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윽고 바람이 거세진다. 소리를 지른다. 포효하고, 눈물을 뿌린다. 몇개의 통을 들고 빗물을 받아둬야만 했기에 통을 몇개 세워둔다. 하지만 바람이 강해져서는 곧 통을 넘어뜨린다. 넘어지는 것은 다시 물을 토해낸다. 폭풍의 도래.

"배가 심하게 흔들리니까 이대로 있는 수밖에 없어."

물론, 누구나 아는 소리였다. 폭풍에 배가 휩쓸리는 것이 어떤 일인지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선장은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었다. 어쩌면 그것은 부탁에 가까운 말투였다. '제발 그렇게 알고 행동하자.' 라는 식의 말투였다. 우리는 물론 그 이유를 모르지 않는다. '그 자식' 에 횡포가 두려워도 어쩔 수 없다는 말이었다.

"돛을 폈다가는 모두 죽으니까. 어쩔 수 없지."

누군가가 멋대로 지껄인다. 모르는 사실을 가르쳐주는 것이 아니라 다 알고 있는 사실을 재확인하는 것밖에 되지 않았다. 빌어먹을. 아무런 대책도 없이 당해야 한다는 것도 짜증이 일었다. 대체 무엇을 원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 자식' 이 단지 사람을 죽이고 싶어서라면 우리는 그저 당하는 수밖에 없는 것일까.

"젠장."

모두의 욕설을 선장이 대신하고 있었다. 일그러진 표정들, 그 위에 드리워진 공포. 살 수 있는 곳으로 도망쳐야만 하는데 폭풍이다. 뭔가를 해야만 했다.

"일단 폭풍이니까 움직일 일은 없고, 놈을 주시하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겠군."

모두가 수긍한다. 지금에 와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정말이지 그것 뿐이었다. 가능하다면 이 곳에서 완전히 도망치고 싶지만 그렇게 할 수도 없었다. 망망대해. 표류하듯이 흘러가는 시간. 그 속에 정체된 암울한 침체기는 시간이 흐를수록 우리를 짓누른다. 정적에 묻어나오는 절망도, 갑판으로 훌쩍 뛰어 오르는 죽음의 손길도, 창고에서 숨죽이고 우리의 목숨을 노리는 하데스도 우리의 의지는 수차례 능욕당한다. 욕밖에 나오지 않았다. 욕이라도 내뱉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그래도 우선 진정해. 내가 생각하기에 놈은 인간을 죽이려고 하는게 아냐."

선장이 말한다. 폭풍우가 몰아치는 상황에서도 고요하게 이야기가 진행되는 것이 신기했지만, 아무도 의문을 제기하지는 않았다. 모두의 시선을 확인하고서 선장은 말을 이었다.

"분명 인간을 죽이려는 것이 아니라, 그냥 수분이 필요했을거야. 식물이 자라기 위해서는 햇빛과, 수분과 양분이 필요하지. 창고는 분명 흙을 깔아둔 것이니까 그 곳에서 약간의 양분은 얻고 있을거야. 지금도 분명히."

그러고서는 한숨을 쉬는 선장. 너무 많은 것을 생각하고서 말하려니 말의 속도가 생각을 따라가지 못했나보다. 숨을 들이키고나서는 다시 모두의 시선을 확인한다. 꿀꺽. 누군가 침을 삼킨다. 우리의 귀에는 더 이상 폭풍우가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상태였다.

"그렇다면 인간에게서 얻을 수 있는 것. 그것은 수분일거야. 햇빛은 인간에게서 얻을 수 없겠지. 놈은 궁지에 몰린 쥐새끼와도 같아. 여차하면 인간이고 뭐고 다 죽일테지. 그럼 우리는 무엇을 해야할까?"

중요한 것을 꼭 끊어서 질문으로 전환시키는 것은 현재 우리에게 효과적으로 전달될만한 말투는 분명 아니었다. 아무도 대답을 하지 않고 선장만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 그 말을 증명해주고 있었다.

"놈에게 수분과 양분을 충분히 공격해서 인간을 죽이지 않아도 되는 상황으로 만들어야 되. 그러기 위해서는 물도 필요하고, 양분도 필요하겠지. 무슨 말인지 알겠어?"

또다시 질문이 모두의 귓전을 때린다. 역시나 아무도 대답을 하지 않았다. 모두들 선장의 말을 원하고 있었을 뿐이다.

"이번 폭풍때 최대한 빗물을 많이 받아놔야되. 그 빗물은 놈에게 수분공급을 위한 하나의 방책일 뿐이야. 하지만 그걸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이득은 많지. 우리가 살 수 있어. 또 양분. 이게 좀 문제긴 한데, 이것도 결국 우리가 먹을 식량에서 빼놔야 될 듯 해. 토지에서 얻을 수 있는 영양분이 바닥나는 건 식은 죽 먹기겠지. 흙이 많지 않았으니까. 그러니 우리는 몇몇 식량을 일부러라도 썩히고 그 흙에 뿌려줘야되. 놈이 흡수해서 영양분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말야."

선장은 이렇게 말하고는 담배를 물었다. 연기를 한번 뿜어내고서 선장의 지시가 내려졌다.

"두명은 식량을 일부러 썩혀야 되니 2일분의 식량을 밖으로 꺼내. 2일분이면 조금씩 넘겨줘서 충분히 먹일 수 있을거야. 놈에게 햇빛을 받을 수 있도록 창고의 천장도 완전히 개방해야겠지. 그걸 위해서 투입될 인원은 3명. 미리 계획을 짜고 일에 착수하도록 해. 그리고 나머지는 나와 함께 통을 다 끌어모아서 빗물을 받아야되."

폭풍우. 우리는 그 폭풍에도 끄떡하지 않았다. 단지 '그 자식' 에게 꺽이고 있을 뿐이었다. 원하는 것은 뭐라도 해주고 우리의 목숨을 부지해야 한다. 우리의 발이 바빠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