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evelopment of the Pattons



안녕 /r/TankPorn갤 여러분

오늘은 내가 소장하고있는 패튼 앨범을 풀어볼까 해요. 휴식기를 가지느라 오랫동안 연재를 하지 못해서 죄송해요. 그래서 오늘은 좀 많이 준비해왔어요

이 앨범은 미국 전차 개발사의 상당 부분을 커버하고 있고, 그래서 몇몇 부분을 대충 서술하고 넘어가기도 했어요. 뭔가 확실히 해주고 싶거나, 이 앨범에 언급되지 않은 패튼이야기같은 궁금한게 있다면 언제든지 물어보세요.

그냥 댓글, 질문, 피드백, 오류 지적도 환영이에요.

재밌게 보시길 바래요.

The M26 Pershing


당연하지만 M26은 패튼이 아니에요. 하지만 패튼이 어떻게 태어나게 됐는지 알려면 미군의 2차대전 직후 상황에 대해서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어요. 만약에 M26에 대해 궁금해시다면 제가 몇 주 전에 올린 이 글을 읽고 와보셔도 돼요:
 

2차대전이 끝나고 미군은 대단히 심각한 문제를 숙제로 남기게 되었어요. 종전 당시 가장 현대화됐다는 군대가 소유하고 있다는 전차 M26은, 말 그대로 자격 미달이었죠. 일선에서 들려오는 가장 큰 불만은 45톤짜리 M26에 장착된 Ford GAF 엔진 (30 톤짜리 M4 셔먼을 위해 만들어진 500 마력짜리 그 엔진) 이 너무나도 불충분하다는거였죠. 불행하게도 아시아와 유럽에서 모두 종전을 맞이한다는 것은 새 전차 개발 예산을 포함한 모든 예산이 짤린다는 의미였죠. 그리고 짤리지 않은 거의 예산은 핵무기와 투발 수단을 연구하는데 모두 투입되었다죠.

이제 육군 손에 남은 건 2천 량이 넘는 무쓸모스러운 전차들이었죠. 대부분이 낡아빠진 셔먼들이었고, 비록 2차 대전을 잘 버텨준 전차라지만 이것으로 현대전을 수행할 수는 없었죠. 

육군에게 남은 옵션이라곤 어떻게든 M26을 현대화하는 것 뿐이었고, 이것은 1946년 초에 시작되었습니다.

The T40


현대화 과정에서 여러가지 지적 사항들이 반영되었습니다. 엔진(파워팩)이 가장 큰 이슈였죠. 그 이야기부터 시작해보도록 하죠.

아까 말했지만 M26에 장착된 V-8 GAF 엔진은 충분한 출력을 제공해주지 못했고, 이로 인해 퍼싱이 셔먼보다도 훨씬 신뢰성이 떨어지는 전차가 되고 말았어요.

이걸 수습하기 위해, 콘티넨탈에서 새롭게 개발된 V-12 엔진이 기존의 포드 8 실린더 GAF 엔진을 대체했습니다. 사실 이 엔진은 전차 엔진 위원회에서 2차 대전 중에 이미 개발을 시작한 물건이었고, GAF와 다르게 이 엔진은 퍼싱에 제대로 된 출력을 제공해 주었습니다.

새 엔진은 1790 입방 인치의 크기를 가진 V-12 가솔린 엔진이었고, 2600 rpm에서 740 마력의 힘을 뽑아냈습니다.

시제품 3개가 만들어져 테스트에 들어갔고 AV-1790-1로 명명이 되었어요. 설명을 하자면 A는 공랭 엔진임을 뜻하고 V는 엔진 형식을 뜻해요(역: V형 실린더 배치). 첫 번째와 세 번째 생산된 엔진은 시험 목적으로 사용되었고, 두 번째 엔진은 목적에 맞게 M26에 장착되었죠. 이 개량형 M26은 M26E2로 명명되었습니다. 개량형 M26은 엔진만 교체한 것이 아니라 GM사에서 개발된 조향, 감속, 변속을 모두 담당하는 CD-850-1 크로스 드라이브 밋숀을 장착했습니다. 

새 밋숀이 달린 M26E2는 피봇턴이 가능했습니다. 이 기능은 "중립 조향" 조작을 통해 가능했는데, 전차의 양 추랙을 서로 반대 방향으로 기동시키는 시스템이었습니다. 그동안 미국 전차의 표준이었던 좌우에 있는 조향 레버는 폐지되었고, 대신 조종수의 무릎 사이에 조향용 레버 한 개가 장착되었습니다. 그 레버는 "흔드는 막대기" 로 불렸죠.

디트로이트에서 일정 기간 시험을 거친 M26E2는 1948년 5월에 에버딘에 보내져 추가 시험을 진행하였습니다.

현대화 사업을 통해 다음으로 얻게 된 것은 주포입니다. 90 mm M3 포를 대체하기 위해 다양한 안들이 나왔었는데요, 예를 들어보자면 T54 (슈퍼싱에다가 3인치 올린거) 가 있죠. (그리고 그 3인치란 해군 3인치 70구경장 양용포를 베낀거) 하지만 결국 돈이 부족한 병기국은 모든 진행을 중단시키고 90미리로 사골을 끓이기로 했어요. 90 mm M3도 잘 찾아보면 개량의 여지가 있었고 그리고 그냥 그거에 집중하는 쪽으로 가기도 했어요.

가장 먼저 한 조치는 M71C 광학조준기를 새 M83 광학 사격 통제기로 교체한 것이었어요. 위에 사진을 보면 아시겠지만 포신 끝자락에 제연기도 추가되었죠. 그리고 단일 차폐형 머즐 브레이크도 장착되었습니다. 제연기가 장착된 이 90미리는 M3A1로 명명되었습니다.

이 장비가 모두 장착되고, 전차 10대가 병기국에 의해 T40으로 명명되어 1948년까지 인도될 예정이었어요. 새 전차들은 AV-1790-3 엔진이 장착되어 AV-1790-1보다 훨씬 강한 2800 rpm에서 810 마력의 출력을 뽑아냈죠. 밋숀 또한 개량되서 CD-850-2가 장착되었어요.

M26E2와 T40의 다른 점을 또 찾아내자면 파워팩 넣을 자리를 확보하기 위해 엔진룸을 키운 것이 있고, 또 마지막 보기륜과 기동륜 사이에 조그만 추랙 장력 조절용 아이들러 휠을 장착한 것이 있습니다. (위 사진 잘 보다보시면 나올지도 모름) 이건 험지에서 추랙의 장력을 유지하기 위해 만들어진 장비로, 기동 중에 추렉이 이탈해버리는 것을 방지해줬죠.

(역: 우리나라에서 쓰는 M48에는 없는 바퀴인데 월탱 M48에 보면 있는 바로 그 바퀴입니다)
 

Medium Tank T40




생산된 10량의 T40 중 9대가 에버딘에 시험 목적으로 1948년 8월에 보내졌고, 남은 한대는 공병 전차로 개조하기 위해 디트로이트에 남겨졌습니다.

1948년 7월 30일에 열린 병기 위원회 회의에서 새 T40 전차를 공식적으로 M46으로 명명, "제식 전차"로 지정되었으며, 그리고 동시에 M26을 "제한적 제식 전차" 로 지정하였죠. 이 말을 해석하자면 M46으로 전면 개조되던지, 그냥 반쯤만 개조되던지 어떤 형식이든 사용할 거라는 의미였습니다. 실제의 경우를 보면 일차적으로 육군성의 특별 허가를 받아야하는 절차가 있지만 M26이 일선으로 계속 보급되고 있었죠.

생산 라인이 본격 가동되기 직전까지 M46에 몇 가지가 더 추가되었습니다. AV-1790-2는 AV-1790-5로 업그레이드 되었고, 밋숀은 CD-850-3으로 업그레이드되었죠. 아 그리고 가장 중요한게 추가되었죠. 제식 전차 M46은 2차 대전의 조지 S. 패튼 주니어 장군을 기려 패튼 전차라는 닉네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열심히 생산 라인을 굴려서 1949년까지 M46 800대가 승인되었고, 1950년까지 1215대의 M26이 새 제식 전차로 개조될 예정이었습니다.

하지만 한국 전쟁이 모든걸 바꾸었죠.

M46




M46이랑 T40 차이점이 구분되시나요?

가장 큰 차이점은 전차 후방에 있어요. 배연기 배치가 바뀌었고 사각형의 후방 정비용 해치가 둥글둥글한놈으로 바뀌었죠

M46이랑 T40은 외형적으로 거의 같은 물건이다 보시면 되겠습니다.

M46 in Korea


한국 전쟁의 발발로 인해 육군의 M46 계획은 그냥 문자 그대로 휴짓조각이 되었습니다. 한반도로 가용 가능한 모든 전차를 보낸다는 소리인 즉슨 M46으로 개조를 받아야할 M26들이 죄다 전쟁에 보내져야 한다는 소리였죠. 그리고 동시에 육군에서는 M46 또한 무쓸모해서 생산을 계속 하는게 옳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죠. 비록 1951년에도 M46이 계속 생산되고 주문됐지만, 병기국에서는 M46의 검증된 샤시와 차체 위에 새 터렛을 올리는 계획인 T42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였습니다. 이 전차는 M47로 불리게 되지만, 그 부분은 일단 나중에 다뤄보도록 하죠.

1951년에 M46의 개량형이 주문되었습니다. 기본적으로 밋숀과 엔진을 또다시 올린 버전입니다. 이 전차는 M46A1로 불렸고, AV-1790-5B 엔진과 CD-850-4 밋숀이 장착되었습니다.

그럼 Steven Zaloga씨의 연구를 통해 M46의 한국전 당시 퍼포먼스를 다뤄보도록 하죠:

이 연구는 119회의 전차전을 합산한 통계이며, 104회는 육군에 의해, 15회는 해병대 제1전차대대에 의해 이뤄졌다. M26과 M46이 참전한 횟수는 이중 반 가까이를 차지하며, 이중 M26은 38회 (32%) , M46은 12회 (12%) 의 참전 기록을 나타내었다. 119회중 24회의 전차전만 3대 이상의 북괴 전차가 참가한 전투였으며, 대부분은 소대 이하의 규모가 교전한 기록이었다. M46의 전차전 횟수가 적은 이유는 11월 이전까지 참전을 하지 않아서 이다. 도합 34량의 미군 전차가 작전 불능이 되었으며 그 중 M26 6량과 M46 8량이 작전 불능이 되었으며 그중 15량은 전손 처리되었다. 

