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은 격자무늬의 천장에 붙어있는 작은 등불을 바라보며 아이오니아의 특성대로 감옥치곤 꽤 고상한 곳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고문을 받는 곳은 도살장과 다름없었지만 감금 되있는 이 방만큼은 정신을 갈고 닦아야 할 것 같은 학구적인 분위기를 풍겼다.

  킨코우단 저택의 지하감옥에 감금된지 2주째로 진은 점점 지루해져 가고 있였다. 매일마다 달라지는 온갖 고문이 그나마 그에게 지루함을 달래주는 흥미로운 요소긴 했지만 이제 아이디어가 바닥났는지 고문관은 적당한 무기로 지겹게 때리기만을 반복하고 있었다. 고문관은 누군가 자신에게서 유용한 정보라도 빼내면 억만금을 주겠다고 약속이라도 받았는지 계속해서 이상한 질문을 해대는 통에 가끔 그를 무시하는 말 이외에는 대꾸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 결국 서로 자포자기 심정으로 의미없는 고문 놀이를 지속할 뿐이다. 


 자신을 이곳에 가둔 제드는 지명수배자인 자신을 체포해서 기분이 좋은지 여기저기 떠들고 다니는 듯 했다. 킨코우단에서 훈련받고 있는 겁없는 꼬마들이 몰래 들어와 "바꽃가루가 묻은 표창이 멀리서 이녀석의 다리를 정중해서 마비시켰데." ."아냐, 경로랑 퇴로에 트랩을 설치하고 폭파시켰데." 와 같은 웃기지도 않는 소릴 해대는걸 보니 말이다. 제드는 자신이 스승인가 수장인가 하는 놈에게 잘보이기 위해 자신의 굴욕적인 내용은 전부 뺀뒤 긴 추격기간동안 있었던 일을 잘포장해서 말했음을 알 수 있었다. 


 원래 킨코우단과 진은 인연도 없고 아이오니아의 신문에 항상 등장하는 화제의 인물이라도 서로에게 관심조차 없었다. 하지만 진이 죽인 수많은 사람들 중 한명이 킨코우 자객이였단 사실이 그들의 귀에 들어가자 수장은 망설임없이 모든 지원인력을 동원해 자신을 잡아오는 임무를 내렸다고 한다. 꽤 오랜시간동안 수많은 킨코우단 닌자들이 진을 잡을려고 눈에 불을 켰지만 진은 아이오니아의 유명한 지명수배자답게 호락호락 상대가 아니였다. 결국 대다수가 광기에 질리거나 심한 부상을 당한 후 마지못해 포기 했다. 진은 그들이 그토록 서로를 형제라고 부르짖던 모습도 결국은 껍데기에 불과한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제드는 달랐다. 그 녀석은 포기를 몰랐다. 혼자 끈질기게 추적하고 추적해서 기습에 성공하기도 했다. 하지만 진을 붙잡기엔 너무 정직하고 뻔한 수법을 써서 항상 실패할 수 밖에 없었다.  잊을만하면 다시 튀어나와 자신이 공들여 준비한 학살의 무대를 망쳐버리는 제드를 보며 진은 처음으로 오래되서 바랜 감정이 다시금 뜨겁게 끓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마주칠때 항상 내뱉는 제드의 도발을 가볍게 깔아뭉개는 여유 또한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제드가 근자감에 가득찬 허세를 드러낼 때 진은 몇번이라도 죽일 기회가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특히 끈질기게 임무를 수행하는 이유가 단지 수장자리 하나만을 얻기 위해서 라는걸 알게 된 후론 더욱 그랬다.


 진은 결국 모든것을 준비한 후 제드에게 순순히 잡혀주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제드가 자신이 생각했던 것 보다 진이 거센 저항이 없자 이상함을 느꼈고, 진을 끌고 킨코우단의 저택으로 돌아가는 내내 찝찝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그런 반응을 눈치챈 진은 그를 너무 과소 평가한 것을 곧 후회했다.



 혹시나 방심한 틈을타 도망갈까 경계를 늦추지 않은 제드는 결국 자는 동안에도 도망치지 못하게 나무 기둥에 진을 묶어놓고 잠을 청하는 방법을 택했다. 진은 가슴에 무식하게 묶인 밧줄이 숨막힐듯 불편했지만 오늘 잠을 청하지않으면 걸어왔던 거리를 내일도 걸을 자신이 없어서 억지로 잠에 청해야했다. 잠에 잠든 와중에 코끝에서 느껴지는 축축한 촉감과 뜨거운 바람에 눈을 떴을땐 노란 눈을 가진 여우와 마주쳤어야했다. 화들짝 놀란 표정으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여우가 어째서 사람같은 표정을 지을 수 있었는지, 지금으로써도 알 수 없지만 고맙게도 눈깜짝할 사이에 시야에서 사라졌다. 자신은 들짐승들에게 노출시켜놓고 안전하게 나뭇가지 위에서 양손을 뒤통수를 받치며 태평하게 자는 제드를 보며 느낀 감정은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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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드는 결국 킨코우저택까지 진을 끌고 왔고, 뭐가 그렇게 못마땅한지 사형선고가 정해진 진을 구지 고문을 통해서 내면을 정화시켜야 한다는 듣도 보도못한 논리를 내세웠다. 결국 수장은 고문관 한 명을 새로 뽑아 제드의 의견을 받아들였고, 진은 한쪽 입꼬리를 비틀어 웃는 제드를 무표정으로 맞받아치며 많은 병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지하 감옥에 수감되었다. 

