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의 단검이 목을 꿰뚫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괴물은 물러서지 않았다.

괴물의 앞발이 배를 헤집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자는 물러서지 않았다.

방어가 없다. 후퇴가 없다. 오직 서로의 뼈를 깎기 위해 아낌없이 자신의 살을 내주고 있었다. 그것은 유혈이 낭자한 백병전이었으며, 가장 원초적이자 순수한 싸움이었다. 그야말로 이 두 야성의 사냥꾼들에게 있어 가장 어울리는 싸움이라 할만 하리라.

그러나 그런 난폭한 싸움도 오래가진 못한다. 두가지 색의 피가 경쟁하듯 주변의 나무를 물들이고, 각기 다른 감촉의 살점들이 주위의 바위를 칠하는 가운데, 결국 먼저 물러선것은 괴물이었다.

근접전에서는 자신의 유연한 몸이 사자의 거대한 몸보다 불리하다고 괴물은 판단했다. 그리고 그것은 분명 옳은 선택이었다. 괴물의 날렵함은 근접한 사자의 강인함에 대적하기 힘들었으니까.

당연히 사자가 그 모습을 방관할리 없었다. 사자의 두터운 발이 대지를 박차며, 보라색 피로 점칠된 단검이 괴물을 향해 내리꽂혔다.

그 날카로운 일격이야 말로 이 싸움을 단번에 결정지을만큼의 힘이 실려 있었고, 괴물의 머리가 두동강이 나는 것은 시간 문제나 다름 없을 정도였다. 그렇게 싸움은, 이미 결정된것만 같았다.

허나 칼날은 허공을 갈랐고, 그로 인해 사자는 중심을 잃고 비틀거렸다.

재빨리 다시 중심을 잡은 사자는 자신의 칼날을 피한 괴물에게 후속타를 가하기 위해 흉폭한 눈을 빛냈다. 허나 사자의 흉폭함은 곧 당황으로 바뀔 수 밖에 없었다. 이제는 하나밖에 남지 않은 눈을 부릅뜨고 주변을 살펴보아도 사자는 괴물의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던 것이다.

마치 증발해버린 듯한 괴물의 존재에 사자는 본능적으로 방어본능을 느끼며 뒤로 물러섰다. 허나 그런 사자의 뒷걸음질은, 등을 가르는 괴물의 일격에 좌절될 수 밖에 없었다.

촤아악────!

사자의 등에서 뿜어진 핏줄기의 끈적한 파열음이, 사자의 비명을 대신했다.

사자의 이가 으득거리며 맞물렸다. 그대로 자신의 거대한 상처를 돌볼법도 하건만, 사자는 자신의 등을 돌아보는 대신 자신의 등 뒤로 다시 한번 단검을 날리는 것을 택했다. 그리고 그 선택은 보상받았다. 사자의 극기심으로 뭉친 일격은, 괴물이 재차 가해오는 공격을 막는 방패가 되어 주었으니까.


"크핫!"


괴물의 비웃음소리가 허공으로 흩어졌다. 그 모습을 불타는 눈으로 주시하던 사자는 다시 한번 이를 갈 수 밖에 없었다. 괴물의 그 보랏빛 갑각이 마치 공기에 스며들듯 투명해지며, 그 치명적인 몸뚱이의 모습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졌기 때문이다.

사자는 방어를 포기했다. 당연하다. 아무리 방어를 하려 해도, 그 체취마저 감추어 버린 괴물의 공격을 막을 수는 없었으니까.

이번에는 허벅지였다. 본래라면 복부가 되었을테지. 그러나 사자의 그 경이로운 야성은 괴물의 필살의 일격을 빗나가게 해주었다. 그러나 공격당한 부위가 복부건 허벅지건 간에 그것이 치명타인건 바뀌지 않으리라.

다시한번 핏줄기가 솟구친다. 그리고 마치 그 핏줄기를 상하로 가르듯이, 사자의 단검이 휘둘러졌다.