미군은 97량의 T-34/85 전차를 격파했다고 기록하였으며 그 외 18량 또한 추정 격파된 것으로 판단된다. M26은 총 파괴된 북괴 전차중 39%를 격파하였으며, M46은 12%를 격파하였다. 절반 이상의 교전이 350 야드(역: 야드가 애초에 3피트 그러니까 1미터랑 거의 비슷한 단위라서 그냥 대충 읽으시면 됩미다) 이내에서 이뤄졌으며 M26은 85%의 명중률을 기록하였다, HVAP탄 (역: 고속 철갑탄) 이 사용될 때는 좀 더 높은 명중률을 보였으며, APC탄 (역: 일반 철갑탄) 사용시 좀 더 낮은 명중률을 보였다. 20%의 교전이 350-700 야드에서 이뤄졌으며, 비슷한 수의 교전이 750-1,150 야드에서 일어났다. 이 거리에서의 명중률은 각 69%와 46%를 기록하였다. 이 기록들은 M46과 M4A3E8에서 거의 차이 없이 나타났는데, 이건 모든 미국 전차들이 거의 같은 사격 통제 시스템을 사용한 것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가장 짧은 교전 거리는 10 야드였으며, 기록된 바에 의한 최장 거리 교전 및 격파 기록은 M26에 의해 이뤄졌으며 3,000 야드 거리에서 적을 격파하였다.

1950년 11월 이후 북괴 전차를 조우하는것은 매우 드문 일이 되었다. 미 육군은 M26은 M4A3E8 셔먼보다 전차전에서 훨씬 우월하다는 결론에 도달했으며, 공격 작전에서 3.5배 이상의 효율을 보였으며, 종합적으로도 3.05배의 효율을 보이는 것으로 분석하였다.

Type - 킬 - 뎃 - 킬뎃

Sherman - 47 - 20 - 2.35
Pershing - 38 - 6 - 6.33
M46 - 12 - 8 - 1.5

/////인용 끝

M46은 한국전에서 잘 싸웠어요. 다만 문제는 전차전이 정말 적었다는데 있고, 전쟁 초반부터 투입된 것이 아닌 이상 이 데이타로 뭐라고 말할 부분은 없다고 봐요.

한국전에 투입된 탱크 대부분은 보병 지원에 투입되던가 포병처럼 사용되었어요.

M46이 M26보다 좋은점은 추중비가 좋다는 점인데, 산악 지형이 많은 한국에서 큰 이점으로 작용했으며, 피봇턴이 가능한 점 때문에 M26이나 M4보다 훨씬 빨리 목적지에 도착하곤 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남북한 사이에 이뤄진 휴전 협정에 의해 한반도에 신 무기를 들이는 것이 금지되어 M46이 1950년 후반까지 미군의 주력이 되었다는 점이죠. 그리고 그 이후 새 전차에 의해 도태되게 되죠.

이 위에 있는 M46은 야포 대용으로 사용되고 있는 모습입니다.

M46


1957년 2월 14일, 정말 슬픈 날이죠. M46, M46A1, 그리고 M4A3E8은 공식적으로 일선에서 물러났습니다. 하지만 M46은 나머지와 달리 한반도의 특수성에 의해 부품이 고갈될 때 까지 현역으로 활동하였습니다. 


The T37 Light Tank


이후에 다룰 전차는 M47이에요. 보수적인 M46에 비하면 M47은 대단히 혁신적인 디자인이었는데, 비록 미군과 함께 실전에 참가할 기회는 없었지만 패튼 전차 라인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연결고리 역할을 해요. 따라서 이전에 한 것 처럼, M47 시제품부터 보시죠 - T37입니다.

T37 프로젝트는 병기국에 의해 1946년에 시작됐습니다. 미국 공학 역사상 가장 최고의 경전차를 만들기 위해 시작된 것이고, 2차 대전동안의 경전차 운용 교리와 최신 기술이 합해진 결과물로 킬러 경전차 그 자체였죠.

전쟁성의 제한된 예산 지원으로 인해 대단히 느리게 개발됐으며 완성을 눈앞에 둘 쯤에는 이미 전쟁은 끝나고 없었죠.

사진에서 보시다시피 전체적인 윤곽은 M24 채피스러웠으며, 또한 채피를 대체하는게 목적이었죠. 500 마력짜리 콘티넨탈 AOS-895에 의해 추진되었습니다. A는 공랭이라는 뜻이고 O는 수평으로 눕혀졌다는 뜻, S는 슈퍼차저가 달렸다는 뜻이죠. 그리고 엔진 용적은 895 입방 미터였습니다. 밋숀은 CD-500이었어요.

이 탱크에는 쌍안 측거기(스테레오스코피)가 장착되어있으며 포탑 측면에 달린 기형적인 포드는 동축 기관총입니다.

이게 바로 여러분이 월탱에서 그냥저냥 모시는(역:깡패인데요 ㅡㅡ) 바로 그 전차입니다. 

The T41


T41은 T37의 업그레이드 버전입니다. 주포와 사격 통제장치를 올렸죠. 이 전차는 M41 워커 불독의 토대가 됩니다. 이 전차를 소개한 이유는 이어지는 T42의 토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T42



1948년, 소련과 서방과의 관계가 악화되기 시작하고, 중국의 국민당 정부가 급격하게 무너지기 시작하는 그 때, 새 중형 전차를 개발하자는 결정이 내려졌습니다. 퍼싱 현대화 계획은 우리가 다뤄본 바와 같이 이미 시작된 시점입니다만, 병기국에서는 M26의 설계는 너무 시대에 뒤쳐졌다는 것을 깨달았으며, 또한 아무리 개량을 하더라도 결국 베이스가 그러하다는 것 또한 깨달았죠. 

T37과 T41의 우수한 설계를 기반으로, 이걸 좀 더 키워서 큰 주포와 더 단단한 장갑을 달면 중형 전차가 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나봅니다. 넵, 정말 그렇게 결정됬구요, 하지만 경전차에 맞게 설계된 파워팩 또한 그대로 사용하기로 결정되었습니다.

새 전차의 요구 성능을 결정하는 위원회가 1948년 9월 21일에 디트로이트 조병창에서 소집되었습니다. 회의 결과에 따라 새 전차는 36톤의 무게가 나가고, 90 mm 포로 무장하며, M46과 같거나 그 이상의 방호력을 보여야 한다는 요구 조건이 제시되었습니다.

나무 목업이 (위 사진) 1949년 초에 승인되었으며, 그 후 여러 개량을 거쳐 포탑링은 셔먼 이래로 유지 되어오던 미국 중형 전차의 표준 사이즈인 69인치에서 대폭 늘어난 73인치로 키워졌습니다. 쌍안측거기는 포수의 기본 조준 장치로 유지되었습니다.

M3A1 90미리포와 비교가 안되는 스탯을 보이는 영국 20 파운더에 감명을 받아 기존 M3A1을 쓰는 계획은 폐기되고, 새 전차에는 새로 맹근 T119 90 mm포를 사용하기로 결정되었습니다.

T119는 매우 인상적인 포였어요. APDS탄을 사용할 경우 1,000 야드 밖에 있는 30도 경사의 292 mm 장갑을 관통할 수 있도록 셜계됐는데, 이전의 M3A1과는 비교가 안되는 관통력이었죠. 비결은 포신 구조에 있는데 기존 M3이 38,000 psi의 포압을 버티도록 설계됐다면 T119는 47,000 psi라는 경이적인 압력을 버틸수 있도록 설계되었죠. 이를 통해 T119는 24 파운드의 추진체를 초구포속 3,000 ft/s (역: 대애애충 천 m/s)의 속력으로 날려버리고, 이런 관통력이 나오게 되는거죠. 이 포는 또한 M3 90 mm의 포탄과도 호환이 된다는 장점이 있었죠. (물론 T119용 탄을 M3에서 쏠 수는 없지만)

T42 Pilot



시작부터 우려했던 문제지만, 단순히 경전차에서 몸집만 불린 키운 이 계획안의 가장 큰 논란거리는 경전차용 파워팩을 변경 없이 그대로 가져다 쓴다는 문제였죠. 그리고 그 우려를 직접 확인해보기 위해 시제 전차 T40을 개조하여 T42와 비슷한 조건을 만들고, 이 시험 전차를 이리저리 굴려보기 시작했어요.

시험 결과 이 전차는 M4A3E8만 못하다는 평가가 나왔으며, 문제 또한 속출했어요. 애초에 셔먼보다 획기적인 전차를 만들겠다고 시작한 계획인데, 출력이 너무 빈약해 결국 거절되었죠.

6량의 진짜 T42 시제 전차가 주문되었고, 그 중 한 대가 테스트 도중 화재로 망실되었으며, 나머지는 큰 사고없이 테스트를 마쳤습니다. 이 시제 전차는 T40을 개조한 것 보다 훨씬 좋은 퍼포먼스를 보였지만, 어쨌든 출력이 모자라 육군에 의해 거절당했습니다. 하지만 병기국에선 개의치 않고 망해버린 T42 시제품을 다양한 흥미로운 개조를 위한 테스트용 차량으로 사용하였습니다. 대표적인 테스트로는 클립과, 리드샷 계산기와, 다양한 기관총 부무장과, 그리고 심지어는 요동포탑 테스트가 있겠습니다. (이건 패튼과 관련이 없으므로 다루지 않겠습니다. 만일 미군이 디자인한 요동 포탑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댓글로 남겨주신다면 (역:저한테 남겨보셔야 소용없음ㅋ) 다음 시리즈로 생각해보겠습니다)

하지만 북한이, 계속 말한 부분이지만, 모든 걸 바꾸었죠.

이야기를 계속 하기에 앞서 먼저 언급하고 싶은 시기가 있는데, (정확히는 1950년 11월 7일이죠) 당시 병기 위원회에서 미군의 전차 구분 기준을 변경하였습니다. 이전까지는 전차의 경, 중, 헤비 구분을 무게를 기준으로 삼았었지요. 그런데 훨씬 무거운 전차가 판치는 마당에 이 시스템은 근본이 흔들리고 있었어요. 새 경전차는 이전 중형 전차들보다 훨씬 무겁고, 새 중형 전차는 예전 헤비탱보다도 훨씬 무거운놈이 굴러다니고 있었죠. 그래서 병기 위원회에서 전차 구분을 주포에 따라 구분하기로 결정했어요. 이제 경/중형/중 구분법은 더이상 쓰이지 않아요.

