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무엇때문에 나를 찾아오는건가.'

 엘리스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처음 든 생각은 이것이었다. 왜 자기인가. 어딘가에서 무슨 단서나 정보같은 것으로 찾아올 가능성은 있다. 그러나 왜 자기에게 오는지에 대한 생각의 답은 떠오르지 않았다.

"궁금하군. 내가 너하고 대화하고픈 바람을 들어주려 내 앞에 나타난것은 아닐텐데."

"미행한 것에 대해선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싶어."

"그럼 하고 싶은게 아니라 벌써 했어야하는거 아닌가. 뭐 좋아. 어차피 이곳으로 걸어온 것도 네 미행을 알아차린 뒤였거든."

 엘리스는 걸음을 멈췄다. 마오카이의 말에 뭔가가 숨겨져있음을 직감적으로 알아채버렸다. 그것이 좋은 예감이 아님은 분명할뿐더러 자신이 그에게 온 목적을 이룰수 있는지에 대한 회의감도 느껴졌다. 머리속이 복잡해지면서 엘리스는 마오카이의 얼굴을 바라보기위해 들었던 고개가 떨궈졌다.

"왜 고개를 떨군 것인가 엘리스. 대화의 시작은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는것이 아닌가?"
 그러나 마오카이는 즉각 엘리스의 행동이 바뀐걸 알아차렸다. 엘리스는 자신과 마오카이가 서있는 공간의 위치사이의 장벽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 장벽은 자신은 넘길 꺼려하지만 넘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는 존재다.

 

 배경이 산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마오카이의 육체는 주변의 나무와 대조되었다. 고목에 가까워보일 정도로 생동감이 없는 육체와는 반대로 눈을 비추는 푸른색 빛은 그를 살아있는 존재로 부각시켜주었다. 나무는 자신의 가지나 잎으로 무성함을 과시하지만 마오카이처럼 특정부분만 빛내면서 생동감을 내세우지 않는다. 일반인의 2배에 달하는 체격을 가진 거구에도 불구하고 주변의 울창한 숲에의해 그의 육체는 비교적 작아보였다. 그런 마오카이보다도 작은 그녀가 가슴을 당당히 펴고 서있기란...

"그래서 무엇을 이야기하기위해 날 찾아왔는가 거미 여왕."

"내 이야기를 좀 들어줬음 하는데..."
"그 이야기의 결론을 말하라."

 마오카이는 엘리스가 무엇을 요구하러온건지 대충 짐작한듯했다. 그와 동시에 평상시에 그녀에게 가진 증오심은 일련의 이야기를 일절 부정하게 만들었다.

"... 내... 기억을 찾는데 도와줬음 해."

"그런걸로 나를 찾아온건가. 왜 하필 나에게 부탁하는거지?"
 마오카이는 생각할 가치도 없다는듯이 답변을 했다. 너무나도 빠른 답변은 오히려 엘리스에게 무거운 심정을 가중시켰다.

"딱봐도 알겠군. 그동안 저지른 일에 눈곱만큼의 반성이라도 해보려고 그림자 군도를 빠져나왔는데 뭘 해야 할지는 모르겠고 가는곳마다 눈총을 받으니까 그 해결책을 알려줄 조력자를 원했겠지. 안그런가?"
 "그건 아니야."

"...아니라고?"

 비꼬는듯한 억양이 삽시간에 가라앉으면서 차가운 반증이 엘리스에게 다가왔다.  그녀의 말이 도저히 납득이 가지않는말로 들을 것이고 엘리스 입장에서는 마오카이의 태도에 자비란 눈곱만치도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 태도에 답답함을 느낌에도 자기가 최근에 겪은 사건들을 얘기하지않고있는 이유는 들어줄거라는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엘리스는 알고있다. 자기가 한 말들이 어설프기 짝이없고 아무도 설득시키지 못한다는걸. 그런데 아무말도 하지않으면 기회는 날아가버린다. 감정에 호소하는 말이 전장 외에서 처음만나는 챔피언에게 통한다는 상식은 듣도보도못한 소문이다. 마오카이가 증오에찬 눈으로 엘리스를 쏘아보며 말했다.

"넌 그동안 네가 해왔던짓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있나?"
"? 그거야 당연히 알려져선 안될 짓이지..."

 어깨가 움츠러듬과 동시에 몸이 작아지는듯한 착각이 들었다고 무방할 엘리스의 몸. 마오카이는 기어들어가는 그녀의 태도에 아랑곳하지않았다.

"그게 다인가."
'이게 틀린 말인가?'

"내 젊음을 위해서 남을 속인 일... 정직하지 못한 행동이었지."

"..."

'도덕적으로 옳지 않은 일이라고 말한 것 같은데 왜 표정이 저런거지?'
 엘리스는 마오카이의 눈치를 보면서 기가 죽어갔고,  마오카이는 자신이 시간을 줘봤자 그녀의 입에서 원하는 말이 나오지 않음에 불쾌해했다.