허나 이번에도 허탕이다. 사자의 단검은 다시 한번 허공을 가를 뿐이었다. 이를 악물고 통증을 버티는 사자의 눈 앞에, 괴물은 사라질때 처럼 허공에 투영되듯 나타나 웃음을 터트렸다.


"────!"


사자는 낮게 울부짖으며 다시 한번 단검을 날렸지만, 또다시 괴물은 안개처럼 모습을 감추었다. 계속해서 펼쳐지는 괴물의 은신에, 사자는 허공을 가른 단검을 고쳐쥐며 자세를 낮추었다.

사자는 공기의 흐름이 바뀐것을 느꼇다. 강자로서의 노련함 덕분이었을까, 사냥꾼으로서의 육감 때문이었을까. 마치 처음 부터 알고 있었던 사실 처럼 사자는 깨달을 수 있었다.

괴물은, 지금 마지막 일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흥....! 미개한 족속!"


그러나 사자는 그 사실에 당황하지도, 불안해 하지도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 얼굴을 일그러트려 비웃음마저 머금고 있었다. 그 웃음에는 굉장히 많은 것들이 깃들어 있었지만, 그 중 가장 돋보이는 감정은 다름 아닌 당당함이 깃든 우쭐함이었다.

순간, 듣기 힘들 정도의 낮은 포효소리가 수풀을 흔들었다.

그것은 선언이었다. 가소로움과 우월함이 담긴 사냥꾼의 선언. 공기가 떨리고, 초목이 긴장하며, 숲은 두려움에 빠진듯이 한바탕 경련을 일으켰다. 그리고 다음 순간, 겨우겨우 경련을 멈춘 그 숲 위에, 사자의 모습은 이미 없었다.


"!"


사라져 버린 사자의 존재에, 괴물은 경악을 감출 수 없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괴물은 그 경악마저 마음껏 누릴 수 없었다.


"보인다....이 하찮은 것!"


허공. 분명 아무것도 없는 빈 공간이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그 비어있던 공간의 틈새에서 솟아 나듯이 사자가 모습을 드러 내었다. 그 백색의 갈기는 완전히 비어 있던 공간과 커다란 대조를 이루며, 역시 아무것도 없는 공간을 향해 날았다.

모습을 감추고 있던 괴물은 자신의 위치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덤벼드는 사자의 모습에 당황을 감추지 못하고 뒤로 크게 물러섰다. 허나 그 후퇴는 좌절될 수 밖에 없었다. 사자 만큼이나 급작스럽게 날아든 올가미가 날아 들어, 괴물의 몸을 완전히 휘감아 버렸으니까.

몸을 구속하는 올가미의 존재에 괴물이 비틀거린다. 꿈틀거리는 올가미의 경련에, 사자는 비웃음을 담아 외쳤다.


"넘어지지 마라!"


괴물은 몸을 숨기고 있는것 조차 망각한채 사납게 울부짖으며 몸에 얽힌 올가미를 풀어내기 위해 애썻다. 올가미는 마치 허공을 구속하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고, 보이지 않는 괴물을 구속하며 쉴새 없이 날뛰고 있었다.

그러나 그 난폭한 움직임은, 착지와 함게 거대한 호를 그리며 베어지는 사자의 단검에 의해 힘없이 멈출 수 밖에 없었다.

보랏빛의 피가 빈 공간에서 터져 나오고, 괴물은 모습을 드러내며 뒤로 물러섰다. 사자의 단검에 의해서 잘려나간 올가미가 괴물의 몸에서 풀려 나왔지만, 괴물은 되찾은 자유를 기뻐할 틈도 없었다. 괴물은 몸을 관통하는 격통에 이를 갈며 자신의 몸을 내려다 보았다.

