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당에서의 불안한 대립도 있었고 자신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이기도 해서 무작정 거리고 나온 그녀였지만 막상 할 일이 없었다.

"...조용해."
 사람들이 왁자지껄하게 돌아다니고 있는데도 엘리스는 자신이 갖고있는 침묵을 느꼈다. 자운에서는 유혹이든 매혹이든 어떤 사람들도 그녀에 대해 관심을 보였다. 그러나 청문회로 보기좋게 몰락한 이후 아무도 그녀에게 신경을 써주지 않는다. 그건 동료들도 마찬가지였다.

"...넌 무언가가 필요해... 동료를 넘어서 더 가까운 존재를, 친구를..."

 마음속의 고요함이 너무 싫었다. 신이 있던 빈자리가 도저히 메꿔지지 않고 있다. 기분전환을 위해서라도 엘리스는 자기와 많이 친하게 지내왔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찾아가서 얘기하기로 결심했다.

"그럼 찾아볼까? 나와 가까이 지내는 사람은 챔피언밖에 없으니, 직접 검색해보는 수밖에."
엘리스는 자신의 왼쪽 손등을 가볍게 눌렀다. 아마도 모든 챔피언들이 지니고있는 디바이스의 작동을 원하는 것이리라. 하지만 그녀의 손등 위에서 투명한 사각형 전자기기같은건 나타나지도 않았고 그냥 말하자면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놀라는것도 잠시, 엘리스는 디바이스의 작동조건을 떠올리고서는 체념한듯 손을 떨궜다.

'지금의 난... 챔피언이 아니야...'

 모든 챔피언들이 지닌 '디바이스'는 전장 내에서 사용할 시 챔피언들의 활동 데이터베이스나 아이템을 구입하는 상점이 되고, 전장 외에서 사용시 모든 기능을 지원해주는 '스마트폰'과 비슷한 역할을 해주는 기기로 활용된다, 단점은 통신기능이 없다는 것.

 그렇다해도 웹서핑이나 정보수집용으로도 충분한 가치가있기 때문에 지금의 엘리스에게 있어서 누구를 만나봐야할지 알려줄수 있는 중요한 지표가 될 수 있었다. 그렇지 못해서 아쉬울 뿐.

'...이렇게되면 내 머리속에서 그 누군가를 찾아내야한다는건가? 하지만 내 기억은 3년 그 이전의 기억을 갖고있지 않은데...'

 기억상실. 자신의 신이 억지로 막아놓았고 청문회 당시에도 그녀를 정신적으로 혼란스럽게 만든 그 가증스러운 존재의 업적이라 할수 있겠다.

'그러고보니 3년전부터의 기억은 별 영향이 없었던거 같은데?'

 엘리스의 깨달음은 갑자기 머리속이 반짝거리는듯한 충격을 주었다. 그렇다. 3년전은 자신이 리그에 입문하던 때, 즉 챔피언으로서의 삶과 기억은 있었다.

'생각해라 생각해. 지난 3년동안의 기억들이 뭐가 있었는지 떠올...'

 3년 그 이전의 범주에서는 아무런 단서도 찾을수 없기에 엘리스는 3년전부터의 기억들속에서 무언가를 찾으려했다. 그러자...

 자기가 전장에서 싸워왔던 모든 경기에 대한 기억, 그녀가 3년동안 만난 챔피언들의 모든 얼굴, 심지어 지나가다가 본 사람의 얼굴과 무심코 주워들은 이야기들이 일순간에 떠올렸다. 물론 자신이 전장에서 말자하와 적팀으로 만났을 당시의 전적이 0%라는것도.

 이 기억들은 차례차례 떠오르지않고 한꺼번에 여러개의 자극이 단번에 가해져서, 엘리스는 몇초동안은 눈뜬 장님이 된듯한 기분으로 온몸에 기운이 빠져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
"뭐야 저 여자는... 빈혈인가?"
 당연히 주변에 있는 녹서스 주민들도 그녀의 상태에 당황했다.

