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본

Ambon

옛 이름은 Amboina, Amboyna.

인도네시아 말루쿠 주 말루쿠텡가(중앙 몰루카) 섭정관할구에 속하는 섬과 도시.

세람 섬의 남서부 해안에서 11㎞ 떨어진 곳에 위치한 암 본 섬은 해발 1,038m의 살하투 산을 비롯해 대부분 산지로 이루어져 있다. 주요지진대에 위치하지만 현재 활화산은 없으며, 몇 개의 온천과 '솔파타라'고 부르는 뜨거운 가스 분출구들이 있을 뿐이다. 열대기후지대로 비가 많이 내린다. 주로 장식용 목재로 사용되는 암본목재(옹이가 많은 경목)가 이웃 세람 섬에서 벌목된다. 이곳이 원산인 포유류는 거의 없지만 물총새와 붉은 앵무새류 등 조류가 많이 서식한다. 암본 만에 풍부한 어종이 서식하고 있으며, 만 동부 해안지역에는 해저공원을 방불케 할 만큼 풍부한 해저 동·식물상이 분포해 있다.

암본은 오랫동안 정향(丁香) 무역으로 유명했다. 그결과 많은 관심을 가졌던 포르투갈인들이 이곳을 암본이라고 이름짓고 1521년에 첫 정착촌을 건설했으나 1605년 네덜란드인들에게 요새를 빼앗기고 향료무역의 패권을 넘겨주었다 (→ 색인 : 네덜란드 공화국). 네덜란드인들은 그후 1623년에 ' 암보이나 학살' 이라고 불리는 영국인 등을 처형하는 사건을 감행했다. 1796년 영국에 넘어간 후 영국과 네덜란드의 손을 오가던 이곳은 1814년 마침내 네덜란드의 지배 아래 들어가게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중에는 일본에 점령되어, 중요한 해군기지로 이용되었다. 1950년 인도네시아가 독립한 후 그리스도교 학교에서 교육을 받고 네덜란드 행정부나 군대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많은 암 본인들은 자신들의 사회적·경제적 지위에 불안을 느껴 중앙집권적인 인도네시아 공화국에 합병되는 것을 거부하고, 독립 남(南)몰루카 공화국 수립을 선언했다. 그러나 이름은 이러한 움직임은 인도네시아의 군사적 탄압을 받아 좌절되었으며, 그후 게릴라전을 통한 저항운동이 세람에서 10여 년 간 지속되었다. 이 과정에서 많은 암본인들이 네덜란드로 망명했다. 암본인들은 주로 멜라네시아인들로 검은 피부와 곱슬머리, 낮은 코와 두꺼운 입술을 가지고 있으며, 암본 섬 외에도 울리아세르스와 세람 섬 연안지역에 살고 있다. 이슬람교도들은 대체로 북부지역에, 주민 대다수를 차지하는 그리스도교도들은 주로 남부 지역에 거주한다. 티모르어와 유사한 이곳의 언어는 인도네시아 어족에 속하는 것으로, 포르투갈어와 네덜란드어로부터 차용한 단어가 많이 포함된 혼성 국제어이다. 농작물로는 옥수수·커피·근채작물·사고야자·정향나무 등이 소규모 재배된다. 코프라·설탕·어류 등을 수출하며, 야자주(酒)를 생산한다. 이곳의 항구는 생산품을 선적하고 수입품을 암본 내의 각 지역으로 운송하는 중심지 역할을 한다. 전화망과 충분한 도로시설을 갖추고 있으며, 국영 라디오 방송국과 파티무라 공항(항구의 서쪽에 위치)이 있다. 교육 및 문화 시설로는 파티무라암본대학교(1956 설립), 신학교, 박물관 등이 있다.

암본 만 동쪽의 라이티모르 반도에 자리잡은 항구도시 암본은 바다쪽 항구의 입구에서부터 약 13㎞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말루쿠 주의 주도로서 네덜란드 점령기에 세워진 넓은 가로수 거리들, 석조건물, 정착 초기에 건립된 교회와 병원 등 웅장한 건축물, 17세기에 건립된 후 다시 개축된 빅토리아 요새 등으로 유명했으나 제2차 세계대전과 그후의 혼란기를 거치면서 이들 건물 대부분은 관공서 등의 건물과 함께 파괴되었다. 면적:섬 761㎢, 인구:시 312,100(2000), 섬 880,200(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