"너는 참... 네가 저질러온 행동을 꼭 남이 저지른 행동을 평가하는듯이 말하는군."

 마오카이는 양손에 주먹을 쥔 채 엘리스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엘리스가 가만히 서서 그의 음영에 가득찬 얼굴을 감상할리가 없다. 마오카이가 앞으로 걸어올수록 그녀의 힐도 뒤로 움직였다.

"그런 유약한 반성을 한 채로 나를 찾아온건가? 그런 주제에 감히 나를 찾아온 배짱은 과연... 무모하기 짝이 없군."

 엘리스는 놀라는 행위 그 이외의 행동을 취할 수가 없었다. 마오카이가 그녀를 만나서 물어본 첫마디는 그녀 입장에서는 예상 밖의 물음이었다. 도움을 청하러 왔는데 자신이 그동안 해온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말해보라니.

"'결자해지'다. 네 죄는 네가 해결해야하는 것이다. 그 와중에 나타나는 난관도 네가 이겨나가야하는거란 말이다. 그리고 말이지, 수백, 수천명을 잡아먹은 행동을 종교활동으로 무마한 사람의 죄가 그렇게 단기간에 씻겨나갈줄 아는건가? 아니, 아니다. 너는 그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네 사리사욕을 채웠다. 그 죄는 죽을때까지도 갚을 수 없다."

'...!'

"필트오버에서 널 언제 처음본줄 아나?"
 엘리스가 서있는 쪽으로 그림자가 길어져왔다. 엘리스는 다가오는 마오카이의 기에 눌려서 뒷걸음질을 치다가 있는지도 몰랐던 무언가에 걸려서 넘어졌다. 땅바닥에서 올려다보는 마오카이의 형체는 서서 봤을때보다 훨씬 거대했다. 급히 일어나려 움직인 그녀의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엘리스의 상의에 네크라인에 힘이 가해져 그녀의 몸을 들어올렸다. 네크라인이 늘어진 티셔츠는 그녀의 몸뚱아리를 잡아주는동안 서서히 망가져갔다.

"강연을 들으러 왔을때부터다. 내 웃음소리가 그렇게도 듣기 좋았는가? 그래. 처음에는 화도나지않았고 기쁘지도 않았지만, 그 뒤에 네모습을 보고 기분이 나빠졌지. 무슨말을 하는진 알겠지?"
 숨이 막혀왔다. 마오카이가 잡고있는것은 그녀의 옷자락밖에 없는데도 숨이 막혀왔다. 마오카이의 표정은 평상시와 똑같았다. 변한 것은 화내지 않고 내는 낮은 말투가 오히려 부담이 되고있었다.

"그게 네가 여기까지와서 하고싶은 말의 전부였나? 내가 할말은 여기까지다. 네 신이 너의 사회생활을 어떻게 망가뜨렸는지 모르지만, 나는 네 태도에 할말을 잃었기에 더 이상의 대화를 잇고싶지는 않다."

"미...안...해..."
 뭔가, 이 상황에 말할 문장이 필요했다. 그런 느낌이 들었다. 가슴이 아니라 머리에서 유추해낸 기계적인 말임에도 불구하고.

"네 고통만 아픔이라 생각하는 자기중심적 마녀에게 들을 말이 아니다."
 엘리스의 사과마저 냉정하게 뿌리치는 마오카이는 이말을 남겼다.

"사라져라."
 엘리스의 몸뚱아리는 마오카이의 거대한 힘에 의해 저 멀리까지 날아갔다. 무엇이 그녀를 집어던졌는가? 모른다. 어디로? 모른다. 찰나의 순간동안 벌어진일을 엘리스는 받아들이지 못했다.

 거미 여왕의 공중비행은 그리 오래가지못했다. 그녀가 날아가는 방향엔 수많은 나무들이 서있었고 잠시 후 눈이 확 떠질 정도로 강한 충격들이 가해졌다.

 

 마오카이는 자기가 힘을 주어 무언가를 던진쪽에서 바위와 나무가 맞부딪히는듯한 소리를 들었다. 그 소리를 무감각하게 받아들인 그는 산을 내려갔다. 주변 배경과 하늘을 바탕으로 예상을 해볼 때 지금이 6시가 되었다는걸 짐작할 수 있었다. 마오카이는 자신의 그림자가 길어지는것을 묵묵히 응시했다.

'녀석은 이 그림자와 내 말투에 놀란 것인가.'

 6시였다. 그림자가 길어지기는 했지만 광원을 무시할 정도의 명암도 갖지못했고 아직은 주변도 밝았다. 마오카이는 방금 전 엘리스가 보인 표정이 다소 과장된 연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니었다. 그정도 연기력이 있었으면 이런 장소로 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무모해보이지만 싸움을 건다거나, 아니면 사람들이 다니는 거리에서 말을 하던가. 물론 마오카이는 엘리스를 잘 모르기 때문에 다른 모종이 이유가 있을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그 이유를 정의하지 못한 지금으로서는 의미심장함만이 그의 마음속에 남아있다.