가장 대표적인 예를 들자면 M41 워커 불독은 경전차로 불리지 않고, "76mm 전차 M41"로 불리었어요. M47은 중형 전차가 아닌 "90 mm 전차 M47"이 되는거죠.

아, 그리고 거의 동시기에 병기국은 이름을 병기국(Ordnacnce Department)에서 병기단(Ordnance Corps)로 이름을 바꿨어요.

The M46E1



한국 전쟁 중, 미국은 전쟁이 확산되는 것을 가장 우려했습니다. 게다가 NATO의 일원으로써 유럽을 수호하겠다고 천명한지 얼마 되지도 않은 시점이라, 어떻게든 모든 기갑사단을 현대식 전차로 교체할 필요성이 전쟁성 내부서 돌기 시작하였습니다.

지금 당장 새 전차가 필요한 마당에 적당히 타협안을 들고 올 필요는 없었지요. T42는 화력도 좋고 장갑도 적당하지만 속도가 느렸고, M46은 속도가 빨랐지만 (주포때문에) 도태되고 있으니, 두 장점을 합친 새 전차를 만들기로 했어요.

이 "새" 전차는 1950년 7월 회의때 제시되었고 10월 1일에 승인이 떨어졌어요. 11월 초에 이 계획 전차는 M47로 명명되었어요. (시제품을 만들거나 테스트되기 전이었는데도!) 이건 정말 보기 드문 경우고, 이를 통해 병기국에서 얼마나 새 전차에 목이 말랐는지 알 수가 있죠. 

만들어진 시제 전차는 M46E1이라고 불렸으며, 컨셉 이미지는 이 글 위에 있는 저 도안이에요.


The M47



일단 최대한 신속하게 일을 벌리고 봤지만 본격적으로 제작하기에 앞서 M46의 차체 여러 곳을 수정할 필요가 있었어요. 먼저 102 mm의 경사 장갑을 60도로 맞춰서 수평 기준 204 mm의 유효 방호력을 만들어줬구요. 원래 무전수랑 조종수 사이에 있던 집진제연기 (전차에 들어온 화약 연기를 내보내주는 장치) 를 제거하여 돌출되어있는 후방 포탑 부분에 대형 환풍기를 장착해줬습니다. 그리고 포탑링 사이즈도 69 인치에서 T42 포탑과 같은 73 인치로 키워줬죠.

새 전차는 71발의 90 mm 탄을 적재할수 있었고, 이는 M46과 거의 같은 수치였습니다. 12발은 포탑에 적재되었고 나머지는 포탑 바스켓 아래 구획에 적재되었죠. 

승무원은 5명이었고 처음엔 콘티넨탈 AV-1790-5B 엔진이 장착되었어요. 그러다 -7 버전으로 업글되었고, 또다시 -7B로 변경되었죠. 232 US갤런의 연료를 실을수 있었으며 순항 거리는 80 마일 정도였습니다.

도합 8,576량의 전차가 디트로이트 육군 조병창과 아메리칸 기관차 제작소(ALCO)에서 생산되었습니다.

90mm Gun Tank M47





다양한 개량이 완료된 후 1952년 5월 22일 병기국에 의해 제식으로 채택이 됩니다. 이 전차는 거의 동시에 비공식적으로 패튼 II의 닉네임이 붙었고, 몇달 후에 병기 위원회에 의해 패튼 47로 공식 닉네임이 개칭되게 됩니다. T119 포는 M36 90 mm로 제식화되었죠.

엄청나게 많은 생산량에도 불구하고, M47은 땜방용 전차였어요. 이 전차는 1951년 6월부터 1953년 11월까지만 생산되었으며, 육군의 관심은 이미 더 최신의 다음 전차 T48에 쏠려있었죠.

짧은 생애였지만 M47은 미군의 모든 유럽 주둔 사단에 절찬리에 보급됬어요. 이 M47은 1953년 후반에 생산되기 시작한 새 M48에 의해 교체되죠.


M47 Interior Diagram

M47 내부 구조 (역:번역은 알아서 ㅎㅅㅎ)


M47 Closup

포탑 전면부랑 포수용 쌍안측거기가 정말 잘 나왔네요 ㅎㅎ

M47



앞에서 말한것처럼 M47은 미 육군에서 제한적으로 활용되었고, 그리고 1955년에 제한적 제식무기로 격하되었어요. 그렇지만 해병대에선 좀 더 오랜 삶을 영위하여 1959년에 퇴역하였구요, 1960년대에 교체될 때 까지 보병 지원전차로 활용되었고, 그리고 잠시동안 주방위군에서 사용되었죠.

M47은 사격장 타겟으로 미군과의 인연을 끝내게 됩니다.

미군은 별로 쓰지 않았지만, 우리 NATO와 SEATO 친구들은 꽤 오랫동안 사용하였어요. 여기 동맹국에 공여된 M47 숫자를 한번 나열해볼게요:

Austria -            147
Belgium -           784
Ethiopia -           30
France -             856
Greece -             396    - 서독과 미국으로부터 도입
Iran -                  400
Italy -                  2480
Japan -               1       - 테스트용으로 도입
Jordan -              49 
Pakistan -           100
Portugal -           161 
Saudi Arabia -    131      - 23대만 미국으로부터 도입
Somalia -            25      - 사우디 아라비아로부터 도입
South Korea -     531
Sudan -               17
Spain -                389
Switzerland -       2       - 테스트용으로 도입
Turkey -              1347  - 서독과 미국으로부터 도입
West Germany - 1120
Yugoslavia -        319

실전 기록: 

미군 소속으론 없었지만 어딘가에선 실전에 참가했던 걸로 알고있어요.

위키 찾아보시면 될듯요:


다음 전차는 M48이에요. 냉전시기 오랜 기간 미국과 함께한 바로 그 전차죠 

T48


허니컷씨가 말하기를 M47 개발사는 M3 리 전차와 매우 비슷한 부분이 많다고 하네요. 이제 그 문구를 인용하려고 하는데 당시 개발 상황에 대해 정말 잘 설명해준 내용이거든요. 다음 따옴표 안 글은 제가(역: 저 말고 이거 원저자) 쓴 글이 아니니 미리 알아두시기 바랍니다 ㅎㅎ 

"다양한 부분에 있어 M47-M48 개발사는 10년 전의 M3-M4 개발사와 닮은 점이 많다. M3은 M4 셔먼이 준비되기 전이 그 시기에 바로 생산이 시작되었다. M3 도입 초기부터 전투에 부적절하다는 점이 인지되었지만 당장 전차가 한 대라도 필요한 시점이라 문제되지 않고 생산이 이뤄지게 되었다. M47이라는 제식 명칭이 즉시 붙은 점도 M3과 동일하다. 그리고 두 전차는 "T" 명칭이 붙는 시제품을 단 한번도 생산해보지 않은 점 또한 동일하다. 그리고 M3처럼 M47도 육군이 원하는 시점에 즉시 생산이 개시되었다. 그 당시에는 M4였고, 이제는 M48, 또는 T48은 일선에 보급 되기도 전에 이미 친숙해져 있었다"

이 글을 읽고 M47 M48과의 관계가 명확해지셨길 바랍니다 ㅎㅎ

자 그럼 T48로 가봅시다.

T48


위 청사진을 보시다시피 설계사들이 최대한 평평한 디자인이 뽑히도록 노력한 걸 알 수 있을겁니다. 이 디자인의 장점은 shot trap을 최소화 시키면서 (역: 예를들자면 판터 둥그런 포방패 아랫부분에 맞으면 도탄이 나면서 자차의 조종석을 관통해버리는 그런류의 함정스러운 부위) 장갑 방호력과 공간장갑을 제한된 중량 안에서 최대화 시킬수 있다는 것이 있죠.

작업은 1950년 여름에 시작됬으며 1951년 중반까지는 공식적인 계획안이 아니었어요. 병기국에선 1951년 10월에서야 전쟁성에 전차 디자인의 최종 마무리와 생산 계약을 크라이슬러와 맺겠다고 보고하였죠. 이읔고 크라이슬러와 맺어진 계약이 요구하는 조건은 디자인을 구체화 시키고, 육군에 5대, 해병대에 1대를 보내 테스트 할 수 있도록 6량의 시제품을 생산하라는 것이었죠.

1951년 2월 크라이슬러에서는 차체와 포탑의 형상을 찰흙으로 만들어냈고, 병기국이 승인하자 T48의 차체와 포탑 주조용 캐스트를 만드는데 사용하였습니다. 크라이슬러가 이 전차 개발 계획에 깊이 관여하게 된 이유는 신형 전차 계획이 공식 발표되는 2월 27일까지 모든 과정이 철저하게 기밀에 붙여졌기 때문이죠. 27일 병기 위원회에서는 새 전차에 대한 작업을 승인하였고, 90 mm 전차 T48로 명명하였습니다.

몇몇 개선점을 제외하면 M48과 M47의 차이는 제가 보기에 거의 없는것 같아요.

먼저 T48은 새로 개발된 T139 90 mm 포를 장착하였습니다. 이건 기본적으로 M47에 달린 M36 90 mm 포와 같습니다만, 훨씬 가벼운데다 간편 포신 교체 장치를 추가하였죠. 부무장으로는 포신 양 옆으로 2개의 .50 구경 M2 브라우닝 동축 기관총이 달렸습니다. 그리고 이전 그림에서 포방패 위를 유심히 보신다면 세 번째 M2 기관총이 전차장 큐폴라 근처에 장착된 것을 알 수 있죠. 또 다른 중요한 변경점중 하나를 꼽자면 포탑링 크기 변경인데, 이를 통해 포탑의 공간을 넉넉하게 잡을수 있어 이후에 더 강력한 포로 업그레이드를 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었죠.

T48 Pilot No. 2


첫 시제 전차는 1951년 12월에 생산되었구요, 그 다음달 에 크라이슬러에서 테스트가 이뤄졌습니다.

