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블리즈컨라인에서 깜짝 공개되고 지난 2021년 9월 24일 출시된 '디아블로2: 레저렉션'은 20년만에 다시 많은 유저들을 성역으로 불러모았다. 유저들이 일부 희망했던 편의기능도 넣지 않고 20년 전 디아블로2의 느낌을 충실히 담아내는 것에 주력, 20년 전 유저들에게 어필한 그 특유의 어두운 분위기와 고전적인 핵앤슬래시 느낌을 살리되 다양한 해상도에서 좀 더 선명하게 체험할 수 있게끔 했다.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는 과연 어떻게 2D였던 디아블로2를 3D로 옮기면서도 그 옛날의 게임플레이와 분위기를 고스란히 다양한 환경에서 재현할 수 있었을까? 더스틴 킹 아트 디렉터는 이를 구축하기 위해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에서 고심한 사항과, 파이프라인을 어떤 식으로 설계해나갔는지 이번 GDC 2022 강연에서 설명했다.

▲ 더스틴 킹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 아트 디렉터

시작하기에 앞서 더스틴 킹 디렉터는 블리자드가 꽤 예전부터 리마스터링을 위해서 비카리어스 비전과 논의를 해왔다고 설명했다. 현재 비카리어스 비전은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 산하로 들어갔지만, 그 전에는 크래시 밴디쿳 N세인 트릴로지를 비롯해 콜 오브 듀티 모던 워페어 등 다양한 회사들의 예전 작품을 리마스터링하거나 혹은 애셋을 외주 작업하는 전문 스튜디오였다. 당시 킹 디렉터는 비카리어스 비전에서 크래시 밴디쿳 N세인 트릴로지 리마스터링에 참여하고 있었고, 그 작업이 끝나자마자 바로 디아블로2 레저렉션에 아트 디렉팅을 맡게 됐다.

디아블로2 레저렉션으로 넘어온 뒤 그와 팀은 엔진에 적용할 새로운 렌더링 툴을 개발하고, 아트 스타일을 어떻게 해야 할지 확립해나가는 과정을 먼저 진행했다. 그 옛날 데이터를 기반으로 어두우면서도 리얼한 톤, 그리고 원본 디아블로2의 감성을 잡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미리 방향을 잡는 게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특히 디아블로2는 던전 그리고 어둡고 위험한 곳을 탐색하는 특유의 느낌이 있었는데, 이를 살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이 필요했다.

다행히 20년 전에 개발자들이 남긴 주석이나 코멘트들이 있었고, 이를 참고하는 한편 그들이 만들어낸 게임을 뜯어보면서 20년 전 스타일을 새롭게 재현하는 과정을 거쳤다. 이 과정에서 그 당시 유저에게 어필할 뿐만 아니라, 그 스타일을 유지하면서도 2021년의 신작으로서 신규 유저에게 어필하려면 어떤 아트를 보여줘야 할지 개발팀 모두가 고민이 많았다고 회상했다.

▲ 디아블로2의 느낌을 온전히 살리려면 어떻게 해야할지 방향을 잡는 것부터 시작했다

우선 아트팀이 톤과 느낌을 잡는 것부터 시작했다. 디아블로2가 어두운 분위기라는 건 익히 잘 알려진 사실이고, 그렇기 때문에 어두운 톤이 되어야 한다는 건 공감하고 있었다. 그런데 3D로 바꾼 만큼 단순히 '어둡다'라는 정도로는 불충분했다. 어느 정도로 어둡게 빛을 써야 할까 고민이 필요했다.

아울러 당시보다 화면 해상도가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지면서 이전에는 잘 안 보이던 요소들을 디테일하게 살려야 했는데, 그때도 원작 느낌을 살리려면 어느 정도까지 표현해야 할지 선을 그어야했다. 그나마 이 부분은 '디아블로2이기 때문에', 유혈 표현이나 잔인한 요소들을 최대한 디테일하게 다 담아내는 방향으로 갔다.

▲ 어두운 톤이어야 한다는 것에 이견은 없었지만

▲ 그냥 단순히 어두운 것만으로는 불충분했다

그 과정에서 중점을 둔 것은 개발팀뿐만 아니라 팬들이 원하는 디아블로2다움, 그리고 '디아블로2'로 여겨지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지 여부였다. 일단 2D에서 3D로 옮겨서 작업하기로 한 터라 2D 스프라이트를 보고 이를 단순히 3D로 옮긴 뒤, 어느 부분이 부족한지 파악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여타 3D 게임처럼 일괄적으로 실시간 라이팅에 마테리얼을 적용했고, 이를 베이스로 해서 디아블로2답지 않은 부분을 하나하나 개선해나가는 방법으로 작업을 이어나갔다. 아울러 G키를 누르면 옛날 디아블로2의 화면과 새롭게 적용한 렌더러를 오갈 수 있게끔 하는 작업도 진행했다.

