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평 전투>

1951년 4월 중공군의 춘계대공세로 유엔군과 국군은 속수무책으로 밀리는데.....

대패한 국군 6사단을 추격해오던 중공군 118사단 

만일 이 상태에서 경춘가도를 따라 중공군이 계속 남하한다면

서울의 안전도 장담할 수 없었다

1951년 4월 23일 가평도로와 계곡을 따라 내려오던 중공군은 

504고지에 매복해있던 영연방 27여단 소속 호주 3대대와  마주쳤으며

절대 밀려선 안되던 호주군은 전멸한다는 각오로 23일부터 25일까지 중공군과 치열한 사투를 벌여 막아냈다

 


이 전투의 승리로 중공군의 서울진입을 막아내고  유엔군은 다시 재정비하여 북한강 이남쪽에 전선을 구축할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