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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대 린저씨 zi존검사의 모험


에서

70대 린저씨 zi존검사의 검은사막 연대기


로 변경하였습니다.

재밌게 읽어주시는 분들 모두 감사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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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대 zi존검사는 아파트 단지 내에 있는 3층짜리 상가 건물의 간판을 올려다봤다.


[스파크 pc방]


반경 1키로미터 내에 있는 피시방이라고는 이곳 하나다.

고작 게임을하자고 버스까지 타가며 이웃동네까지 나가기 싫으니 선택지는 이곳 뿐인데...

문제는 계단이었다.


'고관절이...'


심히 걱정되는 나이다.

'걷기'는 무리없어도 '오르기'는 힘든 나이.

지팡이가 간절해지는 이 시점에 다시 돌아갈 수는 없었다.

그건 배보다 배꼽이 크니까...


"허억...커허.... 생...각보다... 괜찮구나..."


가파른 숨을 진정시키며 피시방의 문을 열었다.


"아이씨! 앞에앞에! 앞에보라고!"
"아~! 개못하네 진짜..."


역시 예상대로였다.

실내 흡연이 금지된 지금 피시방은 아이들의 놀이터.

과거 리니지를 플레이하며 담배연기 자욱했던 피시방은 없었다.

대신 깔끔하고 잘 정돈된 실내가 꽤나 흡족했다.


'살다살다 다 늙어서 피시방에 올줄이야...'


마누라 앞에서 무릎꿇고 설교를 들은 전날 밤이 떠오른다.


-당신이 아무리 잘 번다해도 일억은 큰 돈이란 걸 왜 몰라? 이제 갈때 됐다고 막나가는거에요?
-아니... 일억을 쓴다는게 아니라... 한도를 일억으로 올려둔다는거지... 통장도 송금한도가 일억이라고 매일 일억씩 주고받지는 않잖소...
-말 제대로하는거보니 찔리는게 있긴한가보네?
-아... 아니... 그...런게 아...니라...
-더듬는 척 하지마세요.
-예.


아무튼 컴퓨터는 압수당했고, 카드도 빼앗겼다.

이대로 검사를 접게되는걸까?

잠자리에 누워 몸을 뒤척이다 피시방을 떠올렸다.


-나 김봉출. 안되면 되게하는 남자.


그렇게 난 지금 피시방에 서있다.


"크흠... 여기 사장 없소?"


달달한 냄새가 풍기는 음식을 나르던 점원이 다가왔다.


"어떤 일로 찾아오셨어요?"
"자리를 안내받고 싶소만."


한참을 바라보던 점원은 날 어떤 기계앞으로 데려갔다.


"이게 키오스크라고하는 기계인데요..."
"패스트푸드점에 있는거?"
"아 아세요? 그럼 쉽겠네요! 이렇게 시간을 선택하시고..."


점원의 설명은 의외로 알아듣기 쉬웠다.

필시 날 배려해서 쉽게 설명한 것 일테지.

나이가 들면 이런 사사로운 것에서 고마움을 느낀다.


"고맙네."
"아니에요. 그럼..."
"부탁이 하나 더 있는데."
"네?"
"조용한 자리는 없나?"


점원은 고민하다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그... 커플룸이라고 2인실이있는데 좀 비싸거든요... 그래서..."


주저한건 가격때문이었나?

날 시류에 탑승하지 못하는 늙은이라 생각한 듯한 느낌에 약간 오기가 생겼다.


"가격은 상관없소. 앞으로 자주 찾을테니 아예 그 커플룸 한곳을 내 지정석으로 만들어주시오."
"예? 지정석이요?"


점원은 놀란 얼굴로 우물쭈물하더니 잠깐만 기다려달라말하고 데스크안쪽으로 사라졌다.


'뭔가 실수했나?'


하지만 걱정도 잠시. 나이가 지긋한 중년의 남성이 밝은 얼굴로 다가왔다.


"아이고. 선생님! 안내가 좀 부실했죠?"


사장에게서 장사치의 눈빛이 보였다.

그렇다고 기분이 나쁘진 않다.

사장과 손님같은 돈으로 맺어진 신뢰관계는 그 이상의 관계보다 깔끔하니까.

이런 부류는 준만큼 되돌려준다.

물론 충분한 비용을 지불해야하지만.


"괜찮소."
"계단이 높아서 오르기 힘드셨을텐데 음료한잔 하셔야죠? 커피랑 주스가 있습니다."


이제야 말이 통하는구만.


"커피. 맥심으로 물은 반보다 적게."
"저랑 취향도 같으시네요. 승필아?"
"넵. 사장님. 조금만 기다리세요."


알바가 종이컵을 들고 사라지자 사장은 날 안내했다.

사장을 따라 들어간 곳은 푹신한 쇼파와 멋드러진 모니터가 두대 나란히 놓여있는 방이었다.


*


스파크 pc방 사장 박중식은 이 손님이 대박이란 사실을 첫 눈에 알아봤다.

깔끔한 백의 정장과 왼쪽 손목에 착용한 명품 시계가 그 증거.

거기다 알바에게 보인 친절한 모습은 인품까지 갖추고 계셨다.

아마 소싯적 사회에서 꽤나 날렸을게 분명했다.

박중식은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여기가 커플룸입니다. 비싸서 잘 이용되지는 않는데 간간히 수요가 있긴해요."
"내 나이쯤 되면 취미 말고는 돈쓸 곳이 없다네. 월 단위로 결제하고 싶네만?"


겉으로 내비치진 않았지만, 박중식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시간은 무제한이 좋으십니까?"
"어차피 내 전용으로 한다면 그게 좋겠지."


