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이 엘리스에게 요구한 것은 그리 대단것들이 아니었다. 자운같은 도시국가에서 자라는 아이들이 으레 하는 취미생활을 같이하길 원했던 것이다. PC방이라던가, 노래방이라던가...

"자운에서 나에 대한 책이 출판되었다는건 알고있어. 그 책의 저자와 내용을 알고싶어."
"저자는 생각해봐도 공허교의 신도들이 말자하의 관점을 대신 써서 출판한게 아니겠어? 내용도 뭐 아줌마의 종교를 자세히 까는게 주내용이잖아."

"역시 말자하는 내가 자운에서 사회적으로 매장을 시키려고 작정을 했군."
"당연한거 아냐~? 종교간의 대립이 얼마나 더럽고 피튀기는지는 아줌마도 알텐데? 근데 아줌마가 청문회에서 보기좋게 자멸한 나머지 그쪽 입장에서는 뿌리까지 뽑을만한 조건이 갖춰졌는데, 어떻게 그렇게 안하겠어? 말자하와는 달리 아줌마같은경우는 진짜 사이비티가 풀풀났다는데? 책 머리말에 대놓고 이런시가 있었어."
 소년이 말하는 시는 이러했다.


 

원제 : 기형도 시인의 '홀린 사람', 1989년 작품

 

 그분은 딱봐도 엘리스였고 사회자는 거미교의 독실한 추종자들, 군중들은 엘리스와 거미교 신자들의 언변에 사로잡힌 자운 시민들로 바꿔보면 엘리스를 비롯한 거미교를 정면으로 비판하는 시였다. 내용을 하나하나비교하면 살짝 빗나가는 부분이 있을거같으나, 크게보면 그것들이 잘 드러나기 이전에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강렬한 서말을 이끌어냈기에 자운에서 순식간에 베스트셀러가 되었을거라 엘리스는 생각했다.

"얼굴에 다 쓰여져있어 아줌마. 그래 맞아. 그 책은 날개돋친듯 팔려나갔어. 조금은 자기표현을 자제하는것도 좀 익혀두라고?"
"무슨 소리야?"
"속마음이 너무 쉽게읽히면 이용당하면서 산다고. 어떻게 드러낼걸 다 드러내면서 살 수 있어?"
"너같은 어린애한테 훈계를 듣고싶진않아. 그러는 너도 나랑 같이 있는 동안에 보인 태도는 엄청 과격하고 충동적이기 짝이 없었는데? 사돈 남말하기는..."
"아니 내 입장에서 생각을 좀 해봐. 전직이긴하지만 챔피언과같이 놀고있잖아? 보통사람에게는 정말 희귀한 경험이라고! 아줌마같은 분께선 이해를 잘 못하려나?"
"그래도..."
'어?'

 엘리스의 입에서 의외의 말이 나올뻔했다. 저 소년의 흥분감을 이해못하는건 아니지만 그동안 소년이 보인 행동들이 아름답다고 생각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감정에 충실해야한다는 자신의 생각이 무의식적으로 흔들리면서, 그녀는 오늘 수도원에 있었던 독설가를 떠올려버렸다.


 카사딘은 정말 고민했다. '균열 이동'을 쓰면서까지 이 여자아이를 따돌려야만하는지를. 뭔가 꾸며낸듯한 표정과 말투인듯했지만 '가뜩이나 사람이 많이 돌아다니는 이때 실종사건이 일어나면 골치아파지겠구나'라는 추측에 도달한 결과 또 다른 자신의 강제로인해 부탁을 받들게 되었다. 나이는 7~8살 되어보이는 여자아이는 카사딘이 표하는 긍정의 의사를 보자마자 울음기와 눈물을 싹 뺀 채 다음 말을 건넸다.

"그럼... 뭐하러 갈까요?"
 귀엽게 생긴 여자아이의 말투가 자기 나이의 2~3배 되는 여자가 낼법한 목소리로 성숙해졌다. 아이의 갑작스런 변화를 맞이한 카사딘의 반응은 의외로 긍정적이었다.

'흠... 아이티내면서 찡찡거리는것보단 이게 훨씬 더 어른스럽고 낫군.'

 

"너의 이름은 무엇인가."
 투구속에서 울려퍼지는 소리를 여자아이는 잘도 잡아내서 답했다.

"제 이름은 블루머에요. 나이는... 알아서 생각해주세요. 얼마로 보이나요?"

