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인은 이후로도 계속 전쟁학회로 수레를 이끌었고, 그 수레는 그가 팔 물건들과 어떤 여자 한명이 올려져있었다.

"후우...후우..."
'...'

 도착지에 이를시 부르는대로 돈을 주겠다는, 납득이 안가는 승객에게 들으라는건지 인력거꾼으로 전락해버린 상인은 거칠게 숨을 들이쉬었다 내쉬기를 반복했다. 그녀에게서 무슨 반응을 이끌어내는게 목적인듯하다.

 그 여자가 힘들게 수레를 이끄는 상인의 모습과 숨소리를 눈치못했을리가 없다. 하지만 눈치를 챘음에도 몇 분, 아니 몇 십분이 지나도 그녀가 상인을 걱정하는 태도는 보이지 않았다.

'침묵...'

 녹서스에서 쫓기는 중에 처음으로 말한 단어, 르블랑이 자신에게 '침묵을 없애주지 못해 미안하다'라고 말한 점, 그리고 단어 이전의 차원에서 친구가 필요하다고 느끼게 만든 중요한 뜻.

'그림자 군도의 챔피언들이 돼주지 못한 것, 내 편에 서준 르블랑조차 하지 못한 관계...'

"흐으으으!!!!!!!!!!!!!!!!"

 목에 깊숙히 걸린 가래를 뱉으려는듯이 끌어올린 집주인의 기합이 그녀의 생각을 방해했다. 초점을 잃은듯한 검은 눈동자는 찰나의 깜빡임을 펼친 뒤 상인을 가리켰다.

'힘든가보구나. 하긴. 앞으로도 몇일 걸리는데.'

 그러나 그녀의 머리속은 짧은 시간의 동정 그 비슷한 무언가만 느끼고 더 이상의 진전은 없었다.

"밥도 먹을겸 쉬었다 가죠."
 상인은 흥분한 목소리로 수레에서 힘을 뺀 채 말했다.

"저도 먹을 수 있을까요?"
 속이 검은 상태의 그녀가 아니었기에 엘리스는 꺼리낌없이 상인에게 물었다. 엘리스를 바라보며 말하지도않던 상인은 눈에 잔뜩 힘을준채 그녀를 노려보며 말했다.

"별도요금."

 문장도 아니었다.

"네. 알았습니다. 그래도 먹어야죠. 뭐가 있는지 볼 수 있을까요?"

"..."
 상인은 할말을 잃었다는듯이 엘리스를 처다본뒤 수레에 손을 뻗은다음 여러 음식들을 꺼내보였다. 그녀는 적당한 양의 음식을 고른뒤 수레에 앉아서 맛있게 먹기 시작했다. 상인은 그런 그녀의 오른쪽에 있는 나무에 걸터앉아서 엘리스에게 팔던 음식에 비하면 단조롭기 그지없는 반찬과 밥을 꺼내먹었다.

"음? 왜 먹을걸 팔면서도 그런걸 안드세요?"

 엘리스가 상인의 메뉴에 질문을 걸었다. 관심을 가져서 물었다기보다는 허겁지겁 먹은뒤 기지개나 할겸 몸을 이리저리 돌리다가 눈에 들어와서 물어봤을뿐인, 불쾌할 정도로 순수한 질문이었다.

"먹을걸 팔기에 더욱 이런데 인색해질수밖에 없죠."
"검소하군요."
"무슨 소리를... 이건 다 돈이에요. 내가 먹으면 내 배속으로 돈을 퍼붓는거라고요. 돈벌어서 가족들에게 써야할돈을 나자신에게 쓴답말입니까? 당신 대체, 사람들을 어떻게보는거죠? 음식점을 운영하는 사람일수록 더욱 배고프게 먹고, 물건을 사고파는사람일수록 오히려 아껴쓸수밖에 없으며, 농사를 하는 사람일수록 더욱더 음식의 소중함을 일깨우는게 당연한거 아닌가요?"

'그런가?'

"당신, 세상물정을 너무 모르는군요. 대체 얼마나 잘나가길래 세상 돌아가는꼴을 모르는거죠? 뭐, 그 차림에... 음... 공주라도 되시나?"

"'거미 여왕'입니다."
"..."
 상인은 할말을 잃었다는듯이 일순간 어깨가 내려앉았고 너무 무지한 여자에게 알려주기위해 온힘을 쏟았던 힘이 무상하다는듯 새어나가버렸음을 실감했다.

'사실 이젠 '거미 여왕'도 아니지만...'

 속뜻을 알아내지못한 엘리스였지만 그녀역시 다른 방면으로 힘이 빠질수밖에 없었다.

'그 기억을 찾아서 뭘 하느냐...'

 엘리스에게 또 하루의 시간이 지나가고 그녀는 숲에서 고뇌하는 시간을 가졌다. 르블랑이 물었던 질문이었다. 몇일밖에 지나지 않았고 자신이 할수있는것도, 한것도 없었지만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할 부분임은 틀림없었다.

