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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물이나 최면 혹은 우리가 모르는 심리전 기전을 통해 생각의 발단(기전)을 잃고 의심을 안하게 됐을 때 우리는 정보의 일부분으로 그것을 판단한다.

사보타주나 인터넷 가짜 뉴스 같은 것에 악플을 다는 것이 판단 여부를 별 의심 없이 받아드리거나 근거가 없거나 혹은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에 실체가 어떤 것이냐에 따라 그냥 별 생각 없이 넘겨버리는 것.

난 의심과 생각이 아주 많은 편이다.(그 때문에 발생하는 궁금증으로 귀찮을 때가 많다. 누가 해줬으면....)

사람을 잘 들여다 보면 그 사람이 하고 있는 생각축이 되는 좌뇌가 만들어낸 개념(가치관, 개념 등등.)이 있을 것이다. 그 사람을 이루는 기본 근간이므로 조사를 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당신을 정의하는 정체성이 곧 자신"이라는 말은 그 사람의 생각 동기라는 말이니 어렵지 않다.

때문에 어떻게 속일 것인지, 무엇으로부터 신뢰를 얻는지에 따라 어느 정도 정해져 있다고 생각하는데 사람을 제단하는 것은 도덕적으로 옳지 않으므로 난 "항상 모든 것을 의심하고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뭔가 자기파괴적인 이유는 자기가 무엇인지 알려고 할수록 그 끝없음이 발견된다는 것.

때문에 불교의 무아에 경지나 허상에 대한 생각을 하는데 우리는 우리 정체성을 끝없이 바꾸고 형성하도록 만들어진 기계이다. 왜 그러고 있는가 생각하고 의심하지 말고 그냥 그러는게 편하긴 하는데 메타인지 차원에서는 그게 나쁜거지.

이 끝없는 고뇌가 윤리적으로 제단되지 않으려는 것이 도태와도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요새 떠오르는 A.i와 그로인한 인간 노동의 대체는 도태되지 않으려는 위기감과 나에 대한 정체성(나 자신을 지키려고 함.)을 지키려는 위기감이 같다는 것을 알았다. "내 자신을 말하는 정체성이 직업도 포함될 수 있음. 나~ 회계사야.~ 나~ 변호사야. 나~ 의사야.~" 고통은 숙명이다. 내 자신을 계속 찾아야 발전하고 절대적인 상징성인 것이 갱신(유지)된다.

변화를 두려워 하지 말라는 것은 오류나 상징이 생존하기 위해서 필요한 절대적인 진리가 아닐까.? (비율이 같은 면을 공유함. 변한게 아님 성장을 기반으로 하지 않는 분배법칙에 따른 총량에 변화 없음 그게 그거 같음.ㅋㅋ)

나를 정의하는 정체성 찾기는 역설적이게 편하게 동조하는 것을 말하는데 히틀러를 추종했던 사람들이 "비인간화"하며 행동을 정당화하고 합리화하고 자기가 느끼는 감정에 충실해서 원죄를 저지르고 등등. 우리의 판단 기준이 어떻게 오염되었는가 생각해야 한다.

이 생각을 들여다 보는 것이 "논리학"이다.

논리학은 실제로 현실 법칙에서 적용이 되느냐. -> "실제로 있는 법칙이냐."를 검증하는 과정임.

삼단논법 같은 경우는 우리의 인지도식을 형식으로 수학 처럼 나열함으로서 그것을 계산하고 검열하는 방식인걸 교양수업에서 깨닫게 됐는데 글 내용이 성립될 수 있는 하나의 정답을 찾는 법 그리고 수업 내용은 형식에 대한 배움과 인간이 저지르게 되는 오류들에 대한 내용을 배우게 됨.(메타의 기초)

성선설(性善說)과 성악설(性惡說)과도 맞닿아 있다고 본다.
(물론 그게 그거라는 것을 아는거지 내가 잘 할줄 안다는건 아니다. 데헷)

이거 자체가 끝없는 생각이긴 하지만 반복 됐을 때 이 사람이 많이 하게되는 (큰 수의 법치 확률)이 그 사람 성향같은 것이다.

수학을 공부하는 것은 명상 같은 이미지다.

어떤 무형의 진리에 다가서는 느낌도 준다. 법칙이나 자연의 연결고리 순환과 균형 그리고 그것을 나누는 절대적인 크기와 성장 그리고 그 연결고리를 떠올리고 이어지는 모형을 만들게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