두 번째 전차 또한 12월에 완료되었으나 첫 번째 전차 테스트가 끝날때까지 생산 라인에서 묶여있었죠. 이 전차들은 에버딘에 테스트를 위해 보내졌으나 소소한 부분만 변경되었습니다.



T48 Pilot No. 2

1952년 11월에 6개 시제품 전부 목적지로 옮겨져 시험에 들어가게 됩니다.

시험 도중 T48의 일부분이 변경되었습니다. 먼저 두개의 .50 구경 동축 기관총이 제거되어 좌측에 .30 하나만 장착되었고, 오른쪽에는 광학조준경을 추가하였습니다. 이제 포수는 쌍안측거기와 광학조준경을 가지게 되었죠. M46, M47처럼 마지막 보기륜 뒤쪽에 추렉 장력 조절용 아이들러 휠도 추가되었습니다. 

1953년 1월에 육군은 이 탱크를 미국 내에서 훈련 목적으로 사용하기를 원하지만, 해외로 보내는것은 몇 가지 문제가 해결되기 전까지는 곤란하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T48 제식 이후 생산 라인을 굴릴 제조사로는 세 군데가 선정되었습니다. 크라이슬러가 주 계약사이고, 결국 대부분의 M48이 여기서 생산되었죠. 하지만 포드와 피셔사(GM의 자회사)또한 제조사로 선정되었습니다.

1952년 말 생산이 시작될 시점에도 T48은 몇 가지 문제를 가지고 있었는데, 가장 큰 문제는 포탑이었습니다. 포탑 회전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문제였는데, 임시 방편으로 유압 구동 시스템이 추가로 장착되었습니다.

다음 문제는 포수와 전차장의 광학 장치와 관련된 문제였습니다. 다른 포스팅에서 언급한 부분이지만 육군에선 단독적인 광학조준경을 원했는데 이는 M47에 장착된 쌍안측거기가 익숙하지 않을뿐더러 사용하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초기 T48과 M48에는 전차장용 쌍안측거기가 장착되어 4,000 미터까지의 목표를 관측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대단히 불편하였고 잘 사용되지도 않았습니다. 이건 M48A2로 개량되기 전까지 그대로 있었는데, 그 개량이란 바로 T30 탄도 계산 컴퓨터였습니다.

T30 컴퓨터가 뒤늦게 장착된 이유는 개발상에 문제가 생겨서인데, 컴퓨터가 늘 그렇듯이 어디가 문제인지 모르겠다는게 문제였고, 당장 전차가 생산라인에 올라갔는데 이걸 해결해 줄 때까지 기다려 줄 시간은 없었죠. 임시 방편으로 전차를 "그냥 그대로" 인도하기로 하고 광학과 측거 장비를 4단계에 걸쳐서 업그레이드하기로 결정합니다. 1차-3차 업그레이드는 다양한 잠망경과 조준경의 추가 장착에 관한것이었고 4차 업그레이드는 임시 방편의 측거기를 제거하고 그 자리에 T30 컴퓨터를 다는것이었죠.

이제 여러분은 "T30 탄도 계산 컴퓨터가" 무엇인지 궁금해 하실겁니다. 이건 기본적으로 기계식 컴퓨터인데 포수가 조준하는 것을 도와주는 장비였죠. 어떻게 돌아가는고 하면 전차장이 목표를 지정하고 거리를 설정하면 자동으로 T30으로 전송되고, 전차장은 그와 동시에 포수에게 탄종을 지시합니다. 그럼 포수는 지정받은 탄종에 맞게 컴퓨터 다이얼을 돌려 값을 보정시키죠. 모든 과정이 완료되면 포수는 컴퓨터가 뱉은 값대로 포신의 각도를 조절합니다. 이 시스템은 또한 전차장이 필요시에는 목표를 직접 획득하고, 포를 조작하고, 사격을 하는 것도 가능하게 하였습니다. 

그 외에도 T48 테스트 기간동안 조종수 해치 사이즈가 커지고 흔드는 막대기가 일반 자동차같은 운전대로 바뀌었습니다.

1953년 4월 2일에 T48은 공식적으로 90 mm 전차 M48로 제식화되었고, 그와 동시에 패튼 48이라는 닉네임을 얻었습니다.


M48



M48의 생산은 제식화 되기 1년 전인 1952년 4월에 시작되었고, 1953년 3월 말까지 893량이 생산되었습니다. 새로운 전차에 대한 갈망은 제작사의 생산 일정표도 급가속시켰죠.

M48의 초기형은 M46A1과 M47의 것과 같은 AV-1790-5B가 사용되었습니다. 하지만 1952년 11월에 새로운 AV-1790-7 엔진이 생산에 들어갔고, 기존 생산라인에 있던 M48의 엔진은 모두 이걸로 변경되었습니다. 1954년 8월에 AV-1790-7은 7B로 업그레이드 되었고 이읔고 같은 해 11월에 7C버전이 출시도었습니다. 명심하셔야 할게 AV-1790 엔진은 전부 가솔린 엔진이고, M48 후기형 버전이 나오기 전까지 미국은 디젤 엔진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또 알려드리고 싶은 부분은 M48은 부조종수석 (무전수석) 을 제거한 미국의 첫 번째 중형전차로, 운용 인원이 4명으로 줄어드는 결과를 가져왔죠.
 
위에 있는 전차들은 모두 표준 M48들입니다.

M48A1


M48 초기 생산분은 세 제조사 모두 크라이슬러가 디자인한 전차장 큐폴라를 장착하였습니다. 이 큐폴라는 낮은 실루엣을 가지고 있엇고, 외부에 .50 구경 M2 기관총을 장착하고 있었죠. 이 기관총은 해치 폐쇄 후 원격으로 조작할 수 있었지만 재장전을 하려면 전차장이 직접 기어나와야만 했죠.

T48/M48을 위한 새 큐폴라를 위해 항공병기 주식회사(Aircraft Armaments, INC)라고 불리는 회사에서 1952년에 계약을 맺었습니다. 그리고 1953년 초에 테스트가 끝났고 이는 기존의 크라이슬러형 큐폴라보다 낫다는 결론을 내렸죠. 이 큐폴라는, 위에 사진을 보시다시피, .50 구경 기관총이 내부에 장착되어있어 조종수가 외부에 노출될 필요 없이 사용을 할 수 있었죠. 이 전차장 기관총은 대공용이었지만 (역:그래서 안전한 대공 사격을 위해 해치를 달아줬지만), 그 누가 날아다니는 물체에 전차장 독단의 판단으로 사격을 할 수 있게 허가를 하겠나요. 이 큐폴라는 일선에서 대단히 부정적이었으며 결국 후기형 M48에선 다시 사라지게 됩니다. 

(역: 그러니까 패튼을 사랑하는 여러분은 저 Aircraft Armament 라는 회사 이름을 기억하시면 되겠습니다. 여러분 머리에 혹을 달아준 공범입니다. 주범은 일선 의견도 수렴 안하고 맘대로 혹 달아버리는 육군병기단이고)

새 큐폴라는, 이제 M1 큐폴라로 불리게 된 이 물건은, 1953년 8월 생산분부터 채용되게 됩니다. 모든 제조사가 즉각적으로 M1을 장착하기 시작한 것은 아니었으며, 따라서 기존 생산분인 2,000량 가까이의 M48은 기존의 크라이슬러 큐폴라를 가지고 있게 됩니다.

M1 큐폴라를 장착한 모든 M48은 1954년 10월 22일에 M48A1으로 재명명되었습니다. 크라이슬러 큐폴라 장착분은 간단하게 M48로 불렸죠. 가장 처음 생산된 120대의 M48은 M48C로 명명되었는데, 해당 극초기분은 차체와 포탑 캐스팅에 문제가 있어 오직 훈련용으로만 사용되었습니다.

M48과 M48A1 모두 제식으로 지정되었지만, M48A1만이 해외 파병용으로 허가되었습니다. M48은 M48A1 재고가 모자를때만 해외 파병 부대에 추가로 배치되었습니다.

그럼 한편으로, 혹시라도 궁금해하는 분을 위해서, 차체 조종수 해치 옆으로 지나가는 튜브들은 조종수의 개인 난방 장치의 배기구입니다. 전차 내에는 2개의 히터가 있었으며 둘 다 가솔린을 연료로 사용하였습니다. 

M48



이 위 이미지는 M48로 아래 M48A1과 비교해보시라고 올려봤습니다. 보시다시피 차이점은 오직 큐폴라임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이 바로 M48의 일반적인 제원을 설명하기 좋은 타이밍인것 같군요.

전투적재한 M48은 50 톤이었고, 포신을 포함하면 29 피트(역: 미터는 대충 3 나누셈)의 길이를 가졌습니다. 폭 12 피트, 대공 기관총 포함 높이 10.5 피트입니다. M48A1 이후 버전은 M1 큐폴라때문에 살짝 더 낮습니다. (역: 혹이 아니라 기관총 높이까지 감안했기 때문)

이 전차는 60발의 90 mm를 적재할 수 있었습니다. (대부분이 차체에 적재)

포탑은 초당 24도 회전이 가능했으며, 한바퀴 도는데 15초가 걸렸습니다.

차체를 앞뒤 반으로 나누면 앞부분은 균질 주조 강철이었으며. 후방은 주조 철판을 용접으로 이어 붙인 구조였습니다. 정면 경사장갑은 110 mm였으며 60도의 경사를 통해 220 mm의 유효 방호력을 나타내었습니다. 포탑 정면은 180 mm의 두께를 가지고 있었고 포탑 형상으로 인해 다른 부위보다 더욱 더 예리한 경사를 가지고있었습니다.

포장된 표면에서 45 kph의 속력으로 기동할 수 있었습니다. 

M48A1


M48과 M48A1의 주요 문제중 하나는 연료 소모량으로, 200갤런의 연료를 적재할 수 있는 이 전차는 순항 속도로 끽해봐야 110 km정도의 거리밖에 주행하지 못했습니다.

임시 방편으로, 전투시 자동 탈락이 가능한 55 갤런 들이 연료 탱크가 후방에 장착되었고, 연료 시스템에 직결되어 항속거리를 대략 200 km정도까지 늘렸습니다.
 
전차병들에겐 다행인 일로 (역:부리야), 얼마 안있어 새 엔진과 밋숀이 좀 더 좋은 해결책으로 제시되었죠.

