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일.

 온몸에 바늘을 꽂은듯 구석구석 아프지않은곳이 없던 날. 엘리스는 이날, 자신의 모든것을 수련에 힘을 쏟은 날이라고 여겼지만 사실 이것이 이날의 전부는 아니었다. 7월 30일. 그레고리하고 만나기로했던 약속을 지키지못한날 이후에 단한번도 접촉을 가져본적이 없다는걸 알아차린 날이었다.

 뭔가 이상했다. 그래서 그녀는 그를 만나기위해 일부러 마오카이나 리신과 동행하는일없이 그대로 경제 특구를향해 뛰쳐나갔다. 달리는와중에 보이는 대나무숲을 보았다. 그 사람이있기는커녕 인기척하나 없는 적막한 숲일뿐이었다. 경제 특구에 도착해 주변을 두리번거리면서 돌아다니기를 몇 시간동안 반복했다. 마침내 저녁이되어서야 어딘가를 향해 걸어가는 그를 찾았다. 일부러 소리내어 다가가자 그도 사람인지라 자연스럽게 소리를 의식했고, 엘리스를 볼 수 있었다.

"오랫만입니다. 엘리스양."
 지극히 정상적인 대화임에도불구하고 엘리스는 그말이 썩 밝게 다가오지않음을 직감했다. 미동도없는 눈꼬리와 안어울릴정도로 웃고있는 입.


 8월 8일.

 

 자신의 계획상 어쩔 수 없이 만남의 시간을 조정해야함을 알게된 그레고리와 지속적인 접촉의 끝날이었다.

"...저 엘리스 씨. 여기까지인것 같습니다."
"네? 왜요?"
"여기에서 계속 머무는동안 비축해놓았던 돈이 떨어졌습니다. 더이상 이곳에 머무를 수 없어요."
"그럼 제가 도와드릴까요? 저역시 통상적인 집에서 머무르지는 않지만 그렇기에 조금이라도 편하게 잘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줄 수 있어요."

 마침 그 때는 엘리스가 고치를 시전하기위해서 거미줄을 뽑는 스킬을 연습하던 시기였다. 그녀는 그레고리를 위해서라도 열심히 연습을 할 동기가 생겼다고 여겼다. 그리고 그 말은 그녀가 낼 수 있는 최대의 호의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뇨. 됐습니다. 저도 일해서 먹고살아야죠."

 또다른 의미를 품은 말이 그레고리의 입에서 정중하게 나왔다.
"무슨 소린가요. 저를 취재하기위해서 여기온거 아니었나요?"

"...그랬죠."

 씁쓸하다는 표정을 지은 그의 얼굴에서 나온 다음말은 엘리스에게 잊지못할 악몽을 남겼다.

"당신의 감정에 대해서만 얘기를 주고받은것만 몇 일이 걸렸습니다. 리신과 마오카이의 도움으로 수련을하고있다는 사실과 거기에서 있었던 일들을 말해줘봤자 기사화는 안된다고 늘 당부하셨죠. 그럼 전 뭘 하란 말입니까? 감정에 대해 당신과 나눈내용이 신문기사에 오를리가 없어요. 솔직히, 좀 지쳤습니다. 언젠가는 솔직한 얘기를 해주길 바랬는데, 너무 감추기만하는군요. 당신이 절 도와준다는건 바로 기사거리를 만들어내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카페에서 커피나 홀짝홀짝 마시면서 잡담을 나누는게 아니라!"

