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스의 말을 듣고 실망할 거리가 확실히 생겨버린 마오카이는 고개를 푹 숙였고, 카사딘은 전부터 그녀에게만 냉대했던 태도를 이어가면서 한마디 일침을 했다.

"이해할 수 없군. 하지만 네가 그런 짓을 할 줄 알았다."
 리신은 부동자세를 유지하고있었지만 얼굴과 팔에 힘이 잔뜩 들어간채 부들부들 떨고있었다. 엘리스에게 공격을 가하려는 의지를 꾹꾹 누르고있는게 눈에 보여서그런지 그녀는 자신이 한 일의 심각성을 알고 있었다.

"...쨌든 소인이 본 그 당시의 사건을 말해주겠소. 일부러 비를 맞으며 서있던 그대는 거짓말같이 픽 쓰러졌고, 썩은 아귀가 할법한 이야기를 입에서 중얼거리고 있었소. 그믐달이 뜨는 시기였고, 비라는 날씨때문에 하늘엔 별빛 하나도없는 칠흑같은 당시에, 그대의 몸에서 검은색 실루엣이 육체를 뚫고 튀어나왔소. 하지만 그 실루엣은 그대의 육체를 벗어날 수 없었고, 그 사실을 뒤늦게 눈치챈 그림자 군도의 기운은 그대의 몸을 차지하기로 마음먹었소. 그 상태에서 그대가 깨어났으면 영락없이 예전의 상태였던 거미 여왕이 재림하는 꼴이었기에, 마오카이는 주변의 나무들을 결계로 삼아만든 마법진으로 겨우 기운을 묶어놓아서 그대와 기운의 움직임을 봉쇄시킨 뒤 그대의 신체를 이곳으로 안치시켰소."


 마오카이가 리신의 말을 이어서 설명했다.

"나는 그동안 의문스러웠던 너의 행동들을 이제서야 이해할 수 있었지. 카사딘은 그동안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있었지만, 리신은 너의 또 다른 기운을 전부터 의식할 수 있었기에 의외로 담담했다."

'리신이... 이미 내 속에 있는 기운을 알고있었다고?'

"시각을 버린 소인은 보통 사람들에 비해 나머지 다른 감각에 예민하오. 동시에 사람의 심리와 마음상태, 그리고 보일 수 없는 것에 대한 인식도 가능하오. 설마 그걸 모르고있다 생각한거요?"

"..."
"나와 카사딘과 리신에게 주어진 선택은 3가지였다. 그림자 군도의 기운을 다시 제거하거나, 너의 몸뚱아리를 그림자 군도로 다시 돌려보내거나, 혹은 너의 봉인된 기억만 해제시키거나. 리신의 목적은 너의 교화가아닌 인간의 바탕을 닦는 것이었기에 그에 가장 걸맞는 세번째를 택했다. 남은 것은 썩은 아귀에의해 봉인된 기억을 꺼낼 방법과 그것을 실행할만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나와 카사딘은 카르마에게 도움을 요청했지."
"카르마?!"
"나도 뒤늦게 안 사실이지만, 카르마는 아이오니아 입국심사때부터 우리의 존재를 인식하고 신경쓰고있었다. 덕분에에 아이오니아의 다른 장로들은 네 존재를 아직까지도 모르고있다. '프리실라'라는 가명을 쓰면서 활동하고 있었으니까. 그 가명이 너의 옛 이름이었다는것은 우연중에서도 그런 우연이 없지만. 카르마는 우리를 도와주는대신 조건을 걸었다. 넌 7월 18일에 아이오니아에 입국했고 입국심사를 받았다. 네가 입국심사에 네 이름을 요구하면서 한달을 주기로 서류를 제출하라고 했던것은 너의 동향이나 행동을 일정 범위를 두고 감시하겠다는 의미였지. 다시 말하자면, 오늘 13일부터 18일까지의 너의 행동을 판가름해서 아이오니아에 입국하거나 머무를 수가 있는지 판단하기로했다."
 


 마오카이는 10월 12일의 밤에 카르마가 행했던 주술의 광경을 설명해주려다 말았다. 카르마의 생각은 이러했다. 어차피 오늘은 음력 30일로써, 그믐달은 커녕 달조차 볼 수 없는 날이고 음의 기운이 가장 활개치고 다닐 수 있는 시기라고 가정하고, 기운이 강해진다는 개념이 아닌 폭주한다고 생각할경우 동시에 약점을 숨기려는 활동이 어려워질거라는 가능성을 믿고 그림자 군도의 기운 속에서 썩은 아귀가 따로 봉인해놓은 기억만 풀어낸다는게 그녀의 작전이었다.


 카르마가 정자세로 앉아서 주문을 읊자, 엘리스의 몸에 숨어있던 군도의 기운이 전과는 다르게 억지로 방출되는듯한 움직임으로 나타났다. 검은색 가루같이 보이는 실루엣은 카르마나 주변에 있던 리신, 마오카이, 카사딘을 향해 달려들었으나 카르마가 사전에 걸어놓은 방어막때문에 번번히 접근에 실패했다. 검은 실루엣은 한 공간안에 있는 네 챔피언주변을 돌면서 요동치다가 건물의 바깥쪽으로 튀어나갔다. 수도원의 바깥으로 나가서 아이오니아 전체를 뒤덮으려는 움직임은 리신의 수도원의 주변으로 친 또다른 결계에의해 봉쇄되었다.

