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고?"
 더글러스와 레드필드뿐만 아니라, 청문회에 참석한 모든 소환사들이 말했다. 몇초전과는 다른 그녀의 강경한 태도에 말이다.

"그러고보니 저 말투는... 엘리스의 말투가 아닌듯한데."
"수정구로 확인을 좀 해보라고."
 수정구에 가장 가까이 앉아있는 두 소환사는 그 말이 들리자마자 두말할것없이 그것을 활용했다.

 더글러스는 판 위의 수정구를 들어올려서 엘리스를 비췄다. 무색이었던 수정구가 뿌옇게 변해 엘리스의 머리속을 보여줬다.

 어린 소녀, 그림자 군도, 신도, 거미교, 말자하, 좌절, 혼란 등 다양한 생각들이 어지럽게 즐비했다만... 소환사를 놀라게 한 것은 바로 이것이었다.

'검은색 실루엣?'

여러 기억들이 둥둥 떠다니다가 검은색 실루엣에 모든 것이 가려진다. 그리고 그 현상이 끝없이 반복되었다.

 그리고 그 실루엣 앞에서 한 사람이 보였다. 엘리스였다. 지금 육안으로 보이는 엘리스와는 다른 느낌을 주는 엘리스가.

'전에 이런 적이 없었는데, 이 기운이 어째서...'

"무엇에 사로잡힌건가. 이녀석은."
 검은색 실루엣이 걷힌 뒤에도 그녀는 무언가에 붇잡혀있다는듯이 괴로워하고 있었다.


"레드필드, 좀 곤란해졌다."
"무엇을 말이지."
 수정구에서 시선을 뗀 더글러스가 말했다.

"지금 우리가 보고있는 엘리스가 평소의 엘리스가 아닌것은 맞지?"
"그런것 같군."
"굳이 이런 청문회에서 '그녀의 신'이 강제적으로 조종하고있는 이유를 모르겠군. 자기에게 패널티가 온다는걸 모르는건가."
 옆에 있는 다른 소환사가 끼어들어 말했다.

"엘리스 본인도 대답을 못하는 질문인것 같고, 그녀가 모시는 신은 답을 하지 않는다. 나중을 기약하는게 어떤가?"
"무슨 소리를 하는건가. 이미 저자의 죄는 변하지 않아!"

 레드필드가 다른 소환사가 했던 말을 해석해서 말했다.

"벌을 준 다음에 다시 청문회를 연다는 뜻인가?"

 엘리스는 눈을 떴다. 사방에서 죽음의 기운이 몰려왔다. 평범한 사람이 살기는커녕 잠깐 발을 밟는것조차 상당한 용기를 가져야하는 이곳. 그림자 군도에 있었다.

"여기가 그림자 군도인가..."
 그런데 이곳에 터를 잡고 사는 그녀답지 않은 대사가 나왔다. 입에서 저절로.

'?'

"어이 여기야! 이곳이다!"
 등뒤에서 들려오는 사내의 고함. 고개를 돌려보니 각 구역을 수색한듯한 사람들이 소리를 지른 사내의 옆으로 가고있었다.

'죽으려고 온건가... 어리석은 자들.'

"거기 신참! 너 안오고 뭐하는거냐!"
'나?'

 자신을 향해 말하는 것 같다.

'반말을 하는걸 보니 거미교 신도들은 아니고, 챔피언은 더더욱 아니다. 그런데 왜 내게 반말인거지?'

 생각해보니 거미 여왕이라 불리는 자기에게 호칭이 매우 거칠었다.

"...네, 갑니다."

'어?'

 엘리스가 말하려는것은 머리속에서만 맴돌고, 예상치 못한 대답은 잘도 말하고있다. '대체 무슨 일이지.'하면서 손으로 입을 막으려했는데...

'감촉이...'

 자기가 알고있는 자신의 입술이 아니었다. 그녀의 어둠과 섹시함을 나타내는, 부드러운 감촉이 나지 않았다.


 엘리스는 자신의 침대에서 일어났다. 평소와는 다른 꿈을 꾸면서. 기분좋은 꿈을 꾸면서 행복하게 하루를 시작하는 일상에서 벗어난 시작이었다.

 고개를 돌려보니 오늘도 새끼거미들이 아양을... 떨고있지 않았다. 그 느낌을 엘리스도 알아차렸고, 새끼거미를 주의깊게 바라보았다. 소환사와 소환수의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친근감이 넘쳐나는 사이였지만 지금은 공격적인 자세를 취하며 적대시하는것 같았다.