T48E2


새 엔진은 콘티넨탈 AV-1790-8로 새로운 기능 몇 가지가 추가되었습니다. 가장 먼저 엔진이 작아졌는데 오일 냉각 시스템이 새로 디자인됬기 때문이죠. 그리고 새로운 시몬스 SU 연료 공급장치가 기존의 듀얼 카뷰레타를 대체하였습니다. 새 밋숀은 XT-1400으로 불렸고, 기존의 CD-850보다 훨씬 동력 손실이 적었습니다. XT-1400은 또한 CD-850보다 35% 적은 부품으로 인해 훨씬 단가가 쌌죠.
 
1953년 5월, 새 엔진을 M48에 장착하는 프로젝트는 M48E1로 불렸습니다. 공식적으로 T48E1이었죠. 새 엔진은 연료 탱크를 180갤런 더 늘릴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하지만 새 밋숀에 문제가 있었는데 밋숀 구조상 차체 하단이 좀 더 낮아져서 통과 가능 장애물 높이가 더 낮아졌죠. 가장 큰 문제는 CD-850이 장착된 기존에 전차엔 이 밋숀을 장착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 두 문제는 미군이 새 밋숀을 포기하는 결정을 내릴만큼 까다로운 문제였고, 결국 CD-850을 계속 사용하되 새 엔진은 사용하기로 하였습니다.

새 시험 전차는 CD-850을 장착하였고, 사실 CD-850-4B였지만 T48E2로 명명되어 2개의 프로토타입이 1954년 3월과 12월에 각각 승인되었습니다.

냉각시스템 개선으로 인해 전차 후방이 대대적으로 바뀌었고 위 사진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T48E2의 연료 적재량은 335 갤런으로 160 마일 (역: 1.6 곱하셈) 가량을 순항할 수 있었습니다.

다른 변경점으론 서스펜션을 개선한게 있네요. 기존의 5개의 리턴 롤러를 3개로 줄였고, 조종수 위치를 살짝 바꿨으며, 조종수 히터 배기구를 파이프 하나로 줄인점이 있습니다.

임시 땜질이던 유압 포탑 구동 시스템에 대한 교체도 시작됬는데, 캐딜락 게이지사에서 개발한 시스템을 토대로 크라이슬러 사에 개량된 T48E2 차체와 포탑을 결합한 시제 전차를 만들도록 지시하였습니다. 이 전차는 T48E3으로 불렸는데 얼마 안 있어 병기 위원회에 의해 90 mm 전차 M48A2로 명명되었고 1955년 12월에 생산이 승인되었습니다.

M48A2



M48A2는 크라이슬러와 ALCO 제작소 (구 아메리칸 기관차 제작소)에서 생산되었으며 도합 2,328량이 생산되었습니다.

1958년과 59년에 쌍안측거기와 탄도계산기에 몇 가지 개선점이 적용되었는데 그 중 하나는 포수의 잠망경이 포신의 방향으로 동기화되도록 개조한 것이었죠. 더 큰 용량의 집진제연기도 설치되었으며 츄렉 장력 유지용 아이들러 휠이 제거되었습니다.

(역 : 이래서 월탱엔 있고 우리나라 패튼엔 없는거임)

개량된 M48A2는 M48A2C로 명명되었고 모든 M48A2가 이 기준에 맞춰 업그레이드를 받았습니다.

The Future of the M48



M48계통의 업그레이드형인 M48A3은 M60 개발 계획과도 상당히 연관이 되어 있었습니다. 따라서 여기서 간단하게 M60의 개발 시작부에 대해서 언급하고 넘어간 후에 M48이야기를 계속 하도록 하겠습니다.

1956년 헝가리 혁명 중 러시아의 T-54A 전차가 헝가리 사람들에 의해 영국 대사관 안으로 돌진하였고, 이게 왠 떡이냐 싶은 영국은 이 전차를 찬찬히 뜯어보기 시작하였습니다. 기초 조사를 통해 영국의 주력이었던 20 파운더 주포 장착형 센추리온 전차는 이 전차를 효과적으로 상대하기 부적절하다는 결론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그들에게 말 그대로 경고 메시지였고, 미국에게도 또한 전달되었습니다.

이 소식은 미국인들에게 대단한 경각심을 일깨워줬는데, 왜나하면 미국에선 90 mm로 무장한 중형 전차를 당분간 사용할 계획이었기 때문이죠. 이 사건은 전차 개발 방향이 완전히 뒤바뀌어야 한다는 뜻으로, 병기국 합동협조위원회에서는 국방성 차관보에게 현재까지의 전차 개발 및 연구 상황과 경과에 대해 브리핑을 요청하였습니다. 미군의 전체적 상황을 평가하기 위한 의회 차원의 조사도 병행되었습니다.

당해 2월, 육군참모총장 맥스웰 D. 테일러 장군은 "차기 전차 및 차기 유사 전투차량에 대한 군비 특설 조율단"(ARCOVE) 을 편성하여 1965년 이후 필요하게 될 차기 전차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도록 하였습니다. 이 연구는 1957년 5월에 끝났는데, 육군은 고속 전차포 도입 사업은 잠시 중단하고 전차에 유도 무기 시스템을 장착해야 한다고 권고한 것이 골자였습니다. 둘 다 이미 개발 완료 단계였지만 아직 전차에는 기존의 일반적인 주포가 사용되고 있었습니다. 이 연구는 차기 전차 개발사에 대단한 영향을 끼쳤지만, 그건 나중에 다뤄보도록 하죠.

새 전차가 개발되기 전까지 M48을 지속적으로 개량하기로 결론이 났습니다. 이전에 말했던 것처럼 M48의 치명적인 문제점 중 하나는 작전 반경이 좁다는 것이었죠. 이때 당시 육군에 배정되는 연료량에 큰 변화가 주어졌으며 (역: 흔히 nerf라고) 육군은 이제 작전 반경을 늘리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디젤 엔진을 전차에 도입하는걸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하였습니다.

AV-1790의 디젤 버전에 대한 연구는 1954년 2월 시작되었으며 1957년에 시제품이 나왔습니다. 이 엔진은 AVDS-1790-P로 명명되었으며 디젤유와 JP-4유를 모두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이 엔진의 가장 큰 장점은 AV-1790보다 연비가 60퍼센트나 좋다는 점이었죠.

AVDS-1790의 업그레이드 버전인 AVDS-1790-1은 테스트를 위해 M48A2 전차에 장착되었습니다. 동시에 CD-850은 CD-850-6으로 업그레이드 되었습니다. 전차 2량이 테스트에 사용되었고 M48A2E1로 명명되었습니다. 3번째로 개조된 전차는 그해 가을 유마 시험장에 보내졌는데, 이 전차에는 AVDS-1790-2 엔진이 장착되어있었습니다

위에 있는 사진은 베트남전의 M48A3입니다.

M48A1E1



1958년 M60 전차에 대한 연구가 시작되었습니다. 육군참모총장은 기존의 M48A1 뜯어다 이것저것 개선하고, 디젤 엔진과 105 mm포를 장착하는 업그레이드 안을 내놓으라고 요구하였죠.

연구는 시킨대로 이것저것 이뤄져서 4월 21일에 디자인이 M48A1E1로 제식화되었고 6대의 시제 전차가 주문되었습니다. 이 전차는 근본적으로 M48A1에 M60을 위해 개발된 연료 탱크, M68 105 mm 포, 그리고 AVDS-1790-2 엔진이 장착되었죠.
 
첫 M48A1E1은 에버딘 시험장에 1960년 3월에 옮겨져 시험을 시작하였고, 나머지 생산분은 미국 내 곳곳의 시험 시설에서 연구 목적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시험 결과 이 전차는 M60 초기형과 비등비등한 성능을 보였으며, 기존의 M48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성능을 보였습니다. M48A1E1과 비교해서 M60의 장점은 차후에 전자 장비를 업그레이드 할 여유 용적이 있다는 것 하나뿐이었죠.


M48A1E1




1960년 11월 OTAC에선 M48을 개량하는 사업을 병기국 산하 시설에서 수행할 경우 일전에 크라이슬러에 한 것처럼 외주를 맡기는 것 보다 훨씬 경제적이라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그 직후 병기국장은 600대의 M48A1을 새 제식으로 변환하는 사업을 주문하였습니다. 하지만 달랑거리는 105 mm 탄의 재고 문제와, 남아도는 90 mm 재고탄 문제때문에 M68 105 mm 포(로얄 오도난스 105 mm L7의 미국버전)를 장착하는것보다 그냥 M41 90 mm 포를 계속 달고 있는 쪽이 낫다는 결론에 도달하였습니다. 간단하게 M60과 M48 모두에게 105 mm을 제공해줄 예산이 없었던 거죠.

주포에 대한 요구 조건이 변경된 관계로 2량의 M48A1E1은 90 mm를 장착하여 M48A1E2로 재명명되었습니다. M48A1E2에 대한 생산이 승인된 후 이 전차는 M48A3으로 제식화됩니다.

짚고 넘어갈 부분이 하나 더 있는데, M48A1E2는 리턴 롤러가 세개 뿐이지만, 양산형 M48A3은 M48A1 개조형이라서 리턴롤러가 5개에요. 위에 "The future of the M48"이라는 제목의 사진을 보시면 리턴 롤러가 5개인걸 확인할 수 있을겁니다.

M48A3



1963년 초부터 아니스톤, 레드리버 육군 보급창에서 개조 작업이 시작되었으며, 첫 전차가 2월 육군에 의해 승인되었습니다. 도합 1,019량이 M48A3개조를 받았으며, 600량은 육군에, 419량은 해병대에 주어졌습니다. 이 전차는 베트남에 처음 파병된 전차였으며, 그 외 스펙은 간단하게 요약해서 풀어보도록 하겠습니다.

M48A1 개조 작업은 낡은 엔진과 밋숀을 AVDS-1790-2B와 CD-850-6A로 바꾸는 작업 또한 포함되어있었습니다. 전차 후부 또한 전면 수술을 받아 M60과 같은 옵션을 장착하도록 하였습니다. 휴행탄은 60발에서 62발로 늘었으며, 구형 유압 포탑 구동 시스템을 일전에 언급했다시피 카딜락 게이지 시스템으로 교체하였으며, 강력한 2.2킬로와트짜리 제논 탐조등도 장착하였습니다. 역시 이전에 말한 부분이지만, 사격 통제 시스템 또한 M60의 기준으로 업그레이드 되었습니다.