 얼마안가서​ 제드는 매일 밤 감옥에 찾아왔다. 만싱창이가 되어 바닥에 누워있는 진 앞에서 제드가 의외의 혼잣말을 지껄였다. 수장자리에 오르는데 아직 많은 장애물들이 남았다는 둥 자신의 처지에 대해서 한탄하는 듯한 말들을 중얼거렸다.
 꼼짝없이 누워있는 진이 깨어날 기척만 보인다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모든게 진의 탓인 것처럼 욕설과 조롱을 퍼부었다. 처음부터 깨어있던 진은 제드의 이상한 행동이 의아했지만 최대한 많은 정보를 얻기 위해 가만히 있었다.


 진이 알게된 것은 제드는 녹서스 침공 때 고아가 된 자신을 거둬준 킨코우단에 충성을 맹세하기로 결심했으며, 항상 최고가 되어야한다는 부모의 옛 가르침을 잊지않으며 수장자리에 오르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그토록 싫어하는 쉔이라는 인물이 수장의 핏줄이자 라이벌으로서 가장 큰 장애물인 듯 싶다. 킨코우단의 명예를 지킨 공을 높게 받아 제드는 당장 수장자리를 넘겨받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자 점점 화를 풀 곳도 없으니 어차피 곧 죽을 몸인 자신에게 화풀이를 하는 것 같았다.  
 슬슬 주요 정보를 알게 된 뒤부터 가만히 듣기 힘들어서 제드를 보며 2년간의 결과가 겨우 이거냐고 제드의 아픈부분을 꾹꾹 찔러댔다.
 제드는 처음엔 적극적으로 받아쳤지만 2주가 지난 요즘 내뱉는 의미심장한 말들을 보아 나름 자신도 제2의 플랜을 만들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 말 뜻은 드디어 일차원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수장자리를 얻지 못할 변수에 대해서도 생각하고 있다는 말이였다. 충분히 고민할 시간이 많았는데도 이제와서 그런 결정을 하려는 제드를 보며 진은 혀를 내둘렀다. 그게 그렇게 생각하기 어려운 일인가. 자유롭게 하고싶은 대로 살인하고 배신을 게임으로 생각하는 진으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였다.

 수년간 어머어마한 현상금이 걸린 상태에서도 자유로웠던 자신을 동료로 만드는 것은 제드가 원하는 목적을 이루기 위한 좋은 선택지 중 하날테지만, 그 동료가 자신의 심장에 단번에 칼을 꽂을 수 있다는 생각도 다행히 하고있는 모양이였다. 왜냐하면 자신의 라이벌이든 킨코우단의 역사든 쓸데없는 정보는 알려줘도 저택의 비밀통로같은 중요한 기밀정보들은 입도 뻥긋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제 20살이 되었으면 세상의 균형 어쩌고 하며 앞뒤 꽉막힌 생각이 결국 자신에게 별 도움이 안된다는 걸 스스로 깨우칠 때도 되지 않았나.


 진은 제드의 답답한 행동에 질렸지만 어쨋든 자신이 세운 계획을 위해서는 제드를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오늘은 올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어쩌면 수장자리를 얻게된 날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계획해온 일이 빨리 시작되는것이고 수장자리를 빼았겼어도 작품엔 지장이 없었다. 결국에 그가 원하는대로 일이 돌아가도록 준비해놓았기 때문이다. 벌써부터 고통의 비명소리로 가득 채워진 킨코우단의 모습을 감상하고있을 자신을 상상하니 흐뭇한 미소가 지어졌다.  



  목이 말라 반사적으로 혀로 입술을 핥자 비릿한 피맛이 진득하게 퍼졌다. 갈증이 치솟았다. 진은 스멀스멀 올라오는 위험한 욕구가 자신을 또 다시 바쁘게 삼키고 있는 것이 그려졌다. 지금은 때가 아니다. 이곳을 탈출해 자신의 손으로 이곳을 피바다로 만드는 것은 진정 원하는 것이 아니라고 부정하지만 몸은 지금의 갈증을 잠재우기 위해 움직이라고 명령하고 있었다.
 진은 이렇게 이성을 초월하는 무언가에 휩쓸려 스스로 일을 망친 적이 꽤 여러번 있었다. 이제 성인이 된 진은 그런 실수를 하지 않을 것이다. 멋진 피날레를 앞에 두고 무대를 망가트리는 짓은 스스로도 용납할 수 없었다.

  진은 갈증을 잠재우기 위해 가장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는 기억을 열어 그것이 지금 펼쳐지고 있는 이야기라며 스스로를 속였다. 진은 기억의 저편 속으로 빨려들어간 듯 곧 잠잠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