물론 2D에서 3D로 옮기는 건 굉장히 어려운 작업이었다. 2D로 제작된 옛날 디아블로2를 보면 애니메이션이 10-12프레임에 스프라이트 애니메이션이었던 터라 블렌딩도 적용 안 되어있었다. 이를 그대로 3D로 적용하면 캐릭터가 달리다가 갑자기 미끄러지듯이 움직이거나 동작이 어색하게 끊기는 등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에 프레임에 제약은 두지 않고 블렌딩도 새로 적용했다. 그리고 디아블로2: 레저렉션을 위한 다양한 기능들도 추가해야만 했다.

▲ 2D 스프라이트로 작업한 애니메이션에 맞춰 3D로 다시 작업해야 하는 것도 문제였다

예를 들어 디아블로2의 맵은 비전의 성역 등에서 보면 알 수 있듯이, 종종 착시를 응용해서 제작된 곳이 많았다. 따라서 3D로 그 모습을 그대로 구현하게 되면 원본의 느낌을 그대로 살릴 수가 없었고, 그렇다고 원본처럼 평면인데 착시 효과를 넣는 식으로 구현하면 계단을 오르는 캐릭터의 애니메이션이 잘 살아나지 않았다. 이를 위해서 배경 카메라를 추가로 설치, 원본의 착시 효과는 고스란히 살리면서 캐릭터 움직임도 자연스럽게 살아나게끔 했다.

애니메이션도 애니메이션이지만 라이팅도 리마스터가 아닌 리메이크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어려웠다고 설명했다. 실시간 라이팅을 적용한 뒤에 분위기에 맞춰서 여러 빛을 일일이 연출하기에는 그 양과 스타일이 너무 방대했기 때문이었다. 작업의 효율을 높이려면 결국 기준점을 잡고 그곳에서 여러 가지로 테스트를 거쳐야 했는데, 그것조차도 어려웠다.

▲ 예시로 든 비전의 성역. 3D로 단순히 똑같이 구현해보니 어색해서 착시가 일어나게끔 카메라를 조절해야 했다

그러다 킹 디렉터는 액트5의 하로가스 입장씬을 보고 기준을 삼았다고 설명했다. 하로가스는 눈, 진흙, 피, 바람, 횃불, 어둠, 낮과 밤 등 빛과 관련된 모든 표현이 다 담겨있는 몇 안 되는 지역이었고, 그래서 어떻게 라이팅과 톤을 적용해야 해당 상황의 분위기를 디아블로2의 느낌에 맞춰서 표현할 수 있나 확인하기 좋은 곳이었다. 그래서 하로가스의 각 상황별 전경을 와이드로 따고, 그걸 3D에 맞춰서 구현하면서 톤과 감성을 어느 정도로 조절해야 할지 기틀을 잡았다.

카메라는 3D 렌더링을 마야에서 하는 과정에서 영감을 얻어 ISO 카메라를 기반으로 하되, 구도에 따라서 원하는 각이 안 나올 때는 그 구간에 카메라를 따로 설치해서 보완했다. 그리고 각 아티스트들이 그레이 메시로 작업을 마치면 다른 그룹의 그레이 메시 작업물과 합쳐서 결과물을 체크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간 뒤에 결과물이 어느 정도 완성되면 월드 아트쪽 주도로 다시 통합해서 확인 후 최종 폴리싱 과정으로 들어갔다.


▲ 전체적인 컨셉을 잡기 위해서 우선 액트5 하로가스를 구현하고

▲ 원작의 각 상황별 작업물을 보고 이에 맞춰서 레저렉션의 하로가스도 작업, 그 결과를 체크했다

이 과정에서 다수의 사람들이 블리자드 노스가 통합되고 디아블로2 관련 자료들이나 애셋들이 상당 수 소실됐다는 루머를 제기하기도 했는데, 킹 디렉터는 이 루머는 사실이 아니라고 답했다. 다만 디아블로2 관련 자료들은 당시 저해상도 환경을 고려해서 만들어진 것이 다수였고, 이 애셋들은 그대로 사용할 수 없을뿐만 아니라 때로는 혼선을 빚을 수도 있었다. 그래서 리마스터링을 담당했던 비카리어스 비전 인력들이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에 재직 혹은 퇴사한 디아블로2 관계자들에게 원본 디자인을 토대로 어떤 의도로 작업을 했는지 하나하나 물어보고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그 과정이 잘못 알려져서 애셋이 없어진 탓에 원작자들을 찾아갔다는 식으로 루머가 퍼졌다고 해명했다.