M48A3 (Mod B)


베트남전이 빠르게 확전되면서, 전차의 수요가 보급창의 공급보다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보웬-멕라린-요크 사가 1967년 M48A1에 대한 추가 개조 사업권을 획득하였습니다.

M48A3 (Mod B)로 불린 새 전차는 M60에 장착된 가장 최신 기술인 적외선 시스템을 탑재하였습니다. 전차장 큐폴라 또한 개선되었는데, 9개의 커다란 관측창이 사방으로 달린 공간 확보용 링이 장착되었습니다. 이는 기존 M1 큐폴라 내부가 대단히 좁다는 지적에 따른 개조였습니다.

보웬-멕라린-요크 사에서는 578량의 M48A1을 Mod B형으로 개조하였습니다. 얼마 안 있어 모든 M48A3이 Mod B형으로 개조가 이뤄져 Mod B라는 형식 기호는 폐지되었습니다.

M48A1E3 (M48A4)


1965년 12월, M60에 Shillelagh 미사일을 운용하는 포탑으로 개조한다는 계획이 대두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많은 105 mm 포신이 잉여 물자로 돌려저 M48 개조에 사용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되었습니다.

크라이슬러가 이 작업에 대한 진두지휘를 맡게 되었는데, M48A1의 차체를 A3 표준으로 개조하고, 그 위에 M60 포탑을 얹히는 것이 골자였습니다. 이 전차는 M48A1E3으로 명명되었습니다. 그 외 포탑 적재 배치 등이 변경되었으나 결론적으로 보면 M48 차체에 M60 포탑을 얹는 개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243량의 M48A1을 개조할 예정이었으며 M48A4로 명명될 예정이었습니다. 하지만 멀쩡한 M60을 대량으로 뜯어버린다는 것에 대한 회의론이 육군 내에 일자 결국 계획은 취소되었고 M48A4 또한 덩달아 취소되었습니다.

M48A5



M48의 마지막 버전에 대한 작업은 1974년에 시작되었는데, 육군성에서는 이스라엘 IDF의 실전 기록을 토대로 필요한 부분을 개선하라는 명령을 병기단에 지시하였습니다.

새 전차는 M48A3 (Mod B)에 105 mm 주포로 업그레이드를 하는 것이 골자로, 그 외 다른 몇 가지도 변경이 가해졌습니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떡대스러운 큐폴라를 낮은 실루엣의 큐폴라로 바꾼 것이었습니다.

(역: 이거 말고도 사례가 참 많지만 꼭 실전에서 줘 터저야 그제서야 현장 의견을 똑바로 알아듣는 병기국 크라스)

아니스톤 육군 보급창에서 M48A1과 M48A3에 대한 개조를 담당하였으며, 도합 2,069량의 M48이 M48A5로 개조되었습니다.

M48s in Combat



M48은 첫 실전을 1955년 베트남에서 겪었으며, 해병대 소속 전차는 제1, 제3 해병전차대대에 배속돼 1군단 작전 구역(궁금하면 직접 검색해보셈) 전투를 지원하였습니다. 육군에서는 연대 하나에 대략 57량의 패튼을 표준으로 제77, 제69, 제24 기갑연대가 파병되어 작전하였으며, 그 외 기병기갑소대에서 M551 쉐리단으로 교체될 때 까지 M48A3을 사용하였습니다.

M48의 베트남 전과는 훌륭했습니다. 전차전 자체가 대단히 적었지만, 전차병들은 자신들의 전차가 T-54/55에 비해 월등하다는 공통된 의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M48은 대부분 보병 지원 임무에 투입되었으며, 이 임무에 있어선 대단히 훌륭했습니다. 90 mm에서 발사되는 고폭탄과 대보병 산탄은 효과적이기 그지 없었으며, M48의 장갑은 거의 모든 위협에 대응 가능했습니다. 물론 RPG는 조금 거슬렸지만요.

M48을 이용한 흥미로운 전술엔 썬더 런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는 M48 여러대를 지뢰가 의심되는 길을 따라 화력을 난사하며 달리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만일 목적지에 아무 탈 없이 도착하면 지뢰가 없는 것이었고, 아니라면... 사실 아닌 경우에도 피해는 대단히 경미했습니다.

베트남에서 M48은 미군만 운용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철군하면서 M48의 대부분을 베트남 군에 넘겨줬는데, 이는 M60이 계속 보급이 이뤄지면서 M48은 좋든 싫든 언젠간 도태될 물건이었기 때문이죠. 남베트남군은 M48을 그럭저럭 잘 운용했지만, 개판 5분전인 남베트남을 살려주는 역할을 하기엔 똥이 너무 컸습니다. M48은 9M14 Malvutka의 첫 희생양이 되는 불명예를 얻기도 하였습니다.

그외 다른 실전기록은 위키를 직접 보시죠 :



The T95



T95는 M48을 대체하기 위해 개발된 전차입니다. 다양한 이유로 인해 실제로 이뤄지진 않았죠. 하지만 이 개발사를 좀 다뤄보겠는데 왜나하면 M60의 개량 포탑 장착형인 M60A1의 포탑이 있게 해준 전차이기 때문입니다.

T95에 대한 작업은 1955년에 시작되었는데, M48을 교체할 궁리를 하던 육군의 주도로 탄생한 프로젝트였죠. 다양한 디자인이 탐구되었으며, 몇몇 디자인은 꽤 현실적이었지만, 결국 두 전차가 선택되었습니다. 하나는 90 mm 전차 T95였고, 하나는 105 mm전차 T96입니다.

T95는 몇 가지 목적을 띄고 탄생되었는데, 가장 첫째는 M48보다 훨씬 가벼우면서도 거의 동일한 방호력이 나와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주포 또한 훨씬 성능이 좋아야 한다는 조건이 있었죠. 그리고 이 전차에는 가장 최신의 엔진과 사통 시스템이 달릴 예정이었습니다.

몇몇 부분은 성공적이었지만 몇가지는 실패했죠.

장갑은 M48과 거의 동일했는데, 차체 전면은 4인치로 두꺼웠고, 포탑 전면은 178 mm에 달했습니다. 그리고 대단히 가벼왔는데, M48의 50 톤에 비해 38 톤밖에 나가지 않는 경이적인 가벼움을 자랑했죠. 이 전차에 적용된 혁신적인 디자인 중 하나는 실리콘 내심 충진형 복합 장갑의 채용이었죠. 이를 통해 예리한 관통자에 대한 저항성이 더욱 늘어났습니다.

무게를 혁신적으로 줄인 방법 중 하나는 "고정형 탑재"라고 불리는 포신 탑재법이 한 몫 했습니다. 이 탑재법은 모든 반동 흡수 메카니즘을 전부 생략하고, 그냥 포탑에 포신을 고정해버리는 방식이었습니다. 차체 전체가 포격의 반동을 흡수하도록 설계한 것이었죠.

다른 분야에 있어선 심각한 문제가 있었습니다. T208 90 mm포는 활강포였는데 관통력 하나는 끝내주었던 것이 60도의 경사를 가진(!) 127 mm의 장갑을 관통할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탄이 쉽게 파손되었고, 명중률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엔진 또한 문제였습니다. X형으로 배열된 디젤 엔진이었는데, 개발 끝에 말 그대로 똥망을 하였고 취소되었습니다. 결국 이 전차에는 795 마력의 AOI-1195 (A:공랭, O:수평 실린더, I:인젝션 방식) 가솔린 엔진을 탑재하게 되었는데 필요한 만큼의 토크를 뽑아내지 못했습니다.

1959년에 이르러, 이 전차는 M48에 비교해서 썩 눈에 띄는 장점이 없는 전차임이 명백해져갔습니다, 막장에 치닫는 개발 난맥상에 따라, 1960년에 최종적으로 취소되었습니다.

T95는 다양한 버전이 테스트되었으며, 큰 다른점 없이 다 비슷비슷하였습니다. 하지만 T95E7은 아니었는데, T95 샤시에 T96포탑을 얹힌 물건으로, 이는 M60 개발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T95E7의 포탑은 M60A1 포탑을 디자인할 때 상당 부분 채용되었습니다.



The M60



M48A2E1에 채용된 디젤 엔진은 생각보다 대단히 괜찮았으며, 육군은 차세대 전차 또한 디젤 엔진을 사용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1958년 차기 전차 디자인 방향에 대해 육군과 재정국 사이에서 대단한 논쟁이 오갔습니다. 재정국에선 육군의 전차 현대화 사업(M48A3로 개조하는 사업)이 충분한 개량 사업이 아니라고 생각했으며, M48A2를 대체할 전차를 신속히 개발할 것을 권고하였습니다.

1959년 재정국에서 더이상 M48A2를 찍어낼 돈을 육군에 주지 않을게 명백해지자, 군수참모부장은 병기단에 M48A2와 AVDS-1790보다 훨씬 강력한 물건을 내놓을 계획을 준비하라고 명령하였습니다. 군수참모부장은 새 전차로 M48A3보다 M51을 더 선호한다는 의견 또한 제시하였습니다.

T95가 그래서 시작된 사업입니다만, 위에 보시다시피 멸망을 하였고 좀 더 저렴한 대책이 마련되었습니다.

1958년 5월 1월, 전간기적인 형태의 새 전차 개발에 대한 육군의 계획을 예산국에서 승인하였습니다. 새 전차는 M48을 기초로 하여 부품 상당수를 공유하였습니다. 이를 통해 생산 라인과 도구 대부분을 공유하여 개발 시간과 가격, 리스크, 그리고 지연 가능성을 낮출 수 있었죠.

장기적으로 육군은 유도 미사일을 주무장으로 사용하는 초중량 주력 전차(Super MBT)를 원했으나, 단기적으로는 M68 105 mm포 또한 충분하였습니다.

재정국에서 승인할 것으로 예상되었기 때문에 새 전차 디자인은 병기단에서 진작 연구에 들어간 상태였고, 차세대 전차의 디자인은 차세대 전차의 요구 제원이 나올 때와 동시에 완성되었습니다.

기초 사업은 6월 4일에 시작되었으며 병기단은 해당 디자인을 평가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 시기 즈음 새 전차는 XM60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옛날식의 시험 전차에 대한 T 명명법은 이때 없어진거죠. 시제품이 제식화 된다면 그냥 앞에 X만 간단하게 지우면 되는 일이었습니다.