'분명한것은 기억을 찾는데에서 끝날 여정은 아니라는거겠지. 그럼 난 뭘해야되는거지?'

 아직도 답하지못한 질문들이 넘쳐났다. 당장 왜 자신이 전쟁 학회에 빨리가기를 포기했는지도 알고있지못하니까.

'그러고보니 청문회 이후로 나에게 이상한점이 또 하나 늘었어. 나자신이 매우 무뎌진듯한 느낌...'

 자신의 동굴에서 어렴풋이나마 알게된 처지, 그리고 신의 배신에 이성이 잠시 마비된듯한 시간을 가졌던 것, 녹서스에서 자신을 쫓는 주민들에게서 느낀 무언가.

'머리속에서 도망치라고 명령하기 이전에 난 그들에게서 무슨 느낌을 받았어. 저들이 강해서라기보다는 적의에 압도돼버린것 같아. 잡히면 어떻게 될지 상상했지. 누구였는지 분간도 안갈정도로 처참하게 살해당한 나 자신을...'

 머리보다 가슴이 느꼈다고할법한 감각. 그뿐만이 아니었다. 상인의 일침에 움츠러든 자신의 모습까지. 자신을 비난했는데도 그에 대한 반발심이 들 수가 없는 자신의 모습은 또 무엇인가.

 무엇보다,

'그날 이후, 난 무언가를 보고 경험해도 뚜렷하게 느끼기가 힘들어졌어. 확실히 뭔가를 느끼기도했고 의아해하기도했지만, 이런건 보통 사람들이 표현하는 횟수나 종류를 비교해보면 턱없이 적어.'

 너무나도 제한적이고 미미한 감흥. 자기 자신에 대한 관심을 쏟기 이전에, 모든 것에 흥미를 잃은듯 살아가는듯한 무감각함이 가장 싫었다.

'기억 외에도 무언가를 더 찾아가야만 하는건가... 이 모든게 6개월 안에 되찾을 수 있긴 한건가?'

 

"네에?!"
"말했잖습니까. 오늘 하루는 쉰다고요. 거기가 보통 먼곳도 아니고, 무엇보다도 사람을 수레에 앉히고 가는게 얼마나 힘든줄 아세요?"

"그렇죠."
"무엇보다 옷도 갈아입어야죠. 제 옷좀 보세요. 땀으로 절은 옷으로 계속 가야합니까? ...그쪽은 그러고보니 옷이 그 한벌밖에 없나요?"
 "네."
"..."
'그러고보니 청문회 이후부터 계속 이 옷이었지.'

 하지만 자신의 옷에 코를 들이밀었을때 냄새가 난다거나, 해졌다거나 그런 느낌은 없었다.

'녹서스에서 진땀을 빼가면서 달린게 얼만데 땀냄새가 안날수가있지?'

 '냄새없는 땀을 흘리는 여자'라는 설정은 어느 책에서나 작품에서도 찾지못한 설정일테다.

'르블랑이 빨아준건가. 상처도 그렇고, 옷도 그렇고...?!'

 한벌밖에 입고 다니지 않은 자신의 옷을 말끔하게 만들어줬다는건 대단히 고마운 일이지만 옷을 빨아줬다는 사실은 좀 미묘했다. 사람을 통째로 세탁기에 집어넣으면 그게 바로 공포영화에서나 나오는 독특한 살인이나 다름없을 터. 그럼...

'내가 기절한 틈을 타서 옷을...'

 그러면 이해가 가지만 그 당시라면 자신을 구해준 집주인이 르블랑임을 알아차리지도 못한 상태였다. 그 상태에서 자신의 몸뚬아리와 옷을 따로해서 빨았다는것은 한동안 자신이 나체였다는 뜻.

'누군가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옷을 벗...'

 자신의 의사가 결핍된 결정이기도 했지만 누군가가 자신의 몸을 만진다는건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청문회 이전의 엘리스도 자신의 몸에 반해서 넘어오는 사람들은 많았지만 그들에게 자신의 몸을 만지게 할 기회는 주지도 않고 모두 잡아먹었다.

'대체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짓을 하면서...?!'

 순간 엘리스의 얼굴이 전에 본적없는 새빨간색을 띄기 시작했다.

"... 뭐요, 내가 옷이 한벌밖에 없냐고 물어본게 그리 얼굴이 빨개질것까지나..."
 상인이 물어보거나말거나 엘리스의 얼굴은 이미 붉게 물들어져있었다. 그녀의 얼굴색은 자신이 입고있는 옷에 배색된 빨간색과 비교해서 조금도 차이를 느끼지 못할 정도의 똑같은 색을 가지고있었다.

<계속>

<글쓴이의 말>

사람을 통째로 세탁기에 넣고 돌리는 영화 알고계신지요? 영화 <고사>에서 그런 처형씬이 있었죠... 그 개무서운 영화...ㄷ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