굉장한 상처였다. 왼쪽 어깨부터 시작한 상처는 배를 지나 오른쪽 허벅지까지 길게 그어져 있었다. 깊디 깊은 그 상처는 울컥거리며 피 이상의 진액을 쏟아 내었고, 그 체액은 잘려나간 올가미줄과 함께 후두둑 소리를 내며 떨어지고 있었다. 제대로 움직이기 힘들 정도의 상처에, 괴물은 분노를 감출 수 없었다.

그것은 분명 괴물에게 있어 치명적인 상처였지만, 사자 역시 그리 좋은 상태가 아니었다. 몸 여기저기에 뚫린 구멍에서는 붉은 피가 쉼없이 흘러 나오고 있었고, 갈라진 배 역시 내부의 장기를 간신히 붙들어 놓고 있는 정도였다.

사자와 괴물은 각각 자신의 치명적인 몸상태를 잘 알고 있었고, 때문에 두 사냥꾼은 지금에 이르러선 숨을 헐떡이며 타오르는 눈빛만을 교환하고 있을 뿐이었다.


"미천한....짐승....!"


그 대립중에 먼저 입을 연것은 괴물이었다. 사자가 그 모습을 말없이 노려보는 가운데, 괴물은 피가 가득 맺힌 입을 벌려 끓어오르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다시 만난다면 뼈까지 먹어주마....!"


말이 끝남과 동시에 괴물의 엉망으로 훼손된 날개가 펼쳐졌다. 거대한 도약과 흙먼지의 비산이 이어지고, 다음 순간 괴물은 울창한 수풀 속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평소의 사자였다면 절대로 그 물러섬을 허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사자는 움직일 수 없었다. 게다가 그 용맹스러운 가슴의 깊은 곳에서는, 상대가 먼저 물러난 것에 대한 안도감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있었다.


"....!"


사자는 그 감정을 느꼇고, 때문에 수치스러움을 참기 힘들었다. 사자는 울부짖고자 했다. 거대한 포효로 이 수치스러움을 날려버리고 싶었다. 자신의 가슴에서 피어오르는 이 감정을, 자신의 야성으로 덮어버리고 싶었다.

그러나,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갑작스레 사자의 가슴속에서 열병과도 같은 뜨거운것이 치밀어 올랐다. 그것은 농밀한 화농처럼 사자의 가슴을 타고 솟아 오르며, 기어코는 사자의 전신에 퍼져 나갔다. 그것은 거대한 고통이었고, 또한 커다란 슬픔이었다.

사자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무릎을 꿇었다.







이렇게 숲의 싸움은 끝났다. 아니, 미루어졌다고 하는것이 더 옳으리라. 왜냐하면 이 두 사냥꾼들, 즉 싸움의 장본인들이 싸움의 끝을 인정하지 않았으니까.

괴물은 몸의 치유를 위해 강한 생명체들을 먹어야 했지만, 상처입은 몸으로는 가장 작은 생물들 밖에 잡을 수 없었다. 괴물은 약해진 자신의 몸에 끊임없이 분노하며, 끊임 없이 사냥을 계속했다.

괴물은 더 강해져야만 했다. 반드시 더 강해져야만 했다. 당연한 이야기다. 사자같은 생명체를 사냥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그만큼은 더 강해져야 한다는 뜻이니까.

괴물은 맞서 싸웠던 사자를, 반드시 잡아 먹으리라 맹세했다.







사자는 자신의 은신처에서 끊임없는 열병에 시달렸다. 정신이 아득해지는 고통속에서, 사자는 수치스러움 외에도 기쁨을 느낄 수 있었다. 적어도 사자는, 그리고 사자의 사냥은 더 크고 새로운 목표를 찾아 내었으니까.

그 괴물의 머리를 장식해 놓을 장식대를 바라보며, 사자는 고통속에서도 미소지었다.

사자는 반드시 그 괴물의 목을 가지고 말리라 맹세했다.







최고의 사냥꾼은 결국 결정되지 못했다. 그러나 상관 없었다. 두 사냥꾼은 각자의 이를 갈며, 다음의 싸움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