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육, 개돼지와 호구


언제나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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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앞의 작은 이익에 만족해 먹이를 받아먹으며 비판하지 않는 고객은 언젠가 몰락을 맞이한다.




0. 역할부여

모든 사람들은 개돼지가 아니다. 있다면 그것은 만들어진 것에 불과하다.

이것이 내 생각이었다. 그리고 현재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 그것은 대중을 개돼지로 만들고 싶어한 작자들이 만들어낸 허구다. 미리 좋은 역할을 차지한 자들이 자신의 역할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다른 이들에게 개돼지라는 역할을 부여한 뒤 먹이만 준다면 된다며 비웃었던 것이다.

정말 따분하고 시시하다.


역할부여방법은 다음과 같다.

무지, 무능, 포기, 자학, 혐오, 차별, 시기, 질투, 공포, 미움, 소외감, 두려움, 절망, 부도덕

스스로 생각하는 법을 알지 못하게 하는 것. 스스로 판단하는 법을 알지 못하게 하는 것. 스스로의 가능성을 알지 못하게 하는 것. 무엇이 더 중요한지 알지 못하게 하는 것. 무엇이 옳고 그른지 알지 못하게 하는 것. 무엇을 지향해야하는지 알지 못하게 하는 것. 등.



1997 IMF 사태의 원인을 국민들의 과소비라고 교육시키는 것.

지역감정을 조장하고 성별차별을 조장하고 계급차별을 조장해, 서로를 혐오하고 차별하고 시기하고 질투하고.. 그리고 그걸 하는 자신을 학대하게 만드는 것.

양비론을 통해 무엇이 더 중요한지 모르게 하고 뭘 해도 안된다는 절망을 심어주는 것.

공포감을 조성해 옳고 그름을 생각하게 만들지 못하게 하는 것.

일상적인 비리로 도덕적 해이를 조장하는 것.



한마디로 우민교육.

이것이 바로 사람들을, 대중들을 개돼지로 만드는 방법이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작은 수의 개돼지들을 가지고 선동하고 포장해서 모든 사람들을 개돼지라 평하는 것을 가리켜 만들어지는 개돼지라고 하겠다.




1. 세상

요즘 개돼지가 많이 쓰이고 있다.

개돼지라는 단어가 유행을 타게 되면서 많은 곳에 개돼지를 사용하는 상황을 보곤 한다. 보통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기업의 제품을 구매하거나, 부당한 일을 겪었음에도 의사표현없을 때를 가리키곤 하지만 명확한 기준은 따로 없다.

그렇기 때문에 개돼지가 아님에도 개돼지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고, 개돼지가 맞음에도 개돼지라 부르지 않는다.

개돼지같은 행동을 했더라도, 개돼지라 부르는 것이 역할을 고정시키는 것이 아닌가 걱정이 된다. 하지만 무엇이 개돼지같은 행동인지를 명확히 알아야 스스로 되돌아볼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실제 돼지의 삶과 비교해 어떤 것이 개돼지같은 행동인지 알아보도록 하겠다.




2. 사육

일반적으로 돼지의 삶은 단순하다. 우선 쓸만한 돼지 품종을 고른다. 먹이를 먹인다. 교배를 시킨다. 아플지도 모르기 때문에 예방접종도 시킨다. 겨울이 되면 보온도 시켜준다. 더러울까봐 씻어주기도 한다.

이렇게 사육되는 동안 돼지는 어쩌면 자신이 주인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사육사가 이렇게 식사와 주거는 물론이고 번식과 건강까지 챙겨주는걸보면 대접받는다고 생각할 수 있다.

물론 그 돼지의 생각과 별개로 시간이 되면 도살되어 잡아먹힌다.

이것이 돼지의 운명이다.

이렇게 돼지를 사육하던 사육사는 자신이 기르던 돼지품종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바꿀 수도 있다. 소를 키울 수도 있고 어쩌면 직종자체를 바꿀수도 있을 것이다. 한국돼지나 일본돼지나 돼지들은 자신의 운명을 결정할 수 없지만, 사육사는 돼지를 바꿀 수 있다.

이것이 사육사다.




3. 개돼지

돼지와 사람은 같지 않다. 어디까지나 비유에 불과하므로 깊게 생각하지 않길 바란다.

또한, 이런 돼지 비유의 전제조건은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기업이 반성을 하지 않았을 때와 부당한 일에 비판하지 않고 눈앞의 이익에만 집착하는 고객이 있어야 된다. 그들이 있는 순간 사육사와 돼지의 관계가 성립된다.


누군가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다. 사육사는 기업이고 돼지는 고객으로 가정하겠다.

기업은 분노한 고객을 달래기 위해 먹이를 준다. 그 먹이 종류는 다양하다. 무료제품이나 사은품도 있을테고 반값제품, 가상 재화 등을 말그대로 뿌린다. (먹이를 주지도 않는 경우도 있다.) 그렇지만 기업은 자신의 기업운영(사육방법)을 고수한다. 그대로 그 문제을 떠안고 간다.