 검은 실루엣은 하늘을 향해 포효하듯 날카롭고 고막을 찢을듯한 소리를 질러댔다. 발악이든 폭주든간에 이 고통을 견뎌내야하는 네 챔피언에겐 상당한 인내를 요했다.


 엘리스의 몸속에서 튀어나온 그림자 군도의 기운이 리신의 수도원에서 벗어나지 못해 안간힘을 쓰는 와중에, 그녀의 몸을 얇게 뒤덮은 오오라 속에서 빛바랜듯한 회색 상자가 모두의 눈에 들어왔다. 카르마의 가설이 맞아떨어진 것이다.

"하아아아...!!!"
 자신을 포함한 네 챔피언에대한 방어막과 수도원 주변을 둘러싼 결계까지 친 상황에서, 카르마는 썩은 아귀라는 이름을 가진 거미의 신이 봉인한 엘리스의 기억을 해제시키는 작업까지 하고있었다. 그녀의 위엄은 전장에서 보였던 전투적인 강함보다 훨씬 컸다.

 회색 상자는 기운 속에서 카르마를 향해 천천히 다가오고있었고, 자신을 대항한 방어막과 결계의 시전자가 누군지 파악한듯한 그림자 군도의 기운은 엘리스가 누워있는 방으로 온 힘을 모아 돌진했다.

"마오카이! 카르마를 엄호해주시오!"
 물리적인 형태가 아니었기에 무력할 수밖에 없었던 리신이 기운의 낌새를 예측하고 마오카이에게 말했다. 마오카이는 방의 정중앙에 서서 방을 에워싼 마법진을 펼쳤다. 그를 중심으로 마법의 소용돌이가 일어났고, 푸른 빛이 나무의 줄기를 연상하는듯한 마름모 모양을 그려내면서 방을 지키고있었다.

"카르마, 방의 수비는 내가 맡겠다. 우리들에게 걸어놓은 방어막을 유지하는 마력을 그 작업에 집중시켜라!"
  마오카이의 충고를 따른 카르마는 전보다 더 빠른 속도로 봉인된 기억을 기운과 분리해내고 있었다.


 천장에서 일정량 이상의 충격을 견디지못해 무리가 가는소리가 들렸다. 마오카이의 투혼에도 불구하고 결게의 윗부분이 부서져가고있었다.

 카사딘은 마오카이가 애를 쓰고있는 와중에도 가만히 서서 상황을 지켜보고있었다... 라고 볼 수 있었으나 투구 속에 숨겨진 그의 생각과 얼굴의 속셈은 알 수 없었다.

"어디서부터 나는 잘못된거지..."
"카사딘! 지붕위에 있는 기운을 상대해주시오!"
"이런 일에 끼어든거 자체가 잘못된거였나..."
카사딘이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던 그 와중에도 진의 균형은 무너져가고있었고, 방문쪽에 펼쳐놓은 진까지도 균열이 생기고있었다.

'저 기운이 생겨난 이후부터 쭉 맞서고 대적해왔는데도 나에겐 아직도 부족한가! 내 전력은 아직도 저것에게 밀리는건가...!'

"카사딘!"
"으어어어어!"
 절체절명의 순간에 중요한 결심을 내린 작품 속 주인공처럼, 카사딘은 기합을 내지르고는 지붕 밖으로 균열 이동을 시전해 그림자 군도의 기운과 맞섰다. 방 하나를 들어가지못한 군도의 기운이지만, 기운의 잔재를 포함한 기본 형체의 크기는 수도원을 뒤덮을 정도로 어마어마했다. 그런 기운앞에 하나의 타겟이 제발로 나타나줬음에 기뻐한 기운은 사방에서 그를 향해 날아갔다.


 카사딘을 자세를 갖췄다. 자신의 공격이 수도원을 무너뜨리는 자멸을 초래하지 않게. 그리고 다음, 오른쪽 손등위에 달린 검을 자신의 왼쪽 어깨까지 끌어당긴다음, 자신의 오른팔이 휘두를 수 있는 최대의 각도까지 휘둘렀다.

"'힘의 파동!'"

 검보라색 검이 지나간 잔상에서 동일한 색의 파동이 나와 군도의 기운들을 성공적으로 제지해냈다.


콰직-


''복수의 소용돌이'가 뚫린건가!'

 다시 방안으로 균열이동을 써서 도착했을땐, 방문앞쪽에 펼쳐졌던 마오카이의 주문이 파괴되어있었고, 그 빈틈으로부터 군도의 기운이 날아오고있었다. 카르마의 작업은 몇 초간의 시간을 요구하는 상황, 그야말로 서로의 전력을 쏟아부은 최후의 일전과도 같았다.

 카사딘은 다시 한 번 전방을 향해 검을 겨눴다. 그는 이번 스킬이 리신의 건물에 해가가지않게 시전하는 하에서 최대의 힘을 발휘했다.

"무의 구체!!!!"
 그의 검에서 동그란 공허의 에너지가 기운을 넉백시켜냈다.


 마오카이는 리신보다도 더 카사딘을 알고있었기에, 그의 심정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고, 아직은 엘리스와의 관계가 냉대적인 것을 감안해 자신과 그의 활약상은 언급하지 않았다.

<계속>

<글쓴이의 말>

분량이 갑자기 늘어나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