그렇게 원본 디자인을 보면서 일부 새롭게 작업한 대표적인 사례가 캐릭터 장비나 원작에서는 맵 곳곳에 흐릿하게 남아있던 장식물을 다듬는 일이었다. 당시 캐릭터 컨셉 아트 및 장비 애셋은 캐릭터 선택창을 제외하면 모두 저해상도 환경에서 약간 왜곡되어보이는 걸 감안해서 작업이 되어있었다. 그래서 개발에 참여했던 인력에게 조언을 구했고, 리얼함이나 판타지 느낌보다는 '기능적인 디자인'을 최우선으로 고려했다는 의도를 전달받았다. 그에 따라 원래 애셋과 컨셉 아트를 참고하되, 이를 기능적으로 살리기 위해서 다각도로 디자인해보고 적용한 뒤에 최종안을 결정했다.

▲ 자료가 없어졌다는 루머가 있었지만, 단지 당시 애셋 다수가 저해상도용이라 그대로 쓰기 어려웠을 뿐이라고

▲ 그래서 캐릭터 장비는 원 컨셉아트를 바탕으로, 개발자에게 '기능적 디자인'이라는 의도를 전해듣고 재해석했다

그리고 원본에서 쿠라스트 부두에 걸린 정체를 알 수 없던 물체는 괴물 시체였는데, 이런 요소 하나하나도 해상도가 높아진 리마스터 버전에서는 디테일을 하나하나 살려야했다. 그러나 이는 당시 게임 화면만으로는 확인하기 어려웠고, 결국 이 역시도 검증을 위해서는 당시 개발에 참여한 인력들의 도움이 필요했다.

아트가 어느 정도 자리가 잡히고 난 뒤에는 애니메이션이 문제였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디아블로2는 2D 스프라이트 애니메이션을 썼는데, 이를 3D에서 그대로 맞춰서 모션을 만들고 옛날과 동일하게 블렌딩 처리를 하지 않으면 슬라이딩하는 등 현상이 일어났다. 이를 조치하기 위해 블렌딩을 넣고, 원본의 움직임을 면밀히 관찰해서 그 움직임이 그대로 나올 수 있도록 다듬었다.

라이팅이 문제였던 만큼 스킬, 특히 마법의 이펙트를 표현하는 것도 까다로웠다. 앞서 잠시 실시간 라이팅을 단순 적용했던 디아블로의 마법은 원본과 동일한 수의 불꽃이 발사된 것인데, 리얼타임 라이팅이 적용되면서 파티클에도 빛 효과가 뒤섞여 마치 불꽃 고리처럼 보이는 현상이 발생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 다수의 마법에 파티클과 실시간 라이팅을 쓰지 않고, 박스로 대체한 뒤 맵을 입히는 방식으로 구현했다.

▲ 실시간 라이팅으로는 옛날 느낌을 낼 수 없어서 박스를 넣고 맵을 입혔다

▲ 특히 네크로맨서가 가장 큰 문제였다고...

▲ 저해상도로 뭉개져있는 원본과 가장 유사한 느낌이 나려면 어떤 게 좋을지 고민도 필요했다

인터페이스는 원본을 유지하되, 콘솔에서도 쓰기 편하게 그리고 여러 해상도에 대응하도록 작업해야했다. 그리고 스탯과 스킬창을 열었을 때도 게임이 멈추지 않고 그대로 진행된다는 느낌을 줘야 한다는 개발자 코멘트에 따라서 스탯 및 스킬창을 그 옛날 비율 그대로 옮기지 않고, 더 커진 해상도 비율에 맞게 따로 적용해서 가운데 캐릭터가 보이게끔 했다.

아이콘 작업은 처음에는 저해상도로 만들어진 것을 단순히 고해상도에 맞춰 작업하는 식이었지만, 테스터들의 지적에 핸드페인팅으로 표현했던 당시의 스타일을 최대한 적용하는 식으로 구현했다. 일례로 디아블로2 레저렉션의 초기 자수정 디자인은 빛이 반사되고 있는 자수정을 손으로 그려서 표현했던 걸 고해상도, 그리고 실제 광채에 맞춰서 작업한 것이었다. 그렇지만 테스터들은 원본과 느낌이 다르다고 비판했고, 이에 따라 아예 새로 고해상도에 맞춰 아이콘을 그렸다.

