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격은 한순간이었다.

괴물이 사자의 도약을 눈치챘을때는 이미 사자의 육중한 몸이 괴물의 몸을 깔아 뭉갠 후였다. 하지만 그것은 괴물의 반응 속도가 느린탓이 아니었다. 사자의 습격이 그 만큼 날카롭고, 미처 반응하지 못할 정도로 빨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괴물은 미처 자신의 당황을 수습할 시간도 없었다. 괴물이 미처 작금의 상황에 반응하기 전에, 사자는 자신의 입을 거칠게 벌리며 외쳤다.


"싸우자!"


거대한 포효와 함께, 사자의 털이 곤두섰다.

당황스러웠다. 괴물은 그저 당황스러울 뿐이었다. 도저히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지금 대체 무슨일이 일어나고 있는것인가?

설마 이것은 도전인가?

괴물은 잠깐 동안이나마 그 가능성을 부정했다. 누가 감히 자신에게 도전한단 말인가? 최강의 생명체이자 최고의 포식자인 자신에게, 어떻게 감히 이빨을 드러낼 수 있단 말인가? 자신 외의 생명체는 모두 괴물의 사냥감이며 먹이이다. 먹이사슬의 최상단을 넘어선, 그 생태계 피라미드의 최고 위쪽 꼭지점에 위치한 괴물에게 어떻게, 누가, 감히?

하지만 괴물은 곧 자신에게 가해진 도전을 받아 들일 수 밖에 없었다. 자신의 가슴을 뚫고 들어오는 칼날의 감각과 자신의 면전에 대고 직접적으로 터트리는 포효를, 대체 다른 어떤것으로 이해한단 말인가.

그리고 다음 순간, 괴물은 알 수 있었다. 지금 사자가 하는 행동이 단순히 도전에서 머물지 않는다는 것을. 같은 사냥꾼이기에, 같은 포식자이기에 괴물은 깨달을 수 있었던 것이다.

사자는, 지금 자신을 '사냥'하려 하고 있다는 것을.

곧장 괴물의 분노로 가득찬 고함소리와 함께 괴물의 등에서 날개가 솟아올랐다. 등이 땅바닥에 붙어있었기에 그 펼쳐짐은 본래의 위력에 비하면 미천한 수준이었다. 그러나 그 정도의 펼쳐짐으로도, 사자의 육중한 몸 아래에 깔려 있던 괴물을 일으켜 세우기엔 충분했다.

기분 나쁘게 파라락 거리는 소리가 울려퍼지고, 거짓말처럼 괴물의 몸이 떠올랐다. 사자의 강인한 팔로도 그 도약을 막는것은 역부족이었다. 도약의 여파에 뒤로 물러나는 사자를 제치고 완전히 몸을 일으킨 괴물은 사자를 마주보며 자신의 머리를 숙였다.

괴물이 즉각적으로 그 낫과같은 앞발을 휘둘러 올것을 예상한 사자는 괴물의 동작에 당황했다. 그러나 고개를 숙인 괴물의 어깨에서 자신의 단검만큼이나 위협적인 가시들이 튀어나오자, 사자의 당황은 곧 진한 경악으로 바뀌었다.

발사된 가시의 속도는 회피를 불허. 그 짧은 순간에 사자는 모든것을 파악하고, 잠시나마 멈칫했던 자신에게 혀를 찼다.

그러나 사자는 역시 경이로운 사냥꾼이었다. 사자는 빠른 판단으로 회피 자체를 포기했다. 그리고 두팔을 들어올리며, 다가올 충격에 각오를 다졌다.

허나, 그 각오는 얼마나 미약한 것이었던가.

푸욱하는 파열음과 함께 사자의 뜨거운 붉은피가 허공으로 흩뿌려지고, 퍼엉하는 폭발음과 함께 핏줄기는 피보라로 바뀌었다.

사자는 자신의 각오를 아득히 넘어서는 충격에 본능적으로 뒤로 물러섰다. 몸의 곳곳에서 느껴지는 격통들은 자신의 몸상태가 치명적인 상태라는 것을 경고하고 있었고, 그것은 사자의 자존심마저 꺾을 정도의 위험감지였던 것이다.

그러나 당연스럽게도 괴물은 사자의 물러섬을 용납하지 않았다. 공허의 포식자는 사자의 물러섬에 사납게 기뻐하고 흉폭하게 비웃으며 아낌없이 분노했다. 그리고 그 분노는, 곧장 행동으로 실행되었다.

곧장 괴물의 날카로운 앞발이 휘둘러진다. 괴물의 앞발이 사납게 번뜩이고, 보통보다도 더욱 진득한 피가 허공으로 흩날렸다. 그리고 그 일격에서, 사자가 잃은것은 피 몇방울만이 아니었다.


"크악────!"


왼쪽 눈이 생으로 도려내어지는 끔찍한 격통에 사자는 결국 비명을 터트렸다. 허나 사자의 비명은 격통만이 원인은 아니었다. 비추어지는 세상의 반이 암흑으로 뒤덮여 버리는 악몽같은 상실감이, 생눈을 도려내는 격통보다도 더 치명적으로 사자의 목청을 쥐어 짜내었던 것이다.

그 비명에 괴물은 승리의 미소를 머금었다. 사냥감의 비명이야 말로, 포식자에게 있어 최대의 기쁨이 된다는 것은 더 설명할 필요도 없는 사실인것이다. 괴물은 심연에서 끓어오르는 듯한 목소리로 웃으며, 사냥의 막바지에서 오는 희열감에 젖어 외쳤다.


"도망치다 죽어라!"


그것은 포식자가 사냥감에게 할 수 있는 권리들 중 하나이자 사냥꾼이 가지는 기쁨들 중 하나였다. 사냥감의 마지막을 음미하고 즐기는, 오직 사냥꾼만이 가질 수 있는 행복. 즉, 죽어가는 상대에 대한 조롱이었다.

그런 조롱을 상대에게 던지는 괴물의 성급한 기쁨을 탓할 수는 없을 것이다. 허나 이 조롱은 이 자리에서 분명한 실수였다. 괴물은 자신이 조롱하는 상대가, 이 숲 최고의 사냥꾼이라는 사실을 미처 알지 못했던 것이다.

사냥감에게만 던져지는것이 허용된 그 조롱을, 사냥꾼인 사자가 견딜 수 있을리가 없었다. 사자는 그 조롱을 듣는 순간, 고통을 잊었다.

이미 멀어버리고 피에 젖은지 오래인 죽은 눈이 다시 부릅 떠졌다.

괴물의 가시에 의해 구멍이 뚫린 근육들이 사자의 의지에 의해 팽창했다.

그런 무모한 행위를 따르는 격통들도 지금의 사자에겐 무의미했다. 지금 사자가 정말로 고통스러운 곳은 구멍이 뚫린 몸도, 멀어버린 왼쪽 눈도 아니었으니까.

지금 사자는, 그 어느곳 보다도, 자존심이 더욱더 깊이 고통스러웠던 것이다.


"크아아아아아아────!!!"


그 포효의 잔향이 채 다 흩어지기도 전에, 사자의 몸이 괴물을 향해 날았다.

승리를 확신하고 있던 괴물의 목에 단검이 박히고, 보랏빛 피가, 하늘을 날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