새 전차의 디자인은 M48A2의 샤시에 AVDS-1790 엔진을 사용하였으며, 따라서 포트 녹스에 있는 M48A2E1중 한 대를 사용하여 파워팩과 구동 계통에 대한 56톤의 중량 한계 시험을 수행하였습니다. 시험 도중 문제가 생기는 대로 개시하기 직전의 생산 라인에 바로바로 반영되었죠. 

새 전차를 위한 다양한 무기가 시험되었고, 군수참모부장은 새 무기들에 대한 비교 화력시험을 요구하였습니다.

105 mm 부문에는 다양한 경쟁자들이 있었습니다. 먼저 영국의 X15E8 105 mm 포가 있었는데, 육군 시험에서 대단히 훌륭한 성적을 보였습니다. 뛰어난 관통력에도 불구하고 무게 또한 가벼웠죠. 미국 버전인 T254E2또한 후보자였습니다. X15E8과 같은 탄을 사용하였는데, 포신 또한 X15E8과 언제든 교차 호환이 가능했습니다. 차이점이라면 집진제연기였는데, X15E8같은 편심식이 아닌 동심집진식이었습니다. 이로 인해 X15E8은 T254E2보다 후방 주시시 부각이 훨씬 낮았습니다. 편심식 집진제연기가 뭔지 설명하자면, 위에 사진을 한번 보시죠. 가운데 지렁이 허리같은게 포신이랑 비교하자면 위에 쏠려있는게 보이시죠? 포신 축에 비껴나가서 설치됬다고 해서 편심식 설치라고 부릅니다. 만일 동심식 집진제연기였으면 포신을 같은 지름으로 두르고 있어야죠. M46,47,48에 설치된 제연기를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차이점이 딱 하나 더 있었는데 급탄구가 영국식은 옆으로 밀어넣는 방식임에 반해 미국식은 뒤에서 꽃아넣는 방식이었습니다.

하지만 병기단에선 120 mm 주포를 새 전차에 달고싶어했습니다. T123E6이 바로 병기단이 원하는 그거였죠. 이건 M103에 사용된 M58과 같은 성능이면서 그보다 1톤이나 가벼운 녀석이었습니다. 병기단에서 이 포를 점찍은 이유는 새로 탄약을 생산해야하는 105 mm에 비해 이미 재고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근데 일전에 말한것처럼 군수참모부장은 모든 포에 대해 시험사격을 요구하였습니다. 시험에는 사용될 계획이 없는 M103용 M58 120 mm포와 T208E9 90 mm 활강포 또한 참여하였습니다.

시험에서 영국의 X15E8과 M58 (안 쓰일 놈이지만) 최고의 성적을 받았습니다. 따라서 미국에서 X15E8과 동일한 명중률의 주포를 생산할 기술이 축적될 때까지 영국 것을 XM60의 주포를 사용하기로 결정되었습니다. 새 포는 M68로 제식화됬고 편심식 집진제연기가 장착되었습니다.


M60 Rear



사격 시험이 XM60의 무장을 결정해줬지만, 그외 다른 부분은 아직 결론이 나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새 전차에 선호되던 포탑은 T95E7의 것이었는데, 이는 M48형의 포탑보다 탄도학적으로 입사각이 훨씬 유리한 형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포탑은 1960년 전까지 생산이 불가능했고, 따라서 M48E2형의 포탑이 초기분에 적용되었고 T95E7 포탑은 M60E1용으로 선정되었습니다.

새 전차의 장갑은 T95처럼 차체와 포탑 전체에 실리콘 내심형의 복합장갑을 사용하려고 하였으며, 새 전차의 차체 전면 형상 또한 전전 사진을 보시면 아시다시피 복합장갑을 적용하기 대단히 유리하였습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비쌌고, 생산 또한 더뎌 복합 장갑은 컨셉으로만 남고, 전통적인 장갑을 채용하게 되었습니다.

1958년 9월 크라이슬러가 생산 공정 개량사업(APE) 대상자로 선정되었고 1959년 3월 16일에 이 전차는 공식적으로 105 mm 전궤도 전투용 전차 M60으로 명명되었습니다. 4월에 105 mm 주력 전차(MBT) M60으로 재명명하려는 시도가 있었습니다만, 변경에 따르는 부대 비용 문제로 인해 연방 분류국에 의해 반려되었습니다.

크라이슬러 계약서 상에는 4량의 시제 전차를 만드는것이 포함되어 있었고, 1959년 6월에 완성하여 에버딘, 디트로이트 조병창, 포트 녹스에 보내졌습니다.

새 전차의 스펙은 다음과 같습니다:

생산라인은 1959년 말에 돌아가기 시작했으며, 첫 전차가 1960년 초에 나왔으며, 도합 2,205량이 크라이슬러와 디트로이트 조병창에서 생산되었습니다.

엔진으론 AVDS-1790-2가 장착되었으며, 일전에 말한것처럼 90도의 각을 가지고있는 V형으로 배열된 12개의 실린더가 2,400 rpm에서 750 마력을 뽑아냈었습니다. 이 전차엔 385 갤런의 디젤유가 실렸으며, 300 마일의 작전 반경을 가졌습니다.


M60은 105 mm 57발을 적재하였으며, 포탑은 초당 24도를 회전할 수 있엇습니다. 주포 옆에는 7.62 M73 동축기관총이 장착되었으며, 전차장 큐폴라에는 .50 M85 기관총이 장착되었습니다.

첫 M60이 1960년 초에 유럽에 보내졌지만, 초기형에서 큐폴라와 서스펜션의 내구 문제가 나타났습니다. 1960년에서 62년사이 서스펜션에 쇼바가 장착되었으며, 새 큐폴라 또한 장착되었습니다.


The M60





The M60A1



이미 말한 부분이지만, M48A2형의 포탑이 M60 초기분에 장착되어 있었지만, T95E7의 포탑이 M60의 진짜 포탑이었습니다.

M60 업그레이드 사업은 1961년 6월 29일에 공식적으로 시작됬지만, 업그레이드 작업은 거의 1년 이른 1960년 3월 21일에 크라이슬러에 의해 개시되었으며, 3량의 시제 전차가 1960년 5월 6일 완성되었습니다. 이 전차는 M60E1으로 불렸습니다.

길어진 포탑 말고도, M60E1에는 M60생산이 진행되면서 추가된 몇 가지 기능이 더 추가되었습니다.

계속 이어나가기전에 한가지 생각난게 있어서 적어보는데, 저는(역: 나 말고) 이 전차에 실제로 타본적이 있는데, 제 키가 172cm인데 내부에 서 있는데도 위에 몇 뼘정도 더 남더라구요.

어쨌든, M60E1은 1961년 10월 22일 A 제식으로 분류되어 M60A1의 이름을 받게 됩니다. 기존 M60은 B 제식으로 분류되었죠. A, B제식 시스템 또한 기존의 제식과 제한적 제식 분류 시스템을 대체하였습니다.

새 전차는 M60 초기형과 비교해서 꽤나 진일보했습니다. 차체의 장갑이 약 20 mm정도 더 두꺼워졌고, 엔진은 AVDS-1790-2A로 업그레이드 되었으며, 거리계산 컴퓨터는 M17C에서 M17A1로 업그레이드되었습니다.

M60A1은 그 후로 20년간 미국의 주력 전차(main tank)가 됩니다. M60을 대체하려는 구상안이 모두 망해버리는 바람에 수명이 예기치 않게 길어진거죠. 그만큼 디자인이 우수한 것도 한 몫 했구요.

M60A1


크 이건 좌우가 반전된 사진이에요. M60에는 전차장이 왼쪽에 있는 버전이 없어요.

도합 7,948량의 전차가 디트로이트 조병창에서 생산되었습니다.


M60A1 with RISE ERA



이 추가 장비에 대해선 깊게 안 파고들게요. 이미 지금까지 쓴건만 해도 책 한권은 족히 나올 양인거같고 (역: 네 제발 좀 아재야 졸업논문씁미까) 다만 멋진 사진들이기때문에 추가 해봤어요.

M60A1에 RISE 업그레이드를 한 전차는 80년대 초, M1이 본격 보급되기 전까지 미 육군의 주력이었어요. 해병대는 이걸 끌고 1991년 이라크에 쳐들어갔죠. (걸프전) 210량의 해병대 M60A1이 파병되었는데 이라크군 T-72와 비등한 것으로 판단 되었어요. 만약에 해병대 전차에 탑승한 포수도 이라크군처럼 비숙련자였다고 가정한다면요. 하지만 사격 통제 시스템은 대단히 훌륭했고 이라크 따위는 적수가 되지 않았어요.
 
해병대 M60은 사막의 폭풍 작전에서 쿠웨이트에 입성한 미국 첫 번째 전차이기도 합니다.

RISE는 선택적 장비 신뢰도 증강이라는 뜻이에요. 

(역 : Reliability-Improved of Selected-Equipment 더 좋은 번역 해주실 분 댓글로 부탁드려요)


Turret close up.



RISE는 추가장착형 반응장갑 그 이상의 물건이었어요. 또한 이걸 장착하면서 다른 몇몇 부분 또한 업그레이드를 했죠.

새 안정기를 달았고, 새 츄렉, 새 컴퓨터, 새 엔진 (AVDS-1790-2D), 향상된 전자장비, 그리고 수명이 짧은 몇몇 부품을 교체했어요. 그리고 레이저 거리측정기를 장착하고, 포신이 늘어나지 않게 포신에 수냉 자켓을 달았어요.

이 전차는 M60A1(RISE) 또는 M60A1E1으로 불렸습니다.


M60A1 RISE without ERA


이 사진이랑 이 아랫사진은 RISE 적용 전차에 추가 장갑을 떼놓은 모습이에요.

M60A1 RISE without ERA



M60A1E1

M60A2 스타쉽의 기원은 위에서 언급하고 넘어간 부분이지만, 1958년 ARCOVE (차기 전차 및 차기 유사 전투차량에 대한 군비 특설 조율단) 의 연구에서 기인했어요. 이 연구의 결론은 미래 전차는 대전차 유도 미사일을 주 무장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 골자였고, 육군은 그 조언에 따라 1959년부터 연구에 들어간 상황이었죠.

