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자주박격포

제2차 대전 당시 독일 육군이 사용하던 구경 600mm의 괴물, 칼 자주박격포(Karl-Gerät).

간단한 구조를 가진 박격포는 보병들이 휴대하여 즉시 사용할 수 있는 지원 화기다. 산악과 도시가 많은 우리나라 같은 지형에서 전술적 효과가 좋은데, 정작 담당 병사들은 스스로를 ‘어둠의 자식들’이라 자조할 만큼 생각보다 박격포는 무거운 무기다. 국군이 보유한 60mm와 81mm박격포는 휴대하여 운반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그중 가장 작은 60mm만하더라도 행군할 때 병사들에게는 애물단지로 취급받을 정도다. 연대 화력지원용인 4.2인치(최근 120mm로 교체 중) 박격포는 야포처럼 별도의 차량을 이용하여 운반할 정도로 무겁다.

구경 600mm의 괴물 박격포

그런데 4.2인치는 물론이거니와 현존하는 그 어떠한 야포도 감히 명함을 내밀 수 없을 만큼 거대했던 박격포가 역사에 존재하였다. 제2차 대전 당시 독일 육군이 사용하던 칼 자주박격포(Karl-Gerät 이하 칼)가 주인공인데 구경이 600mm나 되는 상상을 초월한 괴물이었다. 사실 박격포라는 뜻을 가진 Mortar는 구포(臼砲)를 의미하기도 한다. 20세기 들어 사라진 무기 중 하나인 구포는 마치 절구처럼 생긴 구경에 비해 포신 짧고 발사각이 큰 화포를 말한다. 무거운 포탄을 수직으로 쏘아 떨어질 때의 낙하 속도를 이용하여 공격하는 무기인데 주로 공성용으로 사용된다. 우리말로 이처럼 구포와 박격포로 구분되지만 사정거리가 짧고 탄도의 특성으로 보아 Mortar로 표현하는 것이다.

엄밀히 말해 칼은 모양이나 목적으로 보아 박격포보다는 구포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전쟁 말기에 장포신 형이 나오기는 했지만 일반적인 박격포와 달리 칼은 포신이 짧고 오로지 요새처럼 견고하게 축성된 목표물의 파괴를 목표로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칼은 포탄과 장약을 뒤에서 밀어 넣는 후장식이어서 화약 폭발로 발생한 가스압을 이용하여 포탄을 발사하기 때문에 야포에 가깝다고 볼 수도 있다. 그만큼 정체가 애매모호하다.

철옹성을 돌파하기 위한 무기

사격 훈련 중인 칼 자주박격포, 지우(Ziu)라고 이름이 써 있다. <출처: (cc) Bundesarchiv>

제1차 대전에서 패한 독일은 베르사유 조약이라는 굴욕을 감수하였는데 당시 독일을 가장 혹독하게 대했던 나라가 프랑스였다. 따라서 프랑스는 독일이 반드시 복수하여야 할 철천지원수였고 두 나라 사이에서의 전쟁은 누구나 예견하고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프랑스는 여전히 유럽 최강의 육군 강국이었고 독불 국경을 따라 건설된 강력한 마지노선(Maginot Line)에 의해 보호를 받고 있었다.

따라서 독일이 마지노선을 정면 돌파한다면 상당한 피해가 예상되었다. 결과적으로 독일은 마지노선을 우회하는 전략으로 프랑스를 굴복시켰지만, 전쟁 전에는 정면 돌파하는 방법도 당연히 궁리하여야 했다. 독일은 왠만한 공격으로 마지노선을 파괴하기 어렵다고 보고 1936년 현재도 세계적인 방산 업체인 라인메탈(Rheinmetall AG)에 지시하여 오늘날 벙커버스터(Bunker Buster)처럼 마지노선을 박살낼 공성용 무기의 제작에 착수하였다.

견고한 요새를 일격에 격파하려면 엄청난 폭발력을 지닌 포탄이 필요한데 당시의 기술력으로 포탄의 크기를 작게 만드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따라서 포탄의 크기가 컸고 당연히 이를 쏘기 위한 발사체도 거대해야 했다. 문제는 포가 커질수록 이동에 제약이 많다는 점이었고 이 때문에 당시까지 대구경 포는 열차포인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처음에는 분해된 대포를 열차편으로 현지까지 전개 시킨 후 조립하여 사용하는 방법을 고려하였다.

거대할 수밖에 없었던 박격포

참고로 이렇게 탄생한 또 다른 공성포가 바로 역사상 최대의 거포로 평가받는 구경 800mm의 구스타프(Schwerer Gustav)다. 그런데 이러한 경우 현지에 방열 지점을 구축하고 포를 조립하는데 보름 이상의 시간이 걸릴 것으로 평가되어 라인메탈은 무한궤도 차대 위에 포를 탑재하여 그대로 작전 지역까지 열차편으로 옮긴 후 전선에 즉시 투입하는 것으로 연구 방향을 바꾸었다.

