이트엘프 문명의 원천이라고 할 수 있었던 영원의 샘까지 파괴되어 버린 것입니다. 우리의 현실에 대입해보면 인류의 문명이 송두리째 파괴되고 자연으로 내던져진 것과 비슷합니다.

 

또한 1만년 후 지금은 나이트엘프 드루이드가 많지만 당시 나이트엘프 드루이드는 말퓨리온 단 한명 뿐이었습니다. 물론 티란데 등 엘룬을 섬기는 여사제들이 있었으나 이들은 비교적 소수에 불과했죠. 다시 말해 나이트엘프는 기존의 마법을 대체할 수 있는 수단도 없고, 당장 비바람을 피할 집도, 당장 배고픔을 면할 식량도 부족한 상황이었습니다.


이때 나이트엘프를 도와준 이들이 바로 타우렌이었습니다.

 

나이트엘프들을 도와준건 세계의 분리로부터 피해를 비교적 덜 받은 타우렌과 다른 종족들이었다. 모든 종족들이 시련을 겪고 있었으나, 나이트엘프들만큼 고향이 철저하게 파괴된 종족은 없었다. 제로드는 타우렌들의 도움을 기꺼이 받아들였고, 다른 나이트엘프들이 외부인들의 도움에 대한 편견으로 인해 마찰이 거의 발생하지 않았다는 점에 안도했다. 나이트엘프들은 한때 자신들만의 아름다운 도시에서 외부인들을 무시해왔으나, 더 이상 그들은 그럴 수 없는 처지였다. 오히려 대부분의 나이트엘프들은 텐트마저도 부족해 비바람을 피할 지붕마저도 부족한 상황이었다.

 

- 출처: 고대의 전쟁 3부 세계의 분리 (The Sundering) -

 

영원의 샘 주변에서 정착 생활을 하고 있었기에 영원의 샘 파괴로 인한 피해가 상당했던 나이트엘프와는 달리, 유목생활을 하던 타우렌은 사실 그다지 큰 피해를 겪었다고 하기는 어려웠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을 활용하여 타우렌은 한때 자신들의 적과 다름없었던 나이트엘프들의 위기에 도움을 주었다고 생각됩니다. 


물론 타우렌뿐만 아니라 알렉스트라샤, 이세라, 노즈도르무 등 세 용군단과 더불어 말퓨리온의 스승 세나리우스도 나이트엘프의 위기를 돕고자 노력한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나이트엘프와 적대적이지 않았던 다른 종족들과는 달리 타우렌들이 한때 적과 다름없었던 나이트엘프들의 위기를 외면하지 않고 도와주는 모습은 그 자체만으로도 굉장히 인상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후 1만년 간 나이트엘프와 타우렌 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들 두 종족은 기존의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새로운 우호 관계를 유지해 왔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리고 운명적이게도 두 종족은 1만년 후 3차 대전쟁에서 다시 연합하여 불타는 군단의 침공을 저지하는데 성공합니다.

 

이처럼 오랜 역사를 지닌 두 종족의 관계는 굉장히 특별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단적인 예로 나이트엘프 드루이드만으로 이루어진 세나리온 의회가 받아들인 최초의 외부종족도 타우렌입니다. 이는 최초의 외부 종족일뿐만 아니라 나이트엘프의 적대 진영인 호드의 종족 타우렌을 받아들일 정도로 깊은 신뢰 관계가 두 종족간 존재하지 않았다면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타우렌은 세나리온 의회가 받아들인 최초의 비(非) 나이트엘프 종족입니다)

 

또한 노스렌드 원정이 끝난 후, 분노의 관문 사건의 여파로 호드와 얼라이언스 간의 관계가 악화되어 전쟁 직전까지 치닿은 순간 양 진영의 갈등을 중재하기 위해 나선 것은 세나리온 의회 소속 타우렌과 나이트엘프 드루이드들이었습니다. (소설: 대격변의 전조) 안타깝게도 황혼의 망치단의 개입으로 이들의 평화 회담은 실패로 돌아가지만, 두 종족의 오랜 우호 관계를 보여주는 또 다른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현재 타우렌은 호드에 절대적으로 충성하고 있으며, 멸족의 위기에서 자신들을 구해준 스랄과 호드에 대한 의리를 잊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나이트엘프와 타우렌의 관계는 단순히 호드와 얼라이언스라는 두 적대 진영의 관계와는 다른 특별한 무언가가 있어 보입니다.

 

 

...역게에 글써보는건 처음이지만 쉬는 날이라 시간이 남아서 아는 대로 적은 졸작입니다 ㅎㅎ;;

너그럽게 봐주시고 지적해주실 점 있으시면 지적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