▲ 인터페이스 비율은 원 개발자들의 조언에 따라 새로 조정하고

▲ 일부 1차 작업했던 아이콘을 피드백을 거쳐 개선했다

이런 식으로 기준과 방식을 정하긴 했으나, 디아블로2의 애셋은 방대해서 그것을 하나하나 구현하는 것부터가 힘든 작업이었다. 여기에 든 수고와 세부 기술은 다른 강연자들이 이미 GDC 2022의 다른 무대에서 강연하고 있는 만큼, 킹 디렉터는 인력 배분과 대략적인 작업 과정을 소개했다.

우선 각 액트마다 아티스트 한 명씩, 그리고 2~3명의 라이팅 담당자와 2~3명의 폴리싱 담당자가 붙었다. 일단 그레이 메시로 윤곽을 전체적인 윤곽을 구현하면서 어떤 애셋이 어디에 들어가야 할지 감을 잡아갔다. 그렇게 한 뒤에는 약 한 달에 걸쳐 그레이 메시 상태에서 세세한 지형지물을 구현하고, 그에 맞는 마테리얼이나 맵을 해당 액트를 담당한 아티스트가 주관해 대기 중인 다른 아티스트와 함께 작업해나갔다.

마테리얼과 맵 제작이 완료되면 이를 적용해본 뒤, 톤과 라이팅을 한 차례 조율한 뒤 폴리싱하고 다시 한 번 원작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 디테일을 가하는 식으로 마무리했다. 루트 골레인이나 하로가스 등 일반적인 지역은 일괄적으로 한 차례 조율하면 끝이었지만, 증오의 사원이나 세계석 보관실 등 컨셉이 뚜렷한 구간은 그 컨셉에 대해 좀 더 파고든 뒤에 다르게 적용할 필요가 있었다.

일례로 메피스토가 있는 증오의 사원 내 증오의 억류지는 원 개발자들이 헤비메탈 앨범 커버의 느낌으로 작업했었다. 그래서 증오의 사원은 어둡고 잔혹한 분위기를 리얼하게 살리기 위해 유혈 표현을 그대로 선명하게 담아내되, 그 구간은 다시 컨셉에 맞춰서 앨범 커버 느낌을 살리기 위해 주변의 라이트를 끄고 폴리싱을 했다. 그리고 디테일을 보정하면서 마무리했다. 세계석 보관실은 원본과 시네마틱을 참고하고, 원본 개발자 및 시네마틱 제작자 그리고 리마스터링 담당자들이 크로스 체크를 거쳐서 완성됐다.

▲ 일단 그레이 메시 상태로 대략적인 틀을 잡고

▲ 세부 오브젝트 및 지형 작업을 진행했다

▲ 그리고는 각 액트 담당자 주도 하에 아트팀이 그 지형에 쓸 마테리얼과 맵을 작업했다

▲ 이를 1차적으로 입힌 뒤


▲ 폴리싱하고 추가로 보정하면서 마무리가 됐다

▲ 증오의 억류지는 원본이 헤비메탈 앨범 커버 같은 느낌으로 작업했다고 전달받았고

▲ 증오의 사원 컨셉에 맞춰 우선 작업한 뒤

▲ 1차 폴리싱으로 전체적인 윤곽을 잡고

▲ 원본 컨셉에 어울리도록 보정했다

이렇듯 디아블로2를 2D에서 3D로 옮기면서, 원본 느낌을 고스란히 살리는 작업은 쉽지 않았다. 기술적인 이슈뿐만 아니라 어떤 느낌을 살리기 위한 영감도 필요했기 때문이다. 킹 디렉터는 마지막으로 작업이 너무 방대했던 만큼 그 과정을 일일이 다 소개할 순 없었다고 밝히는 한편, 중요한 조언을 하나 던졌다. 작업이 안 될 떄는 관점을 다르게 생각하거나, 순서를 바꿔보는 등 조금 돌아서 보라는 점이었다. 디아블로2 레저렉션의 첫 작업은 액트1이 아니라, 액트5 하로가스부터 시작해서 루트 골레인 등 곳곳을 둘러보면서 컨셉을 잡는 것부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유연한 시각에서 접근하면 문제를 해결할 좀 더 쉬운 방법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라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