구스타프의 2호기의 모델 사진. 열차포 형태의 거포이다. <출처: (cc) Scargill at wikimedia.org>

파괴력을 극대화하려면 최대한 높이 쏘아 올려 목표물에 거의 수직에 가깝게 떨어지는 것이 효과적인데 그러다보니 칼은 고각 상태로 발사를 하였다. 이 때문에 구포나 박격포를 의미하는 Mortar로 분류되었고 개발을 주도한 칼 베커(Karl Becker) 장군의 이름을 따서 칼이라 불렸다. 하지만 사거리가 불과 10여 Km 남짓에 불과하여 최대한 목표 지점에 근접하여 작전을 펼쳐야 했다.

칼은 총 7문이 제작되어 실험용을 사용된 초도 생산 분을 제외하고 6문이 실전에 배치되었다. 이들에게는 아담(Adam), 에바(Eva), 토르(Thor), 오딘(Odin), 로키(Loki), 지우(Ziu)라는 이름이 각각 부여되었는데 고대 북유럽 게르만들이 숭배하던 신들의 이름에서 딴 것이다. 그런데 칼이 완성된 것은 1940년 5월이어서 정작 프랑스 침공전에 사용될 수 없었다. 하지만 히틀러의 넘치는 도발욕은 칼 형제들이 편하게 녹슬어 버리지 않도록 만들었다.

열차에 탑재되어 전선으로 이동 준비 중인 칼 자주박격포.

신들의 포효

1941년 10월부터 요충지 세바스토폴(Sevastopol)을 놓고 독일과 소련은 건곤일척의 싸움을 펼쳤다. 소련 침공 초기에 승승장구하던 독일군이 8개월이 넘도록 함락시키지 못하였을 만큼 이곳은 마지노선을 능가하는 천혜의 요새였다. 당시 작전을 지휘한 독일 제11군 사령관이 제2차 대전 당시 최고의 명장으로 손꼽히는 에리히 폰 만슈타인(Erich von Manstein)이었는데, 그러한 인물조차 공략에 애를 먹던 철옹성이었다.

1944년 바르샤바 전투 당시 포탄을 발사하는 지우(Ziu)

결국 이곳의 점령을 위해 2문(오딘과 토르)의 칼과 앞에 언급한 거포 구스타프가 동원되어 그 무시무시한 화력을 선보였다. 천혜의 요새였던 세바스토폴도 독일의 무지막지한 포격을 견뎌내지 못하고 점령당하였다. 당시 자료에 칼의 공격에서 겨우 살아난 소련군 포로들은 공황상태에 빠졌다고 묘사되었을 만큼 위력이 대단했다. 하지만 이런 어마어마한 위력에도 불구하고 칼이 제2차 대전 동안 활약한 내용은 그리 많지는 않다.

전선의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며 화력 지원에 나섰지만 태생적인 한계로 말미암아 상당히 제한적인 임무에만 투입되었다. 독일의 극성기라 할 수 있었던 1941년 말까지 사용되지 않았던 점에서 알 수 있듯이 둔중한 칼은 전격전으로 불리는 독일군의 사상과 맞지 않았다. 자주화되었지만 사실 이동에 상당히 제한이 많았고 시속이 최대 10km에 불과할 만큼 속도도 느렸다.

1944년 바르샤바 봉기 당시에 칼 자주박격포에 의해 피격당하는 건물.

구시대의 유물

칼은 한번 발사 후 다음 포탄을 발사하는데 10분 이상이 필요하였을 만큼 연사력도 뒤졌다. 더불어 적의 공격으로부터 위험할 만큼 가까이 다가가 사격을 하여야 하는 짧은 사거리는 작전 중 칼의 안위에 항상 고민을 안겨주었다. 1943년 3문의 칼을 540mm로 구경을 줄이는 대신 포신을 늘려 사거리를 확장한 Gerät041로 개조하였지만 실전에서의 효과는 그다지 크지 않았다. 구포의 특성이 컸던 칼이 가질 수밖에 없던 근본적인 한계였다.

방열한 사격 540mm 구경 장포신 칼 Gerät041.

현대전에서도 집중과 속도는 승리의 기본 요소라 할 수 있는데 기갑부대와 공군을 동원하여 입체적으로 이러한 전술을 처음 구현한 이가 제2차 대전 당시의 독일군이었다. 전쟁이 장기화되고 전선이 커지면서 독일이 더 이상 이러한 장점을 살릴 수 없게 되면서 결국 패전에 이르게 되었지만 독일군의 사상은 전쟁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되었다. 그렇다보니 어쩌면 칼은 탄생과 동시에 구시대의 유물이 되어버린 것과 다름없었다.

러시아 쿠빙카 군사박물관에 보관 중 현존하는 유일 칼 자주박격포 지우(Ziu) 마킹은 아담(Adam)으로 되어 있지만 아담은 전쟁 중 파괴된 것으로 알려진다. <출처: (cc) kastey at wikimedia.org>

이처럼 초대형 박격포는 사용이 극히 제한된 특별한 무기다. 동 시대 미국은 일본 상륙을 염두에 두고 리틀 데이빗(Little David)이라는 36인치 초대형 박격포를 생산하였지만 실제 사용된 적이 없었다. 따라서 칼이 실전에 투입된 사상 최대의 박격포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고 사실 포탄도 500kg 정도 더 무거웠다. 칼은 독일 선전 영화에

 

 

 

 

 

믿거나  말거나  ㅎ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