"뭐야... 이렇게 약해빠진 여자니 그럴만도하지."
 그래도 엘리스가 보고 느낀 그대로의 인상을 지닌 사람들은 그들다운 대답을 한뒤 다시 무시했다.

'기억났어. 없지는 않았구나.'

 엘리스는 자신에 대한 데이터를 다른 기기를 통해 봤던 날짜와 그 내용을 떠올리는데 완벽하게 성공했다. 자신이 모셨던 신은 그런 행동을 기뻐하지 않았지만 막을 이유도 없었기에 엘리스 자신에 대한 정보를 찾는걸 막지 않았다. 시기는 리그에 입문한 직후였다.

 하지만 이 기억도 임의로 조작된 모양이었었는지 이후의 그녀는 이 때의 기억을 전혀 떠올리지 못했다.

"...르블랑, 블라디미르..."
 그녀의 기억속에 있는 그녀가 봤던 챔피언 관계도에 그 둘이 제시되었다. 그 둘과의 관계는 동맹관계였다.

'그리고 이 둘의 소속은 이곳, 녹서스... 이거 운이 좋은데.'

 주저앉아있는 몸을 일으켜 먼지까지 턴 그녀는 이 둘을 찾기 위해 고민하면서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르블랑과 블라디미르는 디바이스에 의한 정보에 따르면 검은 장미단이라는 단체에 소속되어있었다 했어. 그럼 다시 검은 장미단에 대해 검색을 해볼까?'

"어이 챔피언."
 느낌상 식당아주머니가 부른 것 같았지만 목소리에 의하면 이름모를 남성이었다. 뒤를 돌아보니 역시나, 처음보는 남자였다.

"챔피언으로 사는건 행복한가?"
 다짜고짜 묻고보는 저돌적인 질문. 엘리스의 대답은 '아니다'였지만 생판 모르는 남에게 그런것까지 말하고 싶지는 않았다. 남자는 제멋대로 엘리스의 침묵을 해석했다.

"... 그럴거면 그런 짓은 하지 말았어야지."
"무엇을...?"
 솔직히 까놓고 얘기하자면 르블랑과 블라디미르때문에 녹서스에 남아있기 때문에 기분이 내키지 않는 사람의 말에 대답하기는 싫었다. 그래도 답하기는 해야하는데 아는게 없으니 이렇게 말할 수밖에.

 말을 걸은 남성이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이 사람은 뭐하는 사람이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의 시간이 지난 뒤에야 남자는 말했다.

"그렇게 챔피언이 될 바에야 전에 하던거나 계속하지 그랬나."
'전?'

 그녀는 설마 3년 그 이전의 시간대에 만난 사람일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태도를 바꿨다.

"제가 전에 뭘 했었죠?"

조심스럽게 그녀는 물었다. 건성으로 대답하는 말투는 아니었다.
"그런건 자신이 알고있는게 당연한거 아닌가? 왜 나에게 물어보는거지?"

 아, 이 남자에게 또 상처투성이인 사건들을 말해야 한단 말인가?

'싫다...'

 엘리스는 또다시 자기가 그렇게 싫어하는 침묵을 만들었다.

"괜한 말을 했군."
지인과의 대화를 하는듯이 짧은 실망감을 표출한 남자는 유유히 걸어가기 시작했다. 엘리스는 그 남자를 붙잡으려 했다. 그런데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뒤쪽으로 지나간다는걸 보고 걸음을 멈췄다. 막대기부터 곡괭이까지, 여러 농기구들이나 도구들을 들고 이동하고 있었다. 그런 사람들로 구성된 무리들이 엘리스 옆으로 지나가고 있었다.

'이 근처에 탄광이나 밭이 있던가?'

도심 근처에는 전혀 그런게 없었다. 사람들이 가는 방향도 오히려 시외가 아닌 식당으로 가고있었다.

