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프랑스의 전차  Somua S35 를 소개합니다.

     이 탱크에 대해 한줄로 소개하자면,

     독일에 나포되어 개조된 비운의 프랑스 전차 입니다. (언제든지 살 수 있는 독일 3티어 골탱입니다.)

     여담이지만, 당시 같이 개조된 B2도 있습니다. (이건 아주 가끔 골탱으로 팔더군요.)

 

    

     프랑스 탱크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프랑스 탱크의 변천사를 같은 종류의 자체로 구분하여 묶었습니다. 

     S 35를 기반으로 SAu 40S35 CA가 만들어졌고,

     B1을 기반으로 leFH18B2ARL 44가 만들어졌고,

     BDR G1 B를 기반으로 ARL V39가 만들어졌습니다.

     그냥 만들어보았고, 빨간 네모박스 안에 것만 보시면 됩니다.

    

 

 

 

 

 

Somua S35(AMC 1935S) 전차를 보면,
이 탱크는 2차 대전 발발 당시 프랑스 군의 주력 전차(medium tank 로서)인데, 정식 제식명칭은

AMC(Automitrailleuse de Combat) 1935 S인데 보통 그 개발회사의 이름을 붙여서 Somua S35,라고 부릅니다

 

* 개요 및 개발

 

프랑스군의 경우, 1934년도에 새로운 전차 개발 계획이 프랑스 군에 의하여 수립되는데 그당시 사용되던 전차보다도 무겁고 방어력도 뛰어난 새로운 中전차 개발 계획이 수립되고, 그 개발 주체로서 Somua 회사(Société d'outillage mécanique et d'usinage d'artillerie; 유명한 무기류 제작 회사인 Schneider 회사의 자회사임.)가 선정됩니다.

(참고1; 당시 프랑스는 전차 개발의 선진국이었읍니다. 예를 들어서, 탱크 개발사를 보더라도 최초의 회전식 포탑을 가진 정말로 전차다운 전차를 만든 나라 역시 프랑스이지요.... 이 르노 전차 이전에 세계 최초의 전차라는 영국의 Mk1 전차던가 하는 것을 보면 그 모양 자체도 조금 우스광스러울 뿐만 아니라 여기에는 회전식 포탑이란 것이 없어서 2, 3명의 병사가 내부에 앉아 차체 옆연에 몇개의 총안구를 뚫어서 여기를 통하여 사격을 하는 그런 방식이었다는 점을 생각하시면 됩니다.)

(참고2; 프랑스의 경우 영국의 전차 설계사상의 영향을 받아 탱크를 보병 전차(infantry tank)와 기병 전차(cavalry tank)로 구분하고 이 양자 사이의 엄격한 '분업'을 전제로 탱크 전술을 운용하였읍니다.

여기에서 보병 전차는 보다 무거운 중(重)전차(heavy tank)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병 사단이 방어망이 촘촘히 이루어진 적의 진지를 돌파할 때 이를 엄호하여 적의 수비라인을 깨는 용도로 개발된 전차를 의미하며 따라서 속도는 다소 떨어지더라고 보다 강력한 화력을 그 필수요소로 하였읍니다.

반면 기병 전차라는 것은 무게가 보다 가볍고 속도가 빠른 전차로서 독립적인 운용이 가능한 전차들을 말합니다.(소위 medium tank) 따라서 기병용 전차의 경우, 가장 중요한 점은 속도이고 따라서 무장이나 장갑을 희생 시켜 비교적 소구경의 화포를 장착하는 경우가 많았읍니다.

물론 이는 이 기병용 전차의 경우 主상대가 적의 단순한 보병 부대라는 전제에서 나온 것이지요. 즉, 일단 보병과 무거운 보병 전차(heavy tank)에 의하여 적의 수비라인이 뚫리게 된 이후에 이들 가볍고 빠른 기병 전차들이 적의 후방까지 순식간에 진격하여 적이 대열을 정비하기 전에 적의 보급로를 차단하고 적의 통신망을 파괴하는 것 등이 그 주된 임무이었읍니다.