'뭐지 이녀석들... 그러고보니 오늘 뭐하는 날인가... 어제 무슨 일이 있었지?'

문뜩 든 생각, 그 생각은 그녀를 다급하게 만들었다. 엘리스는 온 힘을 다해 어제 일어난 사건이나 자기가 한 일에 대해서 회상을 하려고 했으나 실패.
 아직도 이상한 꿈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는지, 지금의 날짜개념을 통째로 까먹었다. 하는 수 없이 TV를 켜서 보기 시작했다.

"TV."
엘리스의 시야 맨 끝에서 파란 빛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두루마리처럼 말려진 빛에서 들리는 전원소리.

ㄴ시작합니다. 원하시는 채널은 손가락을 위아래로, 음량은 좌우로 밀어주세요... RGN 뉴스입니다...ㄱ
"7월 1일이군. 시간은 8시..."
ㄴ네, 오늘 뉴스는 처음부터 떠들석한 사건에 대해 언급하려고 합니다. 바로 자운시에서 일어난 종교대립인데요...ㄱ
"그래, 말자하라는 녀석이 있었지.  맞다. 재판을 받는다고..."
 엘리스는 할 말을 잃었다. 재판 날짜는 6월 30일, 어제였다. 어젯동안 일어난 일은 하나도 떠오르지 않는 지금, 그녀는 당황해하면서 스크린에 온 힘을 기울여 집중을 했다. 어제의 기억을 찾기 위해 오늘의 소식을 들려주는 뉴스에 온 힘을 주고 있는 엘리스의 행동이 아이러니한건 기분탓인가?

ㄴ네... 엘리스와 말자하 챔피언은 '거미교','공허교'의 사제, 우두머리로서 이 대립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제 6월 30일, 전쟁학회에 참여했습니다.ㄱ

'그런 건 제게 크게 상관이 없습니다, 호호호. 재판의 결과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지만, 예정된 결말을 직접 체험하고 싶군요.'

 자운에서 말자하와 의장을 상대로 허세를 마음껏 내뿜은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다. 비록 자의가 아니었다고 해도 그 정도의 자신감을 가지고 재판에서 승리했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감을 걸었다.

ㄴ청문회 결과, 소환사는 말자하보다 엘리스의 죄가 크다고 판단,ㄱ
"음? 재판이 아니라 청문회?"
ㄴ엘리스에게 말자하보다 더욱 강한 처벌을 내렸습니다. 엘리스는 6개월간 소환사의 자격을 박탈당했고, '거미교'는 폐단되었습니다. 또한 영구적으로 종교활동이 금지되었습니다.

 

 툭, 무슨 소리일까. 엘리스가 충격을 받은 나머지 팔을 바닥에 떨구는 소리같지만, 동시에 내면적 충격이 가해지는 소리일 것이다. 이어서 짤막하게 보여주는 엘리스와 말자하의 청문회장면. 첫 질문장면만 보면 분위기는 비슷했다. 소환사에게 거짓없이 답하기위해 살짝 진을빼는듯했지만 반응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ㄴ그래.ㄱ
 자신의 목소리에 다시 시선을 돌린 엘리스. TV 속의 그녀는 그동안의 말투와는 다르게 단호하게, 소환사를 향해 반말을했다. 잠시 놀란듯한 소환사를 향해 자기가 말한 그 한마디는...

ㄴ소환사... 어차피 나에게 다가올 내용은 바뀌지 않는걸 알고있다. 나 역시 인정하겠다. 그러니, 내게 묻지 말아라.ㄱ

 상황에 걸맞지 않은 차분함,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데도 죄책감을 가지지 않은듯한 표정. 동시에 느껴지는 소름.

ㄴ엘리스에게 제대로 된 대답을 듣기 힘들어지자, 소환사는 다른 방식으로 청문회를 진행했습니다. 엘리스의 내면으로 들어가 내면의 엘리스를 상대로 질의응답을 시도했는데요, 이 방법마저 그녀의 돌발행위를 중재시키지 못했습니다.ㄱ
 이어서 펼쳐지는 이상한 광경. 검은색 실루엣이 사라지면서 엘리스 자신이 온몸을 사시나무떨듯 떨고 있었다.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잡혀있는듯했고 숨쉬는것마저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못한듯 켁켁거리고있었다.
<계속>

<글쓴이의 말>

 

 루시안의 대사가 없어지고 자신의 신에게 빙의된 엘리스의 모습으로 바꿨습니다. 전보다는 나은 전개같네요. 휴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