'너는 어떠한 상황이었기에 그렇게 두려워하는 거였나...'

"...네가 강연을 할 때 무슨 말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뒤에서 몇십미터나 날아가 기절해있어야 할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의 목소리는 안봐도 뻔했다. 마오카이는 그렇기에 뒤를 돌아보지않았다. 다만 상대방이 자신에게서 얼마나 멀리 떨어져있는지 어림잡고 있었다.

'10m,5m,3m,2m,1m 이내... 튀어오른다. 공중 3m에서 전방으로 비행, 그리고-'

 

파박-

 

 요란스럽지 않게, 소리 하나하나마다 깊은 착지음을 내면서, 자세를 낮추면서, 엘리스는 두발과 왼팔을 땅에 짚은채 착지해보였다.

"적어도 네 배경을 모르진 않거든."

"너와의 대화는 끝났다고 하지 않았는가. 비켜라."
"그쪽도 사정이 딱하더군. 나를 도와주면 그쪽의 목표를 이루는데 협조해줄게. 그만하면 충분하지 않아?"
 폼나는 자세로 착지한 다음 고개만 까딱들면서 거래를 제시하는 엘리스. 그녀의 말을 듣자 마오카이에게 있어서 움직이기 힘들어보이는 눈썹이 찌푸려졌다.

"네녀석이 바라는건 결국 동료가 아닌 '용병'이었군. 그런가?"

"그렇게 너 자신을 용병으로 비하하는게 더 아닌것 같은데 동료."
"동료라고 부르면서 '그 기운'을 온몸에 풍긴채 나에게 다가온건 대체 무슨의미인거지?"
 자기가 내던진 엘리스는 반팔티에다가 짧은 청바지차림으로 캐쥬얼함을 내보였다.

 

 ...그랬던 그녀가 챔피언 복장으로 등장했다.

'가방...?'

 있었던 것 같긴 하다. 하지만 복장이 문제가 아니었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저 눈이다... 라고 마오카이는 되새겼다. 엘리스의 눈은 다시 붉은색으로 적셔져있었다.

"마지막으로 한번의 기회를 더 달라는 의미지."
"그 '사악한 기운'을 지닌 '챔피언'이 가질 기회? 거절한다면 어쩔텐가?"

"네가 말하는 거절은 지금의 너로선 할 수 없는 답안이야."
 엘리스는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마오카이의 말을 단정지었다.

"이런 모습으로 나타난 나를 네가 곱게 대해줄리가 없을테니까."
 떡갈나무는 잠시 놀란듯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그는 천천히, 점차적으로 웃기 시작했다. 그 나무의 웃음소리가 커질수록, 발원지를 알 수 없는 바람들이 거세게 몰아쳤다. 거미 여왕은 그 음흉한 미소를 미동도없이 유지해냈다. 검붉은색 입술의 입술과 짙은 아이라인이 다시 어둡게 변한 그녀를 치장했다. 청문회를 받기 이전의 엘리스와 똑같이.

"꿰뚫어봤군. 좋다. 그 논리를 봐서라도 '챔피언'으로서의 기회를 지금 주마."
 엘리스는 피식 웃어보이고는 마오카이의 신경을 거스르는 질문을 했다.

"어이, 정말 그러다 내가 원하는 상황대로 전개가 된다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
 마오카이는 아무런 표정변화없이 답했다.

"그렇게 일어날리 없다는 뜻이지."

<계속>

 

<작품의 원활한 진행을 위한 원작vs팬픽 설정 비교>

 
마오카이
 
 
원작 : 아주 먼 옛날에 바다밑에서 솟아오른 군도와 같은 탄생된 존재입니다. 그는 군도의 땅밑에서 뿜어나오는 무한한 에너지를 찾아내는 마법의 샘물(*3화에서 언급된것에 따르면 '영원의 물')이었습니다. 그는 그것을 이용하여 군도에 수백 그루의 묘목을 심었고 군도를 찾아온 인간들과 학자 모임을 조성해 세계의 불가사의를 연구해나갔습니다.
 하지만 왕비의 죽음때문에 군도를 찾아온 일행이 다가왔고, 군도는 몰락하게 됩니다. 무엇때문에 몰락했는지, 그가 어떻게 살아남았는지는 3화의의 그림자 군도 원작설정란을 보시길...
 
팬픽(현 작품) : 군도의 대몰락을 겪은 이후 자연을 소중히 여기려는 성향이 원작에 비해 훨씬 강해졌습니다. 그리고 원작과 똑같이 군도를 예전과 같은 곳으로 되살릴려고 노력하죠. 하지만...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해왔습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사람들에게 마법을 신중히 사용하길 강조하며, 전장에서 자신의 힘을 키워나가는 것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그에게 엘리스가 찾아왔습니다.
 
과연 마오카이는 어떻게 될지...
 
<글쓴이의 말>
 
어... 이번 주 일요일 밤까지 한 편밖에 업로드를 안했네요...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