물론 개념은 이렇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가 못하다는 것이 이러한 보병전차-기병전차의 구분법의 문제이었읍니다. 예를 들어 후의 2차대전에서 알 수 있듯이, 원래 적의 보병을 상대로 하기로 하였던 기병 전차의 경우 실제로는 아직 온전히 은폐되어 있는 적의 전차와 마주치는 일도 많았고 또 보병들의 대전차포의 총탄세레를 무수히 맞게 됨으로써 많은 피해를 보게 됩니다.(즉, 실제 전장에서 보병전차-기병전차를 엄격히 구별하여 각각 다른 전술을 적용하기가 곤란해지는 것입니다.)

어찌되었던, 이런 의미에서 굳이 분류한다면, 여기에서 말씀드리는 S-35 탱크는 기병용 전차로 분류됩니다.)

이에 Somua에서는 그 개발을 책임지게 되어 1934년 12월부터 본격적으로 연구, 개발에 들어가게 되어 1935년 4월에 첫 프로토타입이 만들어지게 됩니다. 이후 몇 차레 더 프로토타입이 만들어지고 이에 따르는 여러가지 실험이 이루어지게 되는데 마침내, 1936년 3월에 프랑스 기갑부대의 표준 장비(medium tank)로 완전히 자리잡게 됩니다.

이후 첫 인도분으로 40대가 납품되는 것을 시작으로 하여 총 430여대가 제작되어 2차 대전에 임하게 됩니다(이 430대라는 물량은 원래의 계획인 2,000여대에 훨씬 못미치는 저조한 것임.)

 

* 제원 및 특징

 


위키피디어에 나와 있는 기본적인 제원을 보면,
Service history
In service: 1936 - 1945
Used by: France, Germany, Italy
Wars: World War 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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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duction history
Manufacturer- SOMUA
Produced- 1935 - June 1940
Number built- 430
Variants- S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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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fications
Weight- 19.5 t
Length- 5.38 m
Width- 2.12 m
Height- 2.62 m
Crew- 3 (driver, radio operator/purveyor, commander/gun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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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mor- 47 mm
Primary armament- 47 mm SA 35 gun (장탄수; 118발)
Secondary armament- 7.5 mm Mitrailleuse mle 1931 optionally coaxial (장탄수; 2250발)
Engine- SOMUA V-8 petrol, 190 hp (140 kW)
Power/weight- 9.7 hp/t
Suspension- leaf spring bogies (개발자: Eugene Brillie)
Fuel capacity- 510 litres
Operational range - off-road ~130 km, road ~230 km
Speed- 40.7 km/h (off-road: 32.2 km/h)

 


대략 이렇습니다.

특히 이 탱크는 방어력(방탄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하여, 주요 부분을 소위 cast iron 이라고 부르는 주강(鑄鋼; 주물용 강 또는 주조한 강으로 탄소 0.1∼0.5%, 망간 0.4∼1.0%, 규소 0.2∼0.4%, 인 0.005% 이하, 황 0.006% 이하 조성의 강을 전기로에서 녹여 주물로 만든 특수 철판 - 이하 네이버 사전 참조)으로 제작을 한 점이 특징입니다.

이 주강으로 된 장갑은 세 부분에 부착되었는데, 즉 탱크의 밑 부분(이 위에 엔진과 트랜스미션 등이 위치함.) 앞 부분(승무원들이 탑승하는 공간으로 포탑 등을 커버), 뒷부분(엔진을 커버하는 부분) 이렇게 크게 세 부분에 이 주강으로 장갑 처리를 하였읍니다.

그리고 그 당시 탱크로는 드물게 상당하 경사각의 장갑을 채용한 것도 우수한 부분이었읍니다.

그리고 하나의 특징은 소위 'differential steering 시스템'??을 채용한 것인데(이는 그 당시에는 신기술이었음.) 이로 인하여 각 무한궤도들이 각각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거나 한쪽은 빨리, 다른 쪽은 느리게 움직이는 것이 가능하여 차체가 앞으로 전진하는 일이 없이도 곧바로 그 자리에서 회전을 할 수 있었다는 점 입니다.

변속장치는 전진 5단, 후진 1단 이었읍니다.

그리고 포탑의 경우 르노(Renault) B1 bis 重전차 혹은 D2 탱크의 것과 사실상 같은 것(APX 4 turret)을 사용하였읍니다. 그런데 포탑에는 전차장용 해치가 없었는데 이는 제조 단가를 줄이려는 제조업체측(Somua)의 궁여지책일 뿐이었읍니다.