 아기자기한 얼굴로 여자티를 팍팍 내려는 말투와 질문이 카사딘에게도 나쁘지 않았다. 그에게 당장 주어진 임무가 있었지만 절대로 하고싶지 않은류의 임무라 그는 나름대로의 휴식기간을 가지기로 했다.

 ...처음에는.

"그건 그렇고, 꽤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나를 알아보는군. 어떻게 알아냈나?"

 카사딘과 블루머는 경제 특구의 거리를 걸어다니면서 여러 이야기를 했다.
"우리 가족이 리그 오브 레전드에 대해서 관심이 많거든요. 물론 항상 벌어지는 모든 전장을 볼 수는 없지만 적어도 시간날때마다 보고있어요. 가장 좋아하거나 존경하는 챔피언의 배경은 달달 외우기도 하고요."
'전장의 수위가 이 정도 나이대의 아이들이 보기엔 건전하진 않을텐데.'

 라고 생각하며 카사딘은,

"네 마음에 드는 챔피언들은 누구인가."

 라고 물어봤으나
"제 옆에 있는 분이에요."

 라고 바로 대답을 듣자 속으로 잠시 놀랐다.
"....... 그래, 고맙구나. 나를 좋아해주는 사람도 있다니."
"아니에요. 다가올 공허를 위해 싸워주는 든든한 아군이잖아요? 공허가 이 세계로 언제 닥쳐오는지 알고계신가요?"

"그것은 나도 모른다. 말자하라는 챔피언을 알고있나? 그만이 알고있을 뿐. 그래서 나는 언제나 그에 맞서 대비를 하고있다."

 블루머는 카사딘의 말을듣고 좋아죽는다는듯이 두 손에 깍지를끼고 '와~'소리를내며 눈망울을 빛냈다. 하지만 다음 물음은 그다지 좋게 다가오지 않았다.

"아저씨는 그래서 무엇을 하셨어요?"

 엘리스는 지금 자신과 같이다니고있는 소년에 대해 하나씩 알아가면서 여러 활동을 하고있었다. 소년의 이름은 에지. 15살이다. 엘리스가 아이오니아에 있다는 소식을 자운에서 알게되었고, 굳이 오지않아도되는 이곳을 찾아왔다는데, 목적은 당연히 그녀를 실제로 만나는 것. 그것 외에는 없었다.

"다음엔 뭘하는게 좋을까요 아줌마?"
"바라는대로 다 해주는 사람에게 아줌마라는 소리가 나오니?"
"하지만, 그렇잖아? 네가 아무리 젊은 모습을 하고있어도 그것은 피부나이일뿐, 진짜 나이가 아닌데."

"후... 그럼 원하는만큼 그렇게 불러. 그대신 조건 하나를 걸자. 너도 내가 하고싶은거 하나를 같이해줘."
 '무슨소리야 아줌마? 아까...'라고 말하려는 소년은 엘리스의 '나 오늘 기분 영 아닌데 작정하고 사고치기전에 알았다고 말해라'라고 일부러 대놓고 드러낸 얼굴을 보자마자 나오지도 않은 말을 거두었다.

 엘리스가 향한 곳은 어느 DVD방. 에지는 왜 영화관도 아닌 이곳에 왔는지 궁금했으나 그녀가 뽑은 영화를 보고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엔드 오브 ㅇ... 아 이거! 되게 오래된거 아니야? 저 태어나기도 전에 나온 작품인데."
"그래. 경제 특구에서 이 시리즈를 보게되었는데, 오늘이 그 시리즈의 마지막을 보는 날이 되었네. 오늘 기분이 완전 밑바닥 끝을 달리고있는데..."
"네?"

 영화를 다 보고 나오면서 에지는 엘리스가 천천히 흘려버린 끝말이 이상하리만큼 영화의 줄거리에 부합한다고 생각했다. 타인을 완전히 이해할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그리고 의지하고싶었던 사람에게 버림받고, 친구가 끔찍하게 죽어나간 모습을 본 주인공이 세계를 뒤엎는다는 내용이지만 연출상으로나 음악적 효과가 결코 경쾌하지 않았다. 중간에 1부가 끝나고 스텝롤이 올라가는 장면이 한없이 어두운 음악과 걸맞춰서 나선형이 희미하게 비춰지는 강렬함이란, 엘리스와 에지 모두에게 큰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엘리스는 내심 이런 연출과 내용을 담은 이 영화가 오늘따라 잘 끌린다는 느낌이 들었다.

<계속>

<글쓴이의 말>

 

공백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