'그런데 저 방향의 식당은...'

 사람들이 몰려드는 식당은 다름아닌 엘리스가 머물렀던 식당이었다.

 

"엘리스가 이곳에 나타났다."
"그래요?"
"잡아버리자. 그 년은 어디로 갔는지 아는사람?"
 엘리스가 잠시 들어가있던 식당. 수많은 무리 속에는 주인아주머니가 중심에 있었다.

"주택가쪽으로 가고있었습니다."

 엘리스가 미처 관심을 쏟지 못한 사람들중 한명이 말하자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식당안의 모든 사람들이 무장을 하고 있었다.

"...가자."

수많은 사람들이 식당에서 쏟아져나왔다.

 

'검은 장미단이 있을 법한 위치를 알아내야 하는데... 주택가에 있는 단체가 아닌가?'

 검은 장미단의 위치를 알고싶지만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고 싶어서 일다 도심 가장자리의 주택가쪽으로 걸어가는 엘리스. 그녀에게 있어서 침묵은 지금은 편한 존재다. 신기하지 않은가. 그렇게 싫어했던 침묵인데 지금은 오히려 그 분위기에 안도하고 있다.

'왜일까.'

 살짝 생각에 빠지던 찰나,

"거미 여왕이다! 사이비 마녀가 녹서스에 나타났다!"
"저 마녀를 이 땅에서 몰아내버리자!"

 갑자기 그녀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나타난 것이다.

"뭐지 저 사람들은?"
 저 멀리서 몰려오는 군중들 중 그녀의 눈에 들어오는 한 사람이 있었다.

'저기, 숙녀분. 그러고보니 통 이름을 알지못했는데, 이름이 어떻게 되시나?'

'고급져보이는 그쪽의 입맛에 맞을지는 모르겠지만, 저기 가운데길 있잖나. 그쪽으로 쭉 가다보면 사람들이 많이있는 식당 하나가 있거든? 그쪽에서 밥을 먹는다면 오늘 점심저녁먹을 돈까진 될거야.'

 

'아 그리고말이지. 아가씨... 조심하는게 좋을거야. 어째서 그 바다에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쪽이 생활하는곳하고 여기는 좀 다르다고. 그렇게 마른 체형으로 좁은 골목길같은곳에 가면 좋은 타겟이 될거야. 될 수 있으면 큰길로 다니시게.'

 배에서 내린 그녀와 마지막으로 대화한 선원이 군중의 앞대열에 위치한채 달려오고 있었다.

"함정이었어...!'

<계속>

 

<작품의 원활한 진행을 위한 원작vs팬픽 설정 비교>

 

현재 엘리스의 상태

 

 

1. 엘리스가 떠받드는 거미신에게서 받은듯한 '그림자 군도의 기운'이 없는 지금 스킬을 쓰지 못하는 상태.

 

2. 그녀의 3년 그 이전(=2012년 이전)의 과거회상이 이루어지지 않는상태.

 

3. 청문회를 받기 이전에 조각조각 까먹은 3년전부터의 기억이 '그림자 군도의 기운'이 없어진 지금

 

3년동안의 모든 자극들을 기억하고 있는 상태

 

(리그에 입문한 이후부터 청문회까지의 날이니 설정상 2012년 11월 1일부터 2015년 6월 30일까지)

 

4. 함정에 빠져서 자신을 왜 잡으려고 하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쫓기는 상태

 

<글쓴이의 말>

 

세부적으로 써보니까 엘리스는 기억상실을 이중으로 격고있었다는걸 이제야 알았네요.(...)

하지만 3년간의 모든 자극을 기억하고있는 현재의 엘리스의 상태는 어떤의미로 부럽기도 합니다. 기간한정 완전기억능력이라니...

다음편부터 바로 도주씬을 쓰기위해 분량을 늘린감이 있습니다. 원하는 타이밍에 끊으려고하니 짧은 분량이 마음에 안차네요 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