(참고3; 프랑스의 경우 군부에서 개발 제원을 제시하고 전차 개발을 민간 업체에 맡기는 과정에서 프랑스 군부의 감독과정이 철저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져 있읍니다. 이는 우선 군부의 요구사항(개발 제원)이 상세하지 못하고 모호한 부분들이 많았고 따라서 이에 따라 각 개발업체에서는 세부적인 부분들의 상당수가 공백으로 남겨져 있는 상황이어서 그들의 입맛에 맞게 제조 단가를 줄이려는 온갖 방법을 쓰게 되는데 이에 대한 통제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의미임. 따라서 포탑에 해치가 없는 등의 생각하기 힘든 일들이 종종 벌어지게 됨. )

그리고 주포를 발사하고 난 뒤에는 자동으로 소화(automatic fire extinguishing system)가 되는 구조이었읍니다.(즉 탱크 내부의 온도-캬브레터, 연료 탱크 부분, 운전석 뒤 등 중요한 부분- 가 일정 온도 이상이 되면 탱크 안의 스프링쿨러가 자동 작동하는 방식) 이 때 자동 소화를 위해서 methyl bromide 라는 화학물질이 사용되었읍니다.

엔진룸은 탱크 뒷면의 왼쪽이 위치하고 있으며 그 바로 오른쪽에는 연료 탱크가 들어 있는 구조이었고, 운전석은 탱크의 앞면 왼쪽에 그리고 라디오 무선병은 운전병 오른쪽에 위치하는 형태이었읍니다.
그리고 운전병의 시야 확보를 위하여 운전병의 자리 위에는 열고 닫을 수 있는 해치가 장착되었읍니다.
탱크의 출입은 차체 왼쪽에 마련된 문을 통하여 이루어졌읍니다.

탱크의 바퀴 부분(좌, 우)을 보면 재질은 철제인데, 우선 이 무한궤도를 받치고 있는 커다란 롤러형 아이들러(idler pulley) 바퀴가 앞 쪽에 위치하였고 반면 무한궤도 뒷편에는 커다란 톱니바퀴(sporocket)가 장착되었읍니다.

이들 아이들러와 스포라켓 바퀴 사이에는 작은 형태의 9개의 바퀴가 장착되었는데 그 중 8개는 (2개씩 짝을 이루는) 로드 휠(eight road wheels paired on four bogies )이었고 나머지 1개는 텐션 휠(tension wheel)???이었읍니다.
그리고 그 당시의 프랑스 탱크가 그렇듯이 이 바퀴를 보호하기 위하여 철판으로 사이드 커버를 씌웠읍니다.

무한궤도 부분을 보면 초기형의 경우 144개의 트랙(track link)로 구성되었고 각각의 트랙의 경우 길이가 75mm 이었읍니다만, 이것이 후기형으로 오게 되면 103개의 트랙(track link)에 각 트랙 길이 105mm의 것으로 바뀌게 됩니다. 그리고 이 무한궤도에는 길이로 길게 홈이 파여져 있어 이 홈을 따라 (좌, 우 측면에서 각각) 9개의 작은 바퀴가 이동하게 되는 형태이었읍니다.

엔진 부분과 연료 부분은 위의 제원대로 입니다.(가솔린 사용)


어찌되었던 이 정도 제원이라면 그 당시 실전에 배치된 그 어느 전차(기병용 전차로서)보다도 우수하면 우수하지 절대로 밀리지 않는 실력이지요.(경쟁자인 소비에트의 Soviet BT-7 와 독일의 Panzerkampfwagen III 보다도 성능 자체는 우수하다 함.)
위키피디어의 표현으로는 1930년대 최고의 전차라고 소개되어 있기도 합니다.(...This is why today the S35 is often described as the best tank of the thirties......)


물론 약점(어떤 것은 심각한 문제이었음.)도 몇몇이 지적되고 있지요.

첫번째는 예를 들면 서스펜션 부분이 너무 약하고(몇 가지 이유로 당시 프랑스에서는 최신식의 크리스틴 현가장치를 사용하지 못하였기 때문. 즉 이 크리스티 현가장치는 당시 최신식 기술이었는데 당시 프랑스의 공업력이 이를 완전히 소화할 정도로 되어 있지 못한 것이 그 주된 이유 중 하나임.) 이를 수리하기가 아주 어려워 그 유지 보수가 너무나 힘들다는 점 등이 지적되기도 합니다.