새 미사일과 무장 시스템 개발 사업은 포드 자동차 항공 부문에서 진행을 하였습니다. 이 시스템은 Shillelagh 전투 차량 무장 시스템으로 불렸고, 이 시스테엔 XM81 포신형 발사기와 XM13 미사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XM81은 XM13 미사일뿐만 아니라 통상 포탄도 발사할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기존 M68 105 mm포와 비교했을때 XM81의 장점은 무게가 반이나 적다는 것이었죠.

XM13을 발사할수 있다는 점 말고도, XM81에는 그 외에도 다양한 새 기능이 추가되어 있었습니다. 이 포에서 발사되는 탄의 장약은 연소식 카트리지로, 사용하고 남은 카트리지(탄피)를 걱정할 필요가 없었죠. 그리고 연소실과 약실을 분리한 구조였죠. 이 포는 또한 대전차 HEAT탄 (역 : 성형작약탄) 에 고폭탄의 폭발 효과를 합친 XM409 HEAT-MP탄을 발사할 수 있었습니다.

XM13은 이런 방식으로 작동되었습니다 : 미사일이 일단 발사되면 미사일 꼬리에 플레어 (역 : 불꽃) 가 점화됐으며, IR 센서가 이를 추적하였습니다. 컴퓨터는 IR 센서가 잡은 미사일의 위치와 조준선과의 오차를 계산하였죠. 그럼 보정 신호가 포 위에 장착된 IR 통신기를 통해 미사일로 보내져 비행 궤적을 보정하였습니다. 이 미사일은 대단히 위력적이였고 (잘 돌아간다면)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전차를 파괴할 수 있었죠. 

이 시스템은 전차전의 미래로 여겨졌으며, 따라서 1960년에 8월 M60에 이 시스템과 부대 장비를 업그레이드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논문이 발표되었습니다. 큰 개조가 필요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 제시되었으며, XM409를 T95와 M60E1의 시험용 포탑에 장착할 계획이 수립되었습니다.  이 개조 전차는 M60E2로 불렸습니다.

시험 포탑에 새 포신을 장착하는 작업이 진행되는 동안, 클리포드 브레들리라는 사람에 의해 새 포탑 디자인이 제시되었습니다. 이 디자인은 포탑 전면 부분을 40%이상 줄여 무게와 피탄 면적을 줄이자는 것이 골자였습니다. 무인 조종 포탑에 관한 연구에서 따온 디자인이었습니다만, 아직 무인 포탑은 기술이 존재하지 않았죠. (역: 일해라 공돌아 갈갈갈) 따라서 일단 유인 포탑으로 가되 무인 포탑의 장점을 몇 가지를 차용하고 필요없는 부분들을 쳐내면서 디자인을 완성해나갔습니다.

새 포탑에는 전차장이 포신 바로 뒤에 가장 높은 자리에 앉아 탁 트인 사방 시야를 가지게 될 것이었습니다. (역: 위 사진 보시면 아시겠지만 콩까라 생각하시면 됩니다) 포수와 장전수는 포탑 바스켓에 가까운 최대한 낮은 지점, 포 양 옆에 위치했죠. 그들의 해치는 위에 사진을 보시면 아시다피 포탑 아랫부분 측면, 포탑링 바로 윗부분에 위치해있었습니다. 이런 포탑 구조는 승무원의 방호력을 높여주었으며, 장갑 효율성 또한 올라갔고, 포탑 무게 또한 크게 줄이는 효과를 가져왔습니다.


The M60A2 Starship



새 전차에 달 포탑엔 4가지 후보가 있었습니다. 2가지는 브레들리의 콤팩트 디자인에 의해 만들어졌고 (A형과 B형), 하나는 T95 포탑 (C형), 하나는 M60E1 (D형) 의 포탑이었습니다. 1964년 1월 평가에 따라, A,B,D형 포탑이 후보군으로 선정되었으며 B형 포탑이 최종 선정되었습니다.

이 전차는 XM66 주력 전차(MBT)로 불릴 예정이었습니다만, 1965년 2월 육군 군수물자관리사령부 기술위원회에서는 152 mm 전궤도 전투용 전차 M60A1E1로 결정하였습니다. 그리고 XM18, 그러니까 1965년 그때 당시까지 개발이 계속 진행되어 XM81E13이 되어있는 물건은 XM162로 재명명되었습니다.

새 전차는 M60의 저비용 저위험 업그레이드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었습니다만, XM162 시스템에서 발생하는 문제가 그리 호락호락하게 풀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재명명이 될 쯤에 XM162의 첫 번째 문제가 붉어졌습니다. 연소식 카트리지가 주요 문제였죠. 불발, 발사 화염, 직전 탄이 남긴 불씨에 의한 차탄 발화등의 문제가 속출하였습니다. 마지막 자연발화 문제는 대단히 심각한 문제로, 이 말인즉슨 자칫 잘못하면 장전이 끝나기 직전에 장약이 발화가 될 수도 있다는 뜻이었죠. 전차 내 승무원 전원이 당장 통구이가 될까 하는 마당에 이 중대 문제를 해결하기 전 까진 모든 연구 진행이 무의미하게 되었죠. 포탄은 또한 습기에도 약했는데 습기 먹은 장약은 불완전 연소를 일으키곤 했으며, 이로 인해 포탄을 취급하는데 더욱 까다롭게 만들었습니다.

연소 카트리지에 관한 모든 문제들이 해결되었습니다만, M60A2를 직접 모는 승무원들의 공포심은 이미 극에 달해있어 설득에도 불구하고 포탄의 취급을 거부하기 직전까지 와 있었죠.

불행하게도, 이건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M60A2 Starship


전차 자체에도 문제가 있었는데, 제한된 야간투시장비와 거리 계산기의 부재였죠.

거리 계산기 문제는 레이저 거리 계산기를 추가 장착하는걸로 해결됬습니다만 야간 시야 문제는 훨씬 복잡한 문제였습니다. 제대로 된 시야 없이는 탐조등으로 타겟을 비추지 않는 이상 야간에 미사일 운용이 불가능하죠. 탐조등에는 분홍색 필터가 달려서 1,000미터 밖까지의 적을 조사할 수 있었지만, 미사일은 1,000미터 내의 타겟에겐 효과적이지 않았습니다.

이야기가 더 복잡해진건, Shillelagh 미사일 또한 심각한 난관에 봉착한 것이었습니다. 미사일 또한 불발, IR 센서용 플레어 발화 실패, 전차에서 송신하는 IR 신호 인지 실패, IR 추적기 미사일 추적 실패 등의 문제를 동반하였습니다. 대부분의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만, 문제 하나를 고칠때 마다 사업을 걷잡을 수 없이 지연시켰습니다.

결과적으로, 이 전차는 1974년까지 시제품에 머물렀습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복잡한 시대 상황과 제대로 굴러가는 꼴을 한번도 보여주지 못하는 모습이 맞물려 미군에서도 이 전차에 대한 흥미가 갈수록 떨어져갔으며, 유럽 주둔 미군은 이 전차를 "스타쉽, 우주선"이라고 부르기 시작하였습니다.


M60A2 Starship



결국엔, 차세대 MBT를 뽑아보겠다는 사업은 크라이슬러에서 540량을 찍어낸 것을 끝으로 종지부를 찍었으며, M60A2는 1980년 전력 외로 그어져 전부 다른 용도로 개조되거나 전용되었습니다.

M60A3



M60A3을 만든건 결국 RISE 업그레이드 프로그램의 M60A1E1이었죠.

M60A3은 RISE 프로그램의 모든 사양과, 그외 다른 부분에 대한 업그레이드의 합작품이었습니다. 예를 들자면 M21 탄도 계산 컴퓨터가 설치되었고 "ruby" 레이저 거리 계산기가 전차장과 포수용으로 각각 설치되었죠. TTS (tank thermal sight) 라는 열영상장비가 기존의 M35E1 수동식 광원증폭형 야간투시장비를 교체하였습니다. 이 열영상장비를 장착한 전차는 M60A3 (TTS) 라고 불렸으며, 얼마 안 있어 모든 M60A3에 장착되었습니다.

이 모든 업그레이드가 적용된 전차를 1979년 M60A3으로 공식 명명을 하였으며, 1982년까지 1,700량의 M60A3이 생산되었고, 대략 1,700량의 M60A1이 A3 개수에 들어갔습니다.

제3기갑사단 32기갑연대 1대대가 첫 M60A3을 수령받았습니다.

M60A3(TTS)


 

80년대 초 엔진 업그레이드에 대한 다양한 연구가 수행되었으며, 이중에는 950 마력짜리 새 엔진과 새 밋숀에 대한 것도 있었습니다. 이 연구들은 전차를 크게 향상시켜줄 것으로 기대를 받았지만, M1 에이브람스의 탄생으로 이젠 버린 자식이 되었죠. 따라서 AV-1790 엔진 시리즈 (역 : 1790 입방인치, 가솔린-디젤 모두 포함해서 언급함) , M46으로부터 이어진 이 엔진의 역사는 패튼과 함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패튼은 40년의 긴긴 세월 끝에 2005년 미군에서 공식적으로 퇴역하였습니다.

M60 역사가 좀 더 궁금하시다면 위키를 직접 보세염:


미군 운용에 관해선 좀 더 내용을 붙일수도 있는데, 이미 이 글은 충분히 기네요 (역: 네 제발 너무 기네요 이미 충분히 길어요 어휴)




The end



자, 이상으로 마치도록 하겠어요. 잘 보셨길 바래요.

너무 길어서 죄송했습니다만 적어도 많이 다루긴 다룬것 같네요. 다음엔 이거보단 좀 더 짧게 준비해볼게요.

질문이나 피드백, 코멘트, 오류 수정은 언제든 환영이에요. (역:여기에 말고 ㅎㅎ)

자유롭게 개진해주세요! (역:여기에 말고 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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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ddit.com 의 /r/TankPorn 갤에서 퍼옴

글이 너무 길어 내용에는 영어 원문을 포함하지 않았습니다.

오역 오류지적은 언제든지 댓글로 남겨주세요.

긴 글 읽어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근데 이거 번역하다가

스쿠페스 스코아매치 등수가 500등이 밀렸어요

이건 너무 슬퍼요 후...... 이번주도 바쁠텐데 언제 복구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