방을 둘러보던 노신사는 꽤나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첫인상은 좋아. 그렇다면...'


중식은 펜과 종이를 꺼내 계산하기 시작했다.

계산을 마치고 노신사를 바라봤다.

그러자 알 수 없는 압력이 느껴졌다.


'무슨 노인에게서 박력이...'


어느새 쇼파에 앉은 노신사는 마치 대기업 인사를 담당하는 과장의 모습으로 변해있었다.

눈빛은 날카로웠지만, 딱딱하지 않았다.

오히려 부드러웠는데 그게 더 심리적으로 압박이 크게 다가왔다.

하지만 그는 박중식이다.

트럭으로 청과물을 판 돈으로 pc방 프랜차이즈 사업에 뛰어들어 3년만에 개같이 성공한 박중식.

심기일전한 그는 저도 모르게 브리핑을 시작했다.


"커... 크흠! 커플룸의 기본 비용은 시간당 3,000원입니다. 24시간에 72,000원이지만 7만원으로 떼고, 한달을 30일로 묶어서 210만원이 나오는데 온전히 다받을만큼 양심이 없진 않습니다."


노신사의 표정은 마치 그래서? 라고 말하고있는 듯 했다.

박중식은 입사 면접을 보는 신입처럼 긴장했다.


"보통 한달에 이용되는 커플룸의 시간은 평균 100시간 내외입니다. 저로써는 고정 수입을 올리기만 한다면 만족하긴하는데... 월 35에서 45만원이 적당하다보는데 어떠신지요?"


그가 생각해도 합리적이다.

어차피 놀던 방이다.

꽤나 폐쇄된 공간이기에 대가리 피도 안마른 것들이 엄한짓을 해대서 학부모들 원성이 자자 한 적도 있었다.

그래서 붙은 미성년자 이용 금지 스티커.

때문에 커플룸의 수익은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그정도로 괜찮겠소?"


그를 걱정하는 말투였지만, 박중식에겐 '더 없냐?' 라고 들렸다.

하지만 그도 더 이상 물러날 수 없었다.


"충분합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더는 안됩니다.'라는 완곡한 표현.

노신사는 만족스런 미소를 지었다.


"여기... 커피... 왔는데..."
"마침 딱 좋구만."


긴장이 풀리자 박중식에게 의문이 들었다.


"근데... 어떤 것을 하시려고 찾아오셨나요?"


노신사는 별걸 다묻는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피시방에 게임하러오지 업무하러 오겠나?"


그러자 더 궁금해졌다.

머리가 새하얗게 샌 노인의 마음을 훔친 게임이 무엇인가?


"그... 실례가 안된다면, 어떤게임인지 여쭈어도 될까요?"
"이거 부끄럽구만."


잠깐 얼굴을 붉히며 뜸들인 노신사가 말했다.


"검은사막이라네."
"어? 검사하세요?"


커피를 건네준 승필이 놀랐다.


*


"자네도 검은사막하나?"
"그럼요! 어떤 캐릭하세요? 전 하사신인데."
"아직 시작도 제대로 못했어. 캐릭터는 무사로 정했지."
"무사 좋죠! 조금 알려드릴까요?"


듣던 중 반가운 소리였다.

하지만 사회의 역군으로써 제 업무를 다하는 사람을 붙잡아 둘 순 없는 법.

난 진상이 아니다.


"모든 업무가 끝나고 잠깐은 괜찮겠지. 너무 붙잡아두면 사장이 싫어하니까."
"하하! 괜찮습니다. 이 친구 오전타임이라 오늘 잠깐 대타로 나온거에요."
"그런가?"
"네! 혹시 괜찮으시면 옆자리에서 같이 해도 될까요? 허락만 해주시면..."
"승필아.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옆자리에서 하니..."


사장의 질타를 제지했다.

지금 나에겐 285페이지에 달하는 가이드가 있지만, 디테일은 부족했다.

길라잡이 역할을 해줄 누군가가 있다면 적응도 쉬워질 것이 분명!

그는 싹싹하고 예의도 있어보였다.

무엇보다 대충 지나칠 수 있었던 노인네의 물음에 성심 성의껏 답해주지 않았나.

인연이란 이런 것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괜찮다면, 이 친구 몫까지 결제하도록 하지."
"예?! 2인으로요?"
"그래."
"그럼 가격이 두배로..."
"상관없네."
"아... 알겠습니다. 야, 임마. 너 복받은줄 알아라."
"어... 그런 뜻은 아니었는데... 감사합니다!"


곧이어 사장과 점원을 찾는 목소리에 둘이 사라지고 난 컴퓨터를 켰다.

그리고 검은 사막을 실행했다.


"이제 맘 놓고 할 수 있겠군."


계획은 이랬다.

오전 산책을 빌미로 피시방에 출근.

점심에 잠깐 들러 밥을 먹고, 마누라가 놀러나가면 오후에 다시 출근.

이후 6시까지 놀다가 퇴근하면 된다.


"완벽해."


그리고 손가방에서 카드를 하나 꺼내들었다.

쓸 곳이 없긴 했지만, 습관처럼 모아둔 비상금이 들어있는 카드다.


"흐흐흐... 여우같은 마누라. 요건 몰랐지?"


린저씨의 현질을 향한 불길은 아무리 짓밟아도 사그라들지 않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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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다보니 게임관련 이야기가 뒤로 밀렸는데 다음편부터는 승필군과 zi존검사의 검사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재밌게 읽어주시는 분들 다시한번 감사드려요.