이렇게 먹이를 받아먹는 동안 어쩌면 고객은 자신이 주인이라 생각할지도 모른다. 사회적 물의는 신경쓰지 않고 맛있는 먹이를 받아먹는다. 그러면서 자신은 손해를 입지 않았으니 이익이라 생각하며 당당하게 떠들고 다닌다.

물론 그 고객의 생각과 별개로 시간이 흐르면 몰락을 맞이한다.



갑질? 무슨상관이라고 생각하겠지만 그걸 방치하면 본인도 당한다.

노동자 권익? 무슨상관이라고 생각하겠지만 그걸 방치하면 본인도 당한다.

사회환원? 무슨상관이라고 생각하겠지만 그걸 하지 않으면 나라가 건강을 잃고 본인도 힘들어진다.

고객기만? 무슨상관이라고 생각하겠지만 그걸 방치하면 다른 기업들도 기만하고 계속 당하게 된다.

높은 도박성과 저열한 게임문화로 게임을 망친것? 무슨상관이라고 생각하겠지만 그걸 방치한 결과 우리나라의 게임산업은 반쯤 몰락했다.



눈앞의 작은 이익에 만족해 먹이를 받아먹으며 비판하지 않는 고객은 언젠가 몰락을 맞이한다.

기업은 자신의 고객들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바꿀 수도 있다. 해외진출하면 되겠지. 엉망진창으로 운영해 직종에 문제가 생기면 직종자체를 바꿀 수도 있다. 비판하지 않고 이용하는 고객은 몰락을 막을 수 없지만 기업은 고객을 바꿀 수 있다.




4. 호구와 개돼지

가끔 보면 재밌는 글이 보인다.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기업의 제품이라 하더라도 나는 무료로(혹은 저렴하게) 이용하고 있기 때문에 개돼지가 아니다.' 라고 말을 하는 것 보면 진정한 개돼지를 모르는 것 같아 보였다.

무슨 돼지가 돈을 내고 먹이를 받아먹나. 돼지는 어디까지나 무료로 먹이를 받아먹고 언젠가 잡아먹힐 뿐이다.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기업의 제품에 정당한 돈을 낸 사람은 개돼지가 아니다. 그들을 지칭하는 말은 따로 있다. 호구다.

이들은 기업이 개돼지취급을 하더라도 사회적으로는 사람대접받는다. 소비자권익이나 고발센터에 고발하여 사람대접을 받을 수도 있고 많은 돈을 사용한 사람은 고소를 통해 사람대접받을 수도 있다. 뭐 언젠가 몰락할 줄 알면서도 돈을 내는 것이 마음에 안들면 일반적인 호구와 개돼지를 합쳐 호구돼지라고 불러도 되겠다.


하지만 무료로 이용한 고객은 그런 대접도 받지 못한다. 개돼지 관계가 성립된 기업은 당연히 고객을 개돼지 취급을 할 것이고,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회적으로도 사람대접을 받을 수가 없다. 그러므로 어쩔 수 없이 그들은 개돼지가 된다.

언젠가 몰락할 줄 알면서도 무료라는 이유로 계속 이용했기 때문에 무료로 먹이를 받아먹다가 잡아먹힌 돼지와 비슷한 상황인 것이다.




5. 리그오브레전드

라이엇은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고객의 요구를 받아드리고 변화하였고, 고객은 주는 먹이만 받아먹는 것이 아니라, 비판을 통해 바꾸었기 때문에 개돼지관계가 성립되지 않는다.

나는 언제까지나 라이엇과 유저들이 사람으로, 사람대접받으며 살아가길 바라겠다.


......

다시 한번 말하지만, 모든 사람은 개돼지가 아니다. 있다면 그렇게 만들어졌을 뿐. 세상이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에 세상에는 아직 개돼지같은 행동을 하는 사람이 있다. 내가 그걸 잘못됬다고 하며 막지는 않겠다. 나 또한 했을지도 모르고 다른 이들도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그걸 뭐라하지는 않겠지만 무엇이 개돼지같은 행동인지 알고 스스로를 되돌아보며 앞으로 조심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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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잔나

서포터를 하면 잔나를 주로 합니다. 한 판에서 잔나로 바론스틸 용스틸 다해본 기억은 오랫동안 남아있습니다. 지고 있는 상황이라 그 스틸로 인해 승리했습니다. 서포터로 캐리했죠 하하. 그래서 그런지 고릴라 선수의 잔나를 좋아했습니다. 잘하거든요. 그런데 ... 눈물. 언젠가 밸런스가 제대로 잡히길.

오늘 인상깊은 건 뽀삐 니달리 블라디미르 애쉬 카르마 정도 (순서는 순위가 아님. 탑정글미드원딜서폿)

2. 번데기

참.. 번데기를 보면 도대체 어렸을땐 저걸 무슨생각으로 먹었는가 의문이 들어요. 역시 그런건 교육으로 정해지는거 같아요. 우욱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