두번째는 이 전차의 승무원은 3인인데, 즉 운전병, 라디오 무전병 그리고 전차장입니다.
여기에서 알 수 있듯이 이 S-35 전차의 경우 소위 1인 포탑 형태로서 전차장 1인 만이 포탑 안에 들어가서(포탑 안의 조그만한 안장에 앉는 구조)들어가서 방향지시, 전투 준비명령, 포탄 장전 및 배출(4인 승무원 구조 하에서는 장전수의 몫) 등을 혼자서 다 하여야 하는 구조이었읍니다.

당연히 이런 1인 포탑 구조하에서는 전차장의 업무가 장전수의 업무까지 겸하다보니 이로 인하여

신속하고 능종적인 작전을 피는 것이 상당히 힘들었읍니다.아무리 (전차장이 숙달된 능력을 가졌다고 전제를 하더라고 전차장이 포수 노릇까지 하는 것은 상당한 무리이지요.)

세째는 (위에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선회형 포탑에 해치가 없었다는 점 입니다.
이로 인하여 막상 전투가 벌어질 경우 전차장이 포탑 안에서 외부 상황을 전부 파악하여야 하기 때문에 이만저만 불편한 것이 아니었읍니다.(물론 프랑스가 독일군에 항복한 후 일부 S-35 탱크가 독일군의 장비로 쓰이게 되는데 이 때 독일군은 포탑을 개조, 해치를 달아서 이 문제를 해결하게 됨.)

 

 

* S-35의 실전 경험



어찌되었던지 간에 이 S-35 탱크는 벨기에 지역에서 독일군 탱크 사단들과 조우하여 대규모 전투가 벌어지는데(프랑스 군의 기갑 차량만 약 1,700여대가 동원된 것으로 그때까지 최대 규모의 전차전이 됨.), 이 때 프랑스 군의 S-35 탱크부대는 완패를 당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한번의 대규모 패배로 프랑스 군의 기갑 전력이 붕괴되어 이후 급속하게 밀리게 되어 곧 수도 파리까지 함락되게 되지요..

그 이유를 본다면,
첫째, 원래 프랑스 군이 원하는 수량(약 2,000대)에 턱없이 부족한 상태로 공급되어 (프랑스 군이 원하는) 소위 '집중적인 운용'을 할수가 없었읍니다.
(참고로, 프랑스의 경우 1941년 쯤으로 예상한 독일과의 최후의 결전을 위하여 이 탱크들을 원래 계획된 S-35의 수량이 다 채워져서 별도로 완전한 탱크사단을 구성하기 전까지는 이 탱크를 아끼어 적은 수량이나 보급된 이 탱크들을 일선 보병 부대에 잘 지급하지 않았는데, 이것이 실제 전투에서 독일군에게 밀리게 되는 또 다른 이유가 됩니다..
즉 이에 따라 프랑스 보병부대의 경우 이 S-35 탱크의 지원을 받지 못한 채 전투에 임하여야 하는 상황이 많게 되는데, 이는 똑같이 주력 탱크의 수량 부족이라는 문제에 직면한 독일의 운용과는 대비됩니다. 즉 독일의 경우는 부족한 탱크나마 적극적으로 보병 부대와의 합동작전에 투입하여 그들의 소위 전격전Blitzkrieg에 적극 투입하게 되는데 결국 이러한 운용상의 차이가 프랑스 군 보병들이 독일군에게 밀리게 되는 중요한 이유가 됩니다.)

둘째, 프랑스 군의 지나친 구태의연한 소극적인 전략(결국 마지노선Maginot Line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식의 안이한 수세적인 전략으로 탱크 운용에 있어서도 일단 시간적으로 버티기만 하면 된다는 식의 안이한 전술이었음, 결국 이것이 결정적인 판단 미스로 드러나게 되지요.)과 이릉 역이용한 독일군의 허를 찌르는 전격전Blitzkrieg에 말려들어 프랑스 탱크부대가 우와좌왕 하다가 독일군의 공격에 맥없이 무너지는 결과가 되었다는 점 입니다.