 '사람을 실망시키다'라는 딱딱하고 정없는 글귀가 처음으로 와닿았다. 자기얘기에만 심취한 나머지 그레고리의 의견이나 요구가 뭔지, 본목적이 뭔지도 잊었다. 그가 얼마나 오랫동안 참았는지는 모르겠다. 이제와서 얘기한걸보면 긴 시간동안 그러했을테지만, 머리속에서 그레고리의 처지를 생각하기엔 지금 눈앞에 펼쳐진 그의 토로가 정신을 사로잡았다. 자신에게 잘해주는 사람. 하지만 그 사람도 나름의 이유가있고 목적이 있다. 그래, 기자. 자신을 취재하기위해 접촉한 기자. 사비를 털면서까지 이곳에와서 접촉하려는 사람이었다. 그 사람이 자신을 통해서 뭔가가 남기를 기대했겠지만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

 그래서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실망했다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은 기자의 관점에서 본 문장이다.

 

 엘리스의 관점에서 보자면 그녀는 그레고리를 실망시켰다. 더불어 자기와 부담없이 지내던 사람의 화를 보았다.

 

 그레고리는 이후에 카페를 나갔다. 엘리스는 생각했다. 저 사람은 점점 나에게서 멀어질테고 이시간에 나는 누구하고 만날 사람이 없다.

'...'

 손이 떨린다. 마오카이와 같이 이곳으로와서 감정을 느낄수 있도록 여려활동을 할테지만, 그레고리처럼 자신의 얘기를 들어주지는 않는다. 바라지않았던 일이 일어났다. 그게 싫었다. 앞으로 어떤일이 생길지 몰라 눈앞이 캄캄해진다. 그리고 엘리스는 무언가를 '이렇다'고 느낀다.


 

'두렵다'고.


 

 8월 10일.

 

 엘리스가 처음으로 새끼거미를 소환해내는데 성공한 날이다. 마오카이는 그녀가 보인 진전을보면서 기뻐했고 리신역시 비슷한 반응이었다. 어디있는지 전혀 알수없는 카사딘에겐 반갑지 않은 소식이지만.

"축하하오 엘리스. 그런데 뭣좀 하나 물어봐도 되오?"
"뭔데?"
"그대가 소환하는 새끼거미는 그림자 군도에 있는 거처에서 서식하는 그대의 거미가 낳은 자식들이오. 그림자 군도의 기운과 연관이 없을수가 없는 존재요. 그런데 어째서 필트오버에서 마오카이에게 스킬을 쓸 수 있었던거요?"
"..."
 그녀는 말을 아꼈다. 고개를 숙여 땅을 바라보자 소환수이자 주종의 관계에 속하는 새끼거미가 그녀에게 반감을 표하듯 자리를 피했다.


 

 순차적이긴하지만 각각의 날과는 딱딱 맞아떨어지는 연결고리가 부족한 장면들이 스쳐지나간다. 바로 그녀의 머리속에서. 그리고 누군가의 목소리가 개연성없이 들려온다.

ㄴ내 힘을 써라 엘리스. 내 힘을 쓰면 네가 원하는것을 얻을수 있을것이다. 전에도 그랬듯이.ㄱ

 썩은 아귀의 목소리가 그녀의 머리속에서 악령과같이 들려왔다. 악몽. 꿈. 나쁜 꿈. 그녀의 머리속에있는 자신은 형체를 알 수 없는 신에게 쫓기고있다. 쫓기는자와 쫓는자의 격차가 좁혀지고 마침내 썩은 아귀가 엘리스의 온몸으로 스며들어가자, 그녀는 기분나쁨에 격한 비명을 질렀다.

 그 비명의 끝은, 기상이었다.

<계속>

<글쓴이의 말>

 

3주만의 연재입니다. 죄송합니다. 여러 사정이 생겨버려서 도저히 시간을 할애할 처지가 못되었지만, 사전예고없이 몇 주를 보낸게 후회스러울 따름입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봤자 변명의 이상도 이하도아닐게 분명하기에 말을 아끼겠습니다.

 

이제 대학교 개강시즌이 다가왔습니다. 작년의 저같은 수험생에게는 개학과 방학에 큰 흥이없을게 분명하지만, 각자의 역할에서 열심히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제 글을 관심을 가져주시는 분들을 위해서 저는 다음편을 생각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