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에 우린 만난적이 있었소. 기억할런지 모르겠지만 그땐 난 참 조그만 아이였소... 그에 비해 어떠한 위협이라도 맞서 날 지켜주었지


 - 그럼 혹시 그때 그 무역선의....


 - 맞소, 그 겁쟁이 노예가 바로 나였소.


 총독은 어릴때 세라와 함께 자운의 무역선에서 노예 생활을 같이하던 동료였다. 앳된 얼굴과 말라 비틀어진 뼈다귀는 없고 그녀에 앞엔 오직 흑단의 머리카락의 늠름한 빌지워터 총독이 있었다.






 둘은 이야기가 아주 잘 통했다. 어린 시절 같이 고생했던 기억, 이름과 성별을 남자라고 속였지만 이미 여자인것을 알고 있었던 것. 그때문에 남자 아이의 가명을 쓰고 있었던것, 비스킷을 훔쳐먹다 들통나 서로 자신이 훔쳐먹었다고 하여서 봐주긴 허이고 너희들 사정이 딱하구나 라기는 개뿔! 둘 다 뒈지게 얻어맞은 기억, 그래서 자운엔 근처도 안간다는 말. 그리고 사실 왈츠 파티는 세라 포츈을 찾을 수 없어 총독이 왈츠 파티를 열었다란것. 그리고 단번에 세라를 알아 보았다란것.




- 춤은 잘 추던걸?


- ???


 - 당신 이미 다 알고 있었군요.


- 하하. 이렇게 아름다운 숙녀분과 함께 하는 이 밤이 내겐 영원했음 좋겠소. 춤을 추지 않겠나? 




 세라는 승낙의 의미로 총독의 손을 잡았고 아무도 없는 술집 내엔 왈츠가 흐르기 시작했다. 왈츠 음악에 맞춰 한발 한발 움직였다. 빗소리가 만들어내는 둘의 박자가 엇갈리는것도 없었고 서로 발을 부딧치지도 않았다. 그저 손을 맞잡고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술집 안에서 벌어진 작은 무도회를 즐기고 있었다. 총독의 팔이 자연스레 세라의 허리를 감쌋다. 잘록하게 들어간 허리와 딱 벌어진 골반이 인상깊은 여자였다. 서서히 무르익는 분위기에 총독은 세라의 허리를 끌어 안으며 얼굴을 가까이 댔다. 세라의 눈동자가 흑진주처럼 빛났다. 세라가 고개를 돌려 이를 거부하자 총독은 머쓱해하며 다시 왈츠 스텝을 밟았다. 춤 추기가 지루해지자 총독은 세라에게 말을 건다.





  - 작고 힘없는 노예에서 빌지워터 총독이 되기까지엔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았다오. 순전히 당신 덕택이라고 할 수 있소.


 세라의 볼이 발그레해진다.








 힘찬 말 울음소리와 함께 말발굽은 대지를 박차고 튀어나갔다. 다음에 볼 수 있을거라는 인사와 함께 그렇게 총독과 세라는 헤어졌다. 술집엔 세라 혼자 남게 되었지만 술집 안에 어쩐 이상함 기운이 웅웅 감돌았다. 총독은 떠나갔지만 세라의 가슴안에 오묘하게 그가 다녀간 자국이 남아있음을 느꼈다. 그 느낌은 머리를 타고 흘러가 기억으로 남았고 곧이어 세라는 혼란스러워 했다. 세라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공들여 힘준 머리는 빗물에 미역 줄기가 된 마냥 늘어져 있었고 고급스럽던 드레스 또한 형편없어져다. 드레스를 세탁하려면 꽤 오랜시간이 걸릴듯 했지만 세라는 행복했다. 무도회장을 습격한 해적이 더 귀중한 전리품을 가져다줬으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