즉. 프랑스 군이 독일군의 공격 예상 지점으로 판단한 곳에서의 독일군의 공격은 종종 속임수(feint; 위장 공격)로 판명되었고 반면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독일군의 전차 부대에 의하야 프랑스 전차 부대가 포위되는 상황이 벌어지게 되는데 따라서 이 포위된 탱크 부대를 구원하기 위하여 다른 곳에 포진한 탱크 부대들이 급히 이동하게 되는데 독일군은 이러한 우왕좌왕하는 틈을 노리어 대대적인 역습에 나서게 된 것 등입니다.,

셋째, 일부 운용상의 미스가 있었는데, 하나의 예를 든다면, 무전기의 턱없는 부족입니다.(결국 프랑스 군의 S-35 탱크의 80%는 무전기 없이 전투에 임하는 꼴이 됨.)

프랑스 탱크 부대의 경우 5대의 탱크로 구성되는 소대급에서 보면, 선두 지휘차량에게만 본대와 연락할 무전기(ER-29)가 주어져 직접 본대에 보고하고 그 지시사항을 휘하 탱크들에 다시 (내부 교신용)무전기(ER-28)로 전달하는 방식이라고도 하는데, 이런 방식 자체가 각 탱크마다 본대와 연락할 수 있는 무전기를 각각 지급한 독일에 비하여 아주 열악한 시스템일 뿐만 아니라, 그나마 이 (내부 교신용)무전기들이 제대로 지급되지 못하여 선두 지휘차량을 제외한 후미의 탱크들의 경우 무전기가 전혀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되는 경우가 허다하였다는 이야기입니다.

결국 독일군과의 전투에서 본다면, 이 S-35 탱크는 일대일로 붙어서는 오히려 독일군의 탱크들보다 우수하면 우수하지, 밀리지 않는 실력임에도 불구하고 운용상의 미스 등 여러 요인이 작용하여 정말로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궤멸되어 버립니다....


이후 1940년 프랑스가 독일에게 항복(June 1940 armistice)을 한 후에는 많은 수의 S-35 탱크들이 북아프리카에 있는 프랑스 식민지들로 이동을 하게 되는데 이후 이 탱크들은 이탈리아와 독일군의 북아프리카 작전 때에 함께 동원되기도 합니다.
물론 북아프리카에서 독일군이 궤멸된 이후에는 드 골 장군 휘하의 자유 프랑스군의 장비로 편입되게 되어 그 이후에는 연합군의 일원으로 독일과 이탈리아에 대항하여 싸우게 됩니다.

 

 

 

* 프랑스 이외에서의 사용

 


그 이후에 이 Somua S35 탱크의 운명은 대부분이 나찌 독일에 의하여 압수(약 297대 정도)되어 방어용 전차 혹은 훈련용 전차로 전환되어 독일군을 위하여 사용되게 됩니다.
이 떼 독일군의 포탑 위에 해치를 만드는 등의 개조 작업을 하게 되는데 이를 Panzerkampfwagen 35-S 739(f).라는 이름으로 제식화 합니다.
독일군의 경우 이 S-35 등의 프랑스 탱크들로 탱크부대(201 Panzerregiment)를 구성하여 이후 핀란드 등지로 보내어 소련군과의 전투에 사용하기도 하였읍니다.
(물론 이 S-35 탱크는 동부 전선에서의 치열한 전투 등으로 많이 파괴되었고 따라서 1944년 12월경에는 독일측에 약 11대 정도만 남아있게 됩니다.)
그리고, 일부 S-35의 경우에는 이탈리아와 불가리아 등에도 공여되었읍니다.

 

* 변형

 

그리고 일부 변형 모델이 있는데 우선 1937년도에 프랑스 군부에 의하여 이 S-35 탱크를 기본으로 하여 차체를 약간 크게 한 SAu-40 탱크에 대한 개발 계획이 나오는데 이는 75mm의 포를 탑재한 일종의 자주포이었읍니다. (찾아봤는데 정말 자주포라고 하더라. 근데 왜 월탱에선 4티어 구축이냐?) 다만 여러 이유로 양산은 되지 못하고 단 1대가 만들어졌는데, 이후 독일군과의 전쟁 때 이 자주포도 같이 동원되어 전투를 치른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 후의 운명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모델로 S-40이 있는데 원래 이는 이 S-35에서 포탑을 크게 하고 생산 원가 등을 낮추기 위하여 차체(포탑) 부분에 용접을 사용하는 등의 계획이었으나 1대의 프로토타입만 만들어졌을 분 생산되지는 못하였읍니다. 

 

 

 

* 운행방법  


  글쎄요. 몰아본적이 없어서 모르겠네요. 중형이니까 중